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2. 아발론
넬슨에게 얻어 낸 정보 중에는 딱히 쓸 만 한 것이 없었다. 그들의 병력이 드루이드와 요새를 노리기 위해서 두 부대로 갈라져 이동했다는 것. 임무를 완수 한 뒤에는 생티넘을 통해서 본국으로 귀환 하라는 명령 정도였다.
다른 부대의 움직임이나 이 두곳을 노린 이유에 대해서는 알 수 없었다. 그 역시 명령을 받았던 것뿐이고, 이 상하복명의 관계에서는 질문은 허락되지 않는다 하였다. 거짓을 말 할 가능성은 존재했지만, 심문의 강도로 볼 때는 그리 높은 수준은 아니었다.
결국 중요한 정보는 건져내기 못했다.
단 하나. 그에게 힘을 주었다는 사도의 이름을 제외하고는 말이다.
“파란. 성기사 중 하나란 말인가.”
“몇 번 본적이 있어. 분명 호크 아이의 단장이었지.”
사도라는 건 수뇌부를 지칭하는 단어.
넬슨 역시 그 숫자가 얼마인지는 알지 못했으나, 그들이 전승지기와 더불어 모든 일을 주관하고 있음은 분명히 지적하였다. 특히 그에게 힘을 준, 파란이라는 인물은 성국의 성기사 중 한 명으로 최고 권력에 위치해 있었다.
통곡의 벽에서 조우했던 성기사들 역시 그랬지만, 이 림이라는 단체는 생각보다 깊은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생츄어리 본거지에 머무르고 있는 이들도 걱정이 되는군. 슬슬 정보도 물어왔을 테니, 아발론만 만나고 나면 다시 들려봐야겠어.”
“남편.”
“중단하자는 얘기가 아니야. 정보를 얻는다면, 상황을 보기 위해서라도 한 번은 들려야 하니까.”
생츄어리의 본거지를 떠나 온 지도 상당한 시간이 흘렀다.
그곳에 두고 온 코론이나 병사들도 걱정이 되었다. 페이가 장담하여 잘 보살펴 주고는 있을 테지만, 이종족과 인간이 잘 어울리기는 힘들다. 특히, 펜이나 다혈질인 이종족들의 움직임이 우려되었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이곳을 먼저 벗어나야겠지만.”
운페이가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 일행이 머무르는 곳은 구르단을 맞닥뜨렸던 요새 도시. 미리안의 인도에 따라 일단 따라온 상황이다. 운페이는 적당히 일이 정리되었으면 그냥 떠나고 싶었지만, 몇 가지 보고 할 것이 있다면 미리안이 만류하였다. 힘으로 돌파 할 수도 있었지만, 무작정 그러는 것도 방법이 아닌 터. 일단은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한 동안 계속 야숙만 했잖아. 이 기회에 좀 쉬는 것도 필요하다고 봐. 세세이의 일도 그렇고……”
“음. 확실히 그건 그렇지.”
세레인의 시선이 잠들어 있는 세세이에게 향했다.
그녀는 드루이드 왕을 만난 이후로 잠을 자는 시간이 많아졌다. 몇 시간을 제외하고는 계속 잠만 잤다. 무언가 이상이 생긴 게 아닐까 걱정했는데, 세세이는 넘겨받은 전승 때문에 그렇다고 답을 했다.
“그들은 대체 왜 드루이드를 습격한 걸까?”
“일전에는 페어리도 그랬지. 용의 불꽃을 보여주었을 때는 그것에도 욕심을 드러내기도 했고.”
둘의 공통점은 이종족이라는 것이다.
게다가 그 타깃을 생각 해 보면 일반적인 것이 아닌, 고위 층. 페어리 공주나 드루이드 왕과 같은 지도자 입장에 있는 존재를 노렸다는 걸 알 수 있다.
하지만 용의 불꽃에 관심을 둔 것은 조금 상황이 다르다.
그것은 특정한 힘. 그것도 현재는 존재하지 않는 과거의 흔적일 뿐이다. 잡아간다는 것과도 꽤 거리가 먼 행위.
교집합을 그리기가 힘들었다.
“어쩌면……”
“응? 비올레, 뭔가 알겠어?”
