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4. 부서지는 흐름
이마위로 도드라진 뿔과 새카만 날개.
누가 보더라도 이것은 악마였다. 아니, 마왕. 광휘를 품은 천사를 손수 찢어 죽이는 장면까지 목도했으니 이것은 부정 할 수 없는 현실이었다.
“사도인가!”
“오, 신이시여. 어째서 우리에게 이런 시련을……”
힘이 풀린 병사들이 주저앉았다.
천사는 신의 상징이다. 성국을 지주가 교황과 슈레인 같은 인물이라면, 믿음의 근원은 결국 무형의 신으로 간다. 그걸 눈으로 확인시켜 주는 것이 지금 나타난 천사. 고문에서나 등장하고 믿는다 말 하는 이 없던 존재이나, 직접 본 이상에는 그것이 직접적인 믿음의 기둥이 되고 만 것이다.
그런데, 그걸 눈앞에서 죽였다.
“교황 성하를 보호해라!”
“슈레인 경! 맞서 싸우는 것은 미친 짓입니다!”
“어쩔 도리가 없다! 성국이 넓다 하지만 악마를 피해 어디로 도망가겠는가! 적어도 교황께서 제정신을 차릴 때까지는 내가 이 자리에서 버티겠다.”
“저도 돕겠습니다.”
“후아. 보통 일이 아니군요.”
왁슨과 한이 슈레인의 옆으로 나섰다.
옴멜은 교황을 호위하며 기사단과 함께 뒤로 빠졌다. 젠킨이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사도와 천사의 싸움을 보았다. 슈레인 등이 대단하지만 천사를 해치운 악마와 싸워서 이길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였다.
“너희도 내게 덤비려 하는 거냐?”
펄럭. 비올레가 날개를 펼치며 운페이를 가둔 고치 앞으로 이동했다.
슈레인, 젠킨, 왁슨 등. 많은 이들이 낯익다. 하지만 덤비려 든다면 봐 줄 생각 따위는 없다. 지금 그녀는 지나가는 들 고양이 하나에도 대 파멸 주문을 쏟아낼 정도로 신경이 날카로웠다.
“잠깐만. 저 얼굴……”
“어라?”
그녀를 정면으로 목도한 슈레인과 젠킨이 반응했다.
뿔을 달고 어둠과 같은 날개를 펼쳤지만 그 얼굴 자체는 익숙한 것이었다. 한참이나 그 얼굴을 살피더니 거의 동시에 탄성을 뱉었다.
“비올레!”
“비올레 양!”
한 쪽은 좋은 관심으로, 다른 한 쪽은 경계로 운페이를 주의 깊게 살핀 바 있다. 그 옆에 선 미인에 대해서는 역시나 조사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비올레. 신비로운 분위기를 지닌 미인으로 주술에 능통하다 하였으며, 성격이 꽤 당차다. 이 정도가 두 사람이 알아낸 비올레의 전부였다.
그런데, 알고 봤더니 악마라니!
그것도 천사를 찢어 죽이는 대 악마!
“우, 운페이는 어떻게 된 거냐?
간신히 정신을 수습하고 슈레인이 물었다.
그녀를 마지막으로 본 것은 통곡의 벽에서 내려오던 때. 교황의 명령을 받아 반역도를 잡기 위해 검을 들었던 순간이다.
“남편. 남편은 다쳤어.”
“다쳤다고? 얼마나? 지금 어디에 있는 게냐?”
“여기. 한 동안은 쉬어야 해. 귀찮게 굴지 말고 전부 내 눈앞에서 사라져.”
“아, 악마 주제에!”
그때, 기사단에서 젊은 남성 하나가 나섰다.
한 쪽 팔이 잘렸다. 동여 맨 붕대는 붉게 물들어 있었다.
“말 할 거면 똑바로 해. 멍청한 인간. 이 몸은 마왕이다. 같잖은 악마 나부랭이가 아니라.”
“마, 마왕!?”
말을 걸었던 남자가 화들짝 놀라며 자빠졌다.
웅성거림이 커졌다. 마왕. 성기사들 중 상당수는 일곱 마왕에 대해서 알고 있다. 통곡의 벽 너머에 존재하는 전승 같은 것으로.
“네가……마왕이라고?”
“대답하기 귀찮다. 썩 꺼져.”
비올레가 손을 휘저었다.
까만 일렁임이 번져서 사람들을 밀어냈다. 힘 좀 쓴다는 기사단의 병력들이 잔뜩 이지만 버티지 못했다. 좌우로 쫙 갈라져서 길을 텄다.
“대답해라!”
이를 밀어내며 슈레인이 다가왔다.
몸 주변으로 새하얀 광휘가 휘몰아치고 있었다.
“봐 주는 건 한 번 뿐이다. 그것도 남편 봐서 참는 거야. 당장 내 눈앞에서 사라져. 그렇지 않는다면 싸그리 죽여 버릴 테니까.”
“네가 마왕이라면 비킬 수 없다.”
