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과 바다2
노인과 바다2
"가브리엘이 루시퍼의 꾐에 넘어갔습니까?"
"그럴 리가? 가브리엘은 루시퍼를 가장 경멸해. 루시퍼가 말한 것은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었을 뿐이야."
"가브리엘이 직접 서전 임펙트를 일으켰습니까?"
서전 임펙트는 내 이야기 때 했었다.
"타락은 인간 스스로 해야만 하니까. 실수를 저지른 것은 인간이지. 그런 결과를 내기 위해 인간을 조종한 것은 가브리엘과 우리엘이고."
"이해가 되지 않네요. 인간의 역사에 관여하지 말라고 했건만."
"지금도 마찬가지이네. 단지 그들이 하고 싶은 것은 그분이 바랐던 이상향을 만들고 싶은 것뿐이라면 뿐일까."
"인간의 역사에 관여한 것을 분명 잘못된 행동입니다. 전 그 결과를 수긍하지 않습니다."
"너라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아. 네 존재 자체가 변곡점이 될 수 있으니까. 네가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 의회도 루시퍼 패거리도 영향을 받을 테니까."
"전 어떻게 만들어졌습니까? 메타트론이 저를 만들었다고 알고 있는데···."
"조율을 원해서였네. 당시는 생텀 의회의 힘이 게헤나를 훨씬 앞질렀지. 그분이 말씀하시기를 빛이 있으면 반드시 어둠이 있어야 하고 선이 있으면 반드시 악이 있어야 한다고 하셨네. 이 우주가 가장 아름다울 때는 그 둘의 균형이 이뤄졌을 때라고 말씀하셨네."
"빛이 강해서 그 빛을 누그러뜨릴 필요가 있었다?"
"비슷한 맥락이지. 그래서 루시퍼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 것도 있었고."
"당신은 천사가 아닙니까? 굳이 루시퍼의 이야기를 들을 필요가···."
"악은 그럴싸한 유혹만 속삭이지 않아. 현실적으로 거의 완벽에 가까운, 실현되면 이상향이 펼쳐질 것 같은 이야기를 내놓지. 우리가 타협점을 찾을 수 없었던 문제에 가장 합리적인 타협점을 내놓았기 때문이네."
"그래서 데우스 엑스 마키나를 만들었습니까? 그것이 어떤 비극을 불러올지 몰랐습니까? 수많은 천사가 희생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결과는? 그 덕분에 일정 기간 힘의 균형이 이뤄졌고 인간은 양쪽 관섭 없이 빠른 발전을 이룰 수 있었네."
"당신도 무서운 분이군요."
"난 그저 그분의 말씀이 옳다고 믿은 거고 그것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했다고 생각하네. 그때의 결심이 없었다면 지금 내 눈앞에 너도 없었을 테니. 이 또한 그분이 의도하신 것이네."
"그러니까···. 전 그냥 평범한 인간의 자의식일 뿐입니다. 그런 거창한 결정을 내릴만한 제목이 되지 못합니다."
"자네가 여기까지 온 여정을 어떻게 생각하나? 자신에 주어진 운명을 믿고 따르게 자기 자신을 믿으시게. 데우스 엑스 마키나가 자네에게 주어진 것은 운명이지 않은가?"
"데우스 엑스 마키나는 만들 때 어떻게 하셨길래 이런 괴물이 되었습니까?"
"태고의 힘을 넣은 것이네. 루시퍼는 작고 힘없는 네필림 아이를 데려왔었어. 인간 아이와 똑같은 호기심 많은 아이 하나를 말이야."
메타트론은 데우스 엑스 마키나나 탄생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태고신의 유물 3개를 네필림의 신체에 융합시켰네. 원래대로라면 절대 섞이지 않을 것들이지만 그 아이의 고유 능력으로만 그것이 가능했지."
데엑마의 오리지날 네필림의 기본 속성은 조화였다. 천사인 아버지 그리고 악마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반천반악 네필림은 고유 속성은 양쪽 모두를 타고 난다. 아비의 힘과 어미의 힘을.
