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5. 빛 속에 어둠이. 어둠 속에 빛이.
사냥꾼들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은 기척을 느끼는 것이다. 사냥감이 있는 위치, 위협이 될 몬스터의 움직임. 이런 것들을 파악해서 자신의 행동을 정하게 된다. 시계가 좁고, 장애물이 많은 숲에서 사는 만큼 감각적인 부분에서 발달 할 수밖에 없다.
운페이가 붉은 숲에서 생존하며 배운 것도 바로 이런 기법이다.
움직임, 소리, 기척. 아주 작은 것들도 놓치지 않도록 감각을 날카롭게 하는 것.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그 감각을 벗어난 존재가 있었다.
‘……적?’
세상은 넓고 뛰어난 인물은 어디에나 있다. 우연히 그런 인물과 엮였다 해도, 이상하지는 않다. 기척을 벗어나 은신하고 있을 정도라면 보통은 아닐 터. 운페이가 긴장을 품으며 천천히 소리의 진원지를 향해 움직였다.
목이 잘린 채 죽어있는 이들과, 후두부를 가격당해 기절한 이들이 바닥에 지천이다. 부서진 채 구석에 놓인 테이블과, 수납장. 거미줄이 잔뜩 쳐 진 벽면. 핏물이 배여서 붉게 물들어 가는 바닥까지. 하나하나에 모두 신경을 두며 걸었다.
‘숨겨진 공간이군.’
벽에 작은 틈이 있다.
주변을 슥 둘러보다, 유독 도드라지게 튀어 나온 벽돌을 발견했다. 한 바탕 하면서, 가려 둔 선반 등이 무너진 것이다.
그그긍.
손으로 누르니 벽면이 천천히 열렸다.
‘소녀?’
사람 하나가 겨우 들어 갈 공간.
그 안에 어린 소녀 하나가 쇠사슬에 묶인 채 주저앉아 있었다. 입을 손으로 꼭 막은 채,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다 봤군.’
열린 벽면에는 작은 구멍이 하나 나 있었다.
안에서 밖을 볼 수 있는 구조. 운페이가 검은 달의 인물들을 학살하는 장면을 여과 없이 보았을 것이다.
‘이 아이가 기척을 숨겼다고?’
겨우 10살이나 겨우 넘었을 법 한 외모.
은빛 나는 머리카락이 특이하기는 하지만, 그다지 눈여겨 볼 만 한 점은 없다. 감각을 속였다고 보기에는 너무 평범하다.
“사……살려 주세요.”
“아, 음.”
느리게 나오는 목소리에, 운페이가 상념에서 깨어났다.
기척을 벗어나 있던 것은 둘째 치고, 일단은 눈앞의 소녀를 어찌 해야 할 지 결정해야 했다. 얼굴을 목격 한 이상 제거하는 것이 가장 깔끔한 처리. 하지만 어린아이에게 어찌 그럴 수 있겠는가.
“잡혀와 있던 거니?”
끄덕끄덕.
고개를 흔들 때 마다, 묶인 쇠사슬이 철컹거리며 요란한 소리를 냈다. 두 손과, 두 발. 그리고 목에까지 쇠사슬이 연결되어 있었다.
“움직이지 마라.”
쉬익-!
설풍이 유려하게 움직였다.
서걱. 두꺼운 쇠사슬이 단번에 베어졌다. 쿵쿵 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소녀가 자유롭게 된 손발을 만지며 눈을 깜빡였다.
“일어 날 수 있겠니?”
소녀가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일으켜 세웠다.
허리를 쭉 펴도 운페이의 가슴에도 닿지 않았다. 작고 마른 몸. 길게 기른 머리카락이 발치까지 닿아 있었다.
“일단은 여기서 벗어나야 하니, 나를 따라와라.”
“네……”
아주 작은 목소리.
체구도 작고, 몸도 가볍게 떨리고 있어 측은했다. 운페이가 본능적으로 손을 뻗어 소녀를 다독이려 했다.
“힉-!”
하지만 그의 손에 닿자마자, 소녀는 질겁하며 바닥으로 주저앉았다.
하얗게 질린 얼굴과, 사시나무 떨듯 떨리는 몸. 굉장한 공포를 느끼고 있었다. 손을 뻗었던 그가 머쓱한 얼굴을 하고는 거둬들였다.
‘전부 다 목격했으면 무리도 아니지.’
사람의 목을 허수아비마냥 베어냈다.
어린 소녀가 공포에 질리는 것은 당연하다.
“너를 헤치지 않을 테니, 겁먹지 마라.”
“나……아, 안 먹을 건가요?”
“약속한다.”
건물 입구 쪽에서 세튼을 먹어치운 것까지 본 모양이다.
진중하게 약속하는 운페이를 보며, 소녀가 머뭇머뭇 거리다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전히 몸을 떨고 있었지만, 조금 전처럼 경기를 일으키지는 않았다.
“그러고 보니 부를 이름도 없군. 이름이 뭐지?”
탁. 가볍게 손을 잡았다.
소녀가 동그랗고 큰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세세이. 세세이 웅그라프.”
***
“세세이. 세세이 웅그라프.”
“하……”
두 번째 권속을 소환하기 위해 애를 쓰던 비올레는 운페이가 주워(?) 온 한 소녀를 보며 말을 잇지 못했다. 은빛 머리카락을 찰랑거리며, 새카만 눈동자를 빛내는 귀여운 소녀. 하지만 운페이는 몰라도 그녀는 안다.
