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3. 누구시더라?
마병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사용자의 힘과 민첩성을 올려주는 형태. 운페이가 지닌 것처럼 일차적 파괴 현상을 불러오는 형태. 또는, 지속적으로 상대의 능력을 갉아먹는 형태. 주조시 사용한 방법에 따라 힘의 발현방법이 다르고, 위력도 천차만별의 차이를 드러낸다.
하나같이 인간의 나약함을 보완하기 위한 수단.
강력한 위력으로 적을 분쇄하고, 인간의 안전을 지키는 힘이다.
하지만 이런 마병들 사이에서도 금지되는 물건이 존재한다.
위력이 너무 강하거나, 사용 방법이 악독하여, 오용의 위험이 있다고 판단한 것들. 지금 트라가 들고 있는 물건도 그런 것들 중 하나였다. 성력에 반발하지 않으며, 검을 발동하는 것만으로 사용자를 제외한 주변 인물들의 생명력을 앗아가는 마병.
“마병이군.”
“크크크. 네가 자초한 일이다. 죽음으로 갚아라.”
트라의 눈에서 악기가 넘실거렸다.
확실한 살의. 운페이가 여유롭던 표정을 지웠다. 살의에 반응하는 것은 본능과 같다. 상대가 진심으로 죽이고자 나왔다면, 그에 응해주는 게 당연하다.
슥. 운페이가 허리를 낮췄다.
검은 가슴과 명치 중간 즘 두고, 손바닥을 위로해서 검을 비스듬히 쥐었다. 굉장히 기묘한 자세였다.
“죽어-!”
트라가 쏘아지듯 움직였다.
마병이 불길한 색을 품은 채 기다린 궤적을 그렸다.
카앙. 검과 검이 충돌했다. 사선으로 베어지는 검격에 운페이가 찌르기로 응수했다. 마치 뱀처럼 휘어지며 움직이는 찌르기. 통상의 기법과는 확연히 달랐다. 저런 궤적이 가능할지 의심이 될 정도.
채챙-! 챙!
베면 찔러서 막고, 휘두르면 찔러서 걷어냈다.
모든 방어 동작을 찌르기 하나로 해 내고 있었다. 지켜보던 관중석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그들 역시 하루가 멀다 하고, 칼질을 보는 사람들. 찌르기로 그려내는 궤적에 저렇게 다양 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감탄하고 있었다.
“막기만 할 테냐!!”
“……역시 손에 익은 무기가 아니라 아직 어색하군.‘
타앙. 트라의 검이 위쪽으로 튕겨져 나갔다.
검이 충돌하는 순간, 운페이가 손목을 흔들어, 검을 진동시켰기 때문이다. 고속의 공방에서 사용했다고는 믿기지 않는 기예.
세레인과 함께, 싸움을 관람하던 제롬이 입을 떡하니 벌렸다.
“큭! 어디서 기괴한 재주만 배웠구나!”
“멍청한 놈. 이런 걸 네가 알아 볼 수나 있을 거 같냐?”
성국의 역사보다도 오래 된 무법이다.
기교라기보다는 사실 살법의 연장. 다만, 지금은 다른 생각이 있어서 그 후속 조치를 취하지 않았을 뿐이다.
“이익!”
베고, 막고, 찌르고 막고.
화려한 공방이 이어졌다. 흐름을 타기 시작한 트라의 공세는 매서웠다. 아무리 낮춰 잡는다 해도 기사는 기사. 손속이 아주 엉망은 아니었다. 날카로운 검세가 허공을 잠식하고, 빠르고 강맹한 발걸음이 그 뒤를 따랐다.
‘빌어먹을……왜 아직도 멀쩡한 거지?’
트라가 입술을 잘근 씹으며 검을 슬쩍 살폈다.
희미하게 맺혀있는 기운. 마병은 확실히 작동하고 있었다.
‘지금쯤이면 쓰러져야 정상인데?’
마병의 힘은 발동 시 시전자 주변의 생명력을 앗아가서 그것으로 내부적 타격을 하는 능력이다. 검을 부딪치고 있는 상대가 운페이이니, 그의 생명령을 빨아들이고 있어야 정상. 하지만 공방이 길게 이어지고 있음에도 그의 안색은 전혀 변함이 없었다.
“궁금한가? 내가, 왜 멀쩡한지?”
“……!”
챙. 검을 휘둘러 친 뒤, 트라가 거리를 벌렸다.
눈빛이 강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운페이의 말. 마병에 대해서 알고 있는 투였다.
“찌릿찌릿한 게 모를 수가 없더군.”
생명력이 빨리는 기분이라면 누구 보다 달통 한 게 운페이다.
달라붙은 모기마냥 빨아 재끼는 데 모를 리 없었다. 게다가 앗아간 공백으로 들어오는 기묘한 힘. 내부를 타격하기 위해서 머리를 치켜드는데, 그 꼴이 꽤나 재미있었다.
“이런 무기를 사용해도 되는 건가? 딱 봐도 질이 안 좋아 보이는데.”
“네놈이 신경 쓸 바 아니다!!”
