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 해와 달이 되지 않은 오누이 / 요리 3
아마도 옛날 옛적에.
오누이의 모친을 잡아먹은 호랑이는 기어코 오누이만 있는 집까지 찾아갔다.
오누이의 집을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한국 호랑이는 조선 시대 이전부터 창귀를 다루는데 능했던 네크로맨서 혈통. 모친의 혼을 부려 오누이의 집을 추적하는 건 쉬운 일이었다.
아이들을 속이고 집 안으로 들어가는 것 또한 쉬우리라.
사실 힘으로 문을 부수고 들어갈 수도 있지만, 호랑이는 디저트에 절망이란 이름의 테이스트를 추가하고 싶었다.
'어머니인 줄 알고 문을 열었더니 호랑이가 나타난다. 그때 느끼는 감정이야말로 최고의 MSG일 터.'
호랑이는 교활한 미소를 지으며 손에 밀가루를 묻혀 사람처럼 희게 만들고, 창귀를 통해 어미의 성대를 완벽히 모사했다.
"얘들아, 엄마 왔단다. 문 열어주렴."
"저희 엄마라면 말하지 않고 들어오실 텐데요?"
"엄마가 일을 너무 열심히 했더니 손이 부어서 문고리도 잡기 힘들단다. 자, 문을 조금 열고 보려무나. 정말로 많이 부었거든."
"거짓말하지 마세요. 저희 엄마는 이 시간이면 술에 취해서 돌아오신 다고요."
" "
"어제 엄마한테 맞은 멍이 안 사라졌다고요. 보실래요?"
"에구머니나!"
오누이 중 오라비가 문을 열고 팔을 내밀자 호랑이는 화들짝 놀라 펄쩍 뛰었다. 때릴 것도 없어 보일 정도로 앙상하게 마른 팔이었고, 맞은 부분만 시퍼런 멍이 들어 퉁퉁 불어있지 않던가!
이건 뭔가 잘못돼도 단단히 잘못됐다. 그렇게 생각한 호랑이는 목에 붙어있던 창귀를 떼어내 물었다.
"애들 꼴이 말이 아닌 거 같은데, 대체 생전에 무슨 짓을 한 거야?"
"그, 그게 일하다 스트레스를 받다 보니 술김에 그만."
"일하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다른데다 풀었어야지."
"밖에서는 사람들 눈치를 봐야 하잖아요. 돈도 들고."
"아니. 다른 사람 시선보다 자기 가족이 우선인 게 당연하지 않아?"
"애들만 조용히 있으면 아무한테도 안 들키는데, 왜 돈을 쓰겠어요?"
"세상에나. 내가 사람이 아니라 짐승만도 못한 오물을 먹었구나. 나는 타락해 버렸어!"
자식을 가질 자격이 없는 자를 발톱으로 찢어버린 호랑이는 오누이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활짝 열린 문 너머에 오누이는 없었다. 문 앞에 있는 게 호랑이라는 걸 알게 된 오누이는 나무 위로 도망친 뒤였다.
"대체 거긴 어떻게 올라간 거야?"
체력도 없어 보이는 몸으로 어떻게 올라간 거냐며 경악한 거였지만 순진한 누이는 그 말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머리를 짜내 답했다.
"손에 참기름을 발라서 올라왔지!"
"어이쿠. 그렇구나. 아주 똑똑한걸."
말도 안 되는 거짓말에 속아 넘어갈 정도로 바보가 아니었던 호랑이는 나무에 발톱을 박아넣었다. 굳이 힘을 들일 것도 없었다. 호랑이의 덩치면 가볍게 뛰어오르는 것만으로 오누이가 있는 위치까지 올라갈 터였다.
그걸 알아차린 오라비는 하늘을 향해 빌었다. 자신들을 가엽게 여긴다면 옛날이야기처럼 동아줄을 내려달라고 말이다.
그러자 기적이 일어났다.
