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5. 빛 속에 어둠이. 어둠 속에 빛이.
오래된 판자와, 습한 벽.
삭아 버린 테이블이 반쪽이 난 채 구석에서 뒹굴고, 그 위로 엉겨 붙은 거미가 얇은 다리를 다닥다닥 흔들고 있다. 오래된 창고. 이미 본래의 효용은 사라진 지 오래였지만, 한 가지의 목적으로 사용하기엔 충분한 장소였다.
“귀찮아 죽겠군. 이게 무슨 일인지……”
“그러게 말입니다. 일단 여기에 앉으시죠.”
그 안에 몇 사람이 모여 있다.
불빛조차 켜지 않은 공간이라,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한 사람이 구석에 뒹구는 의자를 들고 와, 옷으로 닦은 뒤 내밀었다. 귀찮다고 중얼거린 남성이, 혀를 몇 번 차더니 엉덩이를 붙였다. 꽤나 마음에 안 들어 하는 눈치. 주변에 선 인물들도 그를 어려워했다.
“너는 아랫사람 관리를 어떻게 하는 거냐?”
“끄응.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습니다. 어떻게 무마는 될 수 있을까요?”
“그걸 말이라고 하나? 그냥 윗선에서 이야기가 나온 게 아니라, 성녀가 직접 지시한 수사네. 대충 시늉이나 하면서 끝낼 수 있을 거 같아?”
성녀. 세레인의 이름이 나왔다.
낮은 자세의 인물이 머리를 몇 번이고 조아리더니, 두 손을 싹싹 비비며 말을 이었다.
“아이고. 어려운 건 알지만, 돌프 님이 못 하는 게 어디 있겠습니까? 이 지역에서는 돌프님이 말 그대로 왕 아니겠습니까. 네?”
“흠흠. 그렇기는 하지. 이 동네에서 내가 못 하는 건 없지.”
돌프라 불린 남성이 거드름을 피웠다.
뚫린 창틈으로 빛이 들어와, 잠시 그의 얼굴을 비쳤다. 늘어진 턱살과, 큰 코. 기름기 낀 이마가 빛을 받아 반짝였다.
“허면, 이번에도……”
“큼! 하지만 이번 일은 정도가 심하네. 나도 그냥은 어찌 해 주기 힘들어.”
“하하. 설마, 맨입으로 이리 말 하겠습니까?”
손을 비비던 남자가 뒤로 신호를 보냈다.
시립하던 인물들이 작은 목함을 들고 왔다. 손바닥 만 한 크기. 돌프가 힐끔 눈빛을 주고는 다시 시선을 돌리며 잰 채 했다.
“이게 뭔가?”
“제 성의입니다.”
목함이 살짝 열렸다.
그 안으로 짙은 묵광의 코어 메탈이 보관되어 있었다. 일전에 운페이가 가지고 왔던 정도의 크기. 목함에 전부 세 개가 들어 있으니, 금액으로 환산하면 30골드에 이르렀다.
꿀꺽. 돌프가 저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30골드. 틈틈이 뇌물을 받아 왔지만, 이렇게 큰 금액은 처음이다. 호화로운 저택과, 남부 지방의 늘씬한 노예들이 눈앞을 스쳐갔다.
“큼. 내, 이 물건 때문에 해 주는 건 아니네. 어디까지나 우리 사이의 의리 때문에 이러는 거야.”
“하하. 여부가 있겠습니까. 돌프 님과 저희는 이미 한 가족이나 다름없죠.”
“뭐, 그럼 남은 일은 내가 알아서 하지. 너는 아랫놈들이나 잘 간수하도록 해. 한 동안은 쓸데없이 움직이지 않게 하고.”
희미한 달빛 사이로, 남자가 웃었다.
30골드. 분명 큰 금액이지만, 집중적인 수사를 벗어나기 위한 금액으로는 싸다. 어차피 돈이 될 곳은 많고 뽑아 올릴 고혈은 바닥에 깔려 있으니까. 역시 이 바닥은 이렇게 굴러가야 제 맛.
그리 생각하는 순간이었다.
쾅-!
갑작스러운 소음과 함께, 창고 정문이 부서졌다.
달빛을 뒤로 하고, 한 남자가 안으로 들어왔다. 새카만 머리카락이 길게 흩날리고 있는데, 그 사이로 붉은 눈만이 선명하게 빛났다.
“누구냐!”
문가에 서 있던 남자 하나가, 팔뚝 정도 길이의 박도를 모로 휘둘렀다. 제법 빠른 판단이었다. 윙 하는 소리와 함께 박도가 허공을 가로질렀다. ‘구석에도 박혀있군.’ 문을 열고 들어온 붉은 눈의 남성이 날아오는 박도를 손끝으로 잡았다.
“자, 잡았다고?”
“어차피 썩은 놈들끼리 만나는데, 뭐 이리 은밀하냐.”
“네놈-!”
동료의 위기를 보고, 다른 남자가 또 다시 뛰어 들었다.
같은 무기, 조금 더 날렵한 궤적. ‘마음에 안 들어도 그냥 둘 걸 그랬나.’ 붉은 남성이 또 다시 중얼거리며 움직였다. 잡은 박도를 아래로 당긴 뒤, 딸려오는 남자의 뒷목을 잡아 또 다른 박도의 앞으로 내밀었다.
콰직!
둔탁한 소리와 함께, 손에 잡힌 남자의 머리가 반쪽이 났다.
힘차게 박도를 휘둘렀던 남자가 자기 손에 죽은 동료를 보며 황망한 얼굴을 했다. 좁은 창고 내로, 피 냄새가 금세 번졌다.
