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8. 통곡의 벽
운페이는 문을 열고 나온 남자가 누구인지 알아보지 못했다. 하지만 어깨에 박힌 심벌에서 눈앞에 있는 자가 레드 울프의 일원임은 인지했다. 아홉 번째 기사단 레드 울프. 벽을 수호해야 하는 이들 치고는 수상쩍은 대화였다.
“잡아라!”
긴 생각을 할 시간은 없었다.
문을 박차고 나온 무리는 즉시 운페이에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그리 넓지 않은 통로. 한 줄로 죽 늘어서서 움직였다.
‘해명? 아니……’
느낌이 좋지 않다.
세레인과 함께 왔다는 말로 지금 상황을 설명하기에는 상대의 행적이 의심스럽다. 일단은 현장을 벗어나, 상황을 수습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흣-!”
가장 근접한 이의 복부를 밀었다.
가볍지만, 안에 실린 힘은 그렇지 않았다. 컥! 소리를 내며 남자가 뒤로 붕 떴다. 뒤이어 오던 이들이 마구 엉켜서 통로 구석으로 나자빠졌다.
“이런 멍청한 것들!”
명령을 내리던 남자가 대노해서는 검을 뽑아 들고 몸을 날렸다. 검사가 하지 말아야 할 동작 중 하나이지만, 그는 신경 쓰지 않았다. 벽면을 두어번 차더니, 강맹한 참격을 날렸다. 바람이 갈라지는 소리와, 피부로 와 닿는 기세가 범상치 않았다. 운페이가 쉬이 맞서지 못하고 한 걸음 물러났다.
쩌엉!!
단단한 돌로 이루어진 통로 바닥이 길게 갈라졌다. 보통의 힘이 아니다. 바로 제압하기는 힘들 것 같다 생각하고, 운페이가 몸을 빼려고 했다.
“어딜!!”
하지만 그 순간, 남자의 검이 기묘한 방향으로 움직였다.
연격이 나오리라 생각하지 못했던 운페이가 깜짝 놀라 설풍으로 이를 방어했다. 쾅! 큰 소리가 나고, 그의 몸이 벽면에 충돌했다. 손이 저리고, 어깨와 허리가 뻐근해 질 정도의 위력이었다.
‘성기사?’
아니, 그 이상이다.
성법을 사용하지 않은 상태를 기준으로 본다면, 슈레인보다 강한 것 같다. 벽에 이리 강한 기사가 있나 싶어, 운페이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도망 갈 수 없다, 쥐새끼!”
“누구보고 쥐라는 거냐!”
벽을 걷어 차 몸을 앞으로 뺐다.
요란한 소리를 내며, 뒤쪽에 있던 벽이 허물어졌다. 거검도 아니고, 롱소드보다 조금 긴 직검일 뿐이다. 그것으로 대형 병기류의 위력을 만들고 있었다. 운페이 조차도 쉽다고 할 수 없는 위력이었다.
빙글. 운페이가 몸을 돌리며 설풍을 휘둘렀다. 챙! 챙! 머리, 가슴. 연격이 충돌하고, 거리가 살짝 벌어졌다. ‘건방진……!’ 발끈한 남자가 몸을 크게 떨고는 반격을 가해왔다. 벌어진 거리만큼 검이 쭉 늘어나 운페이의 어깨를 스쳤다. 기괴하다 생각 할 정도로 운신이 자유로웠다.
‘인간이 맞는 건가?’
인간은 단련을 해도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다.
관절이나, 근육의 형태 등. 이를 보조하기 위한 사든 힘들이 존재하지만, 순수한 움직임 자체는 제한점이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눈앞의 남자는 그런 것 따위는 없다는 듯 움직이고 있다.
“죽어라!”
뒤엉켜 있던 무리 중 일부가 일어나 합류했다. 통로가 좁지만 다른 길로 연결이 되지 않은 건 아니다. 통로를 빙 돌아서 뒤쪽으로 와 공격을 했다. 운페이가 초월적인 강함을 가지고 있다지만, 무적은 아니다. 합공을 받으면 위험 할 수 있었다.