“저번에 싸운 구르단 기억하지? 그가 몸에 둘렀던 권능. 그건 현재는 존재하지 않는 잊힌 신의 힘이야.”
“아아. 확실히 권능이었지. 네 힘을 정확하게 밀고 들어왔으니까.”
보통의 힘으로 권능을 침범하는 건 매우 어렵다.
당시 구르단이 보여주었던 힘은 의심 할 여지가 없는 권능. 그것도 잊힌 신의 힘이었다.
“그 힘이 과연 어떻게 나왔을까?”
“힘……권능 말이지? 흐음. 확실히 그렇군. 권능이라는 것이 그냥 땅 파서 나오는 보물도 아닐 테니까.”
“그럼 그 권능이 페어리나 드루이드를 습격 한 일과 관련이 있다는 거야?”
“아마도 어느 정도는 관련이 있지 않을까? 무슨 수를 썼든 림. 아니, 전승지기들은 오래 된 존재에게서 힘을 받아 왔어. 권능을 정확하게 구현해 낸 거야. 특정한 존재와 권능. 아무 상관이 없다고 보는 게 오히려 이상하겠지.”
정리를 하고 나니, 확실히 수긍이 가는 말이었다.
운페이가 고개를 끄덕이며 상황을 되짚어 봤다. 림이 저지른 일은 크게 세 가지. 첫째는 성국의 점거. 통곡의 벽을 시작으로 성국 자체를 점거하여 자신들 일행을 반역자로 몰았다.
둘째는 페어리를 비롯한 특정 한 존재. 혹은 힘의 수집. 그것은 구르단의 몸에서 나타난 권능과 연결 지어 생각 할 수 있다. 전승지기들은 옛 존재를 탐구하는 이들. 어떠한 방법으로 페어리와 같은 존재들로 신의 힘을 끌어온 것이다.
세 번째는 바로 오돈 왕국을 통한 주변국의 침공.
이는 두 번째 활동과도 연결된다. 어쩌면 이들의 침공 행위는 두 번째 활동을 원활하게 하기 위한 수단일 수도 있다.
‘성국을 점거하고, 전쟁을 통해서 특이한 것들을 수집한다. 아니, 그 행동 자체를 가리기 위한 수단 중 하나 일수도 있겠지. 그렇다면 결국 주 된 목표는 성국에 존재한다는 걸까? 아직까지 성국이 침공 행위를 한다는 애기는 들어보지 못했으니까……’
지금까지의 행동에 특정한 목표가 있는 거라면, 성국의 점거 역시 무언가 의도가 있음이 분명하다. 하지만 아직까지 성국이 외부로 어떤 행위를 한다고는 알려지지 않았다. 즉, 내부적으로 무언가 목적이 있다는 말.
“세레인. 교황청 안에 남들이 모를 만 한 무언가가 있어? 외부 사람들은 알 수 없는 그런 거.”
“글쎄. 솔직히 나도 성녀의 위치에 있기는 했지만, 내부 사정에는 밝지 않았거든. 차라리 그런 거라면 슈레인 아저씨가 더 잘 알 텐데.”
“쯧. 그 고지식한 아저씨는 접어 둬. 이미 교황이 명령을 한 이상 우리에게 협력 할 가능성은 없으니까.”
이야기의 흐름이 성국으로 가고 있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정보가 부족하다. 운페이를 혀를 차며 벽에 등을 기댔다.
똑똑.
그때, 누군가 문을 두드리며 안으로 들어왔다.
“다들 자는 건 아니겠지?”
미리안이었다.
경장 차림으로 테일러와 함께 들어왔다. 손에는 작은 꾸러미와 흑색 상자가 들려 있었다. 조금은 늦은 시간. 운페이가 고개를 끄덕여 대답을 하며, 의아한 눈빛을 보냈다.
“아, 이거 좀 일이 곤란하게 됐어.”
“곤란하다니……무슨 일이죠?”
미리안이 대답 대신에 테일러의 등을 떠밀었다.
대신 답을 하라는 것. 머리를 긁적이며 앞으로 나온 그가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 약간은 얼굴이 굳어 있었다.
