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4. 부서지는 흐름
성국 - 지하감옥
어둑한 공간은 사람을 쉬이 피곤하게 만든다. 벽에 걸린 작은 조명과 간간히 불어오는 바람에 기대다 보면 금세 고개가 넘어가기 일쑤. 그렇기에 감옥 간수는 2인이 맡아서 서로를 돌아가면 관리하게 해 주는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그 조차 식후에 밀려오는 졸음에는 불가항력.
두 사람이 나란히 앉아 꾸벅꾸벅 조는 때면, 지하감옥의 경계가 가장 취약해 지는 지점이다. 특별한 위협이 있어, 경계가 강화되지 않는 한은 말이다.
“지금이다.”
작은 속삭임에 누군가 벽면을 돌아, 튀어나갔다.
검이 빛살같이 뽑혀서 졸던 이들의 머리를 베어냈다. 툭. 데구르르. 비명조차 없이 머리가 잘려서 바닥을 굴렀다.
“실력이 더욱 늘었군.”
“그럴 수밖에 없으니까요.”
흔들리는 조명 아래로 두 사람의 얼굴이 드러났다.
말을 건 쪽은 젠킨. 검을 사용한 쪽은 왁슨이었다. 피뭍은 검을 털어 낸 뒤 다시 검집으로 집어넣었다.
“가자, 시간이 얼마나 남았을지 모르니.”
젠킨이 걸음을 서둘렀다.
지하감옥의 정규 순찰 간격은 5분. 목표로 하는 곳까지 가서, 일을 완수하는 대까지의 시간은 그보다 살짝 못 미치거나 맞는 수준. 서두르지 않는다면 성공하기 어렵다.
두 사람이 발걸음을 죽이며 안쪽으로 이동했다.
긴 통로 좌우측으로 감옥이 대칭적으로 이어져 있었다. 정치 사범으로 들어온 이들, 교황에 반하여 움직였다가 잡혀 온 이들. 빈 곳을 찾기가 어려웠다. 본디 성국은 감옥이 이리 활성화 되던 곳이 아니다.
젠킨과 왁슨의 눈에 씁쓸함이 스쳤다.
“이 아래입니다.”
“강철문……가능한 거냐?”
“시도해 봐야죠.”
심층으로 내려가는 입구에 두터운 강철문이 자리해 있었다.
열쇠를 넣는 구멍이 없다. 즉, 마법과 같은 특수한 방법으로 열리는 것. 아마도 지하감옥 전체를 관리하는 자가 가지고 있을 테니, 그것까지 손에 넣는 건 무리다.
키릭. 왁슨이 손잡이를 부여잡고는 몸을 낮추었다.
기세가 날카롭게 서고, 눈빛이 예리하게 빛났다. 오래 전 운페이와 만났을 때의 어수룩한 얼굴은 그곳에 없었다. 지금은 한 명의 검사. 정련 된 검만이 그곳에 있었다.
“핫-!”
예리한 검광이 솟구쳤다.
일보 일검. 끌린 발에 먼지가 솟구쳤다. 큰 소리도, 요란한 마찰음도 들리지 않았다. ‘된 건가?’ 젠킨이 묻자, 왁슨은 검을 돌려서 그대로 검집에 밀어 넣었을 뿐이다.
그르릉……
문이 좌우측으로 열렸다.
왁슨이 베어낸 것은 문을 잠그고 있는 특별한 장치 그 자체. 연결하는 마력의 고리를 베어낸 것이다.
“언제 봐도 신기하군.”
“어느 날부터 되더군요.”
왁슨이 머리를 긁적이며 답했다.
젠킨과 함께, 현실을 타파하기 노력하던 어느 때.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검을 수련하고 있는데, 갑자기 무언가 거대한 깨달음이 찾아왔다. 사물의 본질이 느껴지고, 이를 베어 낼 수 있는 선이 느껴졌다.
이것이 검사의 깨달음인가.
잠을 잊고, 고련하여 마침내 그 오의를 몸에 터득 할 수 있었다. 다만, 그 경지라는 것이 누구와 비교 할 만 성질의 것이 아니었지만.
“가자. 시간이 얼마 없다.”
“네.”
심층으로의 계단.
어두컴컴한 공간을 향해 두 사람이 뛰어들었다.
***
지하감옥 심처를 담당하는 세킨스는 지루함을 참기가 힘들었다.
그는 림의 일원. 사도가 일어나 성국을 집어삼키기 이전부터 활동하던 인물이다. 그런데, 시국이 전화되고 나서는 고작 컴컴한 지하를 담당하는 역할을 맡았을 뿐이다. 밖으로 나가서 거사를 돕고, 림의 위명을 알리고 싶은 것이 본심인데 말이다.
지하감옥의 일과는 단순하다.
밥 때 밥을 먹고, 남은 시간은 컴컴한 곳에서 죄수를 지키는 일뿐이다. 두꺼운 철창에 성력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만들어진 성법진이 벽면에 잔뜩 새겨져 있다. 죄수가 아무리 발악해도 나갈 염려가 없으니, 사실은 할 일 자체가 없는 것이다.
