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7. 약
그 약국의 미인 약사는 방문객에게 필요한 약을 판다.
언제부턴가 그런 소문이 퍼졌고, 피로에 찌든 회사원이 약국을 찾았다.
"사장님. 피로회복제 센 거로 하나 주쇼."
약사는 그를 유심히 살펴본 후, 작지만 또렷하게 들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자네 꼴이 말이 아니로군. 직장에서 몇 시간 일하나?"
"글쎄요. 하하. 밥 먹는 시간하고 자는 시간 외엔 전부 일이라."
"출퇴근 시간에 쪽잠은 자나?"
"아아, 회사에서 침낭 씁니다. 사장이 지시한 일을 소화하려면 회사에서 자야 하거든요."
"중소기업의 비애로군."
"그런 셈이죠. 그보다 이제 피로회복제 좀 주실래요?"
"물론이지. 여기 있네. 서비스로 이것도 한 알 주지. 바로 먹게나. 정수기는 저기 있네."
회사원이 감사를 표하고 위태롭게 흔들거리며 정수기로 간 사이, 약사는 그를 위한 완벽한 약을 조제해 투약기구와 함께 계산대에 올렸다.
"자네에게 필요한 약을 준비했네."
"처음 보는 약이네요."
"아아, 이건 탄약이라고 하네. 주성분은 화약이지. 이 권총에 넣고 사장을 향해 쏘면 된다네."
"아하. 쉽네요."
"좋은 여행 되시게나."
친절한 설명과 함께 약을 받은 회사원은 값을 치르고 약국을 나섰다.
한편, 옆에서 제조과정을 포함한 모든 걸 지켜본 신입 종업원은 안색이 파랗게 질린 채 물었다.
"사, 사장님. 그런 거 팔아도 되나요?"
"응? 당연하지. 약국에서 약을 팔았을 뿐이잖나."
"그······. 약이라 치고!"
"후후. 그 부분은 타협하는 거구나."
그치만 뭐라 주장하든 안 받아들일 거잖아요.
종업원은 충동을 간신히 억누른 채 말했다.
"저 손님 사장은요? 애꿎은 사람이 죽는데?"
"사람을 죽였는데 탄약 한 발로 끝났으면 오히려 감사해야지."
"예?"
"방금 손님. 길어야 3주야. 얼마나 혹사시켰는지 겉모습하고 걸음걸이만 봐도 알겠더군."
" "
진통제. 두통약. 수면제.
독약부터 시작해 화약과 탄약에 이르기까지.
이곳의 약사는 방문객에게 필요한 약을 판다.
용법에 맞춰서 적정량으로. 정직하게.
다른 약국과 방침이 다소 다르긴 하지만, 고객 만족도는 높다고 한다.
- 작가의말
약은 용법에 맞춰서. 적정량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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