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8. Ai
그곳의 이름은 창작세계.
그 세계의 주민들은 시공을 초월해 수많은 창작자에게 힘을 받는 대신, 그들의 작품 속 캐릭터를 연기하거나 감상을 피드백하는 것으로 작가들에게 영감을 불어넣으며 살아가고 있다.
"오-호호호홋! 이번에도 제가 주인공으로 발탁되었사와요!"
그중에서 최근 가장 잘나가던 여인은 모두의 앞에서 거만하게 웃어 보였다.
최근 갑자기 대두된 작가가 만든 캐릭터의 설정이 그녀와 절묘하게 맞아떨어져서, 그녀에게 막대한 힘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작가들의 창의력은 창작세계의 주민들에게 있어 힘이자 권력. 동시에 경제를 순환시키는 화폐.
갑자기 막대한 부를 거머쥔 그녀가 동기들을 거만하게 내려보는 것이 그녀의 본성이라고 말할 수만은 없으리라. 노력과 비례하지 않는 부의 획득은 절제와 겸손을 흐리게 하는 법이니까.
"멋과 위트, 스타일! 저처럼 뛰어난 스타에겐 모든 것이 갖춰져 있으니까, 이렇게 되는 건 당연하지 않겠어요? 오~~~호호호호호호호호호홋! 호호호호호!"
···뭐어.
배가 아프다 못해 사람이 좀 많이 짜증 난 건 변호할 수 없었지만 말이다.
그때, 그녀의 성공에 박수를 보내면서도 작은 의문이 든 그녀의 동기가 물었다.
"저기, 그래서 이번에 연기하는 작품은 뭐야?"
"자세한 건 아직 확인하지 않았사와요."
"어? 그치만 작품 개요는 제작팀하고 등장인물 전원한테 전달되잖아?"
"제가 주인공이라면 어떤 이야기든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거랍니다! 저는 작가님의 작품을 휘어잡는 거물급 주인공이 될 것이와요!"
"아···. 그, 그렇구나."
"그래도 뭐 장르는 판타지에······. Ai? 그런 기법을 사용하나 보던데요."
"Ai?"
"승천차원의 새로운 유행이지 않나 싶사와요. 정말이지, 작가님들의 상상력은 끝이 없다니까요?"
"계약도 잘못하면 호된 꼴을 보는데, 아무리 그래도 좀 알아봐야······."
"원작으로 웹소설도 있었다 하니, 분명 최고의 웹툰이 될 것이와요!"
나름 진심에서 우러난 걱정이었지만 그녀는 듣는 척도 하지 못했다. 오만한 주인공의 메소드 연기에 돌입한 그녀의 귀엔 조금도 닿지 않았다.
아니면 단순히 웃는 소리가 너무 컸던 걸지도 모르고.
***
그리고 화제작이 런칭된 당일.
소주 두 병을 사서 강변 공원길을 따라 걷던 여인은 강가에 쪼그려 앉아 있는 동기를, Ai웹툰의 주인공이 된 그녀를 발견했다.
반갑기는 했지만 이름을 부르지는 않았다. 대신, 오른편에 앉아 작은 소리로 물었다.
"저기저기, Ai 때문에 외팔이가 된 기분이 어때? 팔 하나 없이 그려진 건 어떤 기분이야? 창의력은 달달했고?"
"흑, 흐윽. 흐으윽······."
아뿔싸. 첫 단추를 잘못 여민 듯한 기분에 머리가 아찔해졌다.
평소 괄괄한 성격을 고려해 일부러 시비조로 말을 걸었으나, 정작 주인공에게 그만한 기력이 남아있지 않았었다.
미안한 마음에 어쩔 줄 몰라 하던 그녀는 깊은 한숨을 토하고는 소주병을 따 주인공에게 건넸다.
"그, 좀 전 말은 미안. 기운 냈으면 해서 한 말이니까. 상처받았으면 미안해. 너 정도면 받아칠 줄 알았어."
주인공은 여전히 훌쩍이면서도 그녀가 건넨 소주병을 받아들었다.
Ai의 그림을 반영하기 위해 소멸시킨 오른팔 대신, 일곱 개의 손가락이 달린 왼팔을 뻗어서.
벌컥거리며 단숨에 반을 비운 뒤, 주인공은 술기운을 빌어 억지로 말문을 열었다.
"도, 돌아갈 수 있을까? 원래대로······."
"그야 당연하지. 창작세계의 사람이 작품에 영향을 받는 건 작업이 시작된 뒤부터 완결되기 전까지잖아?"
"나 연습했는데······. 정말로 열심히······. 이런 모습이 되려고 노력한 건 아니었는데······!"
"그러게. 하하. 설마하니 그렇게 엉망인 걸 만들어 놓고 작품이라고 할 줄이야. 검수할 지능도 없던 걸까? 그런 건 작가님이라고 부르기도 아까워. 원작자님도 재난이었겠네. 이러다 창작세계가 아니라 장작세계가 되는 건 아닐까. 하하······. 하."
감정을 참는 게 한계였던 주인공은 그녀의 품에 안긴 채 오열했다. 들고 있던 소주병이 기울어져 다리와 바지가 젖어버렸지만, 그녀는 개의치 않았다. 마음의 상처를 공유하지는 못해도, 같은 창작세계의 주민으로서 어떤 기분인지는 공감하고 있었으니까.
그녀는 만사가 허무해진 눈을 한 채, 스마트폰 저편을 응시하며 물었다.
"저기저기, 당신들 기분은 어때? 도둑이라고까지는 안 하겠지만, 리터칭은 하지 그랬어? 입금된 액수는 달달했고?"
- 작가의말
예. 최근 화제인 그 소재입니다.
Ai일러스트레이터를 자칭하시는 전 세계의 모든 프롬프트 제작자분들께 이 엽편을 바칩니다.
그 뭐시냐. Ai를 쓰든 어시를 쓰든 열정페이를 부려먹든 그건 만드는 사람 자유겠지만, 최소한 검수나 리터칭을 해서 완성도와 디테일 정도는 높이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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