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8. 통곡의 벽
앙타라의 비전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그것을 전수 할 당시 했던 앙타라의 말을 빌리자면, 자잘한 것과 큰 것. 일전에 경매장에서 사용했던 능력은 큰 것에 포함되는 힘이다. 굉장한 위력을 가지고 있지만, 다수의 사람과 싸우는 데 쓰기는 적합하지 않았다. 사용하기 까지 시간이 많이 걸리는 단점이 있었기 때문.
반면, 자잘한 것이라 말 했던 기교는 사람을 상대하는 데 특화되어 있다. 특히 감각이 예민하고, 실력이 좋은 이들일 수록 효과가 좋다. 운페이는 이를 감응유도라는 말로 있어 보이게 설명을 했었다.
사람은 누구나 주변 환경에 영향을 받는다. 누군가 하품을 하면 그것이 전염되거나, 한 명이 소변을 보러 가면 자신도 가고 싶어지는 현상이다. 이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반응이나, 그리 대단한 영향력을 가지지는 않는다. 하품이 전염 된다고, 멀쩡한 사람에게 그것을 강요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하지만 앙카라의 비전은 이것에 강제력을 가지게 할 수 있다.
서 있으려는 자를 걷게 하고, 눈을 뜨려는 자를 감게 할 수 있다. 산을 본 착각을 불러일으키거나, 거인을 맞닥뜨린 공포를 불러 올 수도 있다. 기적에 가까운 수법이지만, 세상 모든 것들이 그렇듯 이는 공짜가 아니다.
감응유도의 주체가 되는 것은 시전자. 즉, 상대가 하는 모든 반응들을 시전자도 동일하게 하는 것이다. 단, 비전의 수련으로 시전자는 이를 억지로 통제, 개별적인 행동을 취할 수 있다. 이것이 대가. 억지로 틀어놓는 반응은 막대한 부담을 가져온다. 신체 제어를 인지반응보다 빠르게 조율하는 것이기 때문.
터엉-!!
또 한 명이 바닥으로 쓰러졌다.
허공에 검을 휘두르다 레이나의 화살에 허벅지를 관통 당한 것이다. 그는 분명 운페이를 노렸지만, 움직인 건 화살이 쏘아지는 반응이었다. 아찔한 고통에 의식이 날아가는 순간까지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다.
“젠장! 뭐하는 짓이야!? 똑바로 움직이지 못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운페이 주변에는 이미 여럿이 쓰러져 있다. 그의 검에 당한 이들도 많았지만, 레이나의 화살이나 벡스타인의 검에 썰린 자들이 더 많았다. 기괴한 현상이 반복적으로 일어나니, 자신만만하게 포위했던 이들도 쉽사리 접근하지 못했다.
“이게 단가? 신나게 떠들던 것과는 다른데?”
“큭. 건방떨지 마라!”
“다가오지 못할 만큼 무섭다면, 그대로 말 하는 것도 좋겠지. 꼬리내린 개새끼 만큼 보기 좋은 것도 없으니까.”
“감히-!!”
벡스타인이 분을 참지 못하고 뛰어 들엇다.
운페이가 설풍으로 검면을 때리며 그의 행동을 유도했다. 힘을 흘리며 반격에 나서야 될 몸이 한 걸음을 더 내딛으며 등을 개방했다. ‘기회.’ 운페이가 냉큼 그의 복부를 후려쳤다. 쩍 소리와 함께 몸이 한 뼘 가량 떠올랐다.
그리고 참격.
채앵-!!
하지만 아쉽게도 벡스타인 혼자만이 있는 게 아니었다.
레이나의 화살이 궤도에 끼어들어 운페이를 방어했다. 이것이 비전이 가진 약점. 감응유도를 할 수 있는 것은 한 번에 한 명 뿐이다. 다른 이들이야 수가 많아도 상관없지만 성기사인 레이나는 대수롭지 않게 처리할 수준이 아니었다.
‘짜증나는군.’
운페이가 지끈 거리는 고통을 참으며 조금 물러났다.
벌떡 일어난 벡스타인의 검이 발치를 두드렸다. 씩씩 거리며 거친 숨을 내쉬었다. 상당히 폭급한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길어지면 곤란한데……’
막대한 재생력으로 몸에 가해지는 부담을 견디고 있지만, 그것도 엄연히 한계는 존재한다. 탈력 상태에서 목이라도 잘리면 아무리 운페이가 대단한 재생력을 가지고 있다 해도 살 수 없다.
“벡스타인 이 멍청아. 혼자 날뛰지 말라고.”
“큭! 대체 무슨 수작을 부리는 거냐!?”
“머리는 뒀다가 뭐 해? 이 정도 싸웠으면 견적이 나와야지.”
쉭. 레이나가 말을 하던 도중에 화살을 날렸다.
