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4. 성기사
“으……으아아아!!”
고성과 함께, 한 남자가 철창을 손으로 두드렸다.
헝클어져 있는 머리카락, 푹 들어간 눈. 광인의 자태를 온전하게 드러내고 있다.
“차도는 없는 건가?”
“성녀께서도 왔다 가셨지만, 단시일 내에는 어려울 거라고 하셨습니다.”
꾸욱. 철창 앞에 선 슈레인이 주먹을 세게 쥐었다.
못나고, 어리석어도 자식은 자식이다. 광인의 몰골을 한 트라를 보며 넘어오는 울분을 참아야 했다.
“아아. 아들아, 아들아……”
그 옆에서는 밀리아느가 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로, 트라의 모습에 눈물 흘리고 있었다. 말려야 했는데. 불안감이 들었을 때, 하지 못하도록 했어야 했는데. 때 늦은 후회가 가슴에 가득 차, 볼을 적셨다.
“그만 우시게나. 쟤 놈이 잘못을 해서 벌을 받는데, 어쩌겠소.”
“허면 이대로 두시겠다는 말씀입니까? 찬 바닥에, 몸 하나 뉘일 곳도 제대로 없는데!?”
“죄인의 몸이니 어쩔 수 없지. 상태를 호전시킬 수 있도록, 내가 계속 주교들에게 부탁을 해 보겠소.”
목석같은 답변에 밀리아느의 가슴이 턱 하고 막혔다.
후회와 안타까움이 섞인 감정은 금세 분노로 바뀌었다. 이 상황을 만든 원흉. 분명, 그것은 트라에게 있음에도 금세 들불마냥 번져 운페이에게 향했다.
“그, 그놈은! 그놈은 어찌 하시겠습니까? 우리 아들을 이 꼴로 만들어 놓은 놈 말입니다.”
“으음. 운페이 말이오?”
“그 놈 말고 누가 있겠습니까? 그놈 아니었다면, 우리 애가 그런 마병에 손을 댔을 리도 없고, 이 꼴이 됐을 리도 없지 않습니까!?”
말 도 안 되는 소리다.
배경이 어떻든 선택은 트라가 한 것이고, 그 책임도 그가 짐이 옳다. 하지만 미리아느의 머리에서는 그런 계산이 되지 않았다.
“……그만 해 두시오. 정당하게 싸운 아이에게 무슨 잘못을 묻는단 말이오. 게다가 그 아이도 마병의 힘에 휘말려서 지금 입원해 있지 않소?”
“내, 그리 둘 수는 없습니다! 우리 아이가 지금 이 모양인데! 겨우 찰과상 따위로 누워있는 것과 비교를 하십니까?”
“이보오! 그만하시게. 하늘을 보고 물어도 잘못을 한 것은 우리 아들이니까……”
잠기는 목소리로 슈레인이 답했다.
그라고 이리 일축하는 게 쉬운 건 아니다. 하지만 전후 사정을 아무리 살펴보아도 잘못은 트라에게 있다. 이미 공개 석상에서 금지된 마병을 쓴 이상 빼도 박도 못하는 상황. 그가 아무리 제 1 성기사라 해도, 이를 어찌 할 방법은 없다.
10년 만에 돌아온 아이에게 화를 푸는 것은 더더욱.
무거운 눈빛으로 가슴에 쌓인 울화를 삼키는 수밖에 없었다.
“……나는 그렇게 못 합니다.”
하지만 그와 밀리아느는 다르다.
입가를 맴도는 소리로 중얼거렸다. 차디 찬 지하 감옥의 철창을 손으로 움켜 쥔 채. 고성을 지르는 트라를 바라보며, 같은 말을 반복했다.
***
“응?”
“왜?”
“누가 내 욕 하는 거 같아서.”
“이거 언제고 한 번 나왔던 상황 같은데?”
‘그런가?’ 운페이가 작게 중얼거리고는 몸을 일으켰다.
부상자의 모습을 꾸미느냐고 너무 오래 누워 있었다. 등이 다 배겼다. 허리를 쭉 핀 다음에, 손을 모아 앞으로 뻗으니, 비올레가 냉큼 잡아서 당겨 주었다.
“어억. 허리 부러진다.”
“앗! 그러면 안 되지. 중요한 건데.”
고양이 같은 웃음을 지으며, 비올레가 손을 놨다.
시간은 해가 창창한 시점. 쾌활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근데 그거 괜찮은 거야? 힘을 풀어내는 바람에 주박이 해제 된 거 같은데.”
“뭐, 어쩔 수 없지. 내가 완벽하게 다루는 상황은 아니잖아. 그 여자가 앙심을 품고 달려든다면, 그건 또 그 나름대로 재미있겠지.”
“오. 악마 같은 발언.”
“아, 오염됐어.”
운페이의 너스레에 비올레가 깔깔 거리며 웃었다.