해서 세킨스는 자신만의 놀이를 만들었다.
이 지겨운 공간에서 할 수 있는 건 그것밖에는 없었으니까.
“이봐 성기사 양반. 다시 한 번 해 보자고. 이번에는 다리쪽으로 던질 테니까, 잘 피해 봐.”
세킨스가 날카롭게 간 포크를 집어 들었다.
식사 때마다 하나씩 받아서 갈아 두었더니, 이미 한 가득 있는 물건이다. 병기로 보기에는 턱없이 작은 것이지만, 힘이 봉인당한 사람에게 쓰기에는 충분히 위협적이다.
그리고 이는 그에게는 아주 적당한 놀이가 되었다.
쉬익-
날카롭게 포크가 날아갔다.
어둠속에 갇혀있는 인물의 허벅지에 포크가 꽂혔다. ‘큭……!’ 작은 신음 소리가 들리며 쇠사슬이 철렁거렸다. 그 모습에 세킨스가 킬킬 거리며 웃었다. 그래, 이 맛이다. 한 때 자신보다 위에 있던 사람이 고통에 흔들리는 모습. 이걸 보는 것이 지하감옥에서의 유일한 낙이었다.
“아프냐? 그 위대하신 제 1 성기사께서도 아픔을 느끼는 거냐? 응?”
“……”
“크크. 대답을 못 하겠어? 너무 아파서 말조차 못 하겠나? 아니면 여기에 처박힌 게 억울해서 말 하는 법이라도 잊었나?”
쉬익. 포크를 또 던졌다. 이번에는 어깨 부근에 박혔다.
살갗이 찢어져 피가 났다. 하지만 그것은 이내 아물었다. 지하 감옥의 성법진은 그의 성력을 봉인하는 동시에 상처의 회복 역시 돕고 있었다. 무력하지만, 다치지는 않게. 벗어 날 수 없는 입장에서는 그것이 더욱 괴로운 일이다.
“대답을 해 보라고. 신나게 소리치며 나를 즐겁게 해 보라고. 잘난 성기사의 울음을 보여 달라고!”
세킨스가 포크를 연달아 던졌다.
슈레인의 몸이 크게 출렁거렸다. 쇠사슬이 덩달아 움직여 요란한 소리를 냈다. 하지만 그는 작은 신음만을 흘렸을 뿐, 커다란 비명소리는 내지 않았다. 입을 꾹 다문 채, 어둠속을 응시했을 뿐이다.
“칫. 재수 없는 새끼. 아무것도 안 남은 상황에서 대체 뭘 견디는 거냐? 네가 바라는 것들은 이미 모두 망가진 후야. 교황? 그런 인간은 더 이상 남아있지 않아. 이미 알고 있잖아? 성국은 더 이상 성국이 아니라는 것을.”
“……”
“킥킥. 그 말은 화가 나나 보네? 하기야, 성국을 지키기 위해서 임명 된 제 1 성기사께서 아무것도 못 한 채 심처를 내어줬으니까. 아아 원통해라. 교황은 적의 손에 넘어가고, 성스러운 교황청은 적들에게 점거를 당했으니. 이만한 치욕이 있을까?”
철컹-!
슈레인의 몸이 거칠게 움직였다.
어둠 속에서 두 눈이 불같이 타올랐다. 힘 하나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도 그의 눈빛은 무서울 정도였다. 잘게 웃으며 떠들던 세킨스가 한 순간 입을 닫았을 정도.
“……젠장! 마음에 안 든다고!”
퍼억-!
포크가 슈레인의 이마를 스쳐갔다.
피가 흘러 얼굴을 적셨다. 하지만 그는 그 순간에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타오르는 눈동자로 세킨스를 노려봤을 뿐이다.
꿀꺽. 세킨스가 마른침을 삼켰다.
이것 때문이다. 지하 감옥에 있는 것이 싫은 이유 중 하나. 분명 자신이 더 우위에 있는 것이 맞는데, 가끔 이렇게 숨통을 조여 오는 압박감이 느껴진다. 쇠사슬에 갇힌 채 피 흘리는 노인 하나 때문에!
“젠장! 죽여 버릴 테다! 그냥 죽여 버릴 테다!”
이를 으득으득 갈았다.
상부에서는 분명히 숨을 붙여 놓으라 말 했지만, 참을 수가 없었다. 스물스물 올라오는 공포를 잠재우기 위해서 눈앞의 상대를 죽여야 할 것 같았다.
슥-!
그 순간, 작게 스치는 소리가 있었다.
세킨스가 반사적으로 몸을 틀었다. 예리한 검광이 허리 옆을 스쳐갔다. 가죽 갑옷이 예리하게 베어졌다. 우당탕. 앉아있던 의자와 탁자를 옆으로 밀고는 몸을 굴러 허리춤에 찬 검을 뽑았다.
“칫-!”
어둠 속에서 왁슨이 혀를 찼다.
상대를 보고 암습을 했다. 하지만 상대는 놀라운 반사 신경으로 피해냈다. 시간이 얼마 안 남은 그의 입장에서는 아쉬운 일이다.
