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8. 여우와 두루미
여우와 두루미는 서로에게 마음을 품고 있었지만 그걸 좀체 전할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시장에서 희귀한 바닷물고기를 구한 두루미는 집에 초대했다.
그러나 아뿔싸! 두루미의 집에는 부리에 맞는 긴 유리병만 있지, 여우를 위한 접시가 없지 않던가!
맞이할 준비를 끝내고 나서야 이를 알아챈 두루미는 당황했다.
그리고 더운 날씨라 그런 걸까.
스트레스와 열기에 과하게 노출된 두루미의 뇌는 평소라면 절대 하지 않을 수단을 선택했다.
"여어. 초대받아 왔······."
"어, 어서와."
촛불을 줄여 약간 어두운 조명.
뼈를 잘 발라낸 뒤 기름으로 가볍게 조리한 바닷물고기가 들어간 병은 식탁 아래에 놓였고, 정작 위에는 파릇파릇한 채소로 몸을 감싼 두루미가 누워 있었다.
"먹으러 왔다고······. 했지?"
"아, 물론이지."
사람이라면 이성적으로 급제동을 걸었으리라.
그러나 이 둘은 여우와 두루미.
사람과 닮은 점은, 대륙 공용어를 할 줄 알아서 도시에서 산다는 것뿐.
눈이 마주쳤을 때, 거기에 이성적인 리미터는 존재하지 않았다.
두루미에게 다가간 여우는 단숨에 유리병을 뒤집었다. 아무리 병이 길어도 뒤집어엎으면 물고기는 당연히 밖으로 나온다.
교활한 여우는 두루미가 어쩌다 이런 생각까지 도달했는지 단숨에 이해했지만, 일부러 모른 척한 채 이 순간에 집중했다.
흘러나온 살코기와 육즙으로 입가를 적신 여우는 사나운 육식 짐승다운 울음소리를 냈다. 아주 낮게. 음산하게. 소리만으로 상대의 깊숙한 내면까지 파고들려는 듯이.
단숨에 공기를 긴장시키는 야성의 해방.
유전자 속에서 육식동물에게 사냥당하던 그 피의 숙명을 떠올린 두루미는 오싹오싹한 기분이 들었다.
그것은 공포인가. 황홀인가.
알 수 없다. 그저 뇌격과 같은 끝 모를 전율이 길고 미끈한 목을 타고 전신으로 퍼져나갈 뿐이다.
이윽고 깨닫는다.
그 감각은 공포와 고통보다, 흥분에 가깝다는 사실을.
두루미가 처음 걱정한 것과 달리 여우는 지혜를 써서 준비된 요리를 반쯤 먹어 치웠다.
그러고는 발톱 끝을 두루미의 부리 끝에 밀어 넣었다.
자연스럽게 벌어지는 부리. 여우는 페이스트 된 생선 요리를 두루미의 입 안에 흘려 넣었다.
마치, 어미 새가 새끼에게 먹이를 먹여주듯이.
키스 대신 소중한 양식을 나눠 먹은 후, 육식동물은 송곳니를 세워 부리 끝에 가져다 댔다.
거기서부터 조금씩 앞으로 전진. 가가각. 가가각. 송곳니는 느리지만 천천히, 확실하게 두루미의 부리 위에 자신의 흔적을 선명히 새겨나간다.
포식자의 진격은 서로의 눈이 당장이라도 맞닿을 것 같은 위치에 도달하고 나서야 멈췄다.
"여우는 식육목이라고. 그만두려면 지금이야."
"여우는 사냥감에게 먹어도 되냐고 묻는 동물이었어?"
가볍게 웃어 보인 두루미는 뒤로 조금 물러나나 싶더니, 여우의 입 안으로 깊이 파고들어 목 근처의 살을 가볍게 물었다. 포식자와 피식자 관계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하극상이었다.
"멸종 위기종을 먹으려면 지금보다는 용기가 있어야 할 거야."
아슬아슬하게 유지되고 있던 최후의 이성이 두루미에 의해 간단히 끊기고, 여우는 포효했다.
그때, 우연히 두루미의 집 옆을 지나가던 황새는 목격했다.
마지막에 정상을 점거한 건 포식자인 여우가 아니었다. 새하얗고 큰 날개로 여우를 짓누른 두루미였다.
***
얼마 후.
"신문이요~!"
마녀 배달부가 마법사 농부의 집 우체통에 신문을 꽂아놓고 갔다.
인류왕국이 원체 넓다 보니 국영 언론사이자 기사단인 튜버 타임즈가 발행하는 신문에는 언제나 기상천외한 이슈가 가득했지만, 오늘은 이 기사가 마법사 농부의 시선을 붙들었다.
[ 여우인가 두루미인가? 남부 지역에서 발견된 신종 동물 ]
[ — 동물협회 협회장 "얼마나 박아댄 거야" ]
[ — 고블린 학회 관심 급증··· "새 생명에 지원 아끼지 않을 것" ]
[ — 원인은 여름의 해방감? ]
관련 기사에 붙어 있는 사진 안에는 황새산부인과에서 이제 막 알을 깨고 나온 여우와 두루미의 자식들이 있었다.
여우의 몸에 두루미의 검정, 흰색, 마지막으로 눈가에 포인트를 준 붉은 털이 인상적인 신종 짐승이었다.
물론 두루미 특유의 날개가 등 위에 나있는 것도 빼놓을 수 없으리라.
생전 처음 보는 짐승의 형태에 마법사 농부는 눈을 가늘게 뜨고 기사를 한 번 더 읽고, 결국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이게 되네."
여름이었다.
- 작가의말
‘두루미의 50가지 그림자’는 연재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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