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5. 빛 속에 어둠이. 어둠 속에 빛이.
세레인이 후원하는 고아원은 전부 다섯 개였다.
남문을 기점으로 시계 방향으로 번져 있었다. 그녀는 더 많은 곳에 도움의 손길을 뻗고 싶었지만, 여의치 않았다.
자금, 시간, 환경.
성녀라는 고아한 이름은 많이 것을 가능하게 해 주지만, 만능은 아니었다. 그녀의 이런 봉사 활동을 달가워하지 않는 사람도 상당히 많았고, 딱히 지원을 해 주는 사람도 없었다. 품위 유지를 위해서 지원되는 돈 중의 일부를 모았다가,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도왔던 것이다.
“언니, 언니. 이번에 가면 또 언제 와요?”
“으응. 금방 또 올게. 밥 잘 먹고, 운동 열심히 해야 해.”
“힛. 나 완전히 열심히 할거다. 금방 와야 해. 나, 막 기다릴 거야.”
떨어지는 않는 손으로, 세레인이 작별 인사를 하며 고아원을 벗어나 밖으로 나왔다. 이것이 마지막 고아원. 들고 왔던 빵과, 지원금은 이미 다 떨어진 후였다. 밖까지 마중을 나온 원장이, 주름 진 손으로 세레인의 손을 꼭 잡고는 몇 번이고 감사하다는 말을 건넸다.
“휴. 이제 다 끝났다. 수고했어.”
“수고는 네가 했지. 이런 일을 하고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어.”
“어쩔 수 없거든. 낮에 하면 싫어하는 사람들이 꽤 있어서.”
성국의 살림 자체를 흔드는 것은 교황을 중심으로 한 인물들이 아니다. 외부에서 온 사람들. 타 왕국의 귀족들이 그 근간을 소유하고 있다. 그들 중 상당수는 성녀를 일종의 상징물 정도로 밖에는 생각하고 있지 않다. 과한 행동을 하지 않도록. 적당히 만족 할 수 있는 행동 정도만 허락하며, 그 이상의 움직임은 제어하고 있었다.
“너도 쉽지 않군.”
“후후. 네가 살아온 환경에 비하겠어? 그냥 할 수 있는 걸 하는 거뿐이야.”
세레인이 부드럽게 웃었다.
자애롭고 온화하다. 운페이가 나직이 감탄했다. 성녀로의 자태는 인위적으로 만들어 낼 수 있는 게 아니다. 밤하늘이 걷히는 듯 한 웃음은 그녀의 성품을 드러냈다.
“근데, 전에는 어떻게 했던 거야? 성기사가 없어서 밖으로 나다니기도 쉽지 않았을 텐데.”
“몰래몰래 나갔었지. 도와주는 사람들이 있어서 그럭저럭 움직일 수 있었어.”
“도와주는 사람?”
“저택 경비를 하던 그레이엄 이라는 사람 기억해?”
삼중으로 이루어진 저택 경비의 총 책임자.
탄탄한 체구에, 상당한 실력자로 짐작되는 인물이었다.
“그 분이 도와주셨어.”
“교황청에서 파견 된 사람이면 고지식할 텐데. 잘도 너를 도와주었네?”
“으응. 그 사람은 교황청에서 나온 게 아니야. 노블 원에서 경비 책임자로 파견한 인물이야.”
노블 원은 타국 귀족들이 성국 내에서 만든 조직이다.
그들 스스로의 권리를 보호하겠다는 의미에서 탄생했지만, 지금은 독자적인 권력 기구가 되었다. 교황을 수호하는 교황청과는 물고 물리는 관계를 형성하고 있었다.
“그쪽에서 나온 거면 더 이상한데? 나가게 그냥 두었어?”
“적당히 합의를 봤어. 낮에 움직이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하. 그 어린 나이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10대 중 후반. 몸은 다 클 수 있지만, 아직 머리나 가슴이 다 여물 시기가 아니다. 그런데도, 그녀는 어려운 이들을 돕기 위해 큰 조직과의 협상을 이끌어 냈던 것이다.
“차라리 낮에 움직이는 게 낫다.”
“……무슨 소리지?”
“그들의 눈치를 봐서 밤에 움직인 거 같지만, 네가 성국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 중 하나라면 함부로 손을 탤 수 없을 터. 이런 어려움을 양지로 끌어내서 사람들의 이목을 모으는 쪽이 보다 큰 효과를 자아냈을 것이야.”
비올레의 말에도 일리가 있다.
아니, 만들 수 있는 효과를 생각해 본다면, 그녀 말이 더 합당하다. 하지만 그것을 시도했던 세레인의 나이를 생각해 보면, 수긍하기 어렵다.
“말은 쉽지. 그 당시 내가 할 수 있었던 선택은 많지 않았어.”
“그렇게 위안을 삼고 싶다면 얼마든지.”
“너……!”
세레인의 음성이 높아졌다.
