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7. 명탐정 젠킨
왁슨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저런 움직임이 가능하다니. 기묘함의 극. 탄력적인 육체의 반응이나, 초절한 행동반경도 놀랍지만 그것을 아무렇지 않게 해 내는 정신이 더욱 놀랍다. 인간은 인간이 가지는 인지의 한계가 존재한다. 걷고, 달리고, 뛰고. 행동 뒤에 따라오는 반응은 상식 내에 규정되고, 보통의 경우, 그것을 파괴하기 어렵다. 하지만 눈앞의 남자는 그것을 마치 장난처럼 넘어서고 있다.
인간인가?
괴물인가?
놀란 입을 다물지 못했다.
“꼬맹이. 입 다물지 않으며 머리통을 지워버릴 줄 알아.”
“헉……!”
어느새 다가온 것일까.
바로 옆에 흑색 드레스를 입은 여성이 와 있었다. 몸이 가루가 될 정도로 지치고, 마음은 경악으로 물들어 있음에도, 한 차례 탄성을 뱉을 정도의 미모. 하늘에 뜬 달 조차 부끄러워 고개를 숙일 정도의 미인이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눈 안 깔아?”
“아, 앗! 죄송합니다!”
아름다운 용모에 비해서는 입이 거칠다.
황급히 고개를 숙인 뒤, 곁눈질로 얼굴을 살폈다. 바닥에 넘어져 있는 터라, 발목 밖에는 보이지 않았지만.
“다친 거 같은데, 일단 치료부터 해 주는 게 어때?”
“귀찮아. 어이, 일어나라고.”
팡. 비올레가 왁슨을 걷어찼다.
멍하니 있던 그가 균형을 잃고 바닥을 한 번 굴렀다. ‘가, 갑자기 무슨 짓입니까?’ 깜짝 놀라서는 벌떡 일어났다.
“봐. 멀쩡하잖아.”
“어련하겠어.”
뱀파이어는 생명을 먹고 사는 존재. 그것을 다시 돌려주는 것에도 능하다. 세레인 처럼 황천의 입구를 열어젖히는 사람을 당겨오지는 못하지만, 무너진 활력을 돌려주는 것 정도는 가능했다. 그냥 걷어 찬 건 아니었다.
“이름이 뭐지? 어째서 쫒기고 있었던 거야.”
“저, 저는 왁슨이라고 합니다. 그리고……아!!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에요! 젠킨 대장이 위험합니다!”
“젠킨? 서문 대장, 젠킨 말이냐?”
“네! 네! 지금 목숨이 위험합니다!”
다급한 외침에, 운페이가 입술을 핥았다.
젠킨. 성국에 들어와 본 사람 중 뚜렷하게 기억된 인물 중 하나다. 깐깐하고, 딱딱한 태도. 달갑지 않은 기억이기는 했지만, 평가 자체는 후하게 주고 있었다.
‘그가 여기는 왜 왔지?’
검을 맞대 본 결과, 이들은 일반적인 지역 경비대원이 아니다. 즉, 페어리를 구출 할 당시 만났던 이들과 한 패라는 뜻. 서문 경비대장인 젠킨이 이곳까지 와서 이들과 드잡이 질 할 이유를 떠올리기가 어려웠다.
“도, 도와주세요! 제발요! 젠킨 대장님이 죽을 거 같아요!”
생각의 시간을 거절로 알았을까.
왁슨이 운페이의 발을 잡고 간청했다. 함께 일 한 지는 하루밖에 안 됐지만, 자신을 살리기 위해서 목숨을 건 남자다. 무릎 꿇고 비는 것은 감내 할 수 있었다.
“일어나.”
운페이가 그의 손을 풀어 일으켜 세웠다.
꽉 잡은 손이 그냥 풀렸다. 올라가는 시선에 왁슨이 허탈하게 숨을 뱉었다.
“어느 쪽이야.”
“아!”
