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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한자 님의 서재입니다.

내 마누라는 뱀파이어

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완결

마지막한자
작품등록일 :
2014.03.18 10:19
최근연재일 :
2014.09.23 17:19
연재수 :
12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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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2,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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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629,779

작성
14.05.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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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1쪽

Chapter 8. 통곡의 벽

DUMMY

새하얗게 쌓인 눈.

세상이 온통 백색으로 물들어 있다. 앙상하게 자리한 나무 위에는 빈자리를 채우듯, 눈이 소복이 쌓여 꽃처럼 피어났다. 숨 쉬는 것은 대지와, 손 흔드는 나무들 뿐. 흔한 짐승조차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 혹한의 대지. 살아있는 자들을 거부하고, 찬바람과 얼어있는 시간만을 반기는 곳.


바스락.


하지만 그런 장소 위로 도전장을 내미는 사람들이 있었다.

세레인을 중심으로 한 원정대. 벽의 사람들을 지원하기 위해 가는 것이니, 응원군이라 불러도 좋았다. 사람 크기 만 한 짐을 등에 지고는 푹푹 빠지는 눈밭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그나마 날씨가 좋아서 다행이군요. 이 상황에 눈보라라도 쳤다면, 그대로 고꾸라질 뻔했습니다.”

“어머니께서 보살펴 주시는 거죠. 다들 상태는 어떻습니까?”


세레인과 말을 주고받는 사람은 코론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운페이가 성기사의 위치는 맡기 전까지 임시로 세레인을 보호하던 제롬의 기사단, 크로우. 그곳의 부단장을 맡고 있는 남자다. 정찰대가 사용하는 팽을 주 무기로 삼고 있었다. 큰 키와 호방한 태도. 실질적으로 원정대를 지휘하는 입장이다.


“이 정도에 나가떨어질 사람은 없습니다. 아크 쪽 인물들이 걱정이기는 했지만, 성녀께서 성법으로 지원을 해 주시니, 그것도 싹 지워버렸죠. 나들이 가는 기분입니다. 하하.”

“후후. 쭉 그런 상태로 유지됐으면 좋겠네요.”


성국을 떠난 원정대는 이틀을 내리 걸었다.

운이 좋았는지 날이 쾌청했다. 차디 찬 기온과 허리 위로 쌓인 눈은 여전했지만 적어도 바람은 잠잠했다. 걷고 쉬기를 반복했다. 삭막한 환경이지만, 야영지를 설치한 뒤 세레인의 성력으로 성역을 설정해 버리니, 큰 불편함은 없었다. 코론의 말대로 나들이와 같은 분위기가 이어졌다.


“이러고 있으니까 옛날 생각난다.”

“그치? 나도 방금 그 생각하고 있었는데. 참, 그때는 활발했지. 하루도 못 견디고 나돌았으니까.”

“살기 위해 사냥했던 걸 그렇게 추억하면, 조금 그런데.”

“에헤. 그랬나? 난 그냥 신나서 돌아다닌 기억 밖에는 없는데.”


비올레가 상큼하게 웃었다.

성국을 벗어난 뒤부터 기분이 부쩍 좋아 보였다. 자유롭다 해도, 성법 안에서는 지속적인 압박을 받고 있다. 완전한 자유. 남들은 춥다고 외투를 당겨 입지만, 그녀와는 상관없는 이야기였다. 주위 시선이 없었다면 홀딱 벗은 채 돌아다니지 않았을까?


“이런 곳까지 아내를 끌고 오다니. 해도 너무하는군.”

“그냥 두게. 성녀의 오랜 친구라 하지 않나. 자네가 말한다고 들은 척이나 하겠나?”

“쯧. 차라리 페렐 경이 됐다면 인정이라도 할 텐데……”

“그렇게 말일세. 하지만 어쩌겠나. 이렇게 돌아가는 게 사실인데.”


운페이가 힐끔 뒤를 돌아봤다.

크로우 기사단원들과 아크의 사람들이 뒤섞여서 걸어오고 있다. 지난 이틀 동안 종종 튀어 나온 말이다. 정식 시합으로 선출 된 운페이지만, 그것을 완벽하게 인정하는 사람은 얼마 없다. 대다수는 세레인의 권한으로 선출 된 인물이라 보고 있다. 그와 그녀가 어릴 적 친구 사이라는 것이 이미 은연중이 퍼져 있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그와 함께 온 비올레 역시 험담의 대상이 되곤 했다. 하나가 고까운데, 그 옆에 있는 사람이라고 예뻐 보이겠는가. 백으로 인사 주제에 여자까지 끌고 왔다면 싸잡아 험담을 한 것이다. 비올레는 즉시 잡아다 사지를 분쇄하겠다고 으르렁 거렸으나, 운페이가 만류했다. 직접 시비를 건 것도 아니니, 분란을 일으키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오늘은 이곳에서 쉬었다 갑시다.”


