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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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전
'으하하, 좋은 선물이로구나, 네 몸의 일부가 되는 것은 영광이며, 너의 힘과 기억은 이제 나의 것이 되어,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너의 존재는 끝없이 나의 어둠 속에 흡수되어, 나의 힘을 배가시키고, 나의 위력을 증명할 것이다. 네가 싸워온 모든 순간, 네가 쌓아온 모든 지혜, 이제 모두 나의 것이 되어, 나는 더욱 강해지고, 더욱 불가침한 존재가 될 것이다. 하하, 너의 영혼은 나의 굴레 안에서 영원히 고통받으며 나를 찬양하게 되리라.'
'시발.'
몸부림이라도 쳐야 하는데···.
이대로 빨려 들어가면 모든 것이 끝이다. 언노운은 어떤 방법으로 과거로 돌아간 걸까?
마지막으로 목소리라도 듣고 싶었는데···.
내가 흡수되면 레이도 소멸하겠지?
-턱
닿았다. 왼쪽 어깻죽지에서 상당히 뜨거운 기운이 느껴진다. 포른의 몸이 된 이래 이런 뜨거움을 느낀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상당한 온도를 견딜 수 있는 몸인데도 불구하고 화끈한 뜨거움은 곧 통증이 되어 돌아왔다.
오히려 담담해진다.
진짜 여기까진가 보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루시퍼에 당한 죽음이란 늘 이런 식이었나 보나. 아무리 노력해도 미래를 바꿀 수 없다는 말인가?
'
수억 번 동안 회귀하면서 단 한 번도 방법을 찾지 못했다는 것은 내 힘이나 언노운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다는 소리가 아닌가?
죽음이란···.
눈앞으로 정아와 그리운 사람의 얼굴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간다.
몸이 더 뜨거워진다.
'크으.'
들리지 않는 비명을 내질렀다. 몸이 불타오르는 것 같다.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심연의 공간에서 나는 이렇게 죽어간다.
-파파팟
왼쪽 팔에서 뭔가 꿈틀거렸다.
기울어져 가는 의식이 뭔가 번쩍임과 동시에 돌아왔다.
'어떻게 된 거지?'
뜨거움이 점차 가신다. 흡수된 건가? 아니다. 아직 흡수되지는 않은 것 같다.
내 몸에 뭔가가.
'무슨 짓을 하는 거냐?'
데우스 엑스 마키나 고대 네필림의 사념이 온다.
'내가 어떻게 알아?'
사념파를 쏘아 줬으나 들을 수 있을까 싶다.
'우윽 뭐, 뭐냐?'
'난 들 아나?'
이상하게 몸이 편해졌다. 뜨거움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말끔히 식었다.
그때였다.
갑자기 어마어마하게 몰려오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배고픔.
지금까지 포른의 몸으로 살아오면서 단 한 번도 느끼지 않았던 생리적 반응이다.
그것도 엄청나게 배고프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생각이 든 게 아니라 완전한 현실 반응이다.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먹고 싶다.'
입에서 침이 질질 흐르는 것 같다. 배가 너무 고프다. 먹고 싶다. 아니 먹어야 한다.
'크으윽! 이놈이 무슨 짓거릴 하는 거냐?'
'내가 어떻게 아냐고.'
확실히 정신이 맑아졌다. 뭔가 지금 이뤄지고 있다고 느끼는 데 뭔지는 알수 없다.
'크아아아아.'
놈이 이제 비명까지 질러댄다.
왜?
뭔가로부터 공격을 받는 것은 아닐 텐데?
'크악, 루, 루시퍼 이놈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수가 있어야지.
근데 희한한 것이 배고픔이 조금씩 가신다는 거다. 정신은 멀쩡하고 조금 전 느꼈던 뜨거움도 느껴지지 않는다.
설마?
이건 그 때문에?
내가 생각한 비장의 수 때문인가?
'으아아아아. 이럴 수가!'