운페이가 반사적으로 검을 들어 막아냈다. 그 틈에 지금거리로 접근한 기사 둘이 검을 찔러왔다. 예리한 공격. 재빨리 몸을 돌려서 하나를 피하고 다른 하나는 감응 유도로 물렸다. 발이 꼬이며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이때, 멍청아!”
숨 한 번 쉬기도 전.
아래에서 위로, 벡스타인의 검이 날아왔다. 반응하기 어려운 속도. 공허의 힘이 그의 능력을 몇 배 이상으로 증폭하고 있는 것 같았다.
치익. 운페이의 볼이 가볍게 긁혔다. 초월적인 반사 신경으로 피하기는 했으나 완벽하지는 못했다. 감응유도를 사용한 직후라, 대상을 바로 바꾸지 못했다.
“킥. 역시나군. 저 놈이 무슨 수작을 부리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한 번에 둘 이상에게는 사용 할 수 없어.”
“오호. 그랬군……”
훙. 훙. 벡스타인이 검을 위협적으로 흔들었다.
‘위험하군.’
운페이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상황이 불리하게 흘러가고 있다. 초월력은 상대의 속도를 따라가기 힘들고, 앙타라의 비전은 난전에서 사용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그렇다고 공허의 힘을 사용하자니, 가뜩이나 불안한 상황에서 섶을 지고 불에 뛰어드는 격이다.
‘내게 위험이라는 말은 이제 더 이상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공허를 봉인하고, 초월적인 존재들에게 인정을 받았다. 사실상 인간 중에 그와 맞상대를 해서 이길 수 있는 자는 거의 없다. 아내인 비올레를 제외하고도 말이다. 게다가 성국에서의 활동 역시 여유로웠다. 성기사들은 하나같이 만만했고, 맞부딪히는 이들은 귀찮은 수준이었다. 어려움이 생기거나, 위기라는 생각을 가질 이유가 없었다.
‘역시 풀어져 있었으려나……앙타라가 본다면 턱이 날아가겠군.’
운페이가 검을 내리며 고개를 흔들었다.
부정 할 수 없었다. 그것이 사실이니까. 비올레가 고향에 들어와서 변했다고 하더니, 그 말이 맞았던 모양이다.
“후……”
“포기하는 건가? 그렇다면 우리는 편한데.”
“크크. 이제 와서? 소용없어. 머리를 박살내주겠다.”
날숨 하나에 요란하게 반응한다.
운페이가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핏물이 베어 나와 입 안으로 스며들었다. 혼란스러웠던 머리가 맑아졌다. 싸움이 어려 울 때면 하던 버릇이다. 잊고 있던 기억이 떠오르고, 묵혀 두었던 감각이 살아났다.
‘아아. 역시 사람은 살던 대로 살아야 하는가 보네.’
화아악—!
운페이의 몸에서 섬뜩한 기세가 쏟아져 나왔다.
벡스타인과 레이나가 깜짝 놀라 무기를 부여잡았다. 성기사인 그들조차 한 순간 식은땀이 흘렀을 정도의 기세. 주변을 포위하던 병사들은 사색이 돼서 엉거주춤 물러나고 있었다.
“뭐, 뭐야……?
당황한 음성이 흘러나오는 순간.
운페이가 몸을 낮춘 채 벡스타인이게 달려갔다. 포위하던 이들은 기세에 겁을 집어먹고 잠시 틈을 벌리고 있었다. 설풍이 허리 아래쪽에서 섬전과 같이 뻗어 나왔다.
“큭!!”
벡스타인의 검과 맞물렸다. 요란한 불꽃이 피어오르고, 레이나가 황급히 지원을 했다. 머리에 하나 허리에 하나. 두 대의 화살이 간격 없이 쏘아졌다. 동시에 피하는 것은 무리. 검을 맞댄 벡스타인은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운페이는 피할 생각이 없었다. 맞댄 설풍을 바닥에 찍어 누르며 벡스타인의 왼발을 후려쳤다. 동시에 몸이 낮아지며 머리를 노리던 화살은 회피했다. 문제는 남은 한 발. 그대로 어깨에 틀어박혔다. 실린 힘이 대단했지만, 운페이의 몸 역시 강골이었다. 뼈를 관통하지 못하고 손바닥 반 정도를 들어가다 멈춰 섰다.
쩌억. 화살이 박힌 손으로 강타. 벡스타인이 피하지 못하고 그대로 얻어맞았다. 레이나가 다급히 두 대의 화살을 더 날렸다. 이에 운페이가 몸을 바짝 숙이며 설풍을 이로 물었다. [라쿰.] 정확하지 않은 발음이지만, 능력은 발동되었다. 새파란 냉기가 뻗어나가 날아오던 화살을 막아냈다.
탁. 동시에 운페이가 몸을 날려 발뒤꿈치로 벡스타인의 정수리를 찍었다. 몸을 던진 텀블링. 포위된 상황에서 하기에는 너무 리스크가 큰 행동이었다.
푸욱-!
그리고 그건 사실이었다.