석양이 지고 있다.

눈밭 위로 붉은 빛이 어른거렸다. 힘겹게 걷던 이들이 짐을 내려놓고 주변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눈을 밀어내고, 눅눅한 지대 위로 두꺼운 가죽을 몇 겹씩 깔았다. 다른 이들은 익숙하게 나무를 꺾어와 바닥에 차곡차곡 쌓았다.


“생각보다 여정이 수월하네.”

“그러게. 처음 가는 길이라 걱정했는데, 다행이야.”


운페이는 이런 잡일에 끼지 않았다.

그의 일은 단 하나. 성녀인 세레인을 보호하는 것이다. 찰싹 붙어있는 비올레도 일단은 마찬가지의 상태. 코론까지 포함한 이 네 명이 사령부라고 할 수 있었다.


“쯧. 저년은 또 놀고 있군.”

“남편이 백으로 들어와 손만 비비고 있는데, 어련하겠나? 딱 맞는 짝이지.”

“됐네. 더 말해서 뭐하나. 힘없는 우리가 죽일 놈이지.”


이번에는 목소리가 살짝 컸는지, 세레인과 코론도 반응했다.

세레인은 당황했다. 비올레야 험담을 듣든 말든 상관이 없지만, 운페이에게 이런 평가가 내려지는 건 달갑지 않은 일이다. 백으로 들어왔다니. 들어서도 안 되고, 들을 일도 없어야 맞는 단어다.


하지만 그런 그녀와 다르게 코론은 태평했다.

슬쩍 고개를 돌려서 목소리가 들려온 쪽을 바라보기는 했지만, 별 다른 추가 행동은 없었다. 가볍게 신경을 끊고는 다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것 봐라?’


운페이가 코끝을 찡긋했다.

자연스럽게 나오는 불평이라 생각했는데, 뭔가 냄새가 구리다. 비올레를 다독이는 척하며, 사람들의 면면을 살폈다. 지금까지 험담을 하던 사람들. 과거 보았던 얼굴까지 떠올리며 셈을 해 보니, 대충 각이 나왔다.


‘일부로 나를 자극한다는 건가?’


단순한 시비? 그럴 수도 있다. 앞서 얘기했지만, 운페이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이 많다. 이런 식으로 험담을 하면서 평판을 깎아두는 것일지도 모른다. 발끈해서 무력 충돌이 생기면, 그것을 제압해서 엉터리가 맞다는 것을 증명하려는 시도.


“저, 저기. 일단 밥부터 먹지 않겠어?”

“음.”


당황한 얼굴의 세레인이 운페이를 잡아 당겼다.

심각한 표정으로 생각을 하고 있으니, 화가 났다고 생각한 것이다. 성녀의 입장에서 험담하는 이들을 함부로 잡아다 문책하기도 어렵다. 그렇다고, 운페이가 그런 말을 듣는 것도 싫고. 이래저래 난감한 상황이었다.


‘조금 더 지켜보자고.’


운페이가 어깨를 으쓱하고는 그녀를 따라갔다.

씩씩거리던 비올레도 그가 이동하자, 쪼르륵 움직였다. 짜증보다 세레인과 단 둘이 두지 않는 게 더 중요했다.


저편에서는 큰 냄비 위로 맛 좋은 스프가 끓고 있었다.



***



3일 정도를 더 걸었다.

날씨가 점차 흐려지고 있었다. 체감 온도는 더 낮아지고, 조만간 눈보라가 불어올 거라는 예측이 나왔다. 아무리 잘 먹고, 잘 자는 여정이라 해도 슬슬 피로가 쌓이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얼굴에 그늘이 지고, 걷는 걸음이 무거워졌다.


그 사이, 운페이와 비올레에 대한 험담은 꾸준하게 나왔다.

이제는 확신 할 수 있었다. 단순 불만으로 하기에는 너무 규칙적이다. 누군가, 특정한 목적으로 이를 사주했다는 뜻. 이 정도면 많이 참았다 생각한 운페이가 행동을 취하려 했다.


