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 현자 표류기
그 현자는 무척이나 오래전부터 무인도에 살고 있었다.
얼마나 오래되었냐면, 붉은 용사가 지평을 뒤트는 뱀과 싸운 시기와 같은 시기부터다.
그건 현재를 살아가는 판타지 세계의 주민들이 '진짜로 있던 일일 리가 없잖아'라고 농담 취급할 정도로 오래된 사건이다.
만일 그가 무인도가 아니라 대륙에서 활동했다면 활동 경력 때문에 백색 마탑의 필두 삼현자와 동급의 대우를 받았으리라.
뭐, 결과만 놓고 보면 그가 대륙에서 활동하지 않은 건 몹시 현명한 선택이었다.
인류왕국에 기둥왕이 즉위한 이후로 현자는 몰살당해 옛 조직을 재건할 수 없을 정도로 소수만 남았고, 은닉재산이 잠들어 있는 부동산인 던전은 모두 몰수되어 모험가들의 공략 대상이 되었으며, 초월적 권위의 상징이었던 백색 마탑은 처참히 붕괴되어 언덕이 되었으니까.
무인도에 사는 데다 섬 전체가 마법을 방해하는 특성을 가진 탓에 외부와의 상황을 알지 못하는 그는 본국이 현자에게 지옥이 되었다는 사실을 모른 채 오늘도 탈출하려고 노력 중이었다.
"가자! 탈출 계획 5,159번!"
설계 단계에서 좌절한 것도 수두룩하기에 실제로 5,159번이나 시도한 건 아니었다.
그러나 지금의 그는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다. 그만큼 설계 단계부터 고찰에 고찰을 거듭한 자신작이었으니까.
"흐하하하하! 건방진 자연아. 마법이 방해받는다고 해서 이 현자님이 탈출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느냐!"
최저 300년 가까이 5천 번 넘는 시도가 좌절된 사람치고는 제법 긍정적이고 호탕한 모습이었다.
그가 수년에 걸쳐 완성한 건 바람에 의지해 날아가는 행글라이더.
설계 자체는 이틀로 충분했지만, 소재 확보며 제작이 쉽지 않았다. 그는 마법사의 정점인 현자이지, 목수나 대장장이가 아니었으니까.
처음엔 나뭇결의 방향이 왜 중요한지 체감하지 못했고, 나무를 증기에 쪄서 굽힐 수 있다는 것도 책으로만 알았던지라 작업이 순탄하지 않았다.
오늘에 이르기까지 작업물을 수없이 부순 탓에 무인도에서 숲이 차지하는 부분이 상당량 줄었을 정도였다.
그리고 이날 준비한 완성품은 그런 노력을 집대성한 결과물.
목표는 바다 횡단이 아니다. 섬의 영향권만 벗어나면 마법을 쓸 수 있으니, 거기까지만 가면 그만이었다.
"충분히 발달한 항공역학은 마법과 다를 게 없음이니!"
현자는 행글라이더를 짊어진 채 등대가 있는 절벽에서 도약했다. 중력에 이끌려 추락하는가 싶었지만 그것도 잠깐뿐. 서서히 곡선을 그리기 시작한 궤도는 이내 반전해 하늘로 솟구쳤다!
"해냈다! 해냈다고! 으하하하! 기다려라 엑셀리온이여. 내가 돌아간다!"
성공적이었다. 계획도, 준비도 완벽했다.
딱 하나 부족했다면, 운이 좀 많이 모자랐던 것 정도.
그렇다.
억지 아니냐고 따져댈 사람도 있으리라. 그런데 누구나 '무슨 발악을 해도 일이 안 풀리는 날'은 있지 않던가.
현자에게 있어 '온 세상에게 미움받는 날'은 바로 오늘이었다.
정말 우연이지만, 현자가 비행을 시도한 그 날은 바다신의 첫째 딸이 근처 해역을 지나가고 있었다.
한때 인어공주였던 그녀는 현재 하늘을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공기의 정령이었다. 지상에서 연애하려다 차인 직후 홧김에 코가 비뚤어지도록 술을 퍼마신 채 마법을 잘못 쓴 바람에 생긴 부작용이었다.
"꺄악!"
발끝에 걸린 이물감에 놀란 그녀가 발을 세게 휘둘렀고, 함께 쇼핑 중이던 돌고래는 영문을 몰라 고개를 갸웃했다.
