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 흡혈귀 2
"궁금한 게 생겼는데. 흡혈귀는 물을 못 건너잖아?"
"상식적으로는 그렇습죠 나으리."
"하지만 다른 사람이 관에 넣어서 옮겨주면 건널 수는 있고."
"마차에 타서 건너는 것도 가능합지요. 하지만 혼자 힘으로는 절대 건너지 못합니다."
"아주 흥미로운걸. 난 그게 물에는 마를 씻어내는 이미지가 있어서라고 생각해. 손을 깨끗이 만드는 것처럼."
"그렇게 말씀하시니 저희가 병원균처럼 느껴지네요."
통나무에 묶인 흡혈귀는 약한 거부감을 내비쳤다.
그러자 한때는 다크 엘프였지만 지금은 머리카락도 피부색도 전부 하얗게 된 2대째 멜티로제인 화이트 엘프는 산뜻한 미소만으로 숨길 수 없는 시커먼 살의를 드러냈다.
"적어도 근로법을 무시했다가 3명을 과로사시킨 흡혈귀는 병원균처럼 느껴질 만하지."
"히이이익! 사, 사과하겠습니다! 유족분들께도 최대한의 지원을 약속드리겠습니다!"
"쉬잇. 조용히."
"끄으으으르으으으으!"
2대째 멜티로제는 다정하게 손가락을 얹었을 뿐이지만 흡혈귀는 고통에 몸부림쳤다.
당연하다. 그의 손가락에는 최고 신관의 축성을 받은 최고품질의 성수가 묻어있었으니까.
"위기를 맞이하고 나서 하는 사과는 진심에서 우러난 게 아니야. 공포에서 우러나온 거지. 그래도 괜찮아. 선대 멜티로제가 미처 하지 못한 실험에만 동참해 주면 돼."
"아, 안 됩니다! 살려주십시오! 그 미친 녀···. 녀, 녀가 아니라! 그 미친 분께서 생전에 떠올렸을 거라면 흡혈귀 고문하는 거밖에 없잖습니까! 저흰 그 미치광이님께 사람이 아니라 다리 달린 지갑 취급당했다고요."
"미쳤다는 부분은 죽어도 안 빼는구나."
"아니, 그치만. 사실은 사실이고."
"뭐어, 걱정하지는 마. 일단 이론상은 놀이기구니까."
2대째 멜티로제가 노래하는 검에 마력을 불어넣자 실내에 음악이 차올랐다.
설비에 물을 끌어오고, 조명을 밝히는 마법의 노래.
그리고 지금의 흡혈귀에게는 처형곡이었다.
"소개하지. 초대께서 계셨던 세계의 놀이기구. 플룸라이드라고 해. 후룸라이드, 또는 로그 플룸이라고도 한다더군."
" "
"이쪽 세계에서의 주된 용도는 뭐라고 하셨더라······."
뒤늦게 단어를 떠올린 2대째 멜티로제는 손가락을 튕기며 방긋 웃었다.
"맞다. 수랭식 흡혈귀 봉인시설이라 하셨지."
"멜티로제님! 제발! 저기에 들어가면 저는 살아도 산 게 아닌 게 되어버려요!"
"에이. 걱정하지 말라고. 놀이기구 탄다고 죽기야 하겠나."
"흡혈귀는 흐르는 물에서 자력으로 못 나온다니까! 살아도 산 게 아니야!"
"하지만 과로사는 안 하겠지."
" "
"즐거운 놀이기구니까."
2대째 멜티로제는 물과 약간의 마력으로 영원히 순환하도록 만들어진 고문기구······. 가 아니라, 놀이기구에 흡혈귀가 묶인 통나무를 떠내려 보내면서 손을 흔들었다.
"살아있는 시간을 엔조이하도록. 가끔 시설 유지보수 하러 올게."
그리하여 흡혈귀를 위한 어트랙션이 본격적으로 가동됐다.
비명이 영원히 끝나지 않는 즐거운 나날이 시작된 순간이었다.
뭐, 즐거운 게 탑승한 쪽인지 구경하는 쪽인지는 둘째치고 말이지.
- 작가의말
역시 멜티로제 이야기는 흡혈귀를 괴롭혀야 즐겁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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