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5. 다큐멘터리 2: 사얼거민
저기 사막 얼룩 거대 민달팽이가 분노로 울부짖고 있군요.
사막 얼룩 거대 민달팽이.
약칭 사얼거민.
사얼거민이 분노하는 이유는 단순합니다. 여름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유죠.
덥기 때문입니다.
뙤약볕에 달궈진 카타르슬로프 대사막 열기는 지면을 기는 사얼거민에게 불쾌함 그 자체겠죠.
저런. 결국 멈추는군요.
밤이 올 때까지 기다리려나 봅니다.
온도 때문이라면 썩 현명한 선택처럼 보이지는 않습니다. 사막은 건조한데다 모래는 열을 품지 못하니, 밤이 되면 더위가 아니라 추위를 걱정하면서 나아가야겠죠.
뭐, 사막이 적당히 식으면 다시 이동을 시작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사얼거민이 멈춘 게 단지 더워서일까요?
많은 사람이 착각하지만 사얼거민은 상당히 영리한 포식자입니다.
예상대로군요. 사얼거민의 더듬이가 모래에 들어갔습니다.
사얼거민이 사냥을 시작했다는 뜻입니다.
사막에서 불필요한 움직임이 체력만 앗아간다는 걸 아는 사얼거민의 사냥은 매우 느리고, 차분하게 진행됩니다.
사막에 파묻은 더듬이는 주변 수십 킬로미터까지 진동을 잡아낼 수 있는 걸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동하지 않아도 주변의 상황을 손바닥 들여다보듯 파악할 수 있는 훌륭한 탐지 기관인 셈이죠.
사얼거민은 이 더듬이가 너무 예민한 탓에 사막 외의 지형에서는 서식할 수 없습니다. 아이러니한 일이네요.
오우. 눈이 달린 촉각이 수직으로 일어섰습니다.
사얼거민이 먹이가 될 만한 생물을 발견했나 보네요.
영리한 사냥꾼이 사냥감을 유인하기 위한 미끼를 준비하기 시작합니다.
표면을 윤기 있게 하는 사얼거민의 점액은 '사막 꿀'이라 불릴 만큼 달콤하며, 실제로도 당도가 높은 편에 속합니다.
그 점액을 표면에 대량으로 분비해 자신을 훌륭한 먹잇감으로 위장하는 거죠.
상당히 떨어진 거리에서 촬영하고 있지만 벌써 여기까지 냄새가 풍기는군요.
레코더맨. 침 흘리지 마세요.
촬영 담당이 미끼에 낚여서 어쩌자는 건가요.
사얼거민은 상황에 따라 점액의 휘발성을 조절할 수 있습니다. 평소에는 휘발성이 낮은 점액을 단열재처럼 사용했다면, 지금은 사냥감을 유인하기 위해 휘발성이 높은 점액을 분비한 겁니다.
빠르게도 사냥감이 나타났군요.
이번에 사얼거민의 미끼에 걸려든 건 뼈까지 씹어먹는 무는 힘으로 유명한 썩은 고기 청소부. 크랙죠가 다섯 마리 나타났군요.
호랑이보다 작고 고양이보다 큰 이 사막 고양이들은 무리를 이뤄 사막게나 대왕콩벌레처럼 느리고 딱딱한 상대를 사냥하지만, 오늘은 조금 쫄깃한 식사를 하고 싶은 듯합니다.
레코더맨. 제발 앉으세요.
아무리 비슷한 고양이과인 고양이 수인이라도 그렇지, 크랙죠하고 똑같이 휘둘리면 어쩌자는 겁니까. 수인이면 수인답게 이성을 챙겨야죠.
자, 개다래 캔디라도 줄 테니까 진정하세요.
포위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는데 크랙죠들이 달려들었습니다.
강철 갑옷도 찢어발긴다 알려진 턱힘에 자신이 있다는 거겠죠.
하지만 오늘은 아닙니다.
상대를 잘못 고른 크랙죠들은 이제 사얼거민의 점심일 뿐입니다.
크랙죠들의 예리한 이빨이 사얼거민을 파고들었지만, 예상대로, 압도적으로 질긴데다 고무 같은 탄성을 가진 사얼거민의 가죽을 뚫지는 못했습니다.
예상 이상의 질김에 크랙죠들이 당황하는 사이, 진짜 포식자인 사얼거민이 움직입니다.
길게 늘인 목은 뱀처럼 길고, 채찍처럼 빠르게 움직여 여섯 마리의 크랙죠을 단숨에 포박했습니다.
여섯 마리의 크랙죠는 사얼거민에게 압박당해 내장부터 부서질 겁니다. 그 뒤에는 몸 아래에 깔린 채 서서히 잡아먹히겠죠.
남은 피와 뼈 따위는 샌드 웜의 양식이 되어 카타르슬로프의 생태계를 더욱 윤택하게 할 겁니다. 사막게는 양분이 섞인 모래를 먹고 성장하고, 다른 크랙죠가 그 사막게의 껍질을 깨부수고 속살을 취하겠죠.
아무도 살 수 없을 것처럼 보이는 대사막.
이곳에서도 생명은 살아갑니다. 끝없이 순환하는 원 모양의 먹이사슬을 그리며 세대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참으로 기적 같은 일이지요.
···잠깐.
여섯?
다섯이 아니라?
···오, 이런 맙소사.
레코더맨······.
※ 본 다큐멘터리는 인류왕국 엑셀리온 국영 언론사 튜버 타임즈에 의해 기획 및 제작되었습니다.
※ 레코더맨은 사망 후 적합한 절차에 의해 부활하였습니다.
※ 본 촬영에서 사망자는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 작가의말
2기가 나오지 못한 시대의 걸작. 케모노 프렌즈를 추억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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