하지만 이 돌연변이 네필림은 양쪽의 힘을 전혀 발현하지 않았지만, 조화라는 특수한 능력이 개화했다. 그것은 신성력과 권능이 조화롭게 하나의 틀 안에 둘 수 있는 능력이다.
실제 네필림은 좌우 확실히 구분되어 있고 능력도 따로따로 사용한다. 하지만 이 작은 네필림은 신성력과 권능을 합친 힘을 사용했다.
"그 아이는 오그림이라는 이름을 가졌는데 진정 세상에 나와서는 안 되는 요물이었네. 우주의 기본적인 질서를 거부하는 존재였으니까. 생각해 보게 빛과 어둠이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공존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존재가 있겠는가 말일세."
오그림은 조화 능력으로 인해 가질 수 없는 것을 손에 넣었다. 태고신의 유물 세 개를 융합한 그는 조화의 능력으로 흡수했고 그것이 데우스 엑스 마키나의 탄생이었다.
"유물이 가진 사념은 상당히 강했어. 아이의 인격 자체가 변질될 정도로 말이지. 유물의 힘을 품었으나 자의식은 태고신의 사념을 견딜 수 없었지. 그는 사악한 존재가 되었고 루시퍼의 하수인이 되어 천사 토벌대의 일원이 되었다."
"후회하십니까?"
"아니, 내가 원했던 일이었으니까. 언젠가 그가 나를 찾으러 올 거란걸 알고 있었네."
"···."
"하하, 자넨 날 미워할 텐가? 모든 사건의 단초를 제공한 것이 나라고 말일세?"
"글쎄요. 후, 누구의 잘못이라고 말하기엔···. 어쩔수 없는 운명이라고 해 두죠."
"의회는 너무 강압적이네. 그들은 변화를 두려워하고 무서워하지. 발전도 없고 처음 시작 그대로야. 환경에 따라 융통성 있는 접근을 하지 못해. 절대선의 틀 안에 영원히 갇혀 버린 것이지." "한때 의회 대의장이었던 분이···."
"진보와 개혁 그것을 주장하다 쫓겨난 몸일세. 오랜 틀을 벗어나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줄 알고 옛것을 쳐낼 줄 알아야 발전이 있는 것인데 말일세."
"단지 그 이유로 쫓겨나셨습니까? 그래서 보복으로 데우스 엑스 마키나를 만드신 겁니까? 의회에 신선한 자극을 주기 위해서요?"
"모두가 자신이 믿는 신념이 옳다고 생각하며 정의라고 생각하지. 그 점은 나도 마찬가지인 모양이더군. 자네도 곧 알게 될걸세. 의회 그들의 말도 안 되는 억지가 어떤 것인지를."
"덕분에 데우스 엑스 마키나에 대해 좀 더 깊숙이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4679번의 유물을 흡수할 수 있었던 거였네요." "잠깐만 기다리게. 기록지를 확인해 봐야겠네. 데우스 엑스 마키나는 더는 유물을 품을 수 없어. 한계 상태일 텐데···."
-드르륵
그가 일어서자, 책상이 뒤로 밀리는 소리가 났다.
내 기준에서 오른쪽 벽면을 가득 메운 책장에서 상당히 두껍고 노인이 들기엔 버거울 것 같은 크기의 책 한 권을 꺼내 들었다.
-탁
책상 위에 올려놓은 그는 나를 힐긋 한 번 보더니 씩 웃고는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이거 아나? 천사는 절대선이라 행운이라든지 운이라든지 그런 미신적 운은 믿지 않는다는 거."
"그렇겠죠. 절대선이니까요."
"기적은 그분을 향한 믿음에서 나오는 것이지 행운이 아니란 말이지. 허허."
"절대선이 개혁을 받아들이리라 생각했습니까?"
"적어도 네 명의 대천사는 내게 동의 했었네."