“정말 네가……”
“잠시 만요! 잠시 만요. 진정들 합시다. 서로 간에 조금은 열을 식혀야 할 필요가 있겠군요. 여기서 이리 말싸움을 하는 것이 운페이 경에게 도움이 될 거 같지는 않으니까요. 안 그런가요, 두 분?”
젠킨이 재빨리 끼어들었다.
권능을 밀어 낼 힘이 없어서 왁슨을 채근했다. 간신히 열어 둔 틈으로 중재의 말을 던질 수 있었다.
싸움은 안 된다.
고지식한 슈레인은 악과 싸운다는 입장으로 나서는 거 같지만, 젠킨은 상황이 그리 단순하지 않음을 이해하고 있었다.
적들은 사도. 림이라는 조직으로 활동을 해 왔다. 그리고 운페이와 비올레는 이들과 대적하여 한 때 같이 움직인 바 있다. 그런데 갑자기 비올레가 적으로 돌아선다? 마왕이라는 것을 따 떼고 보자면 이렇게 척을 질 이유가 없다. 천사를 죽였다 하지만, 그것은 마왕이라는 위치 때문에 생긴 일로 볼 수 있다.
게다가 가장 중요한 부분에서 슈레인과 의견을 달리했다.
성국의 혼란을 종식시키기 위해서는 교황을 안전한 곳으로 모셔서 제정신을 차리게 하는 것이 우선이다. 마왕이라고 해서 드잡이 질을 하는 게 우선이 아니라는 말이다.
“젠킨 경. 자네가 나설 자리가 아니네.”
“아니요. 나서야겠습니다. 저는 이곳에서 죽고 싶은 생각이 없으니까요.”
“성국의 의기를 저버리려는 겐가?”
“의기를 따지기 때문에 이러는 겁니다. 비올레 양이 우리에게 무슨 해를 끼쳤다고 척을 지려는 겁니까? 그녀가 마왕이라서 천사와 싸웠다 한들, 우리가 검을 들고 같이 맞설 이유는 없지 않습니까.”
“무슨 소리인가! 천사는 신의 대행자. 그런 존재를 죽여 없앴다면, 그것으로 악. 스스로 마왕이라 말을 하였는데 무슨 이견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답답한 노친네 같으니.
젠킨이 속으로 울분을 눌렀다.
“천사는 교황청에 봉인 된 무언가를 지키기 위한 존재입니다. 그리고 그 무언가는 사도. 즉, 림이라는 조직이 노리고 있는 존재이죠. 지난 날, 비올레 양은 운페이 경과 함께 이들을 막는데 힘을 보탠 적이 있습니다. 그녀가 적이라면 이런 일을 했을 리 있겠습니까?”
“마왕의 속을 나보고 짐작하라 이건가?”
“그럼 운페이 경은 어떻습니까? 그도 악인 겁니까? 비올레 양과 운페이 경우 부부 인 것은 여기 있는 모두가 아는 사실. 그 조차 악으로 내모는 건가요?”
“으음……”
슈레인의 기세가 줄었다.
고리타분한 성기사 양반은 양 극단 밖에는 오가지 못한다. 이를 그냥 두어 싸움이 벌어지면 남은 사람들은 모두 다 죽을 게 뻔하다. 젠킨은 절대로 그럴 생각이 없다. 성국의 의기와는 맞지 않는다 해도 말이다.
“말은 다 끝난 거냐?”
비올레가 양 손에 새카만 어둠을 뭉쳤다.
주저리주저리. 꾹 참고 들어 준 것은 정말로 운페이 때문이다. 그가 깨어나 다른 이들이 죽었다 하면 안 좋아 할 것을 알기 때문에 지금까지 힘을 사용하지 않았을 뿐이다. 하지만 이제는 더 참기 힘들다.
속이 뒤집히고 눈에 보이는 건 다 죽여 버리고 싶었다.
재생으로 단절하던 인격의 파편이 살에 박힌 가시마냥 그녀를 찌르고 있었다. 죽이고, 파괴한다. 절대적인 악으로 탄생하는 마왕의 본래 목적은 그러한 것이니까.
번쩍-!!!
하지만 그 순간, 하늘이 전부 하얗게 물들 만큼 엄청난 빛이 터져 나왔다. 이윽고 거대한 울림과 함께 뿌연 흙먼지가 몰아쳤다. 우르릉. 토사가 밀리고, 부서진 돌 파편 등이 비처럼 내렸다.
“이쪽으로!”
“교황 성하를 안전하게 모셔라!”
성력으로 벽을 만들고 요란하게 대응했다.
비올레가 눈을 찡그린 채 빛이 터진 곳을 바라봤다. 해가 뜨듯이 거대한 광구가 솟구치고 있었다.
“천사다!”
“오오! 천사께서 승리하셨다!”
사도와 싸우던 천사다.
날개를 하늘 끝까지 펼치고는 천천히 날아올라 비올레가 있는 곳으로 쏜살같이 날아왔다. 빛이 꽃가루마냥 날려서 성국 안의 사람들에게 떨어졌다. 환호하고 축복했다. 죽네 사네 도망가던 사람들이 자리에 멈춰 천사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으, 으음……”
“교황 성하!”