젠킨이 이곳에 왜 왔는지는 둘째 치고라도, 그런 인물이 이런 곳에서 비명횡사하는 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답답하고 꽉 막혀도, 저런 사람이면 괜찮지 않을까 싶은 마음. 멍 하니 있던 왁슨의 등을 두드렸다.
“이, 이쪽이에요!”
그가 한 방향으로 뛰기 시작했다.
***
“쿨럭……!”
흘러나오는 붉은 피.
장기에 손상이 갔는지 색이 탁하다. 가슴 안쪽이 비어 있는 듯 한 느낌에, 숨 쉴 때마다 피가 그르럭 거렸다.
‘죽는 건가?’
흐려지는 의식 속에서 젠킨이 생각했다.
검을 잡고, 길을 걷기를 20년. 기사단에 들어 보기도 하고, 몬스터 사냥에 뛰어 들어 보기도 했다. 스스로의 가치를 증명하고, 생을 걸 길을 발견하기 위해 살아왔다. 빙빙 돌며 낭비한 세월과, 무너진 가치도 수두룩. 하지만 그 모든 과정에 후회를 담지는 않았다. 그 역시 지나갈 일이며, 가야하는 길의 하나라 여겼으니까.
‘우습군……’
하지만 이렇게 죽는 건 생각하지 않았다.
아니, 바라지 않았다.
[자네는 너무 이상적이네. 세상은 그렇게 돌아가지 않아.]
언제고 움트라가 했던 말이다.
그의 기사단에 몸담고 있었던 시절. 기사단 내부의 병폐를 참지 못하고 뛰쳐나갔을 때. 정의라 외치는 것이 진리이며, 스스로 빛남이 위대한 가치라 여기던 그 날.
‘그래도 노력은 해보고 싶었는데.’
서문 경비대로 몸담은 것도 그 때문이다.
그나마 다른 곳의 영향력이 많이 미치지 않은 곳. 가치를 증명하여, 움트라의 말이 거짓이라 증명하고 싶었다.
바르게 사는 것으로 성국을 바로잡을 수 있다.
백이 어리석다 해도, 하나가 따라와 준다면. 언젠가는 그 길의 선두에 서 있을 테니까. 그렇게.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
“어이, 이 놈 이미 죽은 거 같은데?”
“흐음. 미약하게 숨은 붙어있군. 쓸데없이 가지고 놀지 말고 정리해. 도망간 놈 잡아오면 우리도 빨리 떠야 하니까.”
“서문대장 젠킨이라. 그 이름대로 가게 되는군.”
성국 서문이 상징하는 것은 정의.
하여, 서문 경비대장 젠킨을 일컬어 ‘정의의 수호자’라고 불렀다. 반은 경외로 반은 조롱으로.
“빛 없는 곳에서 홀로 빛난 잘못이라고.”
경비대 복장을 한 남자가 검을 들어 올렸다.
검신에 머금은 핏물이 면을 타고 흘러 바닥에 떨어졌다. 뚝뚝. 작은 소리에 젠킨의 눈이 느릿하게 들렸다. 하지만 몸을 움직일 힘은 없다. 머리위에 놓인 죽음. 그것을 직감하고 있는 것이다.
“잘 가라.”
쉬익-!
검이 큰 궤적으로 떨어졌다.
목표는 젠킨의 목. 몸조차 움직이지 못하는 그가 이를 피할 길은 없다. 주변을 정리하던 다른 경비대원들도 이 사실에 의심하지 않았다.
챙-!!
하지만. 의심의 밖. 알지 못하는 무언가는 항상 이야기에 끼어든다.
허공을 날아온 검 하나가, 경비대원의 검을 튕겨냈다. 위력이 얼마나 강맹했던지, 검을 휘두르던 경비대원은 충격에 몇 걸음이나 물러나야 했다.
“누구냐!”
늘어서 있던 이들이 검을 곧추 세우며 검이 날아온 방향을 노려봤다.
