141. 북풍과 태양 2
태양과 머리 다섯 달린 용은 심기가 매우 불편했다.
그도 그럴게, 여행자의 외투를 벗기는 내기를 하려고 했더니 북풍이 시작하자마자 게임을 끝내버렸으니까.
"한 판만. 한 게임만 더 하자."
"아 태양이 구질구질하게 왜 이래."
"야! 도박에 태양이고 나발이고가 뭐가 중요해! 중요한 건 목숨이라는 칩을 테이블에 올려놓는 배짱이라고!"
"무모하군. 하지만 싫지 않은 배짱이야. 좋다. 한 게임 더 해보자고. 공정성을 위해 순서는 가위바위보로 정하자."
"전통적인 휴먼 스타일이군. 용도 다시 할래?"
"이번에도 북풍이 혼자 다 해먹을 거 같아서 좀 그런데."
"쫄?"
"북풍은 북으로 꺼질 준비나 하시지. 이 무대는 머리 다섯 달린 이몸께서 접수하겠다!"
머리 다섯 달린 용을 순식간에 회유한 뒤, 게임이 시작됐다.
이번에도 룰은 심플.
길을 지나는 사람의 외투를 벗기는 게 다였다.
하지만 게임이 시작하기도 전에 태양과 머리 다섯 달린 용은 낭패한 얼굴이 되었다.
"크윽. 설마 모가지가 엉켜서 주먹이 되어버리다니. 너무 마음만 급했어!"
"실수다! 항성은 바위밖에 낼 수 없잖아! 북풍 자식. 알고서 순서를 가위바위보로 정하자고 한 거구나! 속였겠다아아아!"
"하하하하하하! 머리에 열만 가득한 태양하고 조금 똑똑한 도마뱀의 한계야 뻔하지! 기억해둬라. 게임이란 시작하기 전부터 승자가 결정된다는 사실을! 지갑이나 열어두시지!"
미리 인간에게서 가져온 보자기로 보를 낼 준비를 하고 있었던 북풍은 가뿐히 선공권을 따내고는 오늘의 희생양을 확인했다.
오늘의 희생양은 길을 지나가는 어린 나그네.
자기 키보다 조금 큰 고무나무 지팡이를 한 손에 쥐고, 호리병이며 검집 같은 잡동사니가 보이는 커다란 배낭을 메고 있는 게 특징적이었다.
"다시금 깨달아라! 파워야 말로 힘이란 것을!"
열풍! 질풍! 강풍! 올백 머리로 끝나지 않을 맹공이 어린 나그네를 향해 쇄도한다!
"엉?"
하지만 북풍은 오늘의 상대가 이전과 달리 까다롭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그는 고무나무 지팡이와 함께 포탈을 넘나들며 수없이 많은 세계를 경험하고, 사람의 꿈을 눈에 새기며, 인간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섭리에 어긋난 문제를 해결하는 운명을 타고난 자.
시작은 어리숙했을지 모르나 시간축이 다른 여러 세계를 여행한 그는 이미 상당한 수련을 쌓은 상태였다.
간단히 줄여 말하면, 그에게 북풍의 브레스 따윈 대수로운 일도 아니었다.
"뭐하는 짓이야. 지나가기 힘들게."
가볍게 혀를 찬 어린 나그네는 배낭에 있던 호리병을 꺼내 마개를 뽑았다.
초자연적인 능력과 신통력을 타고난 선인들이 사는 세계에서 마법사 역할을 하는 도사들이 만든 호리병이었다.
주된 능력은 사용자가 강하게 인식한 대상을 호리병 안에 가두는 것.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그가 이번에 호리병에 가둘 대상으로 선택한 건 북풍이었다.
"아————————————"
어린 나그네가 눈을 번뜩이자 북풍은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호리병 안에 빨려 들어갔다. 어떻게든 빠져나가려 했지만, 그보다 마개를 닫는 어린 나그네의 손이 훨씬 빨랐다.
순식간에 북풍을 봉인한 뒤, 그는 선글라스를 쓰고는 태양과 머리 다섯 달린 용을 노려봤다.
"무슨 동화 같은 놀이를 하고 있었나 본데, 너희도 덤빌래?"
"아, 아뇨. 저희가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가던 길 살펴 가십시오 대협. 헤. 헤헤헤."
"처신 잘하라고."
어린 나그네는 두 손가락으로 자기 눈을 가리킨 뒤, 방향을 돌려 태양과 용을 지목했다. 지켜볼 테니 허튼짓하지 말라는 제스처에 용과 태양은 진땀을 흘리며 머리를 끄덕였다. 태양은 어찌나 급했는지 N극과 S극이 반전되었다.
그 후, 그 세계에서는 자연적 존재들끼리 내기를 벌이는 일을 300년 정도 자제했다나 뭐라나.
확실한 건, 따사로운 날만 계속된 덕분에 길을 지나는 여행자들이 자연스레 외투를 벗고 다니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Comment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