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1. 굴러온 돌
"오, 안녕!"
박힌 돌 옆으로 굴러온 돌이 말을 걸었다.
"너는 대단한 돌이구나. 여기서 햇볕을 쐬고 있던 거야?"
하지만 박힌 돌은 대답하지 않았다.
굴러온 돌은 지성을 가진 무기물. 광물 인간이라고도 불리는 종족인 '셰이프(Shape)'였다. 반면 그가 말을 건 대상은 평범한 돌. 대화가 성립될 리가 없었다.
어린 셰이프는 그 사실을 이해하지 못했는지 돌 옆에서 계속 말을 걸었다. 지난겨울은 어땠나느니, 새싹을 밟지 않기 위해 어떻게 굴렀냐느니 등등.
옆에서 보다 못한 노루는 셰이프를 앞발로 가볍게 차 멀리 굴려버렸다.
이제 좀 조용해졌네. 노루가 그렇게 생각하며 작게나마 달성감을 느끼던 그때였다.
"오, 안녕!"
" "
분명 특별할 게 없던 돌이 노루에게 말을 걸어왔다.
"너는 정말 빨라 보이는 친구구나. 대단해! 정말 멋져!"
아니 뭐 그렇게 말할 것까지야.
야생에서 남에게 칭찬을 듣는 건 흔치 않은 일.
생소한 경험에 쑥스러워진 노루는 고개를 돌린 채 애꿎은 땅을 팠다.
"있지. 굴러온 돌이 말해줬어. 협곡이 얼마나 넓은지. 숲 밖이 어떻게 생겼는지 말이야. 대단하지 않아? 세상이 그렇게 넓은 줄은 몰랐는데!"
몹시 감동했다는 눈치였지만 노루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당연했다. 숲이 유일한 세계라고 느낄 정도로 넓은 건 땅에 박힌 작은 돌의 시점이다. 숲을 마음껏 돌아다닐 수 있는 노루에게는 썩 대단한 게 아니었다.
"그래서 말이야, 나도 여행을 가볼까 해. 더 넓은 세계로!"
포부는 대단했지만, 노루는 그 마음에 비웃음으로 답했다.
구르지도 못하는 돌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조롱이었다.
하지만 노루는 한가지 착각하고 있었다.
새로 태어난 이 셰이프는 자철석.
동시에, 이 숲의 10%에 달하는 지반을 차지하는 암석의 표면.
목표를 정한 셰이프는 자신의 광물 성질을 얼마든지 강화해서 활용할 수 있었다.
자철석이 근본인 이 광물 인간이 발휘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힘은 당연히 자력이다. 주변에 강력한 자기장을 형성한 그는 숲 전체에 지진을 일으키며 서서히 떠올랐다.
"가자. 아직 만나지 못한 세계를 향해!"
공중에 떠오른 건 간단한 연습에 불과했다. 자신이 만들어낸 자기장에 적응한 셰이프는 방향과 출력을 조절해 미지를 향한 여행을 시작했다.
새로운 것을 경험하고 새로운 돌을 만나, 자신이 느낀 감정의 형태를 전하기 위해.
한편, 자철석 셰이프가 자리했던 구덩이에서 모든 걸 지켜보고 있던 굴러온 돌은 빵끗 웃으며 말했다.
"역시 대단한 돌이었어. 내 눈은 정확하다니까!"
만물의 겉만을 보는 이들은 작은 돌이 얼마나 기뻐하는지 알 수 없었다. 확실히 웃고 있었지만, 돌의 표면에는 눈이나 입이 없었으니까.
현실적인 노루는 이를 지적하고는 구덩이에서 벗어나 숲으로 달아났지만, 작은 돌은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자신이 전한 감정의 형태가 새로운 셰이프를 일깨운 것에 만족하고 새로운 친구가 좋은 여행을 하길 바라며, 길가를 굴러다닌 삶에 만족한 채 천천히 눈을 감았다.
다른 돌에게 자신이 키워온 감동과 낭만을 전하고 다시 평범한 광물로 돌아가는 것. 그게 바로 셰이프의 삶이었다.
감동을 전하려는 자에게 화술이 요구될지는 모르나, 대상은 중요치 않았다.
그보다 중요한 건 우선 대화를 시도해 보려는 마음의 형태다.
이곳은 판타지 세계.
작은 돌조차 자신이 경험한 감동을 전하는 방법을 아는 낭만의 땅.
대화 없이는 그 어떤 것도 전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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