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7. 명탐정 젠킨
경매장을 습격한 것은 생츄어리. 젠킨 등을 공격한 것은 림. 잡아온 이들에게서 얻은 정보는 운페이가 조작할 필요도 없이 적당한 것이었다. 그가 걱정하는 것은 경매장 당시에 있었던 자신의 행적. 하지만 림은 습격 자체와 페어리 공주를 빼돌린 일을 생츄어리가 한 것으로 오해하고 있었다. 게다가 중요한 내용은 쏙 빼고, 페어리만 찾아오란 명령을 받은 터라, 중간에 있던 페어리 공주 습격 건은 젠킨의 귀에 들어가지 않았다.
“성국 내에 그런 무리가 버젓이 활동하고 있었다니.”
“전 전혀 몰랐어요. 아크에서는 이에 대해서 파악하고 있을까요?”
“알아봐야지. 생각했던 것보다 사태가 심각 한 거 같다.”
덕분에 젠킨의 관심을 온전히 그곳으로 돌릴 수 있었다.
경매장에 나타난 신비인(운페이)에 대한 의구심을 모두 풀지는 않았으나, 암약하는 무리 자체를 더 큰 일로 여기기 시작한 것이다.
“그럼 운페이가 그 사람에 대해서 조사를 해 줘. 생츄어리나 림이라는 단체 모두 페어리에 대해서 쫒고 있잖아. 그 신원 미상의 남자가 페어리를 빼돌린 거라면, 그를 잡는 게 우리에게 유리한 점을 작용 할 거야.”
다만, 뜻밖의 인물이 그것에 관심을 가지게 되는 결과를 낳았다.
세레인. 그녀는 이번 일에 적극 개입했다. 이미 검은 달 사건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한계를 체감한 터라, 우위를 점한 지금의 상황을 놓으려 하지 않았다. 젠킨은 아크의 수사관이나, 성녀인 그녀의 말에 껌뻑 죽었고, 운페이야 성기사이니 당연히 따라야 하는 처지였다.
두 사람을 양 손에 쥐고는 이번 일을 크게 한 바탕 휘저어 보겠다.
눈까지 부릅뜨면서 열의를 보였다.
“누구 명이라고 거절할까. 그럼, 젠킨 경은 아크를 통해서 그들의 움직임을 파악해 주세요. 저는 사라진 남자가 누구인지 알아 볼 테니.”
“부탁하겠습니다. 연락은 여기 있는 왁슨을 통해서 하도록 하죠.”
“엑!? 제가요?”
“싫은 거냐?”
“아, 아니요.”
싫을 리가.
왁슨의 얼굴이 봄 녘 햇살을 맞은 들꽃처럼 폈다. 경이로운 움직임을 보여준 운페이, 초월적인 마법을 구사한 비올레. 그리고 흠모해 마지않는 성녀까지. 이들 사이를 자신이 중재하다니. 감격에 가슴이 쿵쾅거렸다.
“허면 그리 하는 것으로 알겠습니다.”
“좋은 결과가 있기를.”
탁. 운페이가 젠킨과 손을 마주 잡았다.
그의 뜨거운 열의가 부담되지만, 이렇게 맞잡고 보니 싫지는 않다. 아니, 오히려 기분이 좋을지도. ‘설마 운페이……’ 속삭이는 비올레의 목소리만 없었어도 더 좋았을 것이다.
***
“사라졌다고?”
“네. 바로 다음날 아크의 인물들과 토란의 경비대를 찾아갔는데,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졌다고 합니다.”
“겨우 하루 차이인데. 행동이 빠르군.”
운페이가 혀를 찼다.
림의 인물들에게 얻은 정보로 토란이라는 지역 경비대 대장이 연류 되어 있음을 알았다. 하지만 젠킨이 중간이 끼어드는 바람에 시간을 미루게 됐었다. 널브러진 림의 인원들을 챙겨오고, 앞뒤로 맞춰야 하는 이야기를 꾸며야 했으니까.
“수배령은 내렸지만, 젠킨 경은 기대를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렇겠지. 이 정도의 속도로 은폐를 한다면 뿌리까지 침투해 있다는 얘기니까.”
아쉬움이 밀려왔다.
무리를 해서라도 그를 먼저 찾아갔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흔들어 생각을 잘라냈다. 지난 일을 후회해 봤자 나오는 건 없다. 그가 숨었다 한들, 성국 안. 시간문제일 뿐, 언젠가는 찾게 될 것이다.
“보고는 잘 받았다고 전해 줘.”
“알겠습니다. 아, 그리고 그 남자 건은……”
“조사 중이야. 근데, 어쩌면 이미 성을 빠져나갔는지도 모르겠어.”
“아! 그렇습니까?”
“비슷한 인상착의를 가진 사람이 사건 당일 새벽에 성문을 빠져나갔다고 하더라. 정확한 건 조사해 봐야겠지만, 늦었을 확률이 높아.”