"언니. 갑자기 왜 그래?"
"으으, 갑자기 발에 뭐가 걸렸어."
"에이, 기분 탓이겠지. 새도 날치도 정령을 보는 눈이 있는데 변태가 아니고서야 갑자기 들러붙겠어?"
"진짜로 있었다니까? 저 섬에 변태가 사는 게 분명해!"
"더 말이 안 되는데. 저기 사는 새라고 해봤자 갈매기하고 작은 새밖에 없잖아? 지금이 철새가 날아다니는 시기도 아니고. 굳이 바다까지 오려 하겠어?"
"틀린 말은 아니네. 근데 역시 기분은 나빠. 저기 사는 바위 공주에게는 미안하지만, 아무래도 좋은 전설이 있는 섬은 아니잖아."
"으음, 확실히 좋은 얘기는 아니지. 자, 그보다도 빨리 가자 언니. 여기서 계속 있어봤자 시간만 낭비라고?"
"맞다 참. 서두르지 않으면 신상 옷이 다 팔리겠어!"
"근데 공기에 맞는 옷 같은 것도 있어?"
"향수 말이야. 향수."
"오우."
***
"한참 후!"
해변에서 1년째 일광욕과 월광욕을 번갈아 즐기는 중인 광물 인간이 나래이션의 지문을 빼앗아 멋대로 대사를 읊었다.
때는 해가 수평선 너머로 느긋하게 저무는 중.
바다신의 첫째 딸의 발길질에 격추당한 현자가 파도에 실려 무인도로 돌아온 건 그 무렵이었다.
차라리 해류를 타고 섬 밖으로 나갔으면 좋았으련만. 이 섬 주변의 해류는 무슨 짓을 해도 섬으로 다시 돌아오는 흐름이었다.
"오, 안녕!"
행글라이더 파편에 달라붙어 있던 현자는 광물 인간의 말을 무시했다.
보통 인간이었으면 진즉에 익사한 시체였으리라.
하지만 그는 죽지 않았다. 움직이지 않은 건 그저 너무 서러운 나머지 아무런 생각도 안 하는 해삼이 되고 싶었기 때문이다.
섭리를 무시하고 접촉한 존재의 개념을 무조건 뒤집어 버리는 반전의 갑옷을 만든 현자가 '갑옷의 현자'라 불렸듯, 이 현자에게도 자신의 업적을 의미하는 수식어가 있었다.
그를 의미하는 호칭은 불사의 현자.
수식어는 불사지만, 더 정확히는 불로의 속성도 가지고 있다.
섬에 얽힌 신비를 하나 해명한 현자는 이를 이용해 불로불사의 마법을 완성한 것이다.
하지만 시간을 돌릴 수 있다면 그는 불로불사를 포기해서라도 섬에서 나가고 싶었다.
불사의 현자는 박살 난 행글라이더를 쥔 손에 힘을 주면서 오열했다.
"개억까야. 이거 개억까라고······!"
그의 처참한 심정을 모르는 광물 인간은 돌처럼 가만히 있다가, 이내 방긋 웃으며 말했다.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힘내. 살다 보면 힘든 날도 있는 거야!"
"흐어어어엉! 돌 주제에 왜 상냥한데! 집에나 보내줘!"
"그건 무리!"
"으아아아아앙!"
바다신의 첫째 딸에게 걷어차여 마음이 골절된 불사의 현자는 살아온 세월에 걸맞지 않게 아기처럼 오열했다.
사람이라고는 아무도 살지 않는 무인도.
이곳에 한때 섬나라가 있었다는 건 이제 동화나 신학에만 남은 이야기.
이곳에 있는 지성체는 불사의 현자를 포함해, 광물 인간이라 불리는 수없이 많은 셰이프 뿐이었다.
바위 공주가 다스리는 순진무구한 셰이프들은 노래한다. 자신들에게 새겨진, 오래되고 즐거운 추억들을.
"느으어어어어어······. 끄어어어어억······."
하나 정도는 비통에 잠겨 있었지만 뭐 어떠랴. 사람이 없는 이곳에선 누구도 광물 인간들의 행복한 하모니를 방해할 수 없었다.
- 작가의말
무인도에 사람은 없습니다.
그것이 '무인도'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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