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4. 부서지는 흐름
전신이 화끈화끈하다.
상처 부위가 타오르다 재생이 되어간다. 옷은 넝마가 되어 바람에 흩날렸다. 겨우 중요한 부위만 가리고 있다. 누군가 보면 뭐라고 할까? 필사의 싸움은 상상만큼 아름답지 않은 법이다.
“후우……”
숨결 속에 피 맛이 서려있다.
내장이 한 번 토막이 났으니까 어쩔 수 없다. 고통에 의식한 몇 초 정도는 날아갔었다. 이렇게 처절한 싸움은 사실 공허 이후로 처음이다.
드래곤과의 싸움도 이리 처절하지는 않았다.
상성이 너무 안 좋다. 천사의 힘은 공허. 아니, 혼돈에 반발하고 있다. 예초에 봉인을 위해 구축되었던 힘이 당연하기는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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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잊힌 옛 언어겠지.
계속 듣다보니 외울 지경이다. 발음도 어려운 것을 입 같지도 않은 부위로 잘도 뱉어내고 있다.
“읏-!”
잠시 딴생각 하는 와중에 천사가 들이닥쳤다.
청아로 검을 막고 밑둥을 백아로 받쳤다. 압력에 팔과 어깨. 머리통이 터져나갔다. 살갗이 찢어지고 한쪽 눈이 보이지 않는다. 다행히 등 뒤의 비올레는 무사하다. 그러기 위해 충격을 몸으로 받은 거지만.
“치사하다고.”
검을 밀려 올렸다.
천사의 가슴팍이 눈에 들어왔다. 밋밋하다. 성스러운 형태라고 하기도 뭐하다. 일단 생식기도 없으니까 생물의 관점에서 평가하는 게 웃기지만. 잡생각이 꽤 길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이렇게 생각을 흩어놓지 않는다면 고통에 의식이 날아가 버릴 거 같다.
검으로 가슴을 베었다.
쩍 갈라지는 가슴팍에서는 피 대신 빛이 터져 나왔다. 손등에서는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데미지를 준만큼 역으로 피해를 받고 있는 것이다. 피해를 누적해서 상대를 쓰러뜨리기에도 그 회복량이 아득하다.
“큿-!”
목 언저리로 검이 스쳐갔다.
꽤 깊게 베였다. 핏물이 아래와 위로 동시에 솟구쳤다. 숨을 쉴 수가 없다. 코로 역류하는 게 바다에 빠진 것만큼 역하다.
챙. 챙.
막고, 튕기고 몸을 뺐다.
그 사이 목은 회복되었으나, 역류한 폐 때문에 기침이 계속 나왔다. 빨간 핏물이 입을 통해서 흩어졌다. 꽤 모양새가 더럽다. 한 쪽 코를 막은 뒤에 크게 풀었다.
“흥!”
피? 피딱지? 뭐라고 부르든 뻥 뚫리니까 좀 시원하다.
‘미치겠군……’
이렇게 싸움이 어려운 것에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일단 힘이 상극이다. 천사의 힘은 공허에 반발해서 몸을 태우고 있다. 재생력을 억누르고 힘의 결집을 방해하고 있다. 같은 영통이나 드래곤과 싸울 때 보다 상태가 안 좋다.
두 번째로 드래곤과 싸울 당시 느꼈던 기묘한 고양감이 전투를 방해하고 있다. 그것은 얻어서 도착한 곳이 아니다. 멱살이 잡혀서 높은 곳에 올라간 것과 같다. 너무 광활한 곳을 보고만 말았다. 몸을 쓰고, 힘을 다루는데 자꾸만 박자가 어긋나고 있다.
‘게다가 혼경역시 시도하기 힘드니……’
힘에 반발하는 공허는 상처 입은 맹수와 같다.
이를 다뤄서 합일을 한다? 평소에도 어려운 일인데,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그러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아니, 한다 해도 오히려 역효과를 낼 확률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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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썅. 귀에 딱지가 앉겠다.”
세 갈래로 나뉘 어진 검격이 떨어졌다.
하나를 피하고 남은 둘을 검으로 흘렸다. 비전의 힘은 매우 미묘할 정도만큼 도움이 되고 있다. 여타의 힘처럼 완벽하게 제어를 하지는 못하는 촌각 정도의 틈을 벌어주기는 했다. 목이 베일 걸 깊은 상처로 막아주고, 몸통이 토막 나는 걸 내장 보는 정도로 막아준다. 아이, 참 고마워라. 눈물이 날 거 같았다.