왁슨이 아쉬운 탄성을 뱉었다.
미지의 남성(운페이)를 확보한다면, 보다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킥킥.’ 이를 보며 비올레가 입을 가리며 웃었다. 눈앞에서 거짓말 하는 운페이나, 그것에 홀랑 넘어가는 순진한 왁슨이나. 둘 다 모두 웃겼기 때문이다.
목겸담은 젤락이 성문 인근 사람들에게 최면을 걸어서 만든 거짓 기억이다. 사람은 지나간 이상에 대해서는 너무나 쉽게 혼동을 하기 때문에,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그럼, 가 봐. 보고 할 일이 있으면 또 찾아오고.”
“알겠습니다! 아, 그리고……”
척. 하고 경례를 한 왁슨이 손을 슬그머니 내리며 말을 늘였다. 운페이가 자리를 털고 일어나다 말고 고개를 돌렸다. ‘저, 그……’ 무언가 꺼내기 힘든 말인지 왁슨이 말을 쉽게 잇지 못했다.
“무슨 일이지?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확실히 해.”
운페이가 강한 어조로 요구하자, 그제야 고개를 치켜들며 용건을 꺼냈다.
“대, 대련을 한 번만 해 주시면 안 될까요?”
“대련?”
“네, 네! 그 날 싸우는 모습을 봤습니다. 너무나 아름다운……그런 움직임이 가능하다고는 상상도 해 본 적이 없습니다. 부디 그 실력을 경험 해 볼 기회를 내 주십시오!”
아 뜨거워라.
열의에 찬 얼굴에 운페이가 슬쩍 뒤로 물러났다. 비올레가 조금 더 크게 웃고 있다. 긁적긁적. 그가 머리를 긁은 뒤, 곤혹스러운 태도로 답했다.
“지금 말이냐?”
“고, 곤란하시면 거절해도 괜찮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것치고는 눈꼬리가 팍 내려갔다.
비 맞은 강아지라고 해야 할까. 쉽게 거절하기 어려운 인상이다. 운페이가 입맛을 다시다,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토란을 놓친 이상, 급할 건 없었다. 밑 작업은 다른 곳에서 진행 중이니, 대련 할 정도의 시간은 있었다.
“다치지 않는 선에서.”
“지, 진검으로 하나요?”
“날 걱정하는 건가?”
“아닙니다!”
기사의 자존심은 레이디의 아름다움과 같다.
왁슨이 황급히 답을 하고는 검을 뽑았다. 대화를 나누고 있는 장소가 저택 외부에 있는 작은 정원이라 가벼운 대련에는 문제가 없었다.
“와라.”
운페이의 말이 떨어지는 순간, 왁슨이 검을 횡으로 휘둘렀다.
그가 사용하는 검은 체형을 고려해서 만들어진 중간 길이의 롱소드였다. 길지도, 짧지도 않으며 무게다 딱 적당했다. 아직 성장이 끝나지 않은 몸이고 하니, 그것을 고려해서 제작한 것이다.
“호.”
가벼운 탄성을 뱉으며, 운페이가 설풍의 손잡이 부분을 들러 올렸다. 허리만 살짝 뒤로 뺀 자세. 탕! 소리와 함께, 왁슨이 휘두룬 검이 휘로 튕겨나갔다. ‘손잡이!?’ 검으로 막은 것도 아니고, 손잡이를 뽑아 쳐 내다니. 이 얼마나 놀라운 기예인가. 그의 얼굴이 경악과 환희로 덧씌워졌다
채챙. 챙.
몸을 돌려서 연격. 베고 찌르고, 찍어 눌렀다. 군더더기 없는 동작이었다. 16살이라는 나이를 고려해 볼 때, 믿기 어려울 정도의 실력이었다. 감탄어린 눈빛을 하며, 운페이가 이를 하나하나 걷어냈다.
‘대단하군.’
검은 고련의 길에서 완성되는 것이나, 재능을 무시 할 수 없다.
특히 십대 중반에서 후반 사이에 나타나는 변화는 실제로 그 인물이 어디까지 올라 설 수 있을지를 보여주는 척도가 되곤 한다.
지금 왁슨이 보여주는 움직임은 이미 기사에 준하고 있다. 아니, 어중간한 기사보다 낫다. 철저하게 학습 된 검격에, 순각적인 반응이 합쳐져서 놀라운 실력을 뽐내고 있다.
“보여 주십시오! 그, 움직임을!”
“감당 할 자신은 있는 거냐!?”
“죽는 한이 있어도!!”
검을 드니 이런 호인이 또 없다.
운페이가 크게 한 번 웃은 뒤 몸을 숙였다. 맹렬한 검격이 머리카락을 베고 지나갔다. 콱. 발. 정확하게는 발가락이 지면을 걷어찼다. 한 줄기 바람과 같은 움직임에, 왁슨이 기겁해서 검을 끌어 오지만, 이미 운페이의 얼굴이 그의 지척에 위치했다.