“감히 이곳이 어디라고!”
세킨스가 사용하는 검은 크게 휜 곡도였다.
안쪽에는 톱날처럼 뾰족한 날이 연이어 부착되어 있었는데, 병기 파쇄를 위한 도구로 보였다.
바닥에 떨어진 나뭇조각을 걷어차더니, 몸을 훌쩍 띄웠다.
“슈레인 님을 부탁합니다.”
“다치지 마라.”
고개를 끄덕이며 왁슨이 검을 뿌렸다.
허공에서 충돌한 두 검이 불꽃을 피웠다. 어둑한 실내가 한 순간 밝아졌다. 끼릭. 왁슨이 힘을 줄여 상대를 당긴 뒤 어깨로 밀었다. 쿵. 둔중한 소리와 함께, 상대가 두 걸음 정도를 밀려났다.
“건방진 새끼가-!”
세킨스가 불같이 분노를 토해내며 검을 고속으로 질렀다.
엄청난 속도. 왁슨이 경시하지 못한 채, 검의 경로를 짧게 잡아서 이를 방어해냈다. 한 번 충돌 할 때마다 손이 저리고 몸이 밀렸다. 속도만큼 힘도 대단했다. 대충 아무나 심처의 경비로 둔 것은 아니었다.
‘오의를 사용하기에는 틈이 너무 없다.’
본질을 베어내는 검격은 아득할 정도의 위력이 있는 기술이나, 그 만큼 시간이 필요하다. 지금처럼 고속의 공방 속에서 사용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잘 됐다! 네놈들을 모두 썰어서 다같이 걸어주마-!”
아래에서 위로. 먼지바람을 일으키며 궤적이 솟구쳤다.
캉. 왁슨이 검을 눌러 방어했으나, 힘에서 밀렸다. 몸이 붕 뜨고, 막아낸 검이 비틀렸다. 우득. 틈을 놓치지 않고 세킨스가 밀고 들어왔다. 가죽 장갑을 낀 왼손이 그의 얼굴을 그대로 후려쳤다.
“큭!”
“크하하하하! 그래, 그거다! 비참하게 울어라!”
올라갔던 검이 다시 떨어졌다.
왁슨이 입 안 가득 찬 핏물을 뱉으며 손을 올려, 검격을 막아냈다. 쾅. 둔탁한 소리가 들리고 무릎이 저절로 굽혀졌다.
기교, 오의, 재능. 이런 걸 떠나서 가장 기본적인 면에서 세킨스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었다. 힘과 속도. 아무리 왁슨이 검에 대해서 전재적인 능력을 가지고 있다 해도, 나이가 아직 너무 어렸다. 간극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었다.
“힘에 힘으로 맞서지 마라.”
“……!”
어둠 속에서 두 사람이 걸어 나왔다.
슈레인. 좋아 보이는 얼굴은 아니었지만 두 다리로 분명히 서 있었다. 그 모습에 세킨스가 입을 떡하니 벌렸다.
어떻게?
마음 놓고 왁슨과 싸운 것은 멍청해서가 아니다.
슈레인이 갇힌 감옥이 두꺼운 철창으로 갇혀있는 것은 둘째 치고, 그를 묶은 쇠사슬은 특별한 술식이 없다면 절대로 열리지 않는다. 그걸 믿고 안심 한 채 싸움에 몰두했던 것이데.
“대단하신 분들은 꼭 중요한 일에 소홀하곤 하지.”
술식은 왁슨이 얻어 낸 것이다.
타이렌을 시중들면서 그의 환심을 얻었기에 가능했다. 그가 림의 중추임을 알아내는 건 의외로 어렵지 않았다. 모든 걸 장악 한 이후 그들의 움직임은 너무나 허술했다. 게다가 그 수뇌라 하는 타이렌은 자신의 강함 때문인지, 사소한 것들에 시선을 두지 않았다. 그 덕에 술식 역시 어렵지 않게 빼 올 수 있었다.
“왁슨. 검을 다시 들어라. 너는 눈앞의 남자보다 강하다.”
“익……!”
세킨스의 눈에서 불똥이 터졌다.
견딜 수 없었다. 장난감처럼 다루던 상대에게 이런 모욕을 듣다니. 검을 맞댄 인물은 채 스물도 안 돼 보이는 꼬맹이. 겨우 그런 자에게 자신이 당할 거라 말 하는 것이 너무나 분했다.
“신체의 간극은 잊어라. 네가 보는 것은 오직 베어야 하는 적. 보고, 느끼고, 베어라. 그것만이 검의 숙명 일 뿐.”
“검의 숙명……”
왁슨의 눈이 침잠한다.
“그아아아악!!”
분노한 세킨스가 검을 높이 들어 찍어 눌렀다.
왁슨을 통째로 베어 낼 요량.
하지만 그 순간, 왁슨의 검이 믿기지 않는 속도로 뽑혀 나왔다.
새하얀 검광.
그것은 처절할 정도로 아름다웠다.
떨어지는 어둠을 베어 낼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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