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4. 성녀 2
"그러면 신학 시험을······."
감독을 맡은 서부 아카데미의 강사는 노골적인 거부감을 드러내며 다음 대사를 말하는 걸 주저했다.
하지만 어쩌랴. 그에게 그만의 교육관이 있다 해도 어쨌거나 급료를 받아야 먹고 사는 사람.
처음부터 부조리였으면 정의감에 불타 항의라도 했겠지만, 기나긴 회의 끝에 수용한 제도에 찬물을 끼얹지는 못했다.
"···시험을 오픈 셀레스티얼 방식으로 시작하겠습니다."
"주여어어어어어어―!"
"믿음은 빛을 만든다! 그리고 나는 힘찬 기분이 든다!"
"아아! 주기도문! 좋은 대화 수단이지!"
"do the impossible see the invisible!"
조용해야 할 시험장에 신을 찾는 기도가 몰아쳤다. 천장을 시원하게 개방했고, 드높은 천상으로부터 기적의 빛이 바겐세일처럼 쏟아졌다. 이곳에 흡혈귀나 좀비가 있었다면 빛이 짜증 난다고 민원을 넣었으리라.
성녀가 신탁을 내려받아 신학 시험을 통과한 이후로 신학 시험은 줄곧 이런 식이다.
신앙을 통해 천상의 지식을 내려받는 것 또한 문제 풀이법 중 하나에 포함된다는 게 교단 측의 의견이었다.
***
"성녀가 사고 친 건 그렇다 쳐도 곡해 없이 정확한 교리를 전파할 수 있으니 교단 측에서도 이런 방식을 밀어주는 거겠지만······."
학생들이 제출한 시험지를 가지고 교무실에 온 강사는 눈앞의 광경에 뚱한 표정이 되었다.
그의 시선이 닿은 곳에서는 역사학 교수와 천상에서 소환된 천사가 서로 치열한 논쟁을 벌이고 있었다.
"그러니까 붉은 용사가 지평을 뒤트는 뱀을 쓰러트린 건 여신님의 신탁이 있어서라고 말했잖아! 이 대머리야!"
"어림 반푼어치도 없는 소리 말지어다. 날개 달린 고결한 존재야! 용사의 여정은 인간 찬가! 인간 찬가는 용기의 찬가! 중간에 신탁 한번 내렸다고 그게 용기의 여정을 성전으로 바꿀 명분은 되지 않음이니!"
"에이이이잇! 지상의 역사학자들은 전부 이렇게 뜨거운 녀석들 뿐인가? 대화가 안 통한다 대화가! 그렇게 열이 넘치니까 대머리가 되는 거야!"
"내 모근에 한 점 후회 없음이니. 이 민머리는 지혜에 평생을 바친 학구열의 증명이라!"
논쟁의 원인은 역사적 사실을 앞에 둔 해석 차이. 천사와 역사학 교수는 벌써 열흘째 밥도 먹지 않고 서로의 의견을 굽히지 않은 채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었다.
둘 중 어느 쪽이 이기느냐에 따라 시험 결과도 크게 바뀐다. 시험지를 들고 왔던 강사는 논쟁 중인 문제를 방치한 채 다른 문제를 우선적으로 채점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다니까. 아무리 의도가 좋아도 결국 피곤해지는 건 우리처럼 중간에 있는 사람들이지. 퇴근하고 싶으니까 슬슬 누가 정리 해주면 좋겠는데.'
함부로 채점을 마무리할 수도 없었다. 아무리 가르치는 학문이 다르다 하더라도 서부 아카데미에서 교수라는 위치가 가지는 영향력은 크다. 게다가 귀족 직위까지 있어서 심기를 건드리면 어떤 식으로든 보복해 올 게 틀림없었다.
강사는 현재 이 교무실에서 교수보다 유일하게 급이 높은 인물의 눈치를 살폈다.
카우보이 모자를 쓴 젊은 사내. 서부 아카데미의 이사장이자 서부 개척사업의 실권자. 서부 대공은 책상에 다리를 올린 채 위스키를 병째 마시며 호탕하게 웃었다.
"예-하! 그래! 싸워라! 더 화끈하게! 천사와 교수의 싸움이라니. 이런 거 어디 가서 돈 주고도 못 본다고!"
틀린 말은 없었다. 말한 사람이 서부 아카데미에서 싸움이 아니라 안정과 관리를 목표로 해야 마땅한 최고 책임자인 이사장만 아니었다면 말이다.
이사장이 전력으로 부추긴 탓일까. 이를 갈던 천사와 교수의 논쟁은 기어코 복싱으로 발전했다. 교무실이라는 이름의 링에는 신성한 레프트 스트레이트와 지적인 라이트 훅이 번뜩였다.
이사장도 저 꼴이니 오늘 제시간에 퇴근하기는 글렀다. 깔끔하게 체념한 강사는 딱 한 문제만 빼고 채점이 끝난 시험지 뭉치를 자물쇠 달린 상자에 봉인했다.
일을 미루고 향한 곳은 교내 주점이다.
마법 정령이 날뛰는 서부 황야 안쪽에 개척 인재 육성을 목적으로 세워진 서부 아카데미.
조금만 서쪽으로 가도 정령들에게 문자 그대로 튀겨질 수도 있는 이곳에서, 좀처럼 기를 펼 수 없는 강사와 조교들이 마음 편히 있을 수 있는 곳은 딱 한 곳. 교직원 한정 무료 사과주와 여성 종업원의 미소가 제공되는 교내 주점밖에 없었다.
- 작가의말
YEAH-HA!
YEEEEEE-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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