“커헉!”
몇 번을 구른 뒤 지면을 뒤집어 일어났다.
힘을 흘렸지만 육체가 버티지 못하고 한쪽 팔이 뒤틀려 있었다. 그걸로 바닥을 짚었으니 성하기 쉽지 않다.
하지만 쉴 틈은 없다.
천사의 공격이 또 다시 날아왔다. 새하얀 광휘를 머금은 검은 어둠을 몰아 낼 여명의 빛처럼 사위를 누르며 솟구쳤다. 머리라도 조아릴 만큼 강대하다. 도도한 파도 앞에 나룻배 하나로 맞서는 것과 같았다.
“퉷-! 원래 나룻배 인생이라고!”
키륵. 쌍검을 교차하여 천사의 검격을 막아냈다. 허리가 뿌득 소리를 내며 휘어졌다. 척추가 몇 개 정도는 나갔을 것이다. 오른발이 부서지고 허벅지 근육이 터져서 핏물이 솟구치는 게 보였다. 자신의 몸이 박살나는 걸 인지하는 것은 꽤 고단 스러운 일이다. 머리가 윙 하고 울고, 의식이 하얗게 표백되었다.
“큿-!”
간신히 흐름에 닻을 걸었다.
“마누라……이제 좀 일어나라고. 혼자서 힘들어.”
남은 다리 하나가 후들거린다.
부서지기 시작한 척추가 차례대로 주저앉고 있다. 근육이 터진 허벅지 밖으로 하얀 뼈가 튀어나와 흉물스럽게 인사를 한다. 반갑다고 손이라도 흔들어야 할까? 멀어지는 의식에 이제는 현실을 인지하기 어렵다.
“빌어먹을……애새끼 서넛 나아서 재롱 보면서 뒈지고 싶었는데.”
콰득. 버티던 발도 결국 부서지고 말았다.
조각난 뼈가 밖으로 튀어나갔다. 두 무릎이 바닥에 닿아 천사의 거력을 지탱하고 있다. 고통? 공허가 그 동안 날뛰어 준 게 고마울 지경이다. 내성이 되지 않았다면 이미 의식이 끊어졌을 것이다.
고통스러우니 더 안 좋은 것일까?
죽으면 그럴 것이고, 죽지 않는다면 그렇지 않을 것이다.
어느 쪽일까.
펄럭.
“아……?”
잘못 보았나 싶어 눈을 깜빡였다.
한쪽은 이미 터져서 왼쪽 밖에는 없다. 방금 무언가 앞으로 스쳐 간 것 같은데 확실치가 않다. 의식이 망가져서 죽기 전의 헛것을 보는 것일지도 모르니까.
촤르륵. 잘못 본 게 아니다.
검은 밧줄 같은 것이 내려와 천사의 검을 휘감았다. 아득하던 거력이 점차 밀려나기 시작했다. 들린다? 대체 무엇이?
“남편 미안해. 너무 미안해……”
“마누라?”
“응. 응. 옆에 있어. 이제 좀 쉬어. 이 놈은 내가 처리 해 줄게.”
“흐. 이제 좀 괜찮은 거야? 갑자기 쓰러져서 걱정했다고.”
“괜찮아. 나는 완전히 괜찮아. 그러니까 남편은 쉬어.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남은 한쪽 눈도 흐릿하다.
검붉은 무언가가 앞에 우뚝 서 있다. 비올레 같기는 하다. 하지만 뭔가 모습이 조금 다르다. 머리위로 길쭉이 무언가 솟구쳐 있고, 등 뒤로는 날개 같은 게 달려있다. 공허와 싸울때 봤던 본신의 모습은 이게 아닌데.
다른 모습이 있었던 걸까?
“……”
하지만 더 버티기는 힘들다.
그래, 쉬라고 했으니까.
의식이 점점이 멀어져갔다.
***
비올레가 운페이를 조심스레 바닥으로 눕혔다.
어둠이 둥글게 말려서 그를 감쌌다. 일종의 고치. 그녀의 힘이 다하지 않는 이상 무엇도 그를 침범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천천히 몸을 돌렸다.
천사는 검은 밧줄에 묶인 채 그녀를 쏘아보고 있었다. 권능으로 엮인 힘은 상극임을 무시한 채 위력을 발휘했다. 아니, 어쩌면 당연했다. 상극이라 하여 한쪽이 한쪽에만 영향을 주는 건 아니다. 물이 불을 끄나, 불에 물이 증발 할 수 있는 것과도 같다. 결과는 결국 힘에 달린 것.
