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 드래곤의 벌레 퇴치
아주 화창한 날에 잠에서 깬 드래곤 로드, 마즈는 생각했다.
"이렇게 좋은 날에는 잠을 자야지!"
마법으로 뭉친 베개를 고르게 펴주고, 굴 밖에 나가서는 이불을 꽉 쥔 채 힘껏 털었다.
어마어마한 먼지와 국지적인 토네이도가 일어났고, 마즈의 부하이자 충실한 하우스 키퍼인 고블린 삼형제는 청소업자의 종말과 같은 풍경 앞에 깊은 절망을 느꼈다.
물론 그건 고블린들의 재난이지 드래곤의 재난이 아니다. 마즈는 먼지 하나 없이 보송보송해진 이불에 만족해서는 그대로 이불을 덮고 둥지 밖에서 낮잠을 즐겼다.
드래곤의 재난은 여기서부터였다.
용맹하면서 스릴을 즐길 줄 알지만, 지능은 심각하게 모자란 날벌레가 마즈의 콧구멍으로 뛰어든 것이다.
"우왓? 푸헷취!"
깜짝 놀란 마즈가 재채기를 하자 흙먼지와 꽃가루가 솟구쳤다.
먼지 토네이도를 보고 취재하러 온 튜버 타임즈의 기자를 설득하던 고블린 삼형제는 그 꼴을 보고는 이마를 짚으며 가볍게 한탄한 뒤, 기사에게 웃돈을 얹어줬다.
"크흠. 그래. 여름이니 날벌레가 겁없이 날뛸 시기이기는하지. 한번쯤은 자비롭게 넘어가주마. 겁없고 하등한 미물들아. 하지만 두번째는 없음을 명심하라."
근엄하게 경고한 뒤, 마즈는 다시 잠을 청했다.
그러나 날벌레는 날고 기고 똑똑해도 결국 날벌레.
아무생각 없이 근처를 날던 벌레는 기어코 마즈의 콧구멍 안으로 들어가 점막을 자극했다.
"우헷취!"
콧속에 잔뜩 고여있던 용의 콧물이 하늘을 가리고, 마침 화장실에 비치할 드래곤용 휴지가 담긴 상자를 택배로 받아 옮기던 중인 고블린 삼형제가 이를 그대로 뒤집어 쓰고 말았다.
고블린 삼형제는 분노도, 짜증도 내지 않았다. 그저 잠시 하늘을 바라보며 손수건으로 콧물을 닦은 뒤, 미혹을 벗어던지고 깨달음을 얻은 성자 같은 얼굴을 한 채 담배파이프를 물었다. 애처롭게 피어오른 담배 연기는 얼마 안 가 공기중으로 사라졌다.
짜증과 분노를 터트릴 역은 고블린이 아니라, 마즈였다.
"두 번은 없다고 했거늘! 봐주지 않겠다 이 빌어먹을 것들아!"
쿵. 쿵.
지축을 흔들며 창고로 향한 마즈는 비장의 무기를 꺼냈다.
그의 인간 친구중 하나이자 전직 021 과학 기사단의 단장도 맡았던 실력있는 여마법사, 캐롤이 개발한 초대형 모기향이었다.
본래는 지지대를 세우고 거기에 향을 걸어 피우는 타입이다.
하지만 마즈는 지금 당장 날벌레들의 죽음을 원했다.
두번이나 잠을 방해당한 그는 날벌레가 신경이 마비된 채 서서히 죽어가는 꼴을 기다릴 시간이 없었다.
그는 순간의 방역으로 빠른 몰살을 원했다.
그래서 모기향이 들어있던 상자를 입 안에 통채로 털어넣고, 불을 토해 모기향을 입 안에서 모조리 태웠다.
그날 마즈의 둥지가 있는 산 근처를 지나가던 사람들은 난데없이 구름기둥이 솟구치는 걸 목격했다.
한편 근처에 있던 고블린들은 당황하지 않았다.
"가스 가스 가스!"
빠르게 위기를 감지한 첫째의 신호에 따라 다른 둘도 급히 몸을 숙이고는 보조가방에 넣어둔 방독면을 착용했다. 기사들도 놀랄 정도로 완벽하게 훈련된 동작과 정밀함이었다.
드래곤의 밑에서 일한다는 건 곧 드래곤이 분노할 때도 옆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것.
산소 결핍과 일산화탄소 중독, 정체불명의 가스의 위협 따위를 늘 마주하고 사는 고블린 삼형제에게 이정도는 일상이었다.
"여름이로군."
"여름이네요 형님."
"캐롤 님한테 모기향을 더 주문해야겠어요."
"뭐, 여름이니까."
여름이었다.
- 작가의말
자고있는데 귀나 코에 돌진하는 벌레들이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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