“위에서 너희의 신병을 구속하라는 명령이 내려왔다. 상황을 설명하고, 유동적인 처사를 요구했지만 들어 처먹지를 않았지. 기본적으로 오돈 왕국의 첩자라는 것이 가장 큰 명목. 하지만 그보다 정치적인 이유가 깔려있는 거 같다.”
“정치적 이유?”
테일러가 손가락을 뒤로 했다.
미리안이 서 있는 곳. 그녀가 딴청을 피웠다. 즉, 코쿤왕국 상부에서 이런 결정을 내린 것은 그녀 때문이라는 것. 수완가라 하여, 군을 움직인 것은 사실이나 완벽하게 코쿤 왕국내에서 인정받은 것은 아니었다.
타국 출신. 그것도 여성이 군을 이끌고 있다는 사실에 여러모로 반감을 샀던 것이다.
“너는?”
“내가 가장 크지. 침공국의 왕세자이니, 당장 목에 칼을 날리려고 할 걸?”
“그렇다면 야반도주를 하기 위해 찾아 왔다는 건가?”
늦은 밤에 찾아 온 이유가 납득이 된다.
하지만 테일러는 고개를 흔들었다.
“나는 아니야. 가는 건 너희 뿐. 필요한 물건을 대충 챙겼으니까, 지금 이 길로 나가면 큰 탈은 없을 거다.”
“……너는 어찌 할 생각이지? 네 말대로 적국의 왕세자라면 무사하기 힘들 텐데?”
“하하.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도망가 버리면 모든 혐의를 인정하게 되는 거잖아. 이럴 때는 배짱 가지고 밀어 붙여야지. 이모님도 힘을 써 준다고 하니, 승산은 낮지 않아.”
“으음.”
운페이가 침음성을 흘렸다.
테일러가 이런 선택을 한 것은 일행 때문이다. 그의 말 대로 승산이 적지 않고, 코쿤 왕국의 수뇌부를 설득 할 수 있다 하여도 적잖은 시일이 소모되는 일. 운페이 일행의 사정을 아는 이상 그렇게 잡아 둘 수 없었던 것이다.
“뭐 그렇게 됐다. 자신 있게 나섰는데, 조금은 체면이 구겨져 버렸는걸?”
미리안이 묘하게 웃으며 짐을 내밀었다.
하나에는 돈과 옷가지. 여행에 필요한 물건들이 들어가 있었다. 하지만 반대쪽 손에 있는 상자는 단지 짐을 담기 위했다고 보기에는 너무 모습이 거창했다.
“이건……?”
“뭐, 보답. 너희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살 수 있었으니까. 멍청한 놈들이 뭐라고 하든 적어도 나는 보답을 해야지.”
딸칵. 운페이가 상자를 열어 보았다.
자줏빛 천으로 감싸진 단검 한 쌍이 그 안에 담겨 있었다. 청색과 흰색 검집에 담긴 채 잠을 자듯 고요한 기운을 머금었다. 손을 대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이건 보통의 물건이 아니었다.
“예전에 알던 분에게 받은 물건이다. 듣자하니 단검을 주로 쓴다고 하던데.”
“……그건 또 용케 알고 있었군.”
“후후. 주변인을 탐구하는 건 내 특기거든.”
직접적으로 말을 한 적은 없었다.
테일러가 눈치껏 운페이를 탐구하다가 알아 낸 것이다. 실제 무력이 굉장히 낮다는 걸 생각 해 보면, 마법이라 여길 정도의 관찰력이었다.
“하나는 청아(靑牙). 다른 하나는 백아(白牙)라고 불린다. 같이해서 쌍아(雙牙)라고 하지. 동방에서 건너 온 물건으로 알고 있다. 아는 사람 중에는 단검술에 능한 이가 없어서 묵혀두고 있었지.”
“청아와 백아.”
운페이가 조심스레 들어 검을 뽑아 보았다.
청아는 날이 바로 서, 직검의 형태를 이루고 있었다. 길이는 팔뚝보다 조금 짧은 정도. 날이 파랗고 면에 긴 홈이 파져 있었다. 손을 대면 그대로 베어 질 듯 아찔한 예기를 풍겼다.
“다른 하나는……”
이번에는 백아를 뽑아 보았다.
