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 마신 2
그는 경쟁하던 상회가 해를 거듭할수록 성장 속도를 올리는 게 영 못마땅했다.
"설마 그놈 지인 중에 기사단장으로 출세하는 놈이 나와서 대병영 거래를 한방에 뚫어버릴 줄은······."
"대병영 기사들이 소모하는 일용품 양이 아무래도 보통이 아니니까요."
"알고 있는 거 분석하지 말고, 대책을 내놔봐. 대책을."
"혹시 회장님께서는 마신의 손이라는 걸 들어보셨습니까?"
"마신의 손? 뭐든 끔찍한 방향으로 소원이 이루어지는 원숭이 손 이야기는 들어봤는데."
"마신이 그 원숭이 손 단편 소설을 감명 깊게 읽고 벤치마킹했대요."
" "
"자기 손을 닮은 도구를 만들어 뿌린 게 마신의 손이라던데요."
"마신이고 등신이고 표절했다는 걸 숨길 생각이 없구만."
"역사도 근본도 없는 전설이라는 게 다 그렇죠 뭐."
"어차피 돈을 벌려면 뭐라도 해보는 게 중요하니, 까짓거 해보지 뭐. 꼬여봤자 망하는 거밖에 더 하겠냐."
"호쾌하시군요 회장. 장사보다 도박에 소질 있는 거 아닙니까?"
"어리석긴. 도박이 아니라 투자라고 말해라."
***
시간이 걸릴 거라고 예상한 것과 달리 상인은 허무할 정도로 쉽게 마신의 손을 상회에서 보게 됐다.
회장은 몰랐지만 신통력이 뛰어난데다 귀까지 밝은 마신은 그날 부회장과 했던 대화를 들었고, 그의 호쾌함이 마음에 들어 그가 쉽게 마신의 손을 입수할 수 있도록 손을 썼던 것이다.
"흐름이 너무 빨라서 찝찝하다만······. 장사는 기분이 아니라 경험과 직감으로 하는 법이지."
"사용법과 효과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면 흥정조차 제대로 못 할 테니까요."
부회장의 말대로였다. 그는 곧장 상회가 소유한 창고 중 한 곳을 찾아가 마신의 손에 소원을 빌었다.
"마신이여. 이 창고 안의 물건들이 날개 돋친 듯 팔리게 해다오!"
안 팔리거나 대량발주 계약이 파기되어 처분할 길 없는 물건들을 쌓아둔 창고였다. 처분하기는 아까웠고, 계속 보관해봤자 유지비만 나가기에 소원을 시험해 보기엔 아주 적절한 물건들이었다.
[소원을 들어주마!]
마신의 손이 손바닥에 숨겨져 있던 눈을 번쩍 뜨며 힘을 방출했고, 창고 곳곳에 스며들었다.
회장의 소원은 물건이 날개 돋친 듯 팔리게 하는 것.
그래서 마신은 모든 물건에 '날개'를 달아주기로 했다.
날갯짓 소리가 창고 안에 요란하게 울렸다.
훈제 고기, 채소, 갑옷, 보석, 책이며 건축자재까지. 몽땅 다.
함께 온 수행원들은 어쩔 줄 몰라 우왕좌왕했다. 그러다 한 명은 날개 달린 코뿔소 박제에 엉덩이를 찔리기도 했다.
자신이 빈 소원 때문에 곤경에 빠진 꼴에 마신은 박장대소를 터트렸다. 수행원들의 비명은 마신의 배를 채우고, 우왕좌왕하다 자기들끼리 밟고 넘어지는 꼴은 마신에게 훌륭한 공연이었다.
하지만 회장의 생각은 달랐다.
"GOOD! 물건에 날개가 달렸으니 운송비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겠군!"
"엥?"
[뭐?]
마신과 수행원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같은 소리를 냈다.
***
그런 일이 있고 나서 얼마 후.
창문을 두들기는 소리에 잠에서 깬 흡혈귀는 관뚜껑을 열고, 창가로 향했다.
흡혈귀와 친한 마녀라도 온 걸까?
그것 자체는 흔한 일이었지만, 오늘은 아니었다. 창밖에 있던 건 날개 달린 상자였다.
흡혈귀가 상자를 방 안으로 들여와 손톱으로 날개를 자르자 날개는 허공에서 빛이 되어 사라졌고, 상자에 묵직한 무게감이 생겼다.
"엇차차."
갑자기 생긴 무게감에 흡혈귀의 몸이 잠시 휘청했지만,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건강한 생활 패턴을 고집하는 흡혈귀에겐 별것 아닌 무게였다.
무거운 건 아무래도 좋았다. 그에게 중요한 건 내용물이었다.
간단한 매듭을 잘라내고 상자를 열자, 거기엔 돼지 선지를 굳혀서 소시지처럼 만든 블랙 푸딩이 들어있었다.
"음~! 아주 비려. 갓 잡은 돼지로 만든 푸딩은 신선하군!"
이게 최근 인류왕국 수도에서 흔히 보이는 일상이었다.
새나 빗자루를 탄 마녀가 날아다니고 있었을 하늘에, 날개 달린 상품이 날아다녔다.
물론, 전부 회장의 창고에서 나온 상품이었다.
날개 달린 상품에 상품이 있어야 할 곳으로 알아서 가게 만드는 좌표 각인 마법을 걸어, 자동으로 날아가게 하는 획기적인 물류시스템을 고안한 것이다!
소원을 다시 빌 필요도 없었다. 창고에 넣고 하루만 지나면 물건에는 당연하단 듯이 날개가 돋아났다.
마신은 상인들의 물욕을 너무 얕보고 있었다.
참된 상인은 당장 눈앞에 보이는 욕망을 채우기 위해 소원을 빌지 않는다.
혼란 속에서 기지를 발휘해 더 큰 돈을 버는 것.
그거야말로 마신조차 헤아리지 못한 상인들의 진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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