시간이 시간이다 보니, 애교도 많고, 웃음도 많았다. 짤랑거리는 그녀의 웃음에, 방 밖에서 작은 소란이 일었다.
지금 운페이와 비올레가 있는 곳은 신전 치료소.
트라가 만들어 놓은 난장판 덕분에, 휩쓸린 사람이 꽤 많았다. 그들을 하나하나 거둬서 성력으로 치료를 하는 중이다. 가장 근접에서 당한 운페이가 최우선적으로 치료를 받는 건 당연한 이야기. 성력으로 샤워를 해야 했다.
운페이가 가진 힘은 기본적으로 마기와 동일한 성질을 지닌다. 성력에 반발하는 것이다. 다만, 그 힘이 위치한 곳이 한정적이기 때문에, 이를 유동적으로 돌려서 반응을 제어 할 수 있다. 몸이 화끈거리는 것은 어쩔 수 없었지만.
똑똑. 그때 노크 소리와 함께 두 사람이 안으로 들어왔다.
성녀 세레인과, 그를 호위하는 제롬. 치료 과정이 꽤 힘겨운지, 그녀의 얼굴이 피로해 보였다.
“아, 일어났네.”
그녀가 성큼성큼 걸어, 운페이의 손을 잡았다.
반짝이는 성력. 몸을 살피려 함이다. 옆에 선 비올레가 발끈하려 하다가, 운페이의 눈빛을 보고는 꾹 눌러 참았다. 시간대가 낮이라 다행이었다.
“음. 괜찮네.”
아주 아주 괜찮았다.
사실, 처음 그를 진찰했을 당시에도 괜찮았다. 마병을 떼어내기 위해 달려가던 기사들조차 피해를 입었던 것에 비하면 굉장히 의아한 결과. 하지만 그녀는 이를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 그저, 큰 피해가 없다고만 말 했을 뿐이다.
“네 덕분에. 그보다 이 손 좀 놔 주지 않을래? 눈길이 좀 뜨거워서.”
“아, 미안!”
세레인이 얼굴을 붉히며 물러났다.
좀 과하게 잡기는 했다. 불길 속을 걸어오는 야차와 같은 얼굴의 비올레는 둘째 치고라도, 제롬도 표정이 딱히 좋지 않았다.
“그대. 성녀 님과 개인적인 친분이 있음을 알고 있다. 하지만 말을 함에 주의를 하라. 함부로 대하실 분이 아니다.”
“흠. 이 정도 규모면 사석 아닐까요? 좀 봐주시는 건 어떨까요?”
“그럴 수 없다. 앞으로 그대는 성녀님을 모셔야 하는 입장. 그런 개인적인 반응이 일에 차질을 불러 온다면 응당 고침이 옳다.”
“개인적으로 친해서 더 열심히 지켜주는 건 안 될까요?”
제롬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농담입니다. 인상 피세요. 저도 제가 해야 할 일에 대해서는 잘 숙지하고 있습니다.”
“흠. 그렇다면 다행이군. 하지만 아직 마음 놓지 마라. 그대가 성녀 님을 수호할 가디언이 되기 전. 마지막 시험이 남았으니까.”
운페이가 세레인을 바라봤다.
또 다른 시험이 남아 있다는 얘기는 처음 들었다.
“마지막 시합이 조금 그랬으니까. 옴멜 경이 직접 심사를 하고 싶다고 해.”
“옴멜?”
“네가 상대한 트라 경의 상관이야. 크로스 기사단의 단장이자, 두 번째 성기사의 위치하고 계셔. 대단하신 분이지.”
“그런 분이 나를 직접 상대하러 오신다고? 트라 때문에 책잡히는 건 아닐까?”
“그건 아니다. 그분이 공명정대함은 성국내 사람이면 다 아는 사실. 네 실력을 정당하게 심사해 주실 것이다.”
아주 낱낱하게.
제롬이 속내를 삼켰다.
시합 당시 보았던 운페이의 모습.
성국의 기사들과는 다른 전투 방식이다. 하지만 그 속내에 들어있는 무의 묘리는 굉장한 수준. 특히, 그 찌르기는 먼 거리에서 봤음에도 몸이 찌릿 거릴 정도였다.
“그 분 시험만 통과하면 성기사가 될 수 있는 겁니까?”
“성녀께서 보증을 하신다면.”
운페이의 시선이 세레인에게 옮겨갔다.
그녀가 짐짓 부끄러운 듯 고개를 살며시 돌렸다. 그 모습에 비올레의 두 눈이 지옥의 불길 마냥 타올랐다. 지금이 낮 시간임을 다시 한 번 감사해야 했다.
“우, 운페이라면 나를 잘 지켜 줄 거예요. 10년 전에도 그랬듯이.”
“10년 전?”
“10년 전?”
제롬과 비올레가 동시에 말했다.
하지만 같은 말이라고, 같은 분위기는 아니었다.
운페이가 등 뒤로 흐르는 식은땀을 느꼈다.
- 작가의말
짧아! 고로 다음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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