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 늑대와 양
늑대 무리의 우두머리는 입맛을 다셨다. 근처로 사냥감을 찾으러 갔던 부하들이 '큰 건수'를 물어왔기 때문이다.
목장 울타리로 돌아가지 않는 수천 마리의 양 떼.
지키고 있는 건 양치기 단 한 명.
호위도, 울타리도 없다. 한밤중에 양치기와 양 떼가 초원 위에서 산들바람을 이불 삼아 태평하게 자고 있다.
심지어 마을에서도 제법 멀리 떨어진 위치.
늑대들이 보기엔 야영 보다 차려진 밥상이란 단어가 어울렸다.
이렇게 좋은 기회를 놓친다는 건 포식자로서 수치였다. 실패한다면 다른 늑대 무리에게 두고두고 웃음거리가 되리라.
늑대 두목은 달을 향해 우렁차게 울부짖었다.
"고기 파티다!"
"고기 파티!"
"좋은 고기는 죽은 고기뿐!"
"좋은 고기는 먹은 고기뿐!"
포식의 때다. 이를 의심하는 늑대는 한 마리도 없었다.
만약 양 떼를 몰던 양치기가 모든 양을 상냥하게 해방하겠다는 명분으로 인류왕국에 침투한 사천왕, 숫양 장군인 줄 알았다면 이야기는 달랐겠지만.
교활하며 무리를 지어 사냥할 만큼의 지혜가 있다 해도 결국은 야생에서 단순한 사고를 반복해온 짐승.
대적해본 적 없는 미지의 적의 기량을 가늠하는 안목 따위, 늑대들에게 있을 리가 없었다.
"동포를 노리는 포식자들인가. 허나, 알아둘지어다."
살기를 감지하고 잠에서 깬 숫양 장군이 졸린 눈을 한 채 손을 휘젓자, 지면에서 복슬복슬한 양털 성벽이 솟아올랐다.
"야식은 건강에 안 좋다는 사실을."
한번에 뛰어오를 수 없는 높이였지만 늑대들은 멈추지 않았다. 저정도라면 벽을 타고 기어오를 수 있다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확실히 늑대들의 생각은 틀리지 않았다.
다만, 그건 돌이나 나무로 된 평범한 벽이라는 게 전제인 이야기였다.
"깨갱?" "끼잉. 끄으응······." "으르르르르르!"
늑대들은 양털 성벽을 넘지 못했다. 곳곳에서 당혹과 분노, 짜증이 섞인 울음소리가 나왔다.
늑대의 근육과 발톱은 절벽을 오를 수 있을 만큼 민첩하고 튼튼했으나, 폭신하고 섬유가 복잡하게 얽힌 양털 앞에서는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오히려 발톱이 있는 게 문제였다. 엉겨 붙은 양모는 발톱을 단단히 붙든 채 떨어지지 않았다.
사정은 우두머리 늑대라고 다를 게 없었다. 다릿심이 뛰어나 양털 성벽 꼭대기에는 올라갔지만, 네 다리가 폭신한 양털에 파묻혀 빠지지 않았다.
"비겁하다! 정정당당히 싸워라!"
"무슨 개소리인지 모르겠군."
진심에서 우러나온 대꾸였다. 숫양 장군은 양 언어라면 1급 자격증을 가지고 있었지만, 늑대 언어 자격증은 따지 못했으니까.
늑대들의 시끄러운 울부짖음이 성가셨던 숫양 장군은 양들 주위에 방음 마법을 펼쳤다.
그러고는 포근하고 따끈한 양털 속에 몸을 파묻은 채 다시 잠들었다. 머리로는 딱 알맞게 식은 바람이 불어, 낙원이라고 할 만큼 쾌적한 수면 환경이 조성되었다.
상냥하고 잔잔한 해방운동을 펼치고 있는 숫양 장군의 양뿔 해방군은 오늘도 평화로운 밤을 보냈다.
뭐, 쫄쫄 굶다 이틀 뒤에 마법이 풀려 간신히 내려온 늑대들에겐 그 평온과 적막함이 지옥이었지만 말이다.
- 작가의말
가끔 엽편이라서 서술을 전개하기 곤란할 때가 있는 거 같아요.
이게 뭐라고 3번을 갈아엎었는지 원...
그치만, 자잘한 거 다 설명하면 개그파트가 살아나지 죽어버리는걸.
sp파트가 너무 늘어지긴 했어도 세계관이나 설정 정리를 해놓은 건 잘했지 않았나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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