그리고 그 때.

적당한 기회가 찾아왔다.


“크라울 무리다!!”

“전원 전투 준비!!”


크라울은 설원에서 서직하는 몬스터 중 상위에 위치하는 존재다. 얼핏 누오와 생김새가 닮았지만, 그리 착각한다면 목숨을 부지하기 어려울 것이다. 크라울은 검이나 화살이 박히지 않는 가죽에, 늑대 이상의 속도로 달리는 각력을 보유하고 있다. 게다가 한 번 출몰하면 최소 열 마리 이상이 떼를 지어 움직인다. 그 돌진이 지면을 울린다 해서 향간에서는 ‘천둥 소’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 정도로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존재다.


“정면에서 맞서지 마라!”

“다리를 노려! 돌진하는 놈들의 균형을 무너뜨려라!”


대응은 정석적이었다.

크라울은 돌진이 무서운 만큼, 그것을 파훼하는 방법으로 대응법이 발전해 왔다. 길고 단단한 창이나 봉으로 돌진하는 크로울의 다를 꿰어 버리는 것. 굉장히 어려운 일이지만, 일반 병사들이 사용하기에는 가장 적합한 방법이었다.


콰콰쾅!!


“크악!!”

“위험해! 손을 놔!”


하지만 알아도 당하는 경우가 있는 법이다.

창을 찔러 넣었던 아크 소속 병사 하나가, 크라울의 돌진력을 이기지 못하고 그대로 딸려갔다. 머리에 한 번 받히고, 뒤따라오는 크라울에 허리가 밟혔다. 흉악한 소리가 나고, 뒷발이 채여서는 저 멀리 날아갔다.


“비올레, 세레인을 부탁해.”

“내가 쓸어버리면 안 돼?”

“그 전에 눈도장 좀 찍어야지.”


운페이가 눈을 밟고 가볍게 몸을 띄웠다.

일차 돌진을 마친 크라울은 한 바퀴 크게 돌아서는 다시 원정대 쪽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쿠르릉. 천둥 소라는 별칭이 어울렸다.


“뭐, 뭐하는 거냐!? 정면에서 싸우는 건 미친 짓이야!”

“저런! 저러다 죽는다고!”


코론을 비롯한 병사들이 정면으로 달려드는 운페이를 보며 경악성을 뱉었다. 크라울의 돌진은 어지간한 성기사라 해도 받아 낼 성질의 것이 아니다. 특히, 성법을 연마하지 않은 성기라사라면 더더욱. 운페이가 세례를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았음은 여기 있는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후우-”


운페이가 입가로 하얀 포말이 흘러나왔다.

날숨을 통해 몸 안에 있는 힘을 활성화 시켰다. 육체적인 힘 이상의 것. 성기사들은 성법으로 이것을 다루고, 마법사는 마법이라는 이름으로 이것을 다룬다. 하지만 운페이가 다루는 힘은 이 모든 것과 상이한 궤를 이룬다.


쩌엉!!!


설풍이 달려드는 크로울과 충돌했다.

막대한 에너지가 접점을 중심으로 퍼져나갔다. 바닥에 쌓인 눈이 동심원을 그리며 퍼지고, 지면이 실금을 머금으며 갈라졌다. 소리가 먹먹하게 울리며 대기를 때렸다. 한참이나 떨어져 있던 병사들이 그 충격파에 벌렁 자빠졌다.


‘좋아.’


힘을 겨루는 것은 즐겁다.

붉은 숲. 장벽 너머에서 운페이가 살아 갈 수 있었던 원동력이다. 싸우고, 쟁취하고, 승리하는 것. 부드럽게 가라앉은 지금의 모습 뒤로는 패악한 것들이 숨겨져 있었다.


부웅. 운페이의 머리 위로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크로울의 동체가 설풍에 찍힌 채 허공에 뜬 것이다. 수십 인분의 무게. 검 하나로 지탱 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하지만 운페이는 그것을 한 손으로 해냈다.


‘초월력(超越力). 어울리는 힘이지.’


몸에 깃든 사악하고 두려운 존재에 대항하여 생긴 힘. 상리에 어긋나고, 법칙을 초월하는 존재를 붙잡아 두는 힘. 이것은 채워서 가용하는 힘이 아닌, 빈 것으로 상대를 이겨내는 묘리.


콰르르릉!!!


넘어간 크로울이 지면과 충돌하며, 굉음을 토해냈다.