“강격의 연속은 결국 견제만 하는 것 만 못하다.”
채엥. 운페이가 다시 몸을 날려 왁슨을 뛰어 넘었다. 회수하는 검에 설풍을 일부로 부딪쳐 반발력을 얻었다. ‘익!’ 이를 악물며, 왁슨이 몸을 돌리며 검을 뿌렸다. 박수라도 쳐주고 싶은 반응. 하지만 그 위치에 운페이는 이미 없었다. 바닥에 내려서는 순간, 손으로 지면을 짚어 몸을 옆으로 굴린 후였다. 마치 고양이와 같아, 소리도, 기척도 전혀 나지 않았다.
“베는 건 한 번이면 족하다. 기회를 보고, 상대를 끌어 들여라.”
팍! 운페이가 왁슨의 발을 걸었다.
중심을 잃은 그가 바닥에 고꾸라졌다. 망설임 없이 검이 허공에서 떨어졌다. ‘으아아!’ 대경한 그가 바닥을 굴러서 궤적에서 벗어났다.
“기세가 무너진 자는 절대로 이길 수 없다.”
척. 운페이의 검이 왁슨의 목에 닿았다.
바닥으로 찍어 내린 검. 그것은 사실 검집이었다. 설풍은 운페이가 역수로 잡아 팔 뒤로 숨긴 상태였다. 보통의 상황이었다면, 왁슨 역시 이를 분간하고 후속 움직임을 취했겠지만, 당황한 나머지 그러지를 못한 것이다.
“일어나라.”
운페이가 왁슨의 손을 잡아 일으켜 주었다.
그는 아직도 어리둥절한 얼굴이다. ‘기묘함은 강직함을 이기지 못하나, 그것을 배우지 않으면 상대조차 할 수 없다.’ 짧게 충고한 운페이가 그의 등을 두드려 한껏 묻은 잡초 등을 털어 주었다.
“저도 그런 기술을 배워야 한다는 말인가요?”
“배우면 따라 할 수 있고?”
“아……”
보는 것과 행하는 것은 다르다.
운페이의 육체는 이미 그 움직임에 특화된 상태. 가르쳐 준다 하여, 이것을 행한다 자신 할 수는 없었다.
“네 검은 강직해. 그것도 아주. 이를 갈고 닦는다면, 내가 보인 움직임은 손쉽게 제압 할 수 있을 거야. 하지만 네 검에 파묻힌다면, 이를 보지도 못하겠지. 중요한 것은 의식을 열고, 네 머리에 한계를 두지 않는 거야.”
“한계를 두지 않는다……”
왁슨이 멍하니 그 말을 중얼거렸다.
한계. 검의 궤적, 몸의 쓰임, 주변 지물의 활용. 당연하다 생각했던 것들이 한 번에 와르르 무너졌다. 검이라 생각했던 것이 검이 아니게 되고, 몸을 썼다 생각했던 게 한참이나 부족해졌다.
“허. 나르마슈의 지경이라니.”
“나르마슈?”
운페이의 감탄에 비올레가 불쑥 물었다.
힘과 힘이 맞붙는 건 그녀가 좋아하는 행위. 살짝 얼굴이 상기되어 있었다.
“부르는 명칭은 다르겠지만, 일종의 깨달음 상태야. 자신의 상황을 인지하고, 그 너머의 길을 인정하는 거라고 볼 수 있지.”
“오. 그걸 거치고 나면 갑자기 강해지는 건가?”
“꼭 그렇지는 않아. 이건 단순히 길이 열리는 것에 불과하니까. 이 이후에 어떻게 수련을 하느냐에 따라 달린 거지. 하지만 이 아이의 경우는……”
운페이가 말을 아꼈다.
이렇게 어린 나이에 나르마슈에 들어선 이는 본 적이 없다. 그 자신이야 특별한 경험 탓에 이를 빠르게 겪은 것이니 비교 할 대상이 아니었다. 16세. 어긋나지 않고 성장한다면 어떤 괴물이 될 지 기대가 됐다.
‘내 입장에서는 안 좋은 건가?’
잠시 고개를 갸웃하다, 픽 하고 웃어 버렸다.
상관없다. 그가 강하건 말건. 어차피 필요한 것만 얻고, 성국을 떠나 비올레와 단 둘이 살 생각이다. 투쟁과 경쟁. 그것은 지난 세월로 충분했다.
“표정이 늙은이 같아.”
“윽. 상처 받는다고.”
비올레가 깔깔 거리며 웃었다.
- 작가의말
젠킨은 대척점은 아니나, 주인공을 견제하는 대상으로 남을 겁니다.
생각해보면, 주인공은 루팡?
* 떨어지는 선작수에 싱숭생숭 하지만 글은 꾸준히 쓰고 있습니다.
* 챕터 7은 끝. 8로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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