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9. 도시지기 2 / 빵타지아
도시지기는 지구에서 일어나는 온갖 초상현상을 은폐하는 해결사들.
해결의 개념과는 거리가 있다. 세상에 대형 이슈가 되지 않도록 조정하는 거지, 사건 자체를 완전히 종결시키는 건 아니다.
자타공인 해결사인 그들이 손대는 일은 아이러니하게도 절대 해결되지 않는 셈이다.
"그래서, 이번엔 또 무슨 일이야?"
"풋내기 마법사들입니다. 노르웨이 놈들이 차원문을 만들다가 반대로 역류했어요."
"북유럽 마법사면 드루이드 아냐? 나무박이 놈들 말이야."
"인종차별 하나만 하기도 쉽지 않은데 단 한마디로 마법사, 드루이드, 인종차별을 한꺼번에 해내시는군요. 대단하네."
도시지기들과 긴밀한 협력관계인 머큐리 재단에서 온 요원이 조롱 섞인 감탄을 하든 뜨악한 표정을 짓든, 도시지기는 '사건'이 일어난 월세방 안으로 들어섰다.
언뜻 보기엔 평범해 보이는 빌라의 투룸.
하지만 손가락으로 벽지를 문대본 도시지기는 풋내기 마법사들이 무슨 짓을 한 건지 금방 눈치챘다.
"크림이로군."
"먼저 조사한 부하들 말로는 안방부터 거실까지는 전부 빵과 과자가 되었다네요."
수저는 막대사탕으로. 의자는 바게트로. 밥솥은 밥이 들어간 고로케로.
베란다에 몇 없던 식물마저 녹차 쿠키와 크래커가 되었다.
냉장고 문을 유심히 관찰하던 도시지기는 문을 여는 대신 주머니칼로 문을 일부 도려냈다. 문은 카스테라였으며, 안의 내용물은 색색의 차가운 젤리가 되어있었다.
"다른 초상현상을 제압할 때 들은 적이 있지. 분명 빵타지아라는 세계가 있다고. 거기엔 모든 게 빵과 과자로만 이루어져 있다더군."
"그쪽에서 뭔가를 불러내려다 잘못돼서 존재가 아니라 모든 게 빵과 과자가 되는 '섭리' 자체를 소환했다. 상부에는 그렇게 보고하면 될까요."
"그정도면 되겠지."
"역시 선생님을 부르길 잘했네요. 재단은 기술 쪽은 뛰어나도 마법으로 넘어가면 영 힘을 못 써서."
"그렇다 해도 뿌리는 같으니, 현장직과 사무직의 차이 정도라고 하는 게 맞겠지. 수습은 어떻게 할 셈이지?"
"별거 있겠습니까. 언론통제 하고, 돈 좀 쥐여주고, 노후되어 위험한 건물이라 한 다음에 헐어버려야죠. 마침 꽤 오래된 빌라라 일이 쉽겠어요."
"그래. 그러면 뒤처리는 됐다 치고······. 저건 어떻게 할 거냐."
"···저거라고 하지 말고. 정확하게 말씀해주시겠어요?"
머큐리 재단 요원과 도시지기는 서로에게 은근한 압력을 넣어가며 눈치를 봤다.
긴장하고 있는 건 하급 요원들도 마찬가지였다. 현장의 지휘관급 두 명의 결정에 따라 '저것'을 어떻게 처리할지, 편의점에서 음료수는 뭘 얼마나 사와야 할지 결정될 테니까.
"그, 뭐라고 할까······."
도시지기는 저도 모르게 흘러내린 군침을 곤혹스러워하며 말을 이었다.
"여기서 빵타지아의 영향을 받은 건 다시 원래대로 돌리지도 못하잖아."
"그거야. 그렇죠."
모두의 시선이 쏠린 곳은 안방.
마법진의 잉크가 딸기잼으로 변한 공간.
빵타지아의 영향을 가장 짙게 받은 그곳에 있는 건 하다못해 작은 먼지마저 빵가루로 변해 있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마법진을 그리고 가동한 노르웨이인 마법사 콤비는 그 옆에 있었다.
눈은 사탕. 머리카락은 물엿과 초콜릿. 살은 카스테라. 지방이 많은 부분은 슈크림. 뼈는 설탕 과자가 된 채로.
"건물은 철거하고 일부는 머큐리 재단에서 샘플로 가져간다 해도······."
"인건비도 무시 못 하니까요. 먹어서 치울 수 있다면 먹어서 치우는 게 좋죠."
"그······."
"···아, 씨. 짜증나게 냄새는 왜 또 달달해가지고선. 심지어 따끈따끈해서 식지도 않네. 온도 한번 재볼까요?"
"냅둬. 36도에서 37.5도 사이이면 괜히 더 찝찝해지니까."
"···아마 이런 식빵을 볼 기회, 다시 오긴 힘들겠죠?"
"아무래도 흔한 일은 아니지. 초상현상 처리가 일인 나도 처음 보는 거니까."
"어차피 샘플로 가져갈 것도 둘이고. 하나 정도는 맛을 보는 것도······."
"···그거, 식인 아니냐?"
"아아아! 말해버렸어. 이 양반. 기어코 말해버렸다고! 기껏 피하고 있었는데!"
뒤틀린 우주의 섭리에 휘말려 빵으로 변해버린 사람을 먹으면 그건 식인인가. 식빵인가.
온갖 괴현상을 겪어본 뒷사회의 주민들은 예상보다 달달한 괴이를 앞에 두고 깊은 고민에 빠졌다.
- 작가의말
사실 식인-식빵 드립은 전작에서도 쳤습니다만, 주체가 빵타지아 주민이 아니라 (전)사람이 되니까 살짝 무섭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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