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4화 – 돈이 깔린 판에, 사람 사이가 좋을 수가 없다(2)
예상치 못한 변수로 말미암아 모든 것을 잃었다 여긴 정원이 내린 선택.
그로 말미암아 소식을 듣게 된 위속은 이제 막 호수 옆게 게르를 세운 여포를 찾을 수밖에 없었다.
“여 주부, 병주목이 온답니다.”
“어쩐지, 일이 너무 순조롭게 돌아간다고 했지.”
“말도 없이 움직인 것은 저흽니다. 양해도 없이, 연락도 없이 저들의 목표를 선점하였으니 이는 필경......”
서억-
그러나 말은 그리하고 있음에도 여전히 자신이 게르를 설치한 땅의 모래를 한 움큼 쥐고 있는 여포의 눈은 도리어 빛나기만 했다.
“그래도 이 땅이 이젠 우리 것이 되었다. 우리의 땅이야.”
“병주목과의 충돌을 각오하시겠다는 겁니까?”
“실상, 저수의 뜻에 따르긴 하였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이에 대한 욕심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
“필경 양부께서 화를 내실 겁니다.”
“양아버지라, 그래도 나는 이해해주시리라 믿는다.”
“만일 그렇지 않으면......”
“각오는 해야지.”
두두두두-
“왔구나.”
그렇게 때마침 들려오는 말발굽소리와 더불어 엄청난 양의 흙먼지가 사연택을 덮쳤다.
정원이 여포의 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푸르르릉-
“오래만에 뵙겠습니다, 양부.”
“나가라.”
그러나 오랜만에 마주하게 된 정원은 여포의 생각보다도 더 차가웠다.
“예?”
“이곳은 나의 땅이다.”
“그게 무슨......”
“이놈이 제 편할 때만 아비라 나를 우러르더니 이제와 제 잇속 앞엔 아비고 뭐고 없다는 게냐!”
푸히히히힝-
앞발을 추켜세운 전마의 위협적인 발길질과 더불어 그 위에 자리한 정원의 진노가 그 아래 자리한 여포에게도 전해졌다.
그러나 여포는 여포 나름대로 정원에 대한 실망감을 금할 길이 없으니 대저 이곳에 자신을 이해해 줄 양아버지는 더는 존재하지 않았다.
“양부, 아니 저에게 일말의 미안함도 없으십니까!”
“미안함이라니? 내가 네놈에게 왜 미안해야 한단 말이냐?”
“양부께서 이해해주실 줄 알았습니다! 내가 세 살배기 애도 아니고 내 딴에 비장 좋아한다고 투정을 부리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도 정말 그리 자신이 얻어낸 호칭마저 제게 스스럼없이 내어줄 줄은 몰랐습니다! 해서 고마운 마음에 그리 한 겝니다. 이 정도 되는 양반이면 그래도 제법 수하를 생각하겠구나, 호인이고 대인이구나 해서 말입니다!”
“그래서! 네놈이 나의 수하임에도 그놈의 가랑이 밑을 기어? 그게 무슨 의미인 줄은 알고 있느냐! 그게 뭘 뜻하는지는 알고 있는 게야 이 무지몽매한 것아!”
“내가 왜 모릅니까! 내가 왜 무지몽매한 것입니다! 어차피 당시에도 양부 또한 그런 포홍을 상급자로 섬기고 있지 않았습니까! 한데 이게 뭐 어때서요! 그리고 사람 치졸하게 그러는 거 아닙니다! 내 잘못을 멋대로 덧씌워 나를 빌미로 포홍에게 이득을 뜯어내요? 그럼 내 체면은 뭐가 됩니까! 이 병주의 비장 여 봉선이의 채신머리가 뭐가 되냔 말입니다!”
실상 여포가 가장 화를 낸 부분이 바로 이 대목이었다.
자신의 자의적 판단과 결정이 도리어 세간에 그릇된 선택으로 비치게 만들며, 저 스스로는 홀로 그 어떠한 결정도 제대로 내릴 수 없는 덩치 큰 병신이자 애새끼로 매도해버린 것이 가장 열이 뻗치는 부분이었다.
거기다 사람이 치졸한 것도 정도가 있지 이를 빌미로 흉노에 대한 토벌을 당당히 요구하는 것은 물론, 그 무역로까지 멋대로 끌어오는 무리까지 저지르는 행위는 가히 강탈에 가까웠다.
일찍이 저수가 길길이 이를 갈며 날뛴 것도 절로 이해가 갈 만큼 말이다.
“닥치지 못할까, 이놈! 그런 네놈이야말로, 나를 업신여기다 못해 능멸을 하는구나! 네놈이 그리 나오는 것 자체가 네놈이 글러 먹었음을 증명하는 게다! 네 놈의 체면은 중요하면서 왜 다른 이들의 체면은 중요하다 생각을 못 해! 네놈 때문에 내가 포홍 놈 밑의 개가 되지 않았더냐? 나의 위신에 금이 간단 말이다!”
하지만 정원이라고 할 말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마냥 흔들리지 않을 충성심을 보이며 저를 아비처럼 떠받들고 과거로부터 이어진 친분으로 늘상 사이가 좋았던 여포였다.