그 옛날 해와 달이 되었다는 오누이의 이야기처럼 하늘에서 정말로 동아줄이 내려온 것이다.
그러나 아이들이 동아줄을 잡고 하늘로 올라가는 일은 영원히 없었다.
호랑이가 그렇게 두지 않았다.
오누이가 동아줄에 닿기 전에 날렵하게 뛰어오른 호랑이는 젤리 발바닥으로 오누이를 끌어안고 바닥을 향해 추락했다.
발로 착지했다면 아무런 충격 없이 부드럽게 내려앉았겠지만, 오누이가 다칠 걸 염려한 호랑이는 다리 대신 등으로 떨어지는 걸 택했다.
고양잇과로서 있을 수 없는, 멍청하기 짝이 없는 선택. 묵직한 충격음이 뒤를 이었다.
"카학! 어, 어린애들이!"
충격 때문에 말하는 게 쉽지 않았지만, 호랑이는 폐를 쥐어 짜내 말했다.
"어린애들이, 벌써부터 하늘에 올라가겠다니 어쩌니 말하는 게 아니야! 애들은 행복하지 않으면 맛이 없단 말이다! 젠장! 디저트 먹으려다 입맛만 버렸잖아!"
***
그날 이후 호랑이는 결심했다.
이 오누이를 제대로 조리해서 최고의 만찬을 즐기겠노라고.
"듬뿍 먹어라! 다이어트가 좋다는 건 개소리야! 살이 찌면 그만큼 근육을 늘려라! 애초에 너흰 더 먹어야 해!"
호랑이가 자리 잡은 오누이의 집에는 산과 숲의 진미가 매일 끊이지 않았다. 아이들이 먹을 걸 가져오면 한동안 사냥하지 않겠다는 호랑이의 약속에 토끼며 멧돼지 등이 각종 식재를 가져왔기 때문이다.
작게는 나물과 열매. 비싸기로는 백년삼과 트뤼프(서양 송로)까지.
가끔은 호랑이 본인도 사냥 후에 뽑아온 녹용을 달여 보약을 지어 먹이기도 했다.
"옛사람도 과거급제를 목표로 했거늘. 너희도 고관대작을 목표로 하는 게 맞지 않겠느냐?"
"하지만 나하고 누이는 학원은커녕 학교도 잘 나가보지 못했는걸."
"그래서 뭐가 어쨌다는 거냐. 꿈도 없이 늘어진 녀석은 맛도 떨어져. 옛말에 호가호위라 하였다. 호랑이가 뒤에 있는데 너희가 못할 게 뭐가 있느냐!"
"···호가호위가 그럴 때 쓰는 말이었어?"
"물론이지. 호랑이가 들어가는 사자성어인데 사람보다 호랑이가 정확하게 쓰지 않겠느냐?"
호랑이는 오누이를 가장 좋은 학원에 보냈다. 돈이라면 차고 넘쳤다. 산과 숲의 왕인 호랑이가 품질을 보증한 영약과 짐승 가죽, 길이 5미터의 구렁이만 잡아 팔아도 오누이의 통장 계좌에서 돈이 떨어지는 일은 없었다.
오누이가 학창 시절을 보내는 동안 부모가 없다 해서 놀림거리로 찍히거나 괴롭힘당하는 일은 없었다.
아이 일에 지나치게 개입하는 부모를 막장 부모나 몬스터 페어런츠라 한다지만, 이쪽은 리얼 짐승이다. 교사 외에 오누이를 괴롭힌 녀석이 있다면 호랑이는 상대의 집에 가서 철문을 찢어버릴 수 있었고, 실제로 그랬다. 짐승에게는 인간의 법도가 통하지 않으니 고소도 불가능했다.
"하라부지. 같이 곶감 먹자!"
"에이이잇. 이 먹기도 어려울 만큼 쪼끄만 디저트가 뭐라는 거냐. 어, 어이! 이 녀석에게서 흉하게 썩은 감을 몰수해라!"