그 비명을 마지막으로 데우스 엑스 마키나의 비명은 더는 들려오지 않았다.
'어?'
이상하다 굉장한 압박감의 압력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 것 같다. 아니 그것보다 느낌이 좀 이상했다.
팔다리가 내 것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이랄까. 손끝으로 내 몸을 더듬어 보니 확실히 피부의 감촉이 인간과 달랐다.
어두워서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알수가 없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는 느껴지지 않는다.
'이봐.'
'어이.'
대답이 없다.
이상하게 몸의 느낌이 뭔가 다르다고 느껴진다.
'어, 이상한데?'
주변을 맴도는 태고의 악마 세 마리의 기운은 확실히 느낄 수 있다.
조금 전까지 느꼈던 데우스 엑스 마키나의 기운은 아예 느껴지지도 않는다.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지금은 파악할 수 없다.
'탈출이다!'
심연의 어둠 속에서 보이는 희미한 기운 하나 그것은 태고의 악마가 이곳으로 오면서 남겨 놓은 흔적이다.
그것을 따라가면 들어왔던 곳으로 다시 나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나는 이곳에서 전혀 움직일 수 없었다.
나아가야 한다. 앞으로 허우적거렸다.
'엇? 움직인다!'
심연의 압박을 헤치고 몸이 나가는 것이 확실히 느껴졌다. 피부에 닿는 것은 살가운 바람이 아니지만 조금 전까지 느꼈던 육중한 심연의 무게보다 훨씬 가벼운 느낌이다.
태고의 악마 세 마리가 따라오는 것도 느껴진다.
속도를 더 내어 보았다. 난다. 날 수 있다. 빠르게 나는 것이 피부로 느껴졌다.
'어래? 나 살아 있는 건가?'
데우스 엑스 마키나는? 본체는 어디로 갔지? 녀석이 그렇게 비명을 지르지 않았나?
무슨 일이 벌어진 건 분명한데 알수 없었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의 기척이 전혀 없다는 것이 황당했다. 태고의 악마 세 마리는 눈앞에 있는 것처럼 생생하게 느껴지는데 말이다.
왜 이리된 거지···.
설마? 에이 아니겠지···. 설마?
어! 시냅스가!
시냅스가 완전히 반으로 나뉘어져 있다는 것을 이제야 알았다. 왼쪽은 시커멓게 변했고 오른쪽은 새하얗게 변해 있었다.
'권능과 신성력으로 완전히 구분되었네.'
최대한 그때의 기억을 영상화했다.
내가 야훼의 컬렉션 안으로 뛰어들었던 그 시점부터다. 4천 번 대의 선반을 찾았고 목표는 위리놈이 말한 4678번 자료 마릴론의 조각 즉 태고신의 조각을 빼내 오는 거였다.
그때 내가 무슨 생각을 했냐 하면 마릴론의 조각을 빼 오더라도 역사가 변함이 없었던 것은 마릴론의 조각도 결국 거쳐 가는 아이템이라는 소리였다.
만약 마릴론의 조각이 어떤 효력이 있었다면 다른 차원에서도 정보가 남아 있어야 했다.
언노운은 마릴론 조각에 대한 어떤 정보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결국 내가 마릴론 조각을 얻는다고 해도 별다른 효용가치는 찾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 미쳤다.
이게 내 마지막 여정이라면 다음 회귀인 나를 위해 최대한 정보를 갱신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에덴은 단일 차원 안에 갇혀 있기에 차원 분기가 일어나 평행세계는 만들어지지는 않는다.
오직 앞과 뒤만 있을 뿐이지 곁가지가 하나도 없는 원통형 차원이다.
4679번 선반을 열었다. 마릴론의 조각이 아닌 그 뒤 아이템을 선택했다. 그것이 투명한 젤리 같은 거였고 만지는 순간 내 몸을 타고 올랐다.
그것이 뭔지 모른다. 넘버 외에는 명칭도 활용법도 유래도 설명해 놓은 것이 없었기 때문에 사실 이건 엄청난 도박이었다.
