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6. 소녀와 소녀. 그리고
아스란이 소환되어 검은 달 흡수에 나섰다.
반파되어 있던 조직을 추슬러서, 새롭게 세를 꾸려갔다. 자잘한 건달패나, 부패한 관료 등이 중간에 끼어들었지만 이미 준비를 다 해 둔 상황. 양껏 피 빨린 돌프가 꼭두각시로 움직여, 상황을 조율했다.
지역은 넓고 사람은 많다.
제대로 조직을 개편하려면 상당한 시간이 소요 될 터. 하지만 적어도 더 이상 고아원에 기부 한 돈을 움쳐가는 놈은 없을 것이다. 한 푼 두 푼 모아온 세레인의 돈이 허망하게 사라지는 일 역시.
다만, 이렇게 잘 풀리는 일 뒤에 한 가지 문제점이 남아 있었다.
“아……”
챙그랑. 세세이가 손에 쥐고 있던 포크를 떨어뜨렸다.
황급히 다시 주우려다, 접시에 담아 둔 스프를 테이블 위로 쏟았다. 울상을 짓고는 ‘아……아……’거리자, 앞치마를 하고 다가오던 나탁이 한숨을 내쉬었다. 해골 주제에.
“천천히 해. 다급하게 하지 말고.”
“네……”
금세 또 시무룩.
한 동안 잡혀 있었기 때문일까. 실수를 하면 심하게 위축되는 경향이 있다. 게다가 숲에서 생활하던 드루이기 때문에, 도구를 사용하는 것에도 익숙지 않았다. 나이프나 포크는 물론이거니와, 혼자서는 옷도 잘 입지 못했다.
“얼굴 피고. 자, 여기를 잡고……”
“남편. 그렇게 가르치면 안 늘어. 그냥 혼자 하게 두라고.”
“절절매는데, 어떻게 그래.”
“다, 그렇게 크는 거라고.”
비올레의 콧방귀에 운페이가 머리를 긁었다.
질투어린 그녀가 귀엽기도 하지만, 상대가 겨우 10살 남짓한 소녀 라서야 반응하는 것도 웃기다. 비죽거리는 그녀의 입에 스테이크를 집어넣어 주었다. 오물오물. 볼이 부푼 모양새가 귀엽다.
“그보다 우리도 집에서 일 할 사람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녀? 마굴까지 파 놨는데, 그건 좀 무리 같은데.”
“하지만 저택이 작은 것도 아니고, 나탁 혼자서 관리하기는 힘들지 않을까? 네 권속들이 잡일을 해 줄 거 같지는 않고.”
옆에서 나탁이 턱을 달그락 거리며 불만을 표했다.
혼자서도 다 할 수 있다는 뜻 같다. 하지만 해골 하나서 관리하기에는 확실히 저택이 넓다. 게다가 세세이는 여자 아이. 해골에게 맡겨 두기에는 여러모로 좋지 않다.
“그럼 어쩌게? 나탁이야, 대충 가린다고 쳐도 마굴은 계속 확장 할 텐데. 우연이라도 걸리면 곤란 한 거 아니야?”
“듣자하니, 남쪽에서 올라오는 노예들이 있다고 해. 마법으로 구속된 이들이니까, 새어나갈 염려는 없겠지.”
“노예? 신을 받드는 도시에서 그런 걸 취급한다는 거야?”
“대부분 이종족이지. 성국에서 말하는 빛은 오로지 인간에게 국한 된 거니까.”
편협한 생각이다.
대지모신의 빛은 모든 생명체에게 미치는 것. 인간의 전유물이라 생각하는 건 지극히 오만한 행동일 뿐이다.
“쯧. 남편을 제외한 인간은 다 마음에 안 들어.”
“하하.”
가볍게 웃고는, 스프와 씨름을 하는 세세이를 도왔다.
나탁이 그 사이, 새 스프를 가지고 왔다. ‘고, 고마워요.’ 뼈밖에 안 남은 해골인데도, 그녀는 무서워하는 기색이 없었다.
아마 그 보다 더 무서운 걸 봐서 그런 게 아닐까?
***
성국에 노예시장이 열리게 된 것은 90년 전, 남부 왕국 연합에서 정식으로 지원 협약을 맺고 난 다음부터다. 각 왕국의 귀족들이 몰려오고, 상단이나 길드의 움직임도 활발해졌다. 덩달아 부족한 인원을 메우기 위한 노예 역시 대거 등장하게 된 것이다.
기본적으로 성국의 이념은 인간에게 국한된다.
이종족. 특히 몬스터에 가깝다고 생각되는 존재들에게는 가혹하다 싶을 정도의 대우를 하곤 했다.
명망 높은 성기사들은 아예 노예를 취급하지 않았지만, 그 외의 부류들은 상당수를 소비했다. 특히, 경력에 새기기 위해 1~2년 정도 성국에 머무르는 남부의 어린 귀족들은 노예 부리기를 취미로 삼았다. 실전 연습을 한다며 살아있는 표적으로 삼기도 예사 일. 지금에는 그 정도로 심한 일은 사라졌지만, 노예에 대한 대우가 낮은 건 여전했다.
“아……”
“어떠냐. 밖에 나오니 좋지?”
북적거리는 상인 거리.