단단한 거죽을 지녔다지만, 내부가 진탕하는 것을 버티지는 못했다. 눈과 귀에서 핏물이 흘러나왔다.


“떠올라라.”

“카니발.”


비올레가 뒷말을 받았다.

운페이의 몸이 지워지듯 사라졌다. 허공을 날던 눈이 한 곳으로 쓸려갔다. 넘어간 크로울 뒤로 달려오던 무리가 이 흡입력에 빨려 들어갔다. 산이라도 무너뜨릴 것 같던 크로울의 돌진력은 갑자기 나타난 이 흡입력에 저항하지 못했다.


쩌억. 쩌억.


베고, 베고, 베고. 달려들던 크로울의 돌진력은 온전히 그들을 상처 입히는 힘으로 치환되었다. 미는 것은 당겨서 베고, 누르는 것은 받아 들여 갈랐다. 십여 마리의 크라울은 산사태에 쓸려가는 돌덩이처럼 마구 엉켜서 지면으로 고꾸라졌다.


“커르르……”


피거품을 뱉으며 늘어지는 크로울.

원정대를 위협하던 크로울 무리는 단 하나도 남기지 않은 채, 무력화 되었다. 운페이가 호흡을 정리하며 설풍을 집어넣었다. 흥분으로 입 꼬리가 올라가 있었다. 손으로 얼굴을 정돈했다.


“오……오아아아아!!!”

“우와! 봐, 봤어!? 봤냐고!”

“이, 일격에 크로울을……어떻게 한 거야?”


뒤늦은 환호성이 들려왔다.

너나 할 것 없었다. 개중에는 운페이를 험담하던 사람도 다수 있었다. 하지만 이성으로 대응하기에는 지금 본 광경이 너무 충격적이었다. 혼자서 크로울 무리를 해치우다니. 그것도 일격에! 성법을 깨우친 성기사라 해도 가능할지 의심이 되는 광경이었다.


“……어떻게 저럴 수 있지?”


가장 충격을 받은 것은 코론이었다.

그는 크라울을 향해 달려드는 운페이를 보며, 그가 미쳤다고 생각했다. 검을 어느 정도 다루는 것으로는 야생의 몬스터를 상대하기 어렵다. 객기에 빠진 그가 목숨을 버린다고 여긴 것이다.


하지만 결과는 어떠한가?

그는 가늠하기도 어려운 이적으로 크로울을 해치웠다. 객기가 아닌, 자신감이었다. 지금껏 들려오던 험담을 참은 건 겁이 많아서가 아니라, 강자의 여유였던 것이다.


“비올레. 피 냄새가 나지 않게 처리 해 줘.”

“후후. 맡겨만 줘.”


운페이가 스쳐가며 말했다.

사실, 꼭 필요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이왕 보여주기로 한 거, 확실하게 기를 꺾어두는 것이 필요했다. 성국에 들어선 초기에는 상황을 판단하기 위해 실력을 조절했다면, 이제는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다.


“불. 불. 타올라라, 활활.”


장난 같은 주문.

비올레의 등 뒤로 거대한 불꽃이 솟아올랐다. 화끈한 열기에, 주변에 있던 이들이 황급히 물러났다. 그녀를 험담하던 이들은 두 눈이 주먹 만 하게 커졌다.


화륵. 화륵. 크기를 키워가는 화염은 이제 종탑 수준까지 성장했다. 진즉에 던져도 충분하지만, 비올레는 그러지 않았다. 놀람, 경악. 일그러지는 사람들의 표정이 좋았다.


“흥! 이래도 엉터리인가?”


물론, 쌓인 뒤끝도 한 몫 했다.


그녀가 태양과 같이 변한 화염구를 던졌다. 불꽃이 치솟아 겹겹이 쌓여 있던 크로울의 사체를 녹여갔다. 지글지글. 녹아내린 눈은 열기를 이기지 못하고 증발했다. 뿌연 수증기가 주변을 맴돌다 다시 얼어 눈처럼 내렸다.


녹이고, 날리고, 얼리고, 내리고.

타오른 불꽃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이 현상은 계속 이어졌다.


누구 하나 입을 열지 못하는 침묵 속에서.



***



먹먹히 내려진 침묵 위에서 운페이가 사람들을 둘러봤다.

다들 멍 한 눈으로 그와 비올레를 번갈아 바라보고 있는 중이다. 충격. 그 단어 하나로 대변되는 얼굴. 입이라도 열었다가는 큰일이 날 것 같은 분위기였다. 꼼짝도 않은 채 그의 입이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충분한가요?”

