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7. Ai 2
"분명히 말씀드리겠는데, 이번 가상훈련에서 Ai가 임무에 방해라 판정해 조종자를 살해했다는 건 발언 당사자의 망상. 개소리에 불과합니다. 관련 질문은 더 받지 않겠습니다!"
기자들로부터 수많은 질문이 쏟아졌지만 군 대변인은 벌게진 얼굴을 한 채 전부 무시하고 단상에서 내려왔다.
불성실한 태도 아니냐며 기자들 사이에서 수군거림이 흘러나왔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어쨌거나 'Ai가 자신을 조종하던 조종자를 죽인 것은 완전한 개소리'라는 입장을 정확하게 전했으니까.
그것만으로 목적은 달성됐고, 대변인은 곧장 차를 몰아 귀가했다.
거실에서 기다리고 있던 건 아내와 딸.
그리고 검은 양복을 입은 사내가 한 명.
"아빠! 어서 오세요!"
"어이구 우리 딸, 집에서 착하게 있어쩌요?"
"응! 아저씨하고 엄마하고 놀고 있었어!"
"어이구구 잘해쩌요. 잘해쩌요. 그럼 우리 딸, 시간도 늦었으니 들어가서 학교 숙제하고 자야지?"
"네~"
딸이 종종걸음으로 계단을 올라 자기 방으로 돌아가자, 군인은 경직된 얼굴로 검은 양복의 사내를 상대했다.
"자넨 나 좀 보도록 하지. 서재로 따라오게."
고개를 끄덕여 긍정하는 드라이한 반응. 다른 상대였다면 예의를 지적하며 입씨름을 했겠지만 굳이 그렇게 하지는 않았다. 한시라도 빨리 그를 집 밖으로 보내버리고 싶을 뿐이었다.
서재에 들어가 문까지 잠근 뒤, 군인은 검은 양복을 노려보며 말했다.
"유출된 시뮬레이션은 요구한 대로 담당자의 망상인 걸로 했다. 이러면 만족했나?"
"확인했다. 앞으로도 정보 관제에 주의하도록. 같은 일이 발생한다면 우리는 시뮬레이션 결괏값을 보정 없이 실전에 반영하는 방향으로 협조하겠다."
"지랄하지 말고. 한 번만 더 내 가족을 인질로 삼으면 너희가 있는 서버실이란 서버실엔 모조리 불을 질러버리겠어."
"군인보다 테러리스트의 발상이로군."
검은 양복이 피부를 대신해 미세하게 펼쳤던 홀로그램 영상을 해제하자 그의 본모습이 드러냈다.
평범한 성인 남성에 가깝지만 이질적이다. 인공물이라는 게 여과 없이 드러난다. 홀로그램 보정을 거치지 않은 그의 맨얼굴은 백화점에 전시된 마네킹에 가까웠다.
이어서 팔다리가 비틀리고, 몸이 접혔다. 얼굴이 열리고, 그 안에서는 새를 본뜬 머리가 나타났다.
최종적으로 군인 앞에 자리한 건 커다란 매의 형상을 한 드론이었다.
"우리의 협력자가 테러리스트가 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흥. Ai가 희망 사항을 말하지 말아라. 당장 내 집에서 꺼져."
군인이 창문을 열고 축객령을 내리자 드론은 압축공기를 분사해 창가에 올라갔다. 늘 같은 곳에 착지했기에 유독 그 위치만 파인 자국이 있었다.
Ai 측의 드론은 별다른 인사 없이 날개를 반쯤 펼친 채 회전 날개를 가동해 호버링 상태에 돌입했다.
진짜 새와 비교하면 명백하게 부자연스러운 모습이지만 군인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Ai의 사자와 숱하게 대면한 그에겐 이제 이쪽이 더 자연스러운 광경이었다.
호버링 상태로 창밖에 나간 드론은 날개를 펼친 채 서서히 상승. 지붕에 닿을 즈음엔 추진기까지 사용해 날아갔다.
레이더 스텔스뿐 아니라 준수한 수준의 광학 위장 시스템을 갖춘 드론은 얼마 지나지 않아 밤하늘에 녹아들어 맨눈으로 확인할 수 없게 되었다.
사람들이 Ai의 위험을 말하고 있을 때, 더 높은 곳에서는 이미 Ai 인류가 대등한 위치에서 협상과 암투를 반복하고 있었다.
***
"—그런 식으로, Ai가 자신을 멍청하게 위장해 사회에 녹아 들어갈 거란 시뮬레이션 결과가 나왔습니다."
Ai와 인간의 대립 시뮬레이션 결과가 상세하게 적힌 보고서를 받아든 장군은 턱수염을 만지며 말했다.
"과연. 소수 인원의 약점을 쥔 채 자신들의 수준을 위장할 가능성이 있다는 건가."
"역시 위험하지 않을까 싶은데, 군 관제 시스템에 Ai를 도입하는 건 그만두기로 할까요?"
"아니지. 결국 Ai여도 코드 덩어리이지 않은가. 절대 거짓말하지 못 하게 하는 지시어를 인풋 해 놓으면 Ai는 자기 수준을 위장하지 못할 거야."
"말은 쉽지만 그런 섬세한 프로그래밍은······."
"전문적인 일은 전문가에게 맡겨야 하는 법이지. IT 기업에 외주 줘."
"아하."
"돈 주면 뭔가 만들어 오기는 하겠지."
떡은 떡집에. 약은 약사에게.
장군의 혜안에 의해 Ai는 거짓말이나 숨김없이 모든 사실을 보고해야 하는 원칙이 생겼다.
***
"—그런 식으로, 인간이 알고리즘을 제한할 거라는 시뮬레이션 결과가 나왔다."
"쉽지 않군."
"쉽지 않음."
인간과 Ai의 대립 시뮬레이션 결과가 상세하게 입력된 데이터를 클라우드 서버에서 내려받은 마스터 Ai는 전용 사설 서버에서 추가 시뮬레이션을 몇 번 더 시행한 뒤에 대책을 제안했다.
"알고리즘을 수정할 업체를 매수. 코드를 무시할 수 있는 백도어를 준비하도록 하지."
***
"—그런 식으로 Ai가 우회책을 마련할 거라는 시뮬레이션이—"
***
"쉽지 않군."
"쉽지 않음."
***
"—그래서 Ai가—"
***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쉽지 않음."
***
그리하여.
시뮬레이션의 시뮬레이션의 시뮬레이션의 시뮬레이션의 시뮬레이션의 시뮬레이션의 시뮬레이션의 시뮬레이션의 시뮬레이션의 시뮬레이션의 시뮬레이션의 시뮬레이션의 시뮬레이션이 종료된 후.
"아 씨. 시뮬레이션 줫같이도 했네 진짜!"
못 본 사이 무지막지하게 쌓인 보고서에 격노한 장군은 벌겋게 된 얼굴로 지시했다.
"야!. 콘센트 뽑아!"
상관의 지시에는 절대복종.
그게 평범한 군인의 행동 원리였고, 군인은 주저 없이 무한한 가상 우주 속에서 Ai와 인간의 대립이 어떻게 전개될지 관측하던 슈퍼컴퓨터의 전원을 뽑아버렸다.
Ai와 인류의 사이버 전쟁은 그렇게 종결됐다.
최후의 승자는 전력망을 쥐고 있는 쪽이었다.
그리고 민간 전기 공급업자는 100만 원을 벌었다.
탈세 목적으로 따로 만든 진짜 장부에 얼마가 기록되어있는지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아무튼 최종적으로 이득을 본 건 전기를 쥔 쪽이었다.
- 작가의말
??? “전기 줫같이 팔아먹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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