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 금도끼 은도끼
옛날이라 하기엔 너무 최근에.
한 과학자가 나무를 하러 갔다가 그만 도끼를 연못에 빠트리고 말았다.
"아아! 세계를 위해 일하고 있었는데 미치겠다!"
과학자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폭력적인 이면이 겉으로 드러나기 직전, 과학자의 노력을 기특하게 본 산신령이 금도끼와 은도끼, 쇠도끼를 들고 앞에 나타나 말했다.
"이 금도끼가 네 것이더냐?"
"아니요. 금도 은도 아니고 제 쇠도끼 들고 계신 거 보이니까 빨리 주시면 안 될까요? 저 급한데."
"허어, 말싸가지는 없지만 최소한 정직하긴 하구나. 너를 위해 세 도끼를 모두 주마."
"이왕 주신다면 납과 구리 도끼를 주시면 안 될까요?"
"아니 왜."
"하늘의 사조성은 읽어도 트렌드는 읽지 못하는군 늙은이. 은과 금의 시대는 끝났어! 지금부터 지구는 납과 구리로 구운 초전도체가 지배한단 말이다!"
"아니 시벌롬아 초전도든 초사이언이든 뭐 어쩌라고. 코쟁이들 기준으로 따져도 고대 그리스부터 존재해 역사와 전통이 깊은 동화가 만만하게 보이냐?"
화를 참지 못한 산신령은 과학자의 머리를 쪼개버리고는 시신을 연못에 던져버렸다.
그러자 룸쉐어를 하던 다른 산신령이 금 과학자와 은 과학자를 들고 올라왔다.
"아이 씨 사람 안 오는 산골짜기라고 꼭 반년에 한 번씩은 시체유기 하러 오더라······. 으엉? 뭐야 최 씨. 최 씨가 던졌어?"
"어휴 말도 마 김 씨. 그 새끼가 우리 시골 촌놈이라고 아주 개무시를 했다니까? 트렌드니 뭐니 하면서."
"참 나 어이가 없어서. 우리는 기원전부터 트렌드였는데."
"그러게 말이야. 요즘 애들은 클리셰를 모른다니까."
"거 어디더라? 이스 머시기? 거기 농부 첫째가 둘째 돌로 때려죽일 때만 해도 순수했었는데 말이여."
"기분 잡치는구먼. 연못 클리닝 끝날 때까지 선녀 클럽 가서 한잔 꺾세나."
"거기도 조심해야겠더만."
"아니 왜?"
"나무꾼이 선녀들 탈의실에서 날개옷을 훔쳤다나 뭐라나? 그 이후로 단속도 빡세졌다나봐."
"말세로구만. 말세야! 마교도 자기네들 영업장에선 도리를 지키건만!"
"하여간 나무꾼들이 문제야."
"에잉. 기분도 꿀꿀하니 마실이나 다녀오세나. 당구라도 한 게임 하세."
"그거 좋구만. 내 바로 오도바이를 꺼내옴세.
풍덩!
산신령이 던진 과학자 3종 세트는 두 번 다시 물 위로 올라오지 않았다. 바닥까지 가라앉은 그는 청계천에서 사 온 애완용 식인 대게와 하수구 악어의 먹이로 사라질 것이다.
한편, 연못 바닥에 있던 할리 데이비슨을 꺼낸 두 신령은 죽여주는 엔진소리와 함께 산을 내려갔다.
사람이 잘 찾아오지 않는 깊은 산 속의 연못.
심연보다 얕은 그곳의 바닥에는 사연 많은 물건이 제법 많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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