4678번 마릴론의 조각이 아닌 그 뒤 4679번 투명한 젤리를 선택한 것은 오롯이 내 의지였다.
악마의 말은 절대 믿지 않는다. 위리놈이 마릴론 조각이라고 말했고 심지어 언노운의 코드 네임에 등록된 마지막 코드 네임이었다는 것도 알고 있다.
내가 왜 마릴론 조각을 선택하지 않았냐 하면 뭐, 단지 내 기분이 그렇게 하기를 바랐던 것 같다.
투명 젤리가 뭣인지 모른다. 마릴론 조각이 향후 어떤 역할을 할지 모르나 내가 살아난다면 다시 가지러 가면 될 뿐이다.
일단 잡생각은 버리자! 이곳에서 탈출하는 것이 먼저다.
빠르게 날았다. 아니 헤엄쳤다는 것이 맞는 표현이겠지.
뭔가 몸이 이상하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지만 확인해 볼 틈이 없다. 특히 몸에 걸친 옷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아랫도리 그것이 만져질 정도니까. 아마 데우스 엑스 마키나와 접촉했을 시 타 버린 것 같긴 한데···.
나 살아 있는 거지?
갑자기 웃음이 걸렸다.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기 시작했다.
뭐가 어떻게 된 건지 모르지만 그때 내 선택이 뭔가를 바꾼 것은 확실했다.
위리놈 그 새끼가 4678번 자료를 빼내야 한다고 말했지 역시 악마의 말은 믿을 것이 못 된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다.
그럼, 언노운 이놈은 왜 마릴론의 조각을 코드 네임으로 등록해 놓은 거지? 이거 이상하다.
뭔가 내가 모르는 뭔가가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 상상화 되어 뭔가 살아난다.
얼마를 헤쳐 나갔는지 모를 정도다 올 때도 그랬으니 나갈 때도 마찬가지인가.
심연에서 구멍이 보인다. 아주 작은 점은 흰색 점이다. 아마도 태고의 악마가 들어왔던 그 지점인 것 같다.
피치를 올렸다.
-팟
밖으로 나왔다. 온몸을 쥐어짜던 압박감이 갑자기 확 사라졌다.
머리가 확 깨치는 것 같았고 시원하고 미칠듯한 감각이 온몸을 타고 흘렀다.
감각이 살아나는 기분은 새로운 삶을 얻은 느낌이었다.
"앗!"
이곳은 우주다. 어떤 우주인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우주 공간임은 확실하다. 무중력과 진공 상태인 것이 바로 느껴졌다.
태고의 악마 세 마리가 주변을 맴돌고 있었다.
내가 놀란 것은 환경 때문이 아니었다.
내 몸!
거인이다. 심연에선 전혀 느낄 수 없었다. 시커먼 피부를 가진 엄청난 거인이다. 여섯 네필림의 본체와 비교해도 두 배 이상은 큰 것 같다.
팔다리를 움직여 봐도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심연에서는 압박감 때문에 크기에서 오는 모든 감각을 느낄 수 없었기에 내가 거인이라는 사실을 실감하지 못했다.
손바닥을 내려다봤다. 시커먼 암흑보다 더 시커먼 피부다. 별은 자잘하게 보이지만 큰 항성이 없어 빛이 없다.
'언노운?'
'레이?'
역시 둘 다 답이 없다.
'가만. 이거 데우스 엑스 마키나 본체 같은데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알수가 없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이건 데엑마의 본체가 확실했다.
나는? 정동혁은? 그래 나다 정동혁. 내가 정동혁이잖아! 영어 이름은 아라곤 폰차일드. 맞지?
당연하지. 난 정동혁이다.
주변을 둘러봤는데 깜깜한 우주 공간일 뿐 여기가 어딘지 알수가 없다.
왜 이리로 나온 것일까?
분명 에덴으로 연결된 공간일 텐데?
냄새.