챙! 가가가각.
달려든 트라의 검을 운페이가 정면에서 막았다.
이번에는 찌르기로 걷어내지 않았다. 면으로 면을 대, 힘겨루기로 들어간 것이다. 덕분에 두 사람의 얼굴이 바짝 붙었다.
“찔리는 게 있는 얼굴이군.”
“네놈……!”
트라가 물러나려 했다.
하지만 그가 물러나는 거리만큼, 운페이가 다가왔다. 옆으로 가거나, 역으로 밀어내려 해도 마찬가지. 어떻게 알았는지 모든 동작에 완벽하게 대응을 했다.
“간단한 기교야. 맞닿은 무기를 상대로, 상대의 움직임을 읽는 거지. 성국에서는 이런 것도 안 가르치나.”
“감히!! 또 내게 설교를 하려는 것이냐!!”
트라가 불같이 분노하며, 검을 쥔 손에 힘을 더했다.
마병은 시동어로 발동하며, 소유주의 감정에 따라 반응한다. 물론, 기본은 구동 에너지에 반응하는 것이지만, 감정의 폭발은 힘을 증폭시키는 원천이 된다.
츠츠츠. 마병 주위로 검은 기운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이제는 멀리서도 구별이 될 정도였다. ‘뭐야? 저게 무슨 일이야?’. ‘마병인가? 하지만 저런 색은……’ 등의 이야기가 관중석에서 터져 나왔다.
하지만 트라는 이 상황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어떻게 하면 눈앞에 있는 운페이를 죽일 수 있을까. 모든 정신이 온전히 그곳에만 가 있었다.
“죽어어어어!!!”
10년전의 트라우마.
이것은 비단 운페이의 것만은 아니었다. 트라 역시 10년 전 운페이를 통해 경험한 일이 트라우마로 남아 있었다.
그것은 강한 열등감.
이미 아버지인 슈레인을 통해서 가지고 있던 열등감은, 운페이라는 이방인에 의해서 증폭 된 바 있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따라잡을 수 없는 재능. 그것은 삐뚤어진 반응으로 나왔고, 지금 이 순간에 이르기까지 가슴 깊이 남아 있었던 것이다.
파츠츠츠츠!
트라가 쥔 검에서부터 검은 기웃이 치솟았다.
마병의 폭주. 소유자의 감정은 힘을 증폭시키는 원천이 되지만, 그 정도가 심해지면 힘의 제어를 상실. 능력을 폭주시키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저건!!”
“어찌 저 물건이 저기에 있는가!?”
시합을 참관하던 주교들이 마병의 정체를 알아냈다.
비슷한 형태의 무기가 많기 때문에, 별 다른 의심을 하지 않았던 이들이지만 이렇게 어둠이 치솟고 있는 판에 못 알아 볼 리 없다.
“당장 시합을 중지시켜라!”
“떼어내! 당장 저 마병을 막아!”
대기 중이던 기사들이 경기장으로 우르르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아아아!!”
파츳! 파츠츠츳!
트라의 마병에서 솟구친 어둠이 경기장으로 다가오는 이들을 모두 공격했다. 생명력을 앗아가던 그 힘의 원천이다. 기사라고 해도 성력을 다루지 못하는 이상 맨몸으로 돌진하는 건 무리. 쉬이 접근하지 못하고 주춤거렸다.
“10년……”
넘실거리는 어둠 속에서 운페이가 느리게 입을 열었다.
흉맹한 힘의 중심에 있음에도 흔들림이 없었다. 초저녁 하늘에 뜰 별 무리처럼, 서늘한 눈빛을 머금고 있었다.
“묵은 이야기는 여기에서 끝내자.”
운페이의 눈동자가 심연과 같은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사방은 이미 트라가 만들어 놓은 어둠으로 뒤덮인 상황. 누구도 그의 이런 변화를 알아채지 못했다.
키릭. 맞댄 검을 비틀었다.
거슬리는 소리에, 트라의 시선이 그곳으로 돌아갔다.
어둠 속 어둠.
트라가 만들어낸 것보다 더욱 어두운 그림자가 맞물린 곳에서 슬금슬금 기어 나왔다. 그것은 마치 뱀. 맹독이 깃든 독니를 드러내고, 혀를 날름거렸다.
“물어라.”
한 순간, 그 어둠이 확장되었다.
트라의 몸이 휘청거렸다. 목 언저리에 틀어박힌 독니. 말이 나오지 않았다, 검을 잡은 손에도 힘이 풀려갔다.
여기가 어디인지.
나는 또 누구인지.
하늘이 빙 돌았다.
쿵. 소리와 함께, 등 언저리가 욱신거렸다. 눈앞으로 푸른 하늘이 펼쳐져 있고, 귓가로 쿵쾅 거리는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나는……”
맺지 못한 말.
그것을 끝으로 트라의 의식이 날아갔다.
- 작가의말
오늘은 일이 있어서 미리미리 올려 둡니다.
재밌게 보셨다면 댓글을 남겨주세요. 작가에게 힘이 됨은 역시 댓글.
여러분 싸랑합니다. 이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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