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 누구나 아는 동화
"있잖아, 그거 이야기해 줘. 그거."
"어······. 또······?"
"빨리! 빨리이!"
늦은 밤.
사람 하나 살지 않는 바위공주의 섬.
광물 인간이자 유일한 대화상대인 윌슨을 앞에 둔 불사의 현자는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이야기하는 것 자체는 문제도 아니었다.
그저 불사의 현자로선 오래된 이야기를 반복하는 게 귀찮았을 뿐.
***
이건 판타지 세계, 드라코 대륙의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아는 동화.
옛날 옛적보다 더 구체적으로 하자면 인류에게 처음으로 마왕이라 불린 거대한 뱀이 날뛰던 시기.
섬은 아직 무인도가 아니었고, 바위공주의 섬이라 불리지도 않았다.
이곳의 사람들은 음악을 너무 좋아했고, 음악과 노래가 끊이지 않는 이 섬나라는 '멜로디아'라고 불렸다.
작은 섬에 불과한 멜로디아가 노래를 부르고 놀기만 하면서도 높은 성을 쌓으며 부흥할 수 있었던 건 이곳에 세워진 등대 덕분이다.
무한도서관의 등대와 짝을 이루는 이 건물에서 빛을 비추면 어느 곳으로든 향할 수 있었다.
말 그대로 어느 곳으로든.
등대지기 역을 겸하는 멜로디아의 왕족이 빵과 과자가 살아 움직이는 빵타지아로 안내하고 싶다고 생각하며 빛을 비추면, 그 빛을 따라간 배들은 빵타지아에 넘실대는 반죽의 바다에 도달한다.
과학이 발달한 세계의 우주항에 도달하고 싶다고 생각하고 빛을 비추면, 빛을 따라간 배들은 우주항에 입항하게 된다.
뭐, 산소 부족으로 살아남을 수 있냐 없냐는 완전히 별개의 문제고.
황금이 넘치는 해안가로 가고 싶을 때도 마찬가지.
등대가 비추는 곳을 따라가기만 하면 멜로디아의 사람들은 어디든 마음대로 갈 수 있었다.
그건 입항을 돕는 본래의 등대 역할과 정반대였고, 강력한 마법이었다.
따라서 멜로디아의 왕은 나라의 살림이 어려워지면 배에 사람들을 가득 태우고, 등불의 빛을 따라 여행을 다녀오라고 지시하면 그만이었다.
등대에서 환하게 빛나는 등불의 빛이 존재하는 한 멜로디아에 불행이라는 단어는 성립 자체가 불가능했다.
따라서 당연하게도 등대 열쇠를 이어받은 멜로디아의 공주는 불행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너무나도 귀여운 공주는 모두의 사랑을 받았다.
어려움을 모르기에 오직 행복했고.
부족함이 없었기에 왕성한 호기심을 해결하는 데 모든 시간을 쓸 수 있었다.
그래서 공주는 임금님 몰래 열쇠를 훔쳐 등대에 올랐다.
등대 위의 공주는 등불의 빛을 바다로 향한 채 소원을 빌었다.
"불행이 무엇인지 알고 싶어요."
등대는 그녀의 소원을 이뤄줬다.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나라의 왕자가 등불의 빛을 따라 멜로디아에 온 것이다.
왕자는 늘 불행해 짓눌린 것 같은 표정을 하고 있었고, 공주는 그걸 좋아했다. 그녀의 소원에 팔다리가 돋아난 것과 다름없었으니까.
다만, 모든 게 그녀의 바람대로 흐르지는 않았다.
"불행해. 너무 불행해."
"뭐가 그렇게 불행한데?"
"너는 알지 못할 거야. 영원히."
공주가 아무리 접근하고 대화를 시도해도 왕자의 반응은 늘 이런 식이었고, 공주의 호기심은 채워지지 않았다.
나이가 어린 공주의 인내심이 바닥나는 건 그야말로 순식간이었다.
그뿐이랴. 왕자가 몇 번이고 몰래 섬을 빠져나가려 했다는 게 들통나자 공주의 감정은 호기심과 호감에서 분노와 질투로 변했다.
"이제 됐어! 너 같은 건 하나도 안 좋아해! 나는 불행이 뭔지 알고 싶었을 뿐이라고!"
"그렇게 말해도 너는 알지 못할 거야. 불행은 나 혼자만 알 거니까."
왕자는 그 말을 마지막으로 상선에 몰래 올라타 대륙으로 향했다.
마지막까지 불행이 뭔지 알려주지 않은 왕자에게 크게 실망한 공주는 다시 한번 열쇠를 훔쳐 등대에 올랐다.
이번에 올라간 건 빛을 비추기 위함이 아니었다.
해변에서 주운 돌을 쥐고, 등불을 때려 부수기 위함이었다.
등불을 지키던 유리가 공주의 손에 의해 깨지고, 불과 마법이 해방되었다.
마법이 해방됨과 동시에 등불에 인도되었던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갔다.
나라에서는 금은보화가 사라지고, 높다란 성이 먼지가 되었다.
등불의 빛이 공주에게 모든 것을 주었으니, 앗아갈 때도 모든 것을 앗아갔다.
모든 것을 빼앗긴 공주는 등대의 가장 높은 곳에 방치된 바위가 되어버렸다.
노래가 멎었다.
어리석은 공주에 의해 모든 것을 잃게 된 멜로디아는 더이상 노래하지 않았다.
이제 그들은 살기 위해서 일을 해야 했고, 많은 사람이 일하면서 살기엔 섬이 너무 좁았다.
공주가 너무나도 알고 싶어 했던 불행이 이제 온 나라에 가득했다.
결국 사람들은 배를 타고 뿔뿔이 흩어지고, 섬은 무인도로 변했다.
바위공주의 섬이 된 그곳에서 돌들은 노래했다.
자신들이 목격한 멜로디아의 가장 행복했던 시대를.
등대에 남은 바위공주의 미소를.
비로소 불행이 뭔지 알게 된 바보 같은 말로를.
― 백색 마탑 필두 삼현자 공저, 『바위공주』에서 일부 인용.
***
이것은 바위공주의 이야기.
굳이 알 필요 없었던 것을 알려고 노력한 한 소녀의 멍청한 판타지.
판타지 세계의 사람들은 누구나 그 결말을 안다.
심지어 멸망한 나라의 잔해 위에서 일광욕과 월광욕을 즐기는 바위조차 말이다.
누구나 알았으나, 누구도 멜로디아가 실제로 존재하는지 알아보려 하지 않았다.
그야 바위공주의 이야기는 동화였으니까.
바위공주의 이야기를 듣고 자란 아이들과, 그 이야기를 해준 부모 세대에 있어 멜로디아는 존재하지 않는 나라였다.
- 작가의말
간만에 제법 늦은 업로드가 되었습니다.
기다려주신 모든 분들께는 작게나마 사과드립니다.
이번 회차에 바위공주 얘기를 미리 풀어두지 않으면 좀 곤란할 거 같아서 살짝 애먹었네요.
그리고 별개로 노벨피아 이벤트 참가를 위해 '환생했더니 던전 그 잡채가 되었다'라는 글을 쓴 탓도 있고요.
네. 사실 이게 제일 큰 이유네요. 저쪽 먼저 쓰고 멍판을 쓰려니 의외로 일정이 빠듯하지 뭡니까.
여하튼 노벨피아 독점으로 올리는 던전 얘기는 주인공이 10평짜리 '던전'으로 환생해 거대던전이 되어간다는 식의 던전성장물이오니, 그쪽도 관심 가져주시면 대단히 감사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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