“드루이드잖아.”
“드루이드?”
비올레가 손으로 세세이의 턱을 잡았다.
꽤 우악스러운 동작이지만, 그녀 반항하지 않았다. 운페이의 경우가 목도한 장면에 대한 공포 때문에 몸이 굳었다면, 지금은 그저 자연스러운 모습이었다. 비올레에게 반항하면 안 된다는 본능의 속삼임. 세세이는 눈동자도 움직이지 않은 채 가만히 있었다.
“맞네. 남편, 여기 눈동자 테두리 봐봐. 희미하게 노란색을 띄지?”
“아. 정말이네.”
눈여겨보지 않으면 발견하기 힘들 정도로 희미하다.
“드루이드들의 신 프르케의 축복을 받았다는 증거야. 어린 나이에는 노란 테두리, 성년이 되면 붉은 테두리로 바뀌어. 등급이나 힘에 따라서도 형태가 바뀐다고 하는데, 그것 까지는 나도 잘 모르겠어.”
“이게 다 맞는 말이니?”
운페이가 세세이를 보며 물었다.
드루이드. 어릴 적 구전 동화로 들어 본 기억은 있지만,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이었다. 그들은 뱀파이어인 비올레 만큼이나 독특하고 희귀한 존재였으니까.
“나……도망쳤어요. 숲에서. 그러다가 잡혔어요. 엄마가 죽고, 아빠도 피 흘렸어요. 언니가 도와주려고 했지만…… 칼이……칼이……”
드득. 드득.
세세이의 몸 주변으로 희미한 빛이 감돌았다. 몸이 들썩이고, 입혀 둔 옷이 찢어 질 것처럼 팽창했다.
“진정해라.”
“아……”
하지만 비올레가 머리에 손을 대고, 말 하자 그런 기색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방금 그거 뭐야?”
“드루이드의 능력이야. 프르케의 축복을 받는 순간, 자연을 수호하는 동물 중 하나로 변신을 할 수 있지. 감정이 격해지면 본능적으로 튀어나오는 경우도 있어.”
“동물로 변신? 곰이나 늑대. 이런 거?”
“비슷하지만 약간 달라. 지금의 동물이 아니라, 아주 오래 전. 신을 수호하던 존재를 표방하는 거니까. 닮은 모습이라 해도 능력은 천차만별이야.”
그제야, 소녀에 불과한 세세이에게 그 많은 쇠사슬을 채워 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아마, 그녀를 잡아 온 인물은 그녀가 드루이드임을 알았을 것이다. 따로 방 안에 격리해둔 것이나, 쇠사슬로 묶어 둔 게 이를 증명했다.
“세세이라고 부르면 되겠지? 혹시 네 고향이 어디인지 기억하니?”
“고향……숲. 아주 큰 숲이에요.”
“다른 특색은? 주변에 산이나 호수 같은 건 없었어?”
한참을 생각하던 세세이가 고개를 흔들었다.
큰 숲. 그 단어 하나로, 지역을 찾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운페이가 안타까움에 혀를 찼다. 고향에서 밀려나, 타지에 덩그러니 놓인 기분. 누구보다 그 자신이 잘 알았다.
“남편. 어떻게 할 생각이야?”
“일단은 우리가 맡자. 이대로 내보기도 그렇고, 내 얼굴을 본 이상 남에게 맡기는 것도 못미더우니.”
“흐응. 취향인 건 아니지?”
“농담은. 내 취향은 이쪽이라고.”
툭툭. 운페이가 비올레의 엉덩이를 가볍게 쳤다.
‘흥. 흥.’ 가벼운 스킨십이 싫지는 않은지, 그녀가 코웃음을 쳤다.
“나탁에게 맡겨서, 머무르게 할 게.”
“부탁 할 게.”
운페이가 세세이 앞에 한 쪽 무릎을 꿇고 앉아 눈을 마주쳤다.
입을 꼭 다문 채, 귀만 쫑긋거리던 그녀는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자신의 생존 권. 그것을 쥐고 있는 게 누구인지를 파악한 것이다.
“앞으로 어찌 할 지 정하기 전까지는 우리와 지내자. 괜찮겠지?”
“네……괜찮아요.”
고개를 주억거릴 때마다, 은빛 물결이 출렁였다.
꼭 다문 입술과, 크게 뜨여진 눈. 손은 맞잡아, 떨리는 몸을 부여잡았다. 침착하게 답을 하지만, 두려움과 낯설음이 세세이의 몸을 가득 채우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운페이 가장 잘 알고 있는 모습이다.
10년 전의 자신. 낯선 숲에 떨어져, 사냥꾼들의 날 선 시선에 서 있던 그 자신의 모습 말이다.
“두려워하지 마. 너를 해치지 않아.”
운페이가 그녀를 당겨서 품에 안고는 토닥였다.
온기와 진심. 봄 녘의 따듯한 바람처럼 불어와 세세이의 가슴을 적셨다.
굳은 석상과 같던 그녀도, 그제야 얼굴이 조금씩 풀어졌다.
“네……”
같은 대답이지만 달랐다.
작은 미소가 입 끝에 달려 있었기 때문이다.
- 작가의말
프르케. 프르케. 유한 킴벌희.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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