운페이가 세세이의 손을 잡은 채 거닐고 있다. 그녀는 기본적으로 인간과 큰 차이가 없다. 눈동자 테두리를 자세히 본다면 알 수 있겠지만, 누가 그러겠는가. 대로변을 활보해도 큰 문제가 없었다.
아니, 정확하게는 활보해야 맞는 것이다.
‘없나?’
세세이의 마을은 누군가의 습격을 받은 채 무너졌다.
그 뒤, 잡혀와 검은 달에게 붙잡혀 있던 건 아마도 유통과정. 살아남은 사람 몇을 잡아 물어 보았지만, 딱히 얻을 수 있는 정보는 없었다. 사실, 그 정보를 알고 있는 인물은 이미 운페이가 죽여 버린 후. 막연히 찾기 보다는 이렇게 돌아다니며 그녀를 알아보는 사람이 있나 살피는 중이었다.
“오와……”
세세이의 눈이 가판에서 파는 작은 꿀 사탕에 가 있다.
딱딱하게 굳어있는 꿀을 잘 녹여서 모양을 만든 뒤, 찬바람에 말리는 음식이다. 맛이 달아 아이들이 좋아하는 간식이다.
“하나 사 줄까?”
“아, 그……”
그녀가 눈을 좌우로 굴렸다.
마을을 벗어나 몇 달. 그 동안 배운 게 있다면, 하는 말을 곧이곧대로 듣지 말라는 것이었다. 인간은 굉장히 특이해서, 입 밖으로 뱉는 말과 속 뜻이 다른 경우가 허다했다.
“그렇게 눈치 보지 말라니까. 먹고 싶으면 먹어. 저기요, 꿀 사탕 두 개 주세요.”
“하하. 여동생과 나오셨나 봅니다?”
“그렇게 보이나요?”
“두 분 다 훤칠하니, 보기 좋네요.”
장사수완인 건 알지만 기분은 좋다.
운페이가 가볍게 웃으며 세세이의 머리를 토닥였다. 그녀도 보기 좋다는 말이 싫지는 않은 듯, 입을 오물거리며 웃었다.
“자, 여기 있습니다.”
맛 좋은 사탕이 두 개.
값을 치르고, 그 중 하나를 세세이에게 건넸다. 그녀가 몇 번이고 머뭇거리다, 간신히 받아들었다. 그녀의 주먹 만 한 크기. 손까지 떨어가며 노려보더니, 천천히 혀를 가져다 대었다.
“……!”
퍼뜩. 그녀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러더니, 눈을 동그랗게 뜨며 운페이를 한 번, 사탕을 한 번 번갈아 바라봤다. 문화충격. 이런 맛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람을 감출 수 없었다.
“하하. 맛있나 보네?”
할짝 할짝.
답 할 시간도 없는 모양이다. 연신 혀로 사탕을 핥아 먹었다. 녹아내린 단물이 손을 타고 옷에 떨어졌지만, 신경도 쓰지 않았다. ‘꼭 강아지 같지 않은가.’ 운페이가 속으로 그리 생각하며, 손수건을 꺼내 그녀의 옷을 닦아 주었다.
“아!”
그러다 보니 금세 다 먹었다.
나무 막대만 남은 사탕을 보며 그녀가 안타가운 탄성을 뱉었다. 그리고 슬쩍 시선이 운페이의 손에 들린 사탕으로 향했다.
“줄까?”
“머, 먹어도 돼요?”
침이 꼴딱꼴딱 넘어가는 게 안 주면 변신이라도 할 태세다.
먹으라고 건네주니, 냉큼 잡더니 또 다시 할짝거린다. 돌아가는 길에, 한 묶음이라도 사서 갈까. 운페이가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생각했다.
***
“으으음. 아무리 생각해도 불안하단 말이야.”
“로드, 제가 가 볼까요?”
“그럴래? 아, 아니다. 괜히 그랬다가 남편이 불편해 할지도 몰라.”
운페이와 비올레의 신혼 집.
번듯하게 깔아 둔 카펫 위에서 비올레가 서성이고 있다. 손톱은 입에 가 있고, 눈매는 좁아져 있다. 꽤 신경질적인 모습.
“그러면 그냥 같이 가지 그랬습니까?”
“쯧. 노예시장이라잖아. 난 그런 게 싫어.”
“아……”
젤락이 입을 닫았다.
로드. 비올레의 사정에 대해서는 첫 번째 권속인 그가 가장 많이 알고 있었다. 달그락 거리는 나탁 보다도 오랜 시일 곁에서 모셔왔기 때문.
“아아. 됐어. 어련히 돌아오겠지. 난 마굴에 가서 잠이나 잘 테니까, 무슨 일 있으면 깨워!”
비올레가 신경질적으로 외치고는 휘휘 걸어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별 거 아닌 꼬맹이와 외유를 나간 것뿐이지만, 느낌이 좋지 않았다. 운페이와 공통점이 많기 때문일까. 어려도 한참 어린 그녀가 꽤나 거슬렸다.
‘남편의 특징 때문이라도 말이지.’
톡톡. 괜히 송곳니가 가려웠다.
- 작가의말
으헉. 바쁘다.
응원 부탁해요. 라고하면 너무 속보이나요? 헷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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