‘일단은……’
무리가 가더라도 빠져나가는 게 먼저다.
떨어지는 검날을 설풍의 검극으로 찍어 누른 뒤, 힘의 공백을 끌어와 상대를 뒤집었다. 초월력의 발현. 쾅! 소리와 함께, 하나가 무너지자, 대장으로 보이는 남자가 그 틈에 운페이를 공격했다. 등이 훤하게 드러난 상황. 하지만 그 순간 운페이는 발로 지면을 차며 다가오는 힘을 아래로 돌렸다.
콰당!!
“커억!!”
남자가 바닥을 굴렀다.
어찌 당했는지도 모를 것이다. 초월력이라는 것은 상대의 힘. 그 이상의 것을 끌어와 되돌리는 기술이다. 다만, 이것은 본디 공허를 봉인하다가 생긴 부가적인 기능. 운페이의 육체에 적합한 힘은 아니었다.
“후……”
욱신거리는 가슴을 부여잡았다.
대장과, 후위를 기습한 인물. 둘은 일단 제압했으나, 아직 적이 많다. 이곳에서 지지부진 싸우는 것은 좋지 않다 판단하고 빠지려 했다. 하지만 그 순간.
기잉!
본능적인 위기감.
등골이 오싹해 짐에 운페이가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콰르르릉!!
그의 머리 위. 일자로 벽면이 통째로 갈라졌다. 안쪽 깊숙한 곳까지 베어져, 다른 방의 내부가 훤하게 들여다보일 정도였다. 오싹한 위력. 피하지 않았다면 그대로 목이 베어졌을 것이다.
콰앙! 쾅!
하지만 공격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좌, 우, 상단. 섬뜩한 공격이 계속 이어졌다. 운페이는 그것이 검인지 도끼인지도 확인하지 못했다. 본능적으로 몸을 움직여 피할 뿐이었다. 초월력을 사용하기에도 상대가 너무 빨랐다.
“죽어라, 쥐새끼!”
“……!”
폭발적인 기세.
운페이는 그제야 상대의 힘이 어디서 기인했는지 알 수 있었다.
‘공허!’
공격을 감행하고 있는 존재는 공허에게서 힘을 받고 있다. 기세가 확충되면서 그것을 느낄 수 있었다. 손등이 빨갛게 달아오르고, 몸 안에서 봉인된 공허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공명이 시작되어, 본래 가지고 있던 성질이 나타난 것이다.
“여기 숨어 있었군!”
강맹한 공격을 정면에서 받았다.
초월력으로 돌리지 못해, 몸에 그 압박이 그대로 가해졌다. 어깨가 부서지고 허리가 토막 났다. 연결하는 근육은 하나하나 찢어지고, 신경 다발은 형태를 잃어버렸다. 삽시간에 시체만도 못 한 사람이 된 것이다.
물론, 운페이가 보통의 사람이었다면 말이다.
츳. 맞댄 검을 밀어붙였다.
부서졌던 어깨는 다시 붙고, 토막 났던 허리는 금세 아물었다. 찢어진 근육과 해체 된 신경은 언제 그랬냐는 듯 본래의 형태를 되찾았다. 트롤? 우스울 정도다. 불사에 가까운 재생능력이 몸에 가해진 압박을 풀어냈다.
“무슨! 어떻게!?”
“놀라긴 이르다!”
운페이가 이를 악물고 초월력을 끌어왔다.
지금 이 순간에도 공허의 공명은 계속되는 상황. 시간이 길어지면 좋지 않다. 만에 하나라도 봉인 해 둔 공허가 폭주하여 날뛴다면, 눈앞에 있는 남자가 문제가 아니었다.