"가브리엘, 우리엘, 사리엘, 레미엘이죠? 지구 치환 계획을 실행하는 천사들."
"아니지. 그 반대일세. 미카엘, 라파엘, 라구엘이지. 이 우주엔 자네가 경험하거나 듣지도 못한 일들이 벌어졌었네. 빛과 어둠을 뛰어넘는 혼돈의 에너지를 물질 우주와 섞이지 못하게 한 곳으로 몰아 넣었었네. 그것이 한 점에 모이자, 항성처럼 내부로부터 힘이 터져 올라 무한한 팽창을 시작했네. 무해한 영혼들은 그 에너지에 감염되어 사악한 존재로 변했지."
"게헤나를 말하는 겁니까?"
"아니, 게헤나는 빛과 어둠이 갈라질 때 자연 생성된 것이고 지금 내가 말한 것은 초월자께서 창조하신 지성체가 내 뿜는 절규의 에너지가 뭉쳐 만들어진 것일세."
"그들이 왜 절규했습니까?"
"당연히 죽임이지. 서로서로 끊임없이 죽이는 혼돈의 전쟁을 벌였네. 죽이고 죽고 탄생의 기쁨보다 죽음의 절규가 더 컸을 때 이야기지. 보라, 인간도 그와 같은 길을 걷고 있지 않은가? 지성체의 분노와 슬픔, 떼로 죽은 영혼이 수없이 갈려 나가는 덕분에 깨끗했던 우주에는 혼탁한 에너지가 군집처럼 모여 대폭발과 함께 혼돈의 구역을 만들었지."
"전혀 다른 곳에 관해 이야기하시는 겁니까?"
"보게 내 말뜻은 우주는 끊임없이 진화를 계속하네. 어둠은 멈추지 않고 새로운 사악한 존재를 우주 안으로 뿜어 내. 그러나 빛은 정체가 되어 있네. 이러다간 언젠가 어둠에 먹힐 수도 있겠지."
"의회는 그걸 직시하지 못하는 건가요? 세상은 참 혼돈이군요."
"여기 보세. 내 기억이 가물거려졌군. 자네에게 융합된 유물은 차원을 다스리는 마타우리의 정강이뼈, 중력을 다스리는 에르마우타의 어금니, 빛을 먹는 힘을 가진 네넨핌의 등뼈 한 조각일세. 자네가 흡수할 수 있는 한계까지 밀어 넣었다네."
이제야 내가 어떻게 차원의 힘을 사용하고 중력을 제어하고 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빛을 먹는 힘은 사용해 본 적이 없으니 무엇인지는 모르겠다.
"둘은 알 것 같은데 빛을 먹는 힘은 무엇입니까?"
"쉽게 말해 신성력 면역인 거지. 천사 좀 두들겨 패려면 그 정도 능력은 기본 패시브로 장착해야 해서 내가 권한 것일세."
"···."
"혹시 의회에서 쫓겨나셨다고 복수 차원에서 절 만드신 건 아니죠?"
"그럴 리가? 이 모든 것이 대의를 위해서인걸."
"네, 네. 그렇다 치고요. 한계인 제가 어떻게 네 번째 유물을 흡수할 수 있었던 거죠?"
"나도 그게 궁금해서 찾아 보고 있지 않은가?"
"그 수집품 코너에 넘버가 만 개 정도 있던데?"
"수집품 코너가 아니고, 네에피둠일세. 잠자는 것들이 머무는 곳이라는 뜻이고."
"데오릭스는 네에피둠 자체를 모르던데요?"
"그놈에겐 접근 금지 구역이니까. 내가 에덴을 숨긴 것도 가브리엘이 그것을 이용하려 했기 때문일세."
"옷, 그럼, 봉인이 풀렸는데 에덴이 천사에 손에 들어가면 곤란한데···."
"자네가 막으면 되지."
"서둘러야 하지 않을까요?"
"시간은 충분하니까 걱정하지 말고."