“남자가 말을 뱉었으니, 무를 수도 없고 말이지.”
“아까부터 혼자서 뭐라 지껄이는 거냐!”
분노한 남자가 박도를 뽑아 다시 휘둘렀다.
피와 뇌수 따위가, 그 위로 흩날렸다.
“흔한 유부남의 불평.”
달빛이 다시 한 번 창고 안으로 찾아왔다.
붉은 눈의 남자. 그의 얼굴이 환하게 드러났다. 날렵하게 떨어지는 턱 선에, 불길할 정도로 진한 붉은 눈.
운페이였다.
나직이 말 한 그가 한 걸음을 내딛었다. 횡으로 움직이던 박도가 그의 목 언저리에 당도했다. 하지만 그보다 운페이의 행동이 더 빨랐다. 전날 얻은 단검이 남자의 겨드랑이를 파고 들어간 것이다. 힘을 주어야 할 중심부가 뚫려버리자, 바로 박도가 힘을 잃었다. 챙그랑 하는 소리와 함께, 바닥을 나뒹굴었다.
“하나 둘 셋. 아직 많네.”
“무……!”
퍼석. 운페이가 좌수로 설풍을 휘둘렀다.
남자의 머리가 목 위에서 사라졌다. 텅텅. 잘려진 머리가 바닥을 튕겨 돌프의 발치로 떨어졌다.
“히이익!!”
하얗게 질린 돌프가 구석으로 도망갔다.
와르르르. 힘겹게 쌓아 둔 목재 등이 그의 손에 무너졌다. 먼지가 뿌옇게 피어올랐다. 버석버석 손으로 짚어 올라간 그가, 창문을 열려고 했다. 한 사람 간신히 들어갈 크기였지만, 그에게는 너무 작았다.
“이놈이 목표인 겁니까?”
“그래.”
“……먹고 싶지 않습니다만.”
“죽고 싶어?”
“먹겠습니다.”
그런 그의 앞으로 두 사람이 나타났다.
어디서 들어온 건지, 언제서부터 그곳에 있었는지 아무도 알지 못했다. 창문을 손에 잡고 낑낑 거리던 돌프가, 갑작스러운 소리에 깜짝 놀라다, 주르륵 미끄러져 바닥에 처박혔다.
“크, 크윽!”
뇌물을 건넸던 무리들이 뒤늦게 상황을 인지하고 달려들었다.
죽이지 않으면 죽는다. 그런 분위기를 읽은 것이다. 공포에 주저앉지 않은 건 다행이지만, 이 선택도 그다지 현명하지는 않았다.
“아, 남편의 카니발(Carnival)"
뒤늦게 나타난 여성의 목소리.
그와 동시에, 창고 안으로 붉은 섬광이 그어졌다. 가로, 세로, 대각선. 셀 수 없이 많은 선들이 공간을 점유했다. 이는 밖에서 안으로. 조밀하게 조여와, 한 점으로 귀결되었다.
파사삭. 그리고 무너지는 핏물. 조각난 사체는 가루가 되어, 핏물에 휩쓸려 바닥으로 가라앉았다. 그 어디에도 사람의 흔적은 없었다.
“하아. 역시……”
뒤늦게 나타났던 여성이 볼에 튄 혈흔을 손으로 찍어 입에 가져다 대었다. 입에서는 달뜬 숨이. 눈빛에서는 열기가 일렁였다.
“검은 달 하나. 경비대 책임자 하나.”
“수고했어.”
“그럼, 와서 입이라도 맞춰줘야 하는 거 아냐?”
“얼마든지.”
찰팍. 핏물을 밟으며 여성, 비올레가 걸어가 운페이에게 입을 맞췄다.
비릿한 피내음과, 역겨운 광경은 염두에 두지 않았다. 눈에 담긴 건 사랑하는 사람. 그 하나뿐이었다.
이를 뒤에 선 남자가 고깝게 바라봤다.
“로드.”
“하아아……젤락. 방해하지 마.”
“끄응. 저 놈이 도망치려고 하는데요?”
젤락이 손을 들어 한 방향을 가리켰다.
돌프에게 코어 메탈을 건넸던 남자. 운페이가 유일하게 살려둔 사람이다. 사람이 분해되는 광경을 봤으면서도 용케 제정신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건 안 되지. 남편이 이렇게 고생했는데.”
주우욱. 비올레의 발끝을 타고 짙은 그림자가 죽 늘어났다.
“컥!”
도망치던 남자의 발목을 잡은 채 들어 올렸다.
대롱대롱 매달린 남자가, 품에서 단검을 꺼내, 그림자에 휘둘렀다. 꽤나 강단이 있는 모습이다. 허나, 베이지 않는다. 비올레의 수법은 뱀파이어 고유의 특성에 고대의 마법을 합친 것. 주교의 성법이라도 터지지 않는 이상에야 끊어 낼 수 없다.
“이제 됐지?”
“……마음대로 하세요.”
젤락이 뚱 한 얼굴로, 돌프의 멱살을 잡은 채 사라졌다.
바닥 그림자에 먹힌 듯 한 움직임이었다.
“다 됐어.”
비올레가 두 손을 운페이의 목 뒤로 감았다.
승리에 대한 상찬은 기본. 그녀는 대인배. 아직 줄 상이 많이 남았다.
- 작가의말
급히 쓴 거라 오타가 있을 수도 있네요.
저는 또 다시 바퀴벌레와의 전쟁을 하러...크흐흑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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