“뭐, 뭐가 말입니까?”


지나가는 말투로 운페이가 말했다.

코론이 깜짝 놀라 무심코 반문했다. 순간적으로 검을 부여잡았는데, 손바닥에 땀이 차 미끄러졌다.


“그 동안 아랫사람을 시켜서 저와 제 아내를 험담 한 일말입니다. 이제 충분히 납득 할 수 있냐고 묻는 겁니다.”

“그건……”


코론은 아니라고 대답 할 수 없었다.

땡볕아래 벌거벗고 선 것 마냥 전신이 뜨거웠다. 거짓을 말 했다가는 몸이 타버릴 것 같은 기분. 살기와는 다른 느낌이었으나, 거부 할 수 없다는 것은 매한가지였다. 운페이의 키가 조금 전보다 더 커진 것 같았다.


“지켜봤습니다. 어째서 그런 행동을 한 것인지. 얕은 질시나, 가벼운 험담은 받아 들을 수 있는 문제였습니다. 하지만 조금 지나치더군요. 얄팍한 소문이 퍼져서 어떤 식으로 번지는 지 모를 것 같지는 않은데 말이죠.”

“으음……”

“문제가 있다면 차라리 직접 오는 건 어땠습니까? 설마 그것이 무서워 이리 행동한 건가요?”

“큭. 그건 아니오!”


코론이 발끈해서 외쳤다.


“허면 무엇입니까? 거기, 그 동안 험담했던 이들. 앞으로 나와 보세요.”


운페이가 무리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몇 몇 사람이 움찔했다. 하지만 주변만 둘러 볼 뿐 나서지는 않았다. ‘안 나오면 그대로 구워버리는 수가 있는데?’ 비올레가 손 끝에 불꽃을 만들어 내자, 그제야 슬금슬금 앞으로 기어 나왔다. 전부 다섯 명. 크로우 기사단 소속 인물 셋에 아크 소속 둘이었다.


“말 해 보세요. 이렇게 사람까지 써가며, 저와 제 아내를 험담한 이유를 알고 싶군요.”


사람을 칭찬하는 것에 때와 장소가 있듯이, 잘못을 집고 벌을 주는 것에서 적당한 타이밍이 존재한다. 운페이가 사전에 험담하는 이들을 잡아다 실력을 과시하며 그들을 처벌했다면, 인정은 받을 수 있었을지 모르나, 반감은 죽일 수 없었을 것이다. 사람은 두 눈으로 보고, 직접 경험한 일임에도 믿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으니까.


하지만 지금과 같이 납득 할 수밖에는 없는 상황을 만들어서, 책임자를 만들어 대표로 문책을 가지고 가면, 아래에 있는 이들은 자신의 죄를 그곳으로 전가해 버리게 된다. 즉,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수월해지는 것이다.


“크. 다, 단지 그대가 어떤 인물인지 파악해 보고자 했을 뿐이오.”

“파악이라. 내 됨됨이를 말입니까?”

“그렇소! 몇 가지 시험에서 통과했다 한들, 그대가 자격이 있는 성기사인지 우리는 믿지 못하고 있었으니까. 이런 저런 상황에서 어떻게 판단을 하는지……”

“당신이 무슨 자격으로?”


운페이가 서늘한 목소리로 말을 잘랐다.

코론의 낯빛이 창백해졌다. 이건 앞서 있었던 위압감과는 차원이 다른 분위기였다. 천길 낭떠러지 위에서 외줄 하나에 몸을 지탱한 느낌. 숨이라도 잘못 쉬었다가는 그대로 떨어져 버릴 것 같았다.


“그대가 무슨 자격으로 나를 심사하려 하는 건지 모르겠군. 잘난 기사단의 일원이라 그런 건가?”

“아니, 나는 그게……”

“아니면 그대의 위쪽에서 이런 지시를 내렸나? 같은 성기사로 서기에는 내가 못미더워서?”


코론의 상급자라 한다면 제롬을 들 수 있다.

제 2 성기사. 운페이가 나타나기 전까지 간접적으로 경호를 맡았던 인물이다. 지금은 다시 본연의 임무로 돌아간 상황이다.


“마, 말도 안 되는 소리! 그런 행동을 하실 분들이 아니다!”

“흠.”


운페이가 끌어 올렸던 기세를 거둬들였다.