저벅저벅. 어둠이 깔린 길 한족에서 몇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여유로운 얼굴의 운페이와 귀찮은 기색이 역력한 비올레. 그리고 다급한 표정의 왁슨이었다.
“던지고 나서 돌아오는 기능이 있으면 좋을 텐데 말이야.”
“마병이 무슨 만능 인 줄 알아?”
“그래도 있으면 멋있기는 하겠다.”
대화에 긴장감이 없다.
느긋한 담소. 하지만 등장한 세 사람을 보는 경비대원들의 표정은 정 반대다. 긴장한 얼굴. 나타난 인물 중 하나인 왁슨은 조금 전에 도망갔던 사람이다. 멀쩡한 모습으로 여기에 나타났다는 건, 뒤 쫒아 갔던 무리가 모두 당했다는 얘기. 한 둘이 따라간 것도 아니니, 눈앞의 인물들이 매우 강하거나 지원군이 많다는 뜻이다.
“네놈들은 누구지?”
“그건 내가 묻고 싶은 얘기야. 너희는 뭐하는 놈들인데, 서문의 경비대장을 그 모습으로 만들어 놓은 거지?”
“……”
사실 이 이상의 대화는 무의미하다.
경비대원들의 입장에서 이 상황을 무마하기란 불가능. 목격한 이들을 모두 제거하는 길밖에 없다.
스슥. 남은 인원은 전부 열하나.
발을 끌며 운페이 등을 포위하기 시작했다. 검을 늘이고 몸을 살짝 숙였다. 피어나온 기세가 대기 중에 엉겨서 무겁게 짓누르기 시작했다.
“열하나라. 꽤 많네.”
“귀찮아.”
“비올레?”
운페이가 물음을 던지는 순간.
비올레가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동시에 등 뒤로 시뻘건 불길이 치솟아 올랐다. 캄캄한 주변을 대번에 밝혀 주었다.
“이런. 뒤로 물러나라.”
운페이가 왁슨의 손을 잡고, 뒤로 물러났다.
지금 비올레가 하려는 행동을 눈치 챈 것이다. 살려두어야 하는 목격자가 있으니, 마기를 사용하지 않는다. 이 조건을 따르며 현재의 귀찮은 상황을 단번에 종식시키려는 행동.
“마법!!”
“마법사다!”
마법에는 수많은 종류가 있고, 그 갈래만 따져도 남부 왕국의 숫자보다도 많다. 하지만 그 줄기를 되짚어 올라가다 보면 몇 가지의 큰 가지에 도달하게 된다. 그 중 하나가 현재 비올레가 사역하고 있는 힘.
아주 오래전, 인간이 헐벗었을 때의 기원.
추위에서 벗어나게 해 달라는 간절함이 빚어온 이적. 바로 불. 그것을 다루는 힘이다. 너무 순수하고, 강대한 힘이기에 인간 마법사들은 이를 수없이 많은 갈래로 쪼개었지만 비올레는 그러지 않았다.
불은 커야 제 맛!
그러했다.
“타올라라 불꽃이여.”
“막아! 캐스팅을 끊어!”
경비대원들이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비올레와 그들의 거리는 서너 걸음 정도. 숙련된 전사라면 일 초도 걸리지 않을 거리다. 마법사라는 점이 놀랍기는 하지만, 이 정도라면 마법을 발현하기 전에 처리 할 수 있다. 그들은 그렇게 생각했다.
“생략. 터져라.”
“-뭐!?”
퍼퍼퍼퍼펑!!!
그녀를 중심으로 터져 나오는 폭발.
하나의 불꽃이 사람 몸뚱이 크기로 뭉친 뒤, 폭발했다. 그리고 그 뒤, 폭발의 잔열에서 또 다른 불꽃을 태어나 같은 방식으로 터졌다. 터지고, 터지고, 터지고. 연쇄 폭발이 일대를 뒤덮였다. 피어나온 불꽃이 지면을 덥히고, 끓어 오른 대기는 후끈한 연기를 만들었다.
후두둑.