지금 비올레의 힘은 천사를 압도하고 있었다.
“내가 멍청해서 남편이 다쳤어. 하지만 그걸로 자책하면 남편이 또 힘들어 할 거야. 그러니까 너한테 화풀이 하는 게 맞아.”
그녀가 등 뒤에 자리한 날개가 크게 펼쳤다.
밤을 잘라 와서 달아 놓은 것과 같다. 새카만 장막이 하늘을 가리듯 펼쳐졌다. 천사의 빛을 잡아먹고 새벽을 눌러 밤을 당겨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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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둥거려도 소용없어. 조각에 불과한 네가 나를 이겨 낼 수는 없는 거니까.”
담담하게 말 한 그녀가 허공으로 몸을 날렸다.
손과 발. 전신을 타고 새카만 어둠이 휘말렸다. 머리에 자리한 두 개의 뿔 끝에는 보기도 두려울 정도의 어둠이 자리해 있었다. 그것은 무저갱의 입구이며, 끝나지 않는 밤의 도래와 같았다.
누구도 그것을 목도한 채 제정신을 유지 할 수는 없어 보였다.
“남편이 아프니까. 너도 아파야겠지.”
비올레가 두 손을 들어올렸다.
검은 어둠이 춤추어, 손끝을 타고 흘렀다. 이는 천사의 두 날개를 잡았고 양쪽으로 잡아당겼다.
- !!!
비명? 무언가 말로 표현하기 힘든 고동이 터져 나왔다.
천사가 몸을 버둥거렸다. 하지만 몸을 감싼 어둠의 밧줄은 비올레의 말 대로 끊어지지 않았다. 잘린 날개의 단면에서 새하얀 빛이 흘러나왔다. 사람의 피와 같이. 하지만 운페이가 몇 번이고 베었을 때와는 달리 전혀 회복되지 않았다.
“빛을 어둠이 잠식하는 거야. 네 하찮은 빛이 남편을 힘들게 했으니까. 그따위 것은 사라지는 게 당연하잖아.”
단면을 타고 어둠이 번져갔다.
천사의 버둥거림이 더 커졌다. 손과 발에 금이 가고 어둠으로 묶어낸 단면에서 괴상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비명. 그것도 하나가 아닌 여럿이 부르짖는 비명과 같았다. 괴롭고 원통해서 듣는 이의 정신을 앗아 갈 것만 같은 소리였다.
“왜 우는 거지? 어차피 내게 바란 건 이거였잖아. 완벽한 어둠. 결과를 확인하는 것이 즐겁지 않아?”
천사의 절반이 어둠으로 물들어갔다.
삐걱거리던 발은 무너지고, 찬란한 빛을 담고 있던 두 눈은 까맣게 물들어 검은 눈물을 토해냈다. 그토록 강대하고, 그토록 찬란하던 힘은 비올레의 어둠에 저항하지 못했다.
“하아. 짜증나. 나는 왜 그때 그런 약속을 해서는.”
그녀가 손을 움켜쥐었다.
천사의 몸이 어둠에 짓눌려서 오그라들었다. 팔과 다리가 잘게 쪼개지고 희미하게 새어나오는 빛마저 어둠에 집어 삼켜졌다.
팡.
완벽한 소멸.
신의 대행자라 불리는 천사의 최후 치고는 너무나 허무한 것이었다. 비올레가 잠시 그곳을 보다 고개를 돌렸다.
검게 말린 고치. 운페이가 담겨있다. 손을 뻗어 그 위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자괴감이 몰아쳐서 눈물이 나올 거 같았다. 입술을 깨물어 감정을 추슬렀다.
“미안, 남편. 많이 아팠지?”
조금 더 빨리 깨어났다면.
조금 더 일찍 과거의 일을 기억했다면.
후회가 계속 가슴속을 맴돌았다.
“아, 악마!?”
그리고 그때.
그녀의 심기를 거스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 작가의말
일이 바빠서 이 이상 쓰지를 못했슴돵.
고로 프리!
* 비올레에게는 아직 숨겨진 비밀이 있습니다. 어째서 그녀만이 재생을 통해서 새로운 인격으로 태어나는 것일까요?
* 새 글 연재중입니다. 심심하면 놀러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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