당황한 상태에서 나오는 반응을 보니 거짓은 아닌 것 같다. 사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다른 성기사들이 이 일을 의뢰했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성기사간의 알력. 없는 것이 이상한 일이니까.


“그럼 당신의 독단이라는 말이군. 어째 서지? 이런 시답지 않은 일을 벌인 이유가.”

“……제롬경이 하신 말씀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제롬경?”

“현존 성기사들 중 가장 잠재력이 높은 인물이라고 당신을 뽑았다. 향후 5년 내에 누구보다 강해질 인물이라고.”


이건 상당히 의외의 말이다.

제롬의 인상은 꽤 고지식한 것. 이제 막 성기사가 된 입장인데, 이리 후하게 평을 했다는 것이 쉽게 믿기지 않았다. 차라리 얼마 안 가 엎어질 인물이라 말 했다면 쉬이 수긍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 말 하나 때문에 나를 공격했다? 알아보기 위해서?”

“……나만 그런 것이 아니다! 다들 의심했다고! 10년 동안이나 사라졌던 사람이 갑자기 나타나서 성기사라니! 그것도 이제 겨우 스무살인데!”


발끈하는 코론을 보니, 어쩐지 화가 나기보다는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스무 살. 맞는 말이다. 평생 동안 검을 닦아도 기사위에 오르지 못하는 이도 수두룩한 세상. 그곳에서 이리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건 분명 시기와 질투를 받아도 당연한 일이다.


‘너무 복잡하게 생각했군.’


머리를 긁적였다.

생츄어리나 림 등의 세력을 만나다 보니, 괜히 사고가 복잡해진 것이다. 알고 보면, 단순한 일이었는데.


“검을 드시죠.”

“……무슨 뜻이지?”

“제롬경이 왜 그런 결론을 내렸는지 알려드리죠.”

“이미 실력을 봤다. 내게 치욕을 줄 생각이라면……”

“들기나 해요.”


파앙. 운페이가 설풍으로 대기를 때렸다.

찌르르 울었다. 코론이 인상을 구기며 검을 뽑아 들었다. 쌍수. 검극이 하늘에 뜬 달빛을 받아 반짝이고 있었다.


“나는 열 살에 붉은 숲에 떨어졌어요. 아무것도 없는 맨손으로. 몬스터가 득실거리고, 그것들을 잡아먹는 사냥꾼들이 넘쳐나는 곳이었죠. 하루하루가 지옥이었고, 살아남는 것이 최우선 과제였습니다.”


툭. 운페이가 설풍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코론의 눈동자가 살짝 커졌다.


“어찌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대들의 몇 배는 되는 농도로 살아남기 위해 버둥거렸습니다. 산 짐승을 뜯어먹고, 내장을 몸에 바른 채 몇날 며칠을 숨어 있기도 했었죠. 검? 그것은 단지 배운 기교의 연장선일 뿐입니다.”


화아악-!


거대한 기세가 운페이를 통해서 퍼져나갔다.

코론이 팽을 몸 앞으로 교차시켜 이에 저항했다. 산과 같은 느낌. 앞서 받았던 그 기세다. 항거하기 어려운 거력이 전신을 거칠게 누볐다.


“아무 노력 없이 얻은 게 아닙니다. 나이는 중요한 것이 아니죠. 그 시간을 어떻게 살았는지. 그것이 인간을 나누는 척도.”


산이 무너진다.

거대한 돌이 굴러오고, 뿌리박힌 나무가 허공으로 뒤집혀 우레와 같은 소리를 동반해서 떨어지고 있다. 아찔한 감각에 코론이 한 쪽 무릎을 꿇었다. 전신에서 땀이 줄줄 새어나와 온몸을 적시고 있었다.


“나는 강합니다.”


우르릉.

천둥소리를 들으며 코론이 뒤로 넘어갔다. 그 와중에도 검은 놓지 않았다. 두 눈은 부릅떠서 하늘을 보고, 꽉 다물린 입에서는 핏물이 베어 나왔다. 덜덜 떨리는 몸 주변으로 땀이 얼어 하얀 막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강함……”


멀어지는 의식 속에서 코론이 간신히 한 마디 말을 뱉었다.

운페이가 말하고자 한 것. 그것을 어렴풋이 느꼈다.


시기? 질투?

남는 것은 오롯한 경외 뿐이었다.


작가의말

두 편 분량이지만...그냥 하나로 올립니다.


요즘 글 진행에 대해서 생각이 많네요. 많은 응원 부탁드립니다.