콰쾅. 남자의 몸이 돌아가 바닥에 처박혔다. 대장격으로 보이던 그 남자다. 머리부터 떨어져 목이 기괴하게 꺾였다. 보통사람이라면 백 번 죽어 마땅한 상처. 하지만 운페이는 방심하지 않았다. 공허는 상식으로 재단 할 수 없는 존재. 자신만 봐도 불사에 가까운 재생력을 가지고 있다. 눈앞의 남자라고 그러지 않으리란 보장은 없다.
기이잉. 카니발을 사용하기 위해 힘을 모았다.
운페이의 고유 기술. 초월력으로 가능한 극점 베기를 한 번에 불러오는 것이다. 수백 번의 베기가 한 점이 집중되면 제 아무리 대단한 재생력이 있어도 한 줌의 가루가 되고 만다. 하지만 그것도 상대가 맞았을 때의 이야기다.
피잉!!
쾌속하게 날아오는 화살 한 대.
힘을 모으던 찰나라 제대로 피할 수 없었다. 간신히 몸을 비튼 운페이의 어깨를 관통하고 지나갔다.
“큭-!”
“이 이상은 곤란하지, 운페이 경.”
“누구냐?”
“윙 테일 단장, 레이나. 저쪽에 있는 머저리는 벡스타인. 성녀를 모시고 온 분께서 왜 이런 난장을 부리는 지 알 수 있을까?”
윙 테일은 열한 번째 기사단이고, 벡스타인은 아홉 번째 기사단인 레드 울프의 단장이다. 즉, 벽을 책임지는 네명의 성기사 중 두 명이 이곳에 있다는 얘기다.
“이유는 그쪽이 더 잘 알 텐데?”
사실 상황은 잘 모른다.
다만, 벡스타인이 무언가를 꾸미고 있었고, 그 힘의 배경이 공허라는 사실 뿐. 레이나라는 여성도 공허의 힘을 받은 건지, 꾸미는 일에 같이 가담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런 식으로 떠넘기는 건 싫어하는데. 뭐, 상관없지. 어차피 그쪽은 우리를 공격했고, 우리는 당연한 반응을 했을 뿐이니까. 성녀를 모시는 성기사라 해도, 벽에 한해서 재량권은 제이슨과 우리 쪽이 더 강하다고. 즉결 처분하고 보고하면 그만이지 않겠어?”
“구리다는 걸 직접 시인하는 건가?”
“저 머저리가 무슨 실수를 했겠지 뭐. 귀찮게 다 따져 묻느니, 그쪽을 제거하는 게 더 수월하지 않겠어?”
레이나는 싱그럽게 웃으며, 활대를 빙글 돌렸다.
허공에서 거짓말처럼 화살이 생겨나 시위에 걸렸다.
‘마병. 귀찮게 됐군.’
문제는 그녀만이 아니었다.
소란을 듣고 찾아온 병사들이 운페이의 주변을 빼곡이 포위한 것이다. 겉면에 새겨진 것은 붉은 눈의 늑대이거나, 한 쌍의 날개. 상황을 중재시킬 만 한 사람은 없어 보였다.
“크으. 빌어먹을 놈……”
“흥. 멍청하게 무슨 짓을 벌이고 있는 거야?”
쓰러져 있던 벡스타인까지 일어났다.
부러졌던 목은 이미 회복되어 있었다, 몸을 툭툭 털고는 비아냥거리는 레이나를 한 번 쏘아 보았다.
“저 놈. 보통이 아니다.”
“성기사잖아. 그 정도는 어린애라도 알 텐데?”
“그게 아니라고, 이 머저리 같은 년아. 그 힘을 사용했는데도 밀렸어.”
“……뭐?”
“이제 이해가 되냐? 절대로 저 놈을 벗어나게 하면 안 돼. 아마 성녀가 무언가를 눈치 채고, 행동을 취한 거겠지.”
“빌어먹을. 어쩐지. 서로 낚았다는 거야?”
둘의 대화를 들으며, 운페이는 생각했다.