악의 냄새 권능의 냄새.
콧구멍에서 냄새를 걷어 올렸다.
'저쪽이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알 수 없는 현실에서 거대한 권능이 접근하고 있다는 것은.
이거 루시퍼다. 그렇게 확신했다. 녀석의 냄새가 오만인 것은 모든 악마가 다 아는 사실이다.
오만의 냄새는 설익은 오이 냄새다.
루시퍼! 이 씹새끼 잘 만났다.
온몸의 피가 다 끓어오르는 것 같다.
그리고 무엇보다 확실한 느낌은 놈에게 절대 질 것 같은 기분은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전에는 루시퍼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는데 지금은 전혀 없다.
권능은 점점 가까이 다가왔고 확실히 루시퍼가 맞는다는 생각은 정확했다.
'그동안 갇혀 지내느라 고생이 많았다. Deus Ex Machina! 기계에서 나온 아들이여.'
주변은 어두웠지만, 루시퍼의 몸에서 밝은 빛이나 주변의 어둠을 밀치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루시퍼가 아닌 루시퍼가 쓰고 있는 거짓된 여왕의 티아라에서 나오는 빛이었다.
'네 주인으로서 명령하노라. 너의 저항은 이제 끝났다. 너의 운명은 나의 손안에 있다. 나는 루시퍼, 타락한 천사이자 어둠의 군주. 나의 명령에 복종하라. 그렇지 않으면 너의 영혼은 끝없는 고통 속에 영원히 갇히게 될 것이다. 너의 모든 힘과 의지는 내 것이다. 너의 몸과 마음, 영혼까지도 나에게 굴복해야만 한다. 이제 선택의 여지가 없다. 너의 명령에 따르지 않는다면, 너는 그 누구도 상상할 수 없는 절망 속으로 떨어질 것이다. 무릎 꿇어라, 나의 발아래에서 나의 위엄을 경배하라, 나의 힘을 인정하고, 나의 명령에 따르라, 이것이 바로 너의 유일한 구원이다. 복종하라. 그리고 나의 어둠 속에서 새로운 존재로 거듭나라!'
'지랄한다! 지랄을 해'
'!···. !!!!'
거짓된 여왕의 티아라가 한층 더 밝은 빛을 뿌렸다.
'태고신 자마돈의 두개골을 갈아 만든 자마돈의 절대 왕관이다. 이 왕관을 쓴 자에게 절대복종해야 한다. 네가 흡수한 마릴론의 두개골 조각은 자마돈의 신체로부터 떨어져 나온 고대신 마밀론이다. 자마돈의 왕관에 복종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아, 이제 알겠네. 그 새끼가 말했던 마릴론 조각! 아후! 이 악마 잡것들이 그동안! 이 개호로 자식들이 한통속으로 지랄을 떨어댔구나. 내 이 자리에서 맹세해 주마. 너희 칠죄종 모두를 찢어발겨 주마. 게헤나를 박살 내 버리겠다.'
'너, 넌 누구냐? Deus Ex Machina가 아니더냐?'
'오냐! 씨발 새끼야. 너 잘 걸렸다. 루시퍼 네놈만은 뼈가지 잘근잘근 씹어 주마.'
'뭐, 뭔가 잘못됐어. Deus Ex Machina!'
'씨팔놈이 난 정동혁이다. 이 개새끼야.'
-번쩍
입을 벌리는 순간 쿼크-플라즈마 광선을 내뱉었다. 시냅스로 계산했고 정확히 발동시켰다.
시커먼 어둠을 뚫고 샛노란 광선이 루시퍼를 곧바로 쳤다.
녀석은 그 순간에 텔레포트 하여 내 반대편으로 돌아섰다.
'저 새끼 잡아. 쉽게 죽이면 오히려 내가 섭섭하지.'
내 명령을 알아들은 태고의 악마가 루시퍼를 향해 달려들었다.
-팟
루시퍼는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기척도 없다.
'씨팔놈이 튀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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