고아원 앞으로 아이들이 나와 무슨 일인가 싶어 살폈다. 운페이가 황급히 둘 사이를 중재하며,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둘 다 그만 해. 좋은 일을 하고 왜 그래.”
“남편이 원한다면.”
“흥!”
운페이가 머리가 지끈거림을 느꼈다.
비올레가 따라오는 걸 괜히 안 말렸나 싶기도 하다. 이제 겨우 하루. 앞으로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지 모른다. 그 기간 동안 두 사람 사이에 끼어서 어찌 해야 할지 벌써부터 머리가 아팠다.
“그만하고 돌아가자. 시간이 많이 늦었……응?”
그 순간, 그의 눈에 무언가 밟혔다.
스쳐가는 인영. 검은 후드를 푹 눌러 쓴 채, 운페이가 걸어온 골목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발걸음이 가볍고, 소리가 작다. 별 거 아닐 수도 있지만, 그의 본능이 무언가를 토로하고 있었다.
“운페이?”
“……”
세레인의 부름에 그가 잠시 망설였다.
귀찮은 일이다. 그냥 넘어가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 하지만 세레인과 지나온 고아원의 모습이 눈에 밟혔다. 그 역시 부모가 사망한 이후, 남에게 맡겨졌던 처지니까. 환경은 달랐다 하지만, 느낀 바는 다르지 않았다.
“많이 피곤해?”
“응? 아니. 그렇지는 않은데. 갑자기 그건 왜?”
“잠깐 들렸다 갈 곳이 생겨서.”
그가 고개를 돌렸다.
눈앞에서 사라진 인영의 기척은 아직 잡히고 있었다. 방향은 그가 왔던 고아원. 멀어지지도 않은 채, 딱 그곳을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
이런 예감은 빗나가는 적이 없었다.
***
“히히. 이거 봐라. 언니가 주고 간 거다.”
“와아. 예쁘다. 치. 나빴어. 나는 안 주고.”
“우웅. 부러워?”
“됐거든. 나중에 오면 나도 달라고 할 거야.”
“에이. 그럼 그냥 너 가져.”
“어? 정말? 나주는 거야?”
“응! 대신, 언니가 와도 뭐 달라고 하기 없기.”
운페이와 세리인이 떠나간 고아원.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그녀가 선물이라면서 남기고 간 물건들을 두고. 맛 좋은 빵, 예쁜 액세서리, 질 좋은 옷. 평소 같으면 만져 볼 수도 없는 것들이기에 더욱 기쁘고 행복했다.
덜컹. 그때 고아원 문이 열리고 검은 후드의 남자가 들어왔다.
아이들을 보며 희미하게 웃던 원장이 남자의 등장에 크게 경직된 모습을 보였다. 마른 침을 몇 번이고 삼키더니, 남자를 안내해서 안으로 들어가려 했다.
“호오. 이번에는 사정이 좀 좋았나본데?
“펴, 평소와 똑같을 뿐입니다.”
“크크. 똑같기는. 딱 보면 견적이 나오는데. 우리 성녀께서 성기사를 새로 뽑더니, 아주 기분이 좋았나 봐.”
남자가 성큼성큼 걸어가 한 아이 앞에 섰다.
앞서 팔찌를 자랑하던 소녀다. 손을 탁 잡더니, 팔찌를 뺏었다. 소녀가 앙! 하며 울었지만, 성인의 힘을 이겨 낼 수는 없었다.
“이런 것도 들고 오고 말이야.”
“이,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평소처럼 받아 가면 되지 않습니까?”
“물주 사정이 좋아지면, 우리도 허리를 펴야 하는 게 인지상정 아니겠어?”
남자가 팔지를 손가락에 끼운 채 빙글빙글 돌렸다.
그 아래에서, 팔찌를 빼앗긴 소녀가 앙앙거리며 울었다. 한 아이가 울자, 다른 아이들도 따라 울었다. 고아원은 금세 울음바다가 되었다.
“시끄러워. 애새끼들 당장 조용히 안 시키면 이년부터 목을 뽑아버릴 줄 알아.”
“헉! 유, 유피야. 그, 그만 울려무나.”
남자가 발치에서 우는 소녀의 머리를 손으로 잡았다.
흉악한 기세다. 원장이 다급히 소녀를 다독였다. 그 모습에, 남자가 낄낄 거리며 웃었다. 지배하는 위치. 자신의 말 한 마디에 희비가 갈리는 모습이 즐거웠다.
“이거, 아주 개새끼네.”
“그러게.”
“어떻게……”
하지만 그 웃음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일남 이녀가 고아원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왔기 때문이다.
- 작가의말
댓글 달아주신 분들, 오타나 문법 오류 지적해 주시는 분들 모두 감사합니다.
오늘은 글이 조금 짧군요. 내일은 더 길게.
그러려면 필요한 것은 무엇?
댓글. 헷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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