그 사이, 옴멜의 등에 업혀있던 교황이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눈을 깜빡이고 주위를 둘러봤다. 커다란 옴멜의 얼굴과 걱정 어린 기사들의 눈이 가장 먼저 그를 반겼다.
“옴멜 경. 이게 어찌 된 일입니까?”
“정신이 드십니까? 그 사특한 무리를 처단하고, 교황 성하를 빼내오는 길입니다.”
“사특한……사르힌을 처리했다는 말입니까?”
“그 사도라면 천사께서 친히 징벌을 했습니다. 이제 걱정 할 필요는 없습니다.”
“천사?”
그가 고개를 들어서 하늘을 봤다.
하얀 빛을 토해내는 천사가 허공을 날고 있다.
“어, 어째서 천사가!”
그가 깜짝 놀라서 벌떡 일어났다.
“왜 그러십니까?”
“하, 하나. 남은 하나의 천사는 어디에 있는 겁니까? 분명 한 쌍으로 등장 할 텐데.”
“으음. 안타깝게도 남은 천사께서는 저기 있는 마왕에게 당하고 말았습니다.”
“마왕. 오, 맙소사……”
교황이 휘청거렸다.
옴멜이 황급히 다가가 부축했다.
“아니 됩니다. 당장 싸움을 말려야 합니다.”
“무슨 말씀이신지……?”
“우리가 대적해야 할 존재는 혼돈을 따르는 자들이외다. 천사가 이리 나왔다는 말은 봉인의 마지막 방어가 움직였다는 뜻. 빛과 어둠이 이리 충돌하여, 사방이 혼돈에 휩싸인다면 결국 적을 이롭게 할 뿐입니다!”
콰르릉!!
하지만 그의 말이 떨어지는 순간 비올레의 어둠과 천사의 빛이 허공에서 충돌했다. 사물이 춤을 추고 공간이 회백색으로 물들었다. 이번에 온 천사는 사도와 싸움을 겪은 덕인지 앞선 천사보다 훨씬 강했다. 쉬이 어둠에 침식당하지 않았다.
부딪치고, 부딪히며 힘을 겨루었다.
하늘이 쪼개지고 세상이 부서지듯 울었다. 힘없는 이들은 고개를 처박고, 힘 있는 이들은 몸을 추스르며 이를 직시했다.
이 싸움의 결과가 운명을 좌우 할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교황 성하! 천사를 돌아가게 할 방법이 없습니까?”
젠킨이 기듯이 뛰어와 교황 앞에 엎드렸다.
그는 교황의 말을 듣는 순간 확신을 했다. 이 싸움은 잘못 됐다. 이렇게 싸우는 것은 결국 사도와 림에게 도움을 줄 뿐이다.
“아쉽지만……나 역시 천사의 존재는 비문으로 알았을 뿐이외다. 멈추는 법 따위는 알지 못합니다. 아아. 이를 어찌 할꼬. 이를 어떻게 해야……”
“천사가. 천사가 나오게 된 것은 교황청에 존재하는 비석을 때렸기 때문입니다. 그것에 무언가 방법이 없겠습니까?”
“봉인의 비석을 때렸다는 말입니까?”
“네. 그리하니 천사가 등장하여 적을 밀어냈습니다. 허면, 그걸 어찌 역이용 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닙니다. 아니에요. 그럴 리 없어요. 봉인의 비석은 혼탁한 자를 봉인하기 위한 것. 겨우 두드리는 것 정도로 반응하지 않습니다.”
혼돈을 봉인하기 위한 장치다.
슈레인이 아무리 세다지만 그것을 힘으로 때렸다고 작동하는 것이 가능 할 리 없다. 공격에 반발한다고 하지만 개미가 물어서 발리스타를 쏘는 건 우스운 일이니까.
“그 말씀은……?”
“어딘가……어딘가에 봉인을 풀려고 하는 자들이 있소이다. 천사가 직접 모습을 드러내려면 굉장히 가까운 곳일 터……옴멜 경! 당장 남은 병력을 추슬러서 사문으로 보내세요!”
“사문으로? 어디를 먼저 보내야 하는 겁니까?”
“슈레인 경은 북으로 올멜 경은 남으로, 한 경은 동으로. 젠킨 경은 서쪽으로 가 주십시오. 넷 중 하나에 분명 봉인을 풀려 하는 자들이 있을 겁니다. 그들을 찾으세요.”
“찾아서 어찌합니까?”
“천사가 움직였다는 건 그 만큼 큰 일. 아마도 열쇠를 찾았을 겁니다. 그렇다면……”
그가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하늘을 올려다봤다.
천사와 비올레의 싸움은 점차 치열해지고 있었다.
더 이상은 시간이 없다.
그가 결심 한 듯 굳은 목소리로 말했다.
“세레인. 그 아이를 죽이세요.”
- 작가의말
야호~개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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