백아는 부드럽게 휜, 곡도의 형태를 취하고 있었다. 한 면에만 날이 서 있으니 단검이 아닌 단도라 불러야 정확했다. 날이 하얗고, 길이가 청아보다 조금 길었다. 무게 중심이 상당히 아래에 쏠려 있었다. 손에 힘을 빼면 그대로 아래로 떨어져, 손목이 베일 것 같았다.
“직선과 곡선인가. 두 가지의 묘를 한 번에 담으려 했군.”
휘잉. 운페이가 가볍게 청아와 백아를 휘둘러 봤다.
청아가 점을 찌르고, 백아가 그 위를 흘렀다. 손이 좌우로 교차하고, 점이 선이 되었다. 엇갈린 공세는 허공에 기묘한 흔적을 새겼다.
“대단하군. 바로 다룰 수 있는 건가?”
“당장은……아닙니다. 꽤 길들이기 어려운 선물을 주시는군요.”
“후후. 그래야 쓰는 보람이 있지 않겠나? 어쨌든 마음에 들어 하는 거 같아서 다행이군.”
운페이가 대답 대신 검을 다시 한 바탕 휘둘렀다.
경쾌하고 빠른 직선 운동에, 부드러운 곡선 운동이 더해졌다. 마치 바람이 둥글게 뭉쳐 한 바탕 들어왔다 나가는 것과 같았다.
바로 앞에 선 미리안은 이 쌍검의 움직임이 대단히 미려하다 느꼈다. 그리고 쉽게 피하지 못할 거라는 생각 역시 했다. 완벽하게 다른 두 검의 움직임은 거리감을 빼앗고, 박자를 상실하게 한다. 아마, 이 앞에 선 자는 자신이 무엇에 당하는지도 모를 것이다.
처음 다루는 움직임이 이러 할진데, 만약 숙련이 된다면 얼마나 다변한 공세가 만들어질까. 그녀는 생각만으로 소름이 돋는 걸 느꼈다.
스릉. 운페이가 한 바탕 검을 놀린 뒤 검집에 집어넣었다.
“정말로 마음에 듭니다. 무어라 감사의 말을 전해야 할 지 모르겠군요.”
“그렇다면 됐어. 어차피 보답 차원에서 주는 거니까. 게다가 무기는 제 주인을 찾아야 빛을 보는 법이지. 내가 가지고 있어 봐야 먼지만 쌓일 뿐이야.”
“그렇다면 사양하지 않겠습니다.”
허리에 두른 요대에 청아와 백아를 교차해서 꽂았다.
마치 본래부터 그곳이 자리 인 것 같다. 운페이가 슬쩍 몸을 움직여 본 뒤 만족한 미소를 지었다.
“흠흠. 아쉽지만 갈 때가 됐다.”
살짝 들뜬 분위기를 테일러가 정리했다.
“음. 그렇지……”
“더 늦으면 요새 경비가 교대 할 거다. 이모님이 말 해 둔 사람이 아니게 되면 일이 귀찮아 져. 늦기 전에 떠나라.”
테일러가 짐을 들어 운페이에게 건넸다.
뒤에 서 있던 비올레는 말없이 세세이에게 다가가 그녀를 품에 안았다. 새근새근 잠들어 있는 그녀는 미동도 없었다.
“그 동안 고마웠다. 너희가 없었다면 여기까지 도착하지도 못했을 테니까.”
“끝까지 도와주지 못해서 미안하군.”
“부디 좋은 결과가 있기를 바라요.”
말은 없었지만 비올레 역시 테일러를 향해 눈인사를 건넸다.
그리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같이 시간을 보낸 사이. 나름대로 정이 들어 있었다.
“그럼 무운이 있기를.”
“너 역시. 행운이 함께 하기를.”
툭. 주먹을 마주 한 뒤, 운페이가 몸을 돌렸다.
테일러. 테일러 코르트난. 조금은 시끄럽고 경망스러운 남자와의 여정이 끝나는 순간이었다.
- 작가의말
휴. 남캐를 드디어 보냈군. 힘들었다.
이번 챕터는 아발론.
이야기를 관통하는 가장 큰 줄기가 나올 예정입니다.
날씨 더운데, 다들 몸 조심하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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