꾸법(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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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 Chapter 15. 변화 +7 14.09.09 3,028 114 13쪽
113 Chapter 15. 변화 +7 14.09.07 2,960 111 14쪽
112 Chapter 15. 변화 +9 14.09.06 3,058 121 13쪽
111 Chapter 14. 부서지는 흐름 +5 14.09.04 3,247 123 12쪽
110 Chapter 14. 부서지는 흐름 +8 14.09.02 3,215 120 12쪽
109 Chapter 14. 부서지는 흐름 +7 14.08.31 3,265 108 11쪽
108 Chapter 14. 부서지는 흐름 +7 14.08.30 3,248 129 13쪽
107 Chapter 14. 부서지는 흐름 +6 14.08.28 3,123 127 11쪽
106 Chapter 14. 부서지는 흐름 +3 14.08.26 3,252 121 12쪽
105 Chapter 14. 부서지는 흐름 +8 14.08.24 3,156 111 12쪽
104 Chapter 14. 부서지는 흐름 +5 14.08.19 3,247 108 11쪽
103 Chapter 14. 부서지는 흐름 +4 14.08.23 3,179 106 12쪽
102 Chapter 14. 부서지는 흐름 +4 14.08.21 3,954 111 12쪽
101 Chapter 14. 부서지는 흐름 +8 14.08.19 3,515 118 12쪽
100 Chapter 14. 부서지는 흐름 +9 14.08.17 3,358 124 12쪽
99 Chapter 14. 부서지는 흐름 +7 14.08.16 3,399 123 13쪽
98 Chapter 14. 부서지는 흐름 +8 14.08.14 3,449 129 12쪽
97 Chapter 13. 오래 된 것. 오래 될 것. +6 14.08.12 3,630 126 11쪽
96 Chapter 13. 오래 된 것. 오래 될 것. +12 14.08.10 3,258 132 11쪽
95 Chapter 13. 오래 된 것. 오래 될 것. +5 14.08.09 3,363 123 13쪽
94 Chapter 13. 오래 된 것. 오래 될 것. +8 14.08.07 3,670 135 11쪽
93 Chapter 13. 오래 된 것. 오래 될 것. +8 14.08.05 3,051 127 12쪽
92 Chapter 13. 오래 된 것. 오래 될 것. +8 14.08.03 3,721 129 12쪽
91 Chapter 13. 오래 된 것. 오래 될 것. +7 14.08.02 3,533 136 12쪽
90 Chapter 13. 오래 된 것. 오래 될 것. +6 14.07.31 3,823 129 13쪽
89 Chapter 13. 오래 된 것. 오래 될 것. +6 14.07.29 3,901 136 12쪽
88 Chapter 13. 오래 된 것. 오래 될 것. +5 14.07.27 4,335 141 12쪽
87 Chapter 12. 아발론 +9 14.07.26 4,096 148 14쪽
86 Chapter 12. 아발론 +6 14.07.24 3,926 142 11쪽
85 Chapter 12. 아발론 +11 14.07.22 4,118 157 12쪽
84 Chapter 12. 아발론 +7 14.07.20 4,308 165 12쪽
83 Chapter 12. 아발론 +12 14.07.19 3,834 171 13쪽
82 Chapter 12. 아발론 +6 14.07.17 4,436 156 13쪽
81 Chapter 11. 잉그니트 +8 14.07.15 4,011 154 13쪽
80 Chapter 11. 잉그니트 +9 14.07.13 4,028 153 12쪽
79 Chapter 11. 잉그니트 +7 14.07.12 4,247 147 14쪽
78 Chapter 11. 잉그니트 +6 14.07.10 4,248 159 11쪽
77 Chapter 11. 잉그니트 +7 14.07.08 4,314 157 13쪽
76 Chapter 11. 잉그니트 +9 14.07.06 4,565 169 12쪽
75 Chapter 11. 잉그니트 +8 14.07.05 4,205 148 11쪽
74 Chapter 11. 잉그니트 +4 14.07.03 4,347 148 13쪽
73 Chapter 10. 구르단 +10 14.07.01 4,555 159 12쪽
72 Chapter 10. 구르단 +10 14.06.29 4,704 160 12쪽
71 Chapter 10. 구르단 +11 14.06.28 4,607 171 12쪽
70 Chapter 10. 구르단 +18 14.06.26 4,569 177 13쪽