하늘에서 무언가 떨어졌다.
탄화 된 뼈. 조각나 떠올랐다가 열기에 익은 채 추락한 것이다. 살점과 피. 속에 든 내장 따위는 폭발 중심에서 생성된 고온에 단번에 증발된 후였다. 극렬한 열기. 주변에 퍼진 여파가 이것밖에 안 된다는 것이 기적이었다.
“휴. 처리 할 게 적어서 좋기는 하지만……”
운페이가 슬쩍 시선을 돌렸다.
왁슨이 멍 한 얼굴로 떨어지는 뼛조각을 응시하고 있다. 숫제 넋이 나간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젠킨과 함께 한 이 일이 첫 번째 외부 활동이다. 열 한 명의 사람이 통째로 산화하는 걸 감당하기에는 아직 경험이 너무 일천했다.
‘아니, 경험이 많아도 이건 무리인가?’
운페이가 쓰게 웃으며 왁슨의 머리를 툭툭 쳤다.
‘아……앗! 제, 젠킨 대장님!’ 멍하니 있던 그가, 화들짝 놀라며 한 쪽으로 달려갔다. 반쯤 시체의 모습으로 누워있는 젠킨. 폭발 반경에서 아슬아슬하게 벗어난 위치에 있었다.
“웬일로 잘 쓰지도 않는 마법을 썼데?”
“인간들이 가장 받아들이기 쉬운 방법이니까.”
“생각 해 준 거야?”
“아니라, 아니라 말해도, 남편을 보고 있으면 인간에게 신경 쓰는 게 보이거든. 그런 남자를 사랑하게 된 게 잘못이지 뭐.”
툭 던지듯 말 하지만, 그것이 진심이다.
운페이가 그녀의 곁으로 다가가 허리를 감쌌다. 살짝 투정하듯 몸을 움직이기는 하지만, 벗어나지는 않았다. ‘미안.’ 운페이가 속삭이듯 귓속말을 했다.
“제, 젠킨 대장님!! 정신 차리세요!!”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그 이상 분위기를 잡을 수 있겠는가.
통곡에 가까운 왁슨의 외침에, 비올레가 코웃음을 치며 운페이의 옆구리를 쳤다. 가보라는 뜻. 그가 멋쩍은 웃음을 머금은 채, 비올레의 볼에 입을 맞췄다.
“상태는?”
“수, 숨이 넘어 갈 거 같아요. 어떻게 하죠? 네?”
“흠.”
한눈에 보기에도 젠킨의 상태는 위중했다.
특히 복부를 관통당한 상처 때문에 출혈이 심했다. 이대로 둔다면 몇 분을 넘기지 못할 터. 잠시 생각하던 운페이가 느리게 입을 뗐다.
“이 정도 위중한 상처라면 그녀 밖에는 없겠지.”
“……그녀요?”
왁슨이 멍한 얼굴로 반문했다.
“성녀.”
담백하게.
쓰러진 젠킨을 들쳐 업으며 운페이가 말했다.
- 작가의말
비올레가 사용 하는 능력에 관하여.
권능 : 지위에 관한 것으로 뱀파이어의 능력 이상의 힘을 다룹니다. 주로 어둠에 속한 힘.
뱀파이어의 능력 : 그림자를 통한 이동, 흡혈로 인한 체력 재생, 권속의 보유 등. 뱀파이어라는 종족이 가지는 능력입니다.
마법 : 오래 산 만큼 많은 것들을 익히고 있습니다. 뱀파이어에 걸맞지 않게 불 마법이 능하며 가끔은 빛 마법도 씁니다. 그러다 얼굴 타는 게 특기.
체술 : 기본 육체 능력이 매우 높아, 체술에도 능합니다. 박투로는 운페이보다 조금 처지는 수준.
* 미리보기를 올리니 선작이 줄어드네요. 역시 아직 유료라 생각하는 걸까요? 비축분 쌓는 느낌이었는데 ^^;;
* 재밌게 보고 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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