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 소환 2
그 청년은 세상 모든 것을 증오했다.
날씨가 더운 것부터 시작해 모기가 방충망을 뚫고 침입해온 것까지.
특히 5인 협동 게임을 하는데 탱커가 완벽한 판을 짜주지 못함에 몹시 격노했다.
키가 크지 않는 것도. 살이 찌는 것도. 전부 다 사람들의 협동심 부족으로 스트레스를 받는 탓이라고 확신했다.
"이딴 세계, 필요 없어!"
그래서 우연히 구한 금지된 마도서의 주문으로 세상을 끝낼 존재를 소환하기로 했다. 아침에 일어나는 건 굼떴지만 오컬트쪽 행동력은 유독 뛰어났다.
···뭐어, 무슨 말도 안 되게 쪼잔한 이유냐는 딴죽을 걸고 싶은 심정은 이해하지만.
세상 물정도 목숨의 무게도 맵 리딩 실력도 없어서 SNS에 뭔가 쓰면 모두가 자기 편을 들어줄 거라 착각하는 머저리는 의외로 꽤 많았다.
그나마 고인 모독으로 감정을 배설하지 않은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그것도 아니라면 '우리 애가 많이 유감스럽지만 마음은 착해요'라는 변명조차 못 했으리라.
세상을 멸망시키기로 했으면서 정작 마법진을 그릴 실력이 없었던 그는 SNS에서 커미션을 받던 일러스트레이터에게 돈을 줘서 ―그것도 실랑이 끝에 값을 반으로 후려쳐서― 받아낸 작업물을 인쇄해 자취방 바닥에 깔았다.
그리고 공물로는 기름에 담근 것과 살아있던 것을 저며서 뭉친 것, 대지의 은혜를 받은 곡물로 만들어진 것, 쉼 없이 기포를 일으키는 정제된 액체를 준비했다.
무엇을 숨기랴.
근처 패스트푸드점에서 사 온 햄버거 세트였다.
준비를 마친 그가 메탈 음악에 맞춰 온 힘을 다해 주문을 외우자 마법진 위의 공물이 진흙처럼 녹아내렸다.
마법진 저편의 존재가 한가했는지. 햄버거에 악마의 살점이라도 섞여 있었는지. 아니면 배경음악으로 준비한 메탈이 불경한 소환에 어울렸는지. 그것조차 아니면 단순히 흑마술에 재능이 있었던 건지.
원인 분석은 뒤로 미루더라도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그가 종말을 위한 네 존재의 소환에 성공했다는 것이다.
"나는 죽음이요!"
"나는 전쟁이니!"
"나는 역병이고!"
"나는 기······."
그때였다.
쾅쾅쾅!
누군가가 문을 부숴버릴 기세로 두들기자 그는 잠시 소환술을 중단하고 묵시록의 사기사에게 양해를 구했다. 인내와 기사도를 모두 겸비한 사기사는 기꺼이 기다리기로 했다.
조심스레 문을 열자 거기엔 사제복을 입은 남성이 얼굴을 시뻘겋게 한 채 서 있었다.
"나는 옆집 아저씨다 이 새끼야! 야! 새벽 2시에 무슨 흑마술이야!"
" "
"잠 좀 자자! 새벽부터 퇴마 나가야 하는데 아주 별 개호로잡놈이 귀신을 부르고 앉았네!"
" "
그러자 뒤에서 듣고 있던 죽음이 조심스레 손을 올리고 말했다.
"저기, 우리는 귀신이 아니라 세계에 종말을 알리는······."
"알아 새끼야!"
깡! 분노한 사제가 집어던진 묵주가 죽음의 투구에 직격해 경쾌한 소리를 울렸다.
"대충 뭉개서 말한 거 뻔히 알면서 어딜 입을 끼어들고 지랄이야! 쓰레기 같은 마법진으로 불려서 원래 힘의 1할도 못쓸 놈은 얌전히 찌그러져 있어!"
"아니, 그······."
"죽음이라더니 뇌도 처죽었냐? 문장 이해 못 해? 뇌에 생리식염수라도 부어서 머리를 촉촉하게 적셔줘? 그러면 대가리 좀 굴릴래? 아가리 다물고 찌그러져 있으라고!"
"앗, 네."
기세에서 압도된 죽음이 죽은 듯이 침묵했고, 전쟁과 역병도 거드는 대신 얌전히 있기로 했다.
그사이, 제대로 소환이 끝나지 않았던 기근은 지금이 기회라고 생각하고 서둘러 소환을 취소해 버렸다. 햄버거 하나로 이어진 계약이란 그만큼 파기하기도 쉬웠다.
잔뜩 위축된 전쟁은 사제 몰래 역병의 옆구리를 쿡쿡 찌르며 속삭였다.
"그러니까 내가 햄버거 하나에 소환되는 건 좀 그렇다고 했잖아."
"아 씨. 왜 국지도발이야. 먼저 야식 땡긴다고 한 건 지였으면서."
격노한 사제의 분노는 장장 30분 가까이 이어졌다. 돌아갈 때 잊지 않고 사기사를 본래 세계로 역소환시킨 것은 그가 입만 험한 게 아니라 흑마술을 배척하는 진짜배기 프로 성직자라는 증거였다.
한편, 자취방에서 다시 혼자가 된 청년은 흑마술의 잔해를 정리하며 결심했다.
다음에 자취방을 구할 때는 옆집에 엑소시스트가 살지 않는 집을 구하겠노라고.
- 작가의말
흑마술은 주변에 민폐가 되지 않도록 때와 장소를 가려서 사용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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