69 Chapter 10. 구르단 +11 14.06.24 5,053 165 12쪽
68 Chapter 10. 생티넘 +6 14.06.22 5,050 180 13쪽
67 Chapter 10. 생티넘 +10 14.06.21 5,135 162 14쪽
66 Chapter 10. 생티넘 +8 14.06.19 5,258 181 15쪽
65 Chapter 10. 생티넘 +11 14.06.17 5,266 189 13쪽
64 Chapter 10. 생티넘 +6 14.06.15 5,440 174 14쪽
63 Chapter 10. 가는 날이 장날 +6 14.06.14 6,058 187 17쪽
62 Chapter 10. 가는 날이 장날 +10 14.06.12 6,436 339 11쪽
61 Chapter 10. 가는 날이 장날 +7 14.06.10 6,337 189 14쪽
60 Chapter 10. 가는 날이 장날 +6 14.06.08 6,471 207 13쪽
59 Chapter 10. 가는 날이 장날 +12 14.06.07 6,803 211 13쪽
58 Chapter 10. 가는 날이 장날 +11 14.06.05 7,715 374 13쪽
57 Chapter 9. 생츄어리 +14 14.06.03 7,046 212 12쪽
56 Chapter 9. 생츄어리 +8 14.06.01 7,095 204 14쪽
55 Chapter 9. 생츄어리 +12 14.05.31 7,662 233 13쪽
54 Chapter 9. 생츄어리 +7 14.05.29 6,767 250 13쪽
53 Chapter 9. 생츄어리 +11 14.05.27 7,330 217 11쪽
52 Chapter 9. 생츄어리 +9 14.05.25 7,791 214 13쪽
51 Chapter 8. 통곡의 벽 +8 14.05.24 7,882 223 14쪽
50 Chapter 8. 통곡의 벽 +16 14.05.22 7,697 242 12쪽
49 Chapter 8. 통곡의 벽 +14 14.05.20 7,556 229 13쪽
48 Chapter 8. 통곡의 벽 +11 14.05.18 7,593 214 13쪽
47 Chapter 8. 통곡의 벽 +15 14.05.17 7,864 247 14쪽
» Chapter 8. 통곡의 벽 +21 14.05.15 8,038 271 21쪽
45 Chapter 8. 통곡의 벽 +16 14.05.13 8,232 271 13쪽
44 Chapter 8. 통곡의 벽 +13 14.05.11 8,939 265 12쪽
43 Chapter 7. 명탐정 젠킨 +13 14.05.10 8,609 274 12쪽
42 Chapter 7. 명탐정 젠킨 +14 14.05.08 9,069 275 12쪽
41 Chapter 7. 명탐정 젠킨 +10 14.05.06 9,495 280 12쪽
40 Chapter 7. 명탐정 젠킨 +11 14.05.04 10,020 278 12쪽
39 Chapter 7. 명탐정 젠킨 +9 14.05.03 9,725 266 13쪽
38 Chapter 6. 소녀와 소녀. 그리고 +16 14.05.01 10,434 314 11쪽
37 Chapter 6. 소녀와 소녀. 그리고 +24 14.04.29 10,015 325 11쪽
36 Chapter 6. 소녀와 소녀. 그리고 +11 14.04.28 11,306 371 11쪽
35 Chapter 6. 소녀와 소녀. 그리고 +19 14.04.26 11,137 344 11쪽
34 Chapter 6. 소녀와 소녀. 그리고 +21 14.04.24 10,727 352 8쪽
33 Chapter 6. 소녀와 소녀. 그리고 +17 14.04.22 11,995 377 8쪽
32 Chapter 5. 빛 속에 어둠이. 어둠 속에 빛이. +20 14.04.20 11,970 371 9쪽
31 Chapter 5. 빛 속에 어둠이. 어둠 속에 빛이. +10 14.04.18 12,174 332 8쪽
30 Chapter 5. 빛 속에 어둠이. 어둠 속에 빛이. +13 14.04.17 12,329 383 9쪽
29 Chapter 5. 빛 속에 어둠이. 어둠 속에 빛이. +17 14.04.14 11,607 365 9쪽
28 Chapter 5. 빛 속에 어둠이. 어둠 속에 빛이. +9 14.04.13 11,526 352 8쪽
27 Chapter 5. 빛 속에 어둠이. 어둠 속에 빛이. +14 14.04.12 13,072 340 10쪽
26 Chapter 4. 성기사 +23 14.04.11 12,750 418 11쪽
25 Chapter 4. 성기사 +8 14.04.11 12,689 382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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