"하하. 애가 나눠 먹자는데 그냥 받지 그래?"
"세상 어느 호랑이가 곶감을 먹느냐! 선조님도 마늘과 쑥만 먹다가 때려치웠다 하거늘! 비건 호랑이는 호랑이가 아니야!"
"하라부지! 어부바!"
"에이이이이잇! 몇 번을 말해야 아느냐 어리석은 것! 호랑이는 탈것이 아니란 말이다!"
"그렇게 말하면서 매번 잘만 태워주네. 그치 누이야?"
"후후후. 그러게요 오라버니."
충분히 자란 오누이에게 자식까지 생겼고, 집도 호랑이가 다리 펴고 자도 될 만큼 큰 곳으로 이사했다.
분명 지금이 행복의 절정기.
잡아먹힌다면 바로 지금이리라.
오누이는 죽음이 두렵지 않았다. 호랑이가 없었다면 훨씬 전에 죽었을 것을 알기에 그저 감사할 따름이었다.
뿐만 아니라 자신들이 죽더라도 호랑이가 자식들을 길러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사람들은 미쳤다고 했지만, 호랑이와 오누이 사이의 믿음은 매우 깊었다. 세간의 시선이나 언제 먹힐지 모른다는 죽음의 공포마저 대수롭지 않게 여길 만큼 깊었다.
그러나 비정상적이든 비정상적이지 않든. 모든 관계에는 항상 끝이 도래한다.
"호랑아. 일어나. 왜 움직이지 못하는 거야!"
"호랑아. 호랑아!"
"큭, 큭큭큭. 너희가 이 몸을 걱정하려면 아직 십 년은 이르다."
호흡이 불규칙하고, 약해져 간다.
탁해진 눈동자는 앞이 제대로 보이는지조차 의문이다.
숨소리와 기세는 크고 오래 산 호랑이보다 갓 태어난 새끼고양이를 연상시킨다.
호랑이는 태어난 직후만큼 약해진 채, 모든 생명이 딱 한 번 경험하는 순간을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그건 이상한 게 아니다.
오히려 오누이를 기른 호랑이보다 훨씬 자연적인 흐름이었다.
호랑이는 죽어가고 있었고, 누가 봐도 끝이 바로 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누이는 체온을 잃어가는 그의 앞발을 쥐었다. 그러고는 자기 목에 가져다 대며 말했다.
"넌 나하고 오라버니를 먹기로 했잖아? 호랑이는 거짓말 안 하지?"
"아아, 호랑이는 거짓말을 안 하지. 거짓말은 사람이 하는 거니까."
"그러면 먹어! 지금 당장 일어나서 먹으라고!"
"무슨 말을 하는지. 크큭."
그의 입가가 희미하게 흔들렸다. 얼핏 보면 단순한 경련 같았지만, 그의 죽음을 가볍게 넘길 수 없을 만큼 오랜 시간을 함께해 온 오누이는 그가 웃고 있다는 걸 단번에 알아챘다.
"이미 먹었어. 실컷······. 배가 터질 만큼 실컷······. 어떤 호랑이도 맛보지 못했을 단맛이었어."
"바보야. 고양잇과가 어떻게 단맛을 알아?"
"아니. 이건 단맛이다. 내가 그렇게 정했다. 누구보다 내가 잘 알아. 그야 너희는 내가······."
뒷말은 이어지지 않았다.
직접 조리한 최고의 만찬을 긴 시간에 걸쳐 만끽한 그는 한 줌의 미련도 남기지 않은 채 떠났다.
가장 높은 땅을 향해. 꼬리를 흔들면서.
평생을 통틀어 가장 긴 여행이 되겠지만, 푸짐한 식사를 마친 그가 굶주릴 일은 없었다.
- 작가의말
크아아아악! 누구냐! 인간 쓰레기 하나 만들어 놓고 개그로 끝내도 될 이야기에 수명물 최루탄을 터친 멍청이가!
아뿔싸! 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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