"네에피둠 목록 같은 건 없어요?"
"당연히 없지. 난 기록자로서 그분이 하는 행동을 기록한 것이 전부야. 네에피둠에 머물렀던 부분을 일일이 찾아봐야 해서 시간이 좀 걸릴 거다."
메타트론을 만나면서 전체 퍼즐의 맞춰지지 않는 조각들이 들어맞은 기분을 느꼈다.
속이 후련하고 시원섭섭한 마음이 공존했다.
결국엔 이번 지구 사태는 오랫동안 곪아온 종기가 드디어 터진 거란걸 느꼈다.
생텀 의회도 뻔질나게 끼어들었던 루시퍼도 결국 돌아가는 톱니바퀴의 한 축일 뿐이었다.
물론 데우스 엑스 마키나도 그의 조각이었던 나조차도.
"이상하네. 그 자료는 없는데?"
"따로 조사해 놓은 건 없어요? 그 기록지가 전부?"
"당연하지 따로 기록해 놓을 이유도 없고. 난 그분의 사서야. 그분이 한 행동과 말씀과 생각을 옮겨적는 것일 뿐. 내가 없을 때 벌어진 일까지는 알수 없지."
"그럼, 4679번은 메타트론이 없을 때 야훼께서 가져다 놓은 것입니까?"
"그것 외에 달리 설명할 부분이 없어. 4678번 마릴론 조각과 4680번 예우 셈의 눈물 딱 이 사이가 비었어! 이것 참 희한한 일이네."
"아니 천하의 메타트론이 희한한 일이라고 하면 어떻게 합니까? 기적은 그분에 대한 믿음 이러면서요? 전 그분에 대한 믿음은 일도 없는 사람인데. 이거 순전히 운 아닙니까? 그럼 4677번 자료는 뭐죠?"
"보자 4677번 여기 있네. 줄들로의 철쇄기 조각."
"제가 4678번 마릴론 조각을 선택하지 않은 것이 첫 번째 운이고 두 번째는 그 옆에 있는 4677번도 아닌 4679번을 선택했다는 거고. 세 번째 왜 하필 그 자료만 목록에 없는 겁니까? 내가 로우블로의 철쇄기 조각을 선택했다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네 능력 조화는 이미 한계 상태다. 태고신 조각 3개만 해도 벅찬 상태였어. 억지로 욱여넣은 과정에서 자의식까지 파괴되어 버렸지. 로우블로의 철쇄기를 만졌다고 해서 네게 흡수되지는 않을 거야. 쉽게 말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뜻이지."
"그럼, 마릴론의 조각은?"
"그건 조화와 다른 개념이야. 마릴론의 조각은 태고신이 아니라 고대신의 조각이란 것도 알지?"
"네, 그 때문에 거짓된 여왕의 티아라를 이용하려 했죠. 자마돈이 태고신이고 그 자마돈의 조각에서 태어난 것이 고대신 마릴론이죠."
"그래 둘은 부자 관계라고 할 수 있네. 아비의 힘이 자식을 누르는 것은 당연한 거고. 단지 조각을 지닌 상태만으로도 영향을 받으니까. 그건 어떻게 생겼었어?"
"그게 투명한 젤리 같은 거였어요. 제가 손을 담갔는데 흡수되듯이 피부 속으로 들어왔어요. 처음에는 별다른 느낌도 없었고 이게 뭐지 했을 정도니까요. 만약 제 고유 스킬 조화가 아니라면 그 투명 젤리 단독의 능력이겠죠?"
"그렇다고 봐야겠지. 한데 왜 그 자료만 빠졌을까? 나도 알수 없는 부분이야."
"자, 다른 질문요. 네에피둠에 들어갈 수 있는 천사는 또 누가 있어요? 루시퍼는 당연히 들어갈 수 없을 테고. 네에피둠에 있는 자료 중에 우주의 근간을 뒤흔들 수 있는 것이 있다면서요? 그게 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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