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 좋은 놈. 한가한 놈. 안 튀면 죽는 놈
도시지기는 각 도시에서 소란이 될만한 온갖 사건에 개입해 초상현상이나 도시괴담 따위로 만들어 은폐하는 해결사들.
사내는 그런 도시지기 중 하나였고, 의뢰를 받아 연구소를 습격했다.
파죽지세로 보안을 돌파해 목적한 구역까지 진입한 그는 저항하려던 연구원을 손쉽게 제압. 능숙한 솜씨로 연구원을 묶어놓고는 연구자료를 USB에 옮겨 담기 시작했다.
"다운로드는 좀 걸리겠는걸. 많이도 해 먹었군."
"도시지기 녀석······. 소문은 들었지만, 우리가 무슨 잘못을 했다는 거지?"
의자에 묶인 연구원은 용기를 쥐어짜 항의했다.
"우린 인체에 유해한 균만 없애는 만능약을 개발했을 뿐인데! 내 모든 지식을 쏟아부었다고!"
"응. 잘 알아. 바로 그 부분이 곤란한 거거든."
"어째서? 아니, 그렇군. 다른 제약회사의 사주를 받은 건가? 돈 때문에 의학을 퇴보시키다니,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연구원이 정론을 쏟아내자 도시지기는 깊은 한숨을 쉬었다.
"시간이 없는 것도 아니니 오해는 풀어두도록 할까. 형씨. 자기 몸에도 만능약을 실험해봤지?"
"물론이다. 그리고 실험은 대성공이었지. 지금 내 몸에 유해한 균은 하나도 없다고."
"그래. 아주 자랑스러우시겠어. 잠깐 기다려봐."
잠시 연구실을 나갔다가 돌아온 도시지기의 손에는 도망가려고 발버둥 치는 보안요원이 붙들려 있었다. 힘차게 몸을 비틀기는 했지만, 팔다리를 묶고 입에 재갈까지 물린 그는 도시지기의 잘 훈련된 근력을 당해내지 못했다.
"내기해볼까. 이 녀석에게 그 잘난 만능약을 써봐. 주사를 놓고도 멀쩡하면 이대로 떠나도록 하지. 곧 들이닥칠 진압팀도 책임지고 철수시키겠어."
진압팀이란 말에 연구원의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단순히 연구물만 탈취하러 온 게 아니었나? 연구소 직원들을 몰살이라도 할 셈인가.
잔뜩 긴장한 연구원은 뛰어난 머리를 조금도 활용하지 못했다. 어찌나 정신이 없고 겁에 질렸는지, 연구원은 눈꺼풀이 가로가 아니라 세로로 움직이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이를 가만히 지켜보던 도시지기는 한숨을 쉬더니, 만능약을 앰풀에서 주사기로 옮겨 담아 연구원에게 건넸다.
"머리 굴리지 말고 주사나 놔. 잘못한 거 없으면 떳떳해도 되잖아?"
일리 있는 말이었지만 연구원은 그 담담함이 신경 쓰였다.
아무리 도시지기라 해도 연구소 안쪽에 있는 이 구역까지 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을 터. 여기서 물러나는 걸 내기의 판돈으로 소모하려는 게 정상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어쩌면 주사기에 뭔가 가공해놨을지도 모르겠다 의심한 연구원은 다른 주사기와 앰풀을 쓰겠다 했고, 도시지기는 흔쾌히 허락했다.
잠시 후, 연구원은 눈물이 그렁그렁한 보안요원의 목에 주사를 놓았다.
"으읍! 읍! 읍!"
"따끔하겠지만 참아요. 금방 편해질 겁니다."
예상대로라면 해로운 균이 모두 제거되고, 깊은 잠을 자고 난 뒤처럼 평온한 얼굴을 해야 했다.
연구원의 예상은 반만 맞았다.
확실히 주사를 맞은 보안요원은 깊게 잠들었다.
그러나 일어나지는 못했다.
온몸을 비틀며 물 밖의 참치처럼 펄떡이던 그는 어느 순간 축 늘어져 움직이지 않았다.
"이게 대체?"
"그야, 네가 개발한 약은 사람용이 아니라 렙틸리언 용이거든."
"엣."
연구원은 퇴화하였어야 했던 세 번째 눈꺼풀, 반투명한 순막을 세로로 끔뻑였다.
한편, 도시지기는 스마트폰을 꺼내 의뢰주에게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아, 네. 사모님. 네네. 아드님 발견했습니다. 세뇌를 어찌나 세게 당했는지 본인이 렙틸리언인 걸 완전히 까먹었더군요."
" "
"뒤처리······? 아, 물론 해드려야죠. 곧 진압팀이 이 연구소를 전부 소탕할 겁니다. 오물은 소독해야지요. 제 구역에서 설치는 놈들에게 좋은 본보기도 될 테고. 전 받은 돈만큼은 확실하게 일하니까요."
***
영상은 도시지기가 반쯤 넋이 나간 렙틸리언(파충인류)을 보호해 연구소에서 빠져나가는 장면에서 멈췄다.
이어서 스크린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나타나는 공익광고 마법사가 화면 안에 들어와 말하기 시작했다.
"당신이 쓰는 스마트폰. 과연 외계 기술이 들어가지 않았을까요?"
"우주인. 렙틸리언. 이세계인."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더 많은 인외종족이 불법으로 납치되는 일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외계인에게 정직원 대우를. 그 노동에 정당한 보상을."
"주 120시간 노동이 아닌, 주 52시간 근무를."
"블랙 기업에 의한 외계인 납치. 이젠 모두의 관심이 필요한 때입니다."
광고를 끝까지 시청한 회색빛 우주인 부부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블랙 기업이라는 게 그래서 블랙이었나······. 지구는 참으로 무섭구나."
"그러게. 120시간 노동이라니. 사이보그도 그렇게 일하면 망가진다고."
"그러고 보니 당신 할아버지 예전에 지구에 계셨다면서? 그때도 외계인 해부다 뭐다 해서 난리가 났다고 하셨는데."
"당신. 그 나이 먹고 자전거에 염동력 걸면서 노는 사람 말을 믿어요?"
"그런가······."
"도시괴담 같은 거겠지. 120시간 노동도 말이 안 되는데 미치지 않고서야 인체 해부 같은 걸 하겠어? 감금해놓고 고문을 했다면 또 몰라."
"하긴. 그것도 그렇네."
***
비슷한 시기. 판타지 세계.
깊은 숲에 살던 식인종 엘프들은 불 위에 거대한 솥을 올려놓고 기쁨의 춤을 추고 있었다.
"살다 보니 하늘보다 높은 곳에서 사람이 떨어질 줄이야!"
"오로로로로! 축제다! 굶주림에 축복을! 사람을 마시는 신께 감사를!"
"근데 괜찮을까? 피부가 회색인데."
"그렇게 따지면 고블린은 피망 색이잖아."
"오우. 그것도 그렇네."
"편식은 나빠. 인종차별 없이 골고루 먹어야 건강해지는 거라고."
"논리적인 말이야. 최근 고블린하고 코볼트만 먹어서 지겹기도 했고."
물을 끓이는 게 이 지역의 독특한 환영식이라고 착각해서 헤실헤실 웃고 있는 우주인이 진실을 깨닫고 처절한 술래잡기를 시작할 때까지. 앞으로 29분 59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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