무사히 빠져 나갈 수 있는 확률은? 순수 육체 능력으로는 무리. 초월력을 사용한다 해도, 성기사 둘. 그것도 공허의 힘까지 사용하는 이들을 상대로는 버겁다. 하지만 그렇다고, 공허의 힘을 쓰기에는 상태가 별로 좋지 않다. 공명이 이어져 폭주를 할 공산이 컸다.
‘앙타라……그 수밖에 없나.’
앙타라의 비전은 초월력과도 공허의 힘과도 상관이 없다. 그것은 이미 잊혀진 이들의 유산. 다만, 그 부작용이라는 것이 너무나 커서 쉽사리 사용하기는 힘들었다. 일전에 노예 경매장에서 한 번 사용하고 한 동안 골골댄 이력이 있으니까.
“아아, 모르겠다! 그냥 저 놈을 잡아서 물어보면 될 거 아냐!”
“쯧. 네년이 생각하는 게 다 그렇지.”
그 사이, 상대로 결론을 내린 듯싶다.
거리를 두고 있던 병력이 운페이 근처로 모여들었다. 하나같이 잘 단련 된 이들이다. 눈빛이 매섭고, 손에 쥔 검은 잘 제련되어 있었다.
‘돌파하고, 돌아간다. 이들이 습격을 계획한다면, 세레인이나 벽 안에 있는 다른 무리밖에는 없어. 그들에게 협조를 구하는 것이 가장 나은 길.’
그러기 위해서는 이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
운페이가 검을 바짝 당겨 쥐었다.
***
“흐음……”
“왜 그러죠?”
“뭔가 느낌이 안 좋아.”
“느낌이 안 좋다고요?”
비올레가 대답을 하지 않은 채, 방 너머를 바라봤다.
무언가 등 언저리가 시큰한 느낌. 운페이의 신상에 이상이 생긴 것 같다. 그의 강함에 대해서는 의심 할 점이 하나도 없지만, 공허가 거론 된 마당이다 보니 안심하기가 힘들었다. 예전처럼 가체를 붙여 둔 상황이면 말을 하겠지만, 지금은 그것도 아니다.
“이봐요. 무슨 일이에요?”
“시끄러워, 계집. 더 떠들면 입을 꿰매버릴 줄 알아.”
비올레가 날카롭게 반응했다.
확 하고 풍겨 나온 기세에 세레인이 입을 다물었다.
'두고 갈까?‘
확인하러 가고 싶었다.
하지만 세레인을 지켜 달라는 건 운페이의 부탁이다. 마음에 안 드는 년이지만, 남편의 부탁은 부탁. 그냥 대놓고 저버리기에는 걸리는 게 너무 많았다.
“운페이랑 관련 된 일이죠?”
“……”
“맞죠? 그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건가요?”
“닥치라고 했지!?”
“싫어요! 그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거라면 나도 알 권리가 있어요!”
이번에는 세레인도 물러나지 않았다.
비올레가 이를 바득 갈았다. 목구멍까지 올라온 살심을 간신히 참았다. 몸을 돌려서 길어지는 송곳니를 간신히 가렸다.
“당신이 아내인 건 알지만……저에게도 둘 도 없는 친구라고요. 뭔가 아는 게 있다면 알려주세요.”
“……잠깐만.”
비올레가 고개를 돌리다, 멈칫했다.
생각해보니, 굳이 이렇게 말싸움을 할 필요가 없었다.
“알고 싶다고?”
“네. 알고 싶어요.”
운페이가 어떻게 된 건지 알아본다.
세레인을 지킨다. 이 두 가지 문제는 상충하는 일이 아니었다.
“좋아, 그럼 따라오라고.”
“어디로……?”
“남편한테.”
싸움이 한창인 이 순간.
비올레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 작가의말
운페이의 힘은 대부분 인간의 신체로 쓰기 힘든 것들뿐입니다.
고련을 했다지만 10년. 그것으로는 부족한 거죠. 지금도 성장세에 있습니다.
* 마누라가 간다. 간다.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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