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 호위
"그러면 닷새 떨어진 영지까지 잘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음."
호위 임무를 맡은 그는 답변하자마자 의뢰인의 목을 베어버렸다.
그의 직업은 암살자.
지키는 것보단 죽이는 쪽에 특화된 참격은 너무 빨랐다. 호위 대상은 고통조차 느끼지 못하고 즉사했다.
주변에 사람이 다니는 대낮이었지만 아무도 비명 지르지 않았다.
그들은 살인이 일어났다는 것조차 인지하지 못했다. 깔끔한 일 처리를 중시하는 암살자가 목을 베자마자 익숙한 솜씨로 호위 대상을 관 안에 넣어버렸기 때문이다.
멀쩡히 서 있던 사람이 갑자기 관으로 변신했다.
사람들에겐 그렇게 보였다.
암살자는 마차에 관을 실은 후 호위 대상의 목적지로 향했다.
그리고 얼마 후, 당연하단 듯이 도적 떼가 한적한 숲길에 들어선 마차를 막아섰다.
"크헤헤헤! 먹을 것과 돈을 내놓고 썩 꺼지시지!"
"이 마차는 시신을 싣고 있는데, 시신에서까지 돈을 갈취할 셈인가?"
"으음, 지금 털었다간 짐승만도 못한 쓰레기가 될 것 같은 기분이군."
"살인마가 봐도 그렇게 생각하겠지."
"아무리 우리가 밑바닥 인생이라도 시체를 털 정도로 타락하지는 않았어."
"이왕 영구차를 막았으니 조의금이라도 넣는 게 어떤가?"
"나쁘지 않군. 좀 더 선한 기분으로 도적질을 할 수 있을 거 같아. 하는 김에 마차도 검은색으로 칠해줌세."
도적들에게 조의금은 물론 마차 도색까지 받은 암살자는 도적들을 뒤로하고 다시 마차를 몰았고, 정확히 사흘 만에 목적지에 도달했다.
경비대에 붙들리는 일도 없었다. 교회에 시체를 운반 중이라는 말과 위조신분증을 보여주자 위병은 가볍게 고개만 끄덕이고는 암살자를 통과시켜줬다.
교회에 이르자 암살자는 사제에게 부활 마법을 요청했다. 제법 시간이 지났지만 워낙 깔끔하게 사망한데다 관 안쪽에 부패 방지 마법까지 걸어둔 덕에 암살자는 부활 비용은 크게 깎을 수 있었다.
죽음에서 돌아온 의뢰인은 자신이 목적지에 이틀이나 일찍 도착했다는 걸 깨닫고는 크게 만족했다.
"정말 죽여주는 실력이군요! 이렇게 일찍 도착했으니 세탁비는 따로 청구하지 않도록 하죠."
"당연하지. 암살자의 일은 늘 죽이는 일뿐이니까."
***
다시 사흘 후.
호위 의뢰를 접수했던 모험가 길드의 접수원은 암살자가 예상보다 훨씬 빨리 돌아오자 처음에는 의뢰를 내팽개쳤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암살자는 의뢰주의 도장이 찍힌 의뢰서를 확인하라고 내밀었고, 사실임과 동시에 의뢰인이 살아있다는 것까지 확인한 접수원은 암살자가 일을 어떻게 처리한 건지 물었다.
암살자만이 할 수 있는 특별한 호위 방식을 들은 후, 접수원은 하얗게 질린 얼굴로 따졌다.
"아니. 시작부터 죽인 거잖아요."
"하지만 고객 만족도는 높지 않았나?"
"그으으으으건, 그으으으으렇긴 한데······."
"서비스업은 고객 만족도가 최우선이잖나."
"그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것도 그렇긴 한데······!"
접수원이 윤리와 직업의식 사이에서 거대한 혼란을 겪고 있는 사이, 서비스업의 본질을 정확히 꿰뚫어 본 암살자는 의뢰인이 사전에 길드에 맡겨 놓은 보수금을 수령해 길드 밖으로 나가며 씨익 웃었다.
윤리고 논리고 나발이고 자시고.
암살자의 머릿속에는 이미 간만에 먹을 스테이크 생각밖에 없었다.
"크으으, 죽여주는 맛이겠지!"
- 작가의말
"중요한 윤리의식 몇 가지가 빠졌지만, 일은 다 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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