운페이가 몸을 굴러 일어나기 전, 근처에 있던 기사의 검이 옆구리를 후벼 팠다. 내장까지 상했을 정도의 상처. 하지만 운페이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그대로 손을 휘둘러 검을 잘라낸 뒤, 칼날을 뽑아 휘둘렀던 이에게 던졌다.
“이, 미친……!”
목에 검날을 박으며 기사가 쓰러지는 틈에 벡스타인이 정신을 수습하며 일어났다. 머리에서 피가 흐르고, 얼굴 한 쪽이 부어 있었다. 검을 바짝 당겨 쥐고는 강한 찌르기를 날렸다.
‘이것.’
운페이가 망설임 없이 검 앞으로 뛰어들었다.
거리는 한 걸음. 벡스타인의 검은 그대로 운페이의 복부를 관통했다. 피가 튀고, 아찔한 냄새가 사방으로 번졌다.
“크핫! 멍청한……”
“알고 있다.”
한 치의 흐트러짐이 없는 목소리.
쩍 소리와 함께, 벡스타인의 양 관자놀이로 운페이의 손이 떨어졌다. 윙. 머리통이 울리고, 그의 몸이 휘청거렸다. 하지만 박아놓은 검 때문에 몸은 떨어지지 않았다. 거리를 두고 있던 레이나도 간격이 없는 터라 화살을 쏘지 못했다.
푸욱. 운페이가 번개 같은 손속으로 어깨에 박힌 화살을 뽑아, 벡스타인의 턱에 밀어 넣었다. 턱에서 눈으로. 화살이 그대로 관통했다. 아찔한 고통에 그의 몸이 퍼덕였다. 입은 닫혀있기 때문에, 비명은 뱉지 못했다.
팍. 운페이가 발로 그의 몸을 걷어차 몸을 뒤로 뺐다. 둘 사이의 틈으로 화살이 지나갔다. 상처에서 튀어나온 핏물이 허공에서 춤을 췄다.
“벡스타인!! 네놈이!!”
레이나가 다시 화살을 시위에 걸었다.
마병의 능력으로 화살을 뽑는 시간도 필요하지 않았다. 끝까지 당겨진 시위가 운페이의 머리를 노렸다.
퍼엉!!!
하지만 그 순간.
레이나의 전면에서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화염이 뭉개 구름마냥 뭉쳤다, 요란하게 퍼졌다. 직격당한 레이나는 잘 익은 통구이가 되어 뒤로 한참이나 나가 떨어졌다.
성기사 둘이 단번에 당한 것이다.
포위하고 있던 병력들이 일순간 패닉 상태에 빠졌다. 그리고 그 사이를 가르며 누군가 천천히 걸어 들어왔다.
“후. 마누라 오셨네. 이거 창피한데?”
“멍청이.”
숨을 헐떡이는 운페이 옆으로 비올레가 다가왔다.
말은 사납지만 눈에서는 걱정을 숨길 수 없었다. 손을 베어 물어 피를 뽑아 낸 뒤, 상처 부위에 묻혔다. 천천히 아물고 있던 상처가 단번에 회복되었다. 흘린 피는 어쩔 수 없지만, 외상은 일단 봉합한 것이다.
“정찰만 하러 간 거잖아. 뭐하고 있는 거야?”
“하하. 어쩌다 보니까.”
“싸울 거면 확실하게 다 죽여버리던가. 왜 맞고 있는 건데?”
“미안. 미안. 나도 모르게 그 동안 늘어졌었나봐.”
비올레가 입술을 깨물었다.
눈매가 사납게 올라갔다. 꼭 한 대 칠 것만 같은 기세. 하지만 눈 꼬리 끝에 살짝 달려있는 건 눈물이었다. 뱀파이어 로드. 그 이름에는 절대로 맞지 않는 물건이었다. 운페이가 머리를 긁적이다, 그녀의 눈물을 손으로 닦아 주었다.
“어떤 놈이 그랬어?”
“아 그게……”
부스럭. 운페이가 대답하려는 찰나.
죽은 듯 늘어졌던 벡스타인과 레이나가 동시에 일어났다. 눈이 관통당하고, 폭발을 정면에서 받았는데 둘 다 죽지 않았다. 몸 주변으로 희미한 기운이 감돌고, 치명적으로 입었던 상처가 놀라운 속도로 회복되어갔다.
“저 새끼들이야?”
“아, 뭐……”
비올레가 양 손을 걷으며 걸어 나갔다.
포위한 병력이나, 죽음에서 되살아난 성기사는 신경 쓰지 않았다.
“뒈질 준비해라.”
말 하는 대로 이루어지리라.
그것은 대공(大公)의 권능. 칠흑과 같은 어둠이 밀려왔다.
- 작가의말
비올레가 운페이보다 훨씬 셉니다.
운페이는 필요하면 자신의 감각을 통제 할 수 있습니다.
어쩌면 그것도...? 으흣.
Comment '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