그런데 뜬금없이 포홍에게 무슨 칭호와 무구를 내려받더니 덜컥 멋대로 그 소속을 뒤바꾸는 발언을 일삼으니 이를 두고 어찌 의심을 하지 않을 수 있으랴?
거기다 그것이 설령 자의였다고 한들, 그 또한 자신을 무시하는 처사였으며 자신의 위신을 떨어트리는 일이었다.
“양부”
“더는 양아버지라고도 부르지 마라!”
“싫소!”
“뭐라? 싫어? 네놈이 정녕 미쳐도 단단히 미쳤구나? 왜? 이제와 내 돈방석을 깔고 앉은 건 좋아도, 막상 나를 적대하게 되니 그건 또 싫은 게냐!”
“그렇소!”
“뭐, 뭐라!”
실로 정원은 머리가 쪼개질 듯 했다.
후안무치도 정도가 있어야지, 어찌 머리가 달린 사람이 이리 뻔뻔하게 나온단 말인가?
“여 봉서어언!”
“무역로 좋소? 하시오! 내 적정한 통행세만 내면 아무런 말도 안하리다! 허나 내 다른 건 몰라도 양부와 옹주목의 사이가 틀어지는 건 못 보겠소! 그래서 내가 여기 있을 거요! 내가 여기서 두 사람의 분쟁을 막을 거요!”
“이 정신 나간 놈아! 네놈이 저지른 짓으로 말미암아, 이미 동탁이 사라진 것으로 말마암아 그와 나의 관계는 이미 어긋난 것이야! 어찌 이를 모르더냐!”
“애초에 욕심이 과하신 것은 양부요! 파렴치한 것도 양부고! 이미 옹주목 또한 자신의 잘못에 대한 사과와 배상으로 이를 뛰어넘을 이득을 양부께 선사한 것 아니요! 삼만의 흉노를 정리하는데 힘을 보태는 것은 물론, 서방에 돈줄마저 끌어주는 이러한 경우가 어디에 있소! 이건 도리어 양부의 강탈이오! 그것도 나를 핑계로, 나를 인질 삼아 벌이는 더럽고 추악한 도적질이란 말이요!”
도적질, 살다 살다 저 여포에게 저러한 말을 듣게 될 줄은 또 몰랐다.
“정녕 네놈이 나와의 파국을 각오하는구나.......”
“내가 그대를 양부라 부르며 따랐던 만큼 그대도 나를 이해해 줄 줄 알았소. 한데 이제 보니 아니었구려.”
“파렴치한 놈, 후안무치하고 이기적인 네놈은 그 본성 때문에 죽게 될 것이다.”
“이젠 아예 나를 저주하려는 게요?”
“다 끝난 자리에 뭔 그리 집착을 하느냐?”
“나는 진심을 담았소, 지금 또한 마찬가지고.”
“그 진심보다 더 좋은 것이 돈이겠지. 네놈은 결국 나의 것을 앗아갔다.”
“나는......”
푸르르릉-
그렇게 여포의 그 마지막 말조차 듣지 않은 채, 정원은 모든 것을 내려놓은 무심한 얼굴로 말머리를 돌렸다.
더 이상의 화도 분노도 그 어떠한 잔여 감정도 없이 마치 남을 대하듯 그리 여포를 비롯한 이들을 뒤로한 것이다.
거기다 그런 정원을 따르는 장수들 또한 하나같이 여포에 대한 적의를 드러내며 제 주인인 정원을 따라 멀어졌다.
그들 또한 여포를 향한 실망감을 금치 못한 것이다. 그에 대한 배신감과 분노는 덤이고 말이다.
두두두두-
“위속.”
그렇게 멀어지는 정원의 무리를 지켜보던 여포는 답답한 마음을 씻지 못한 채, 제 친족인 위속을 불렀다.
“예, 형님.”
“내가 잘못한 것이냐?”
“솔직히 각오는 하셨던 것 아닙니까?”
그러나 이미 늦었던 것일까?
막상 그러한 질문에 답을 하는 위속의 표정은 이미 모든 것을 체념하고 있었다.
“그래도 반 정도는, 사연택의 반 정도는 나눠줄 생각도 있었다.”
“태양도 하나고 하늘도 하나지요. 권력도 하나고 다 마찬가집니다. 결국 더 많은 걸 추구하는 자들에게 나눈다는 건 더한 분쟁만 불러일으킬 뿐이지요.”
“그렇구나.”
“애들부터 모으겠습니다.”
“뭐?”
“형님, 이제 형님은 저치와 아무런 사이가 아닙니다.”
“그게 무슨 말이냐, 위속!”
“겨우 얻어낸 독립이고 운이 좋아 얻어낸 땅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를 내놓기를 거부했지요. 차라리 아까 내어놓았으면 모를까? 이제는 아니지 않습니까?”
“제기랄.”
그제야 현실이 실감 되었던 것일까?
여포는 이내 자신을 덮치는 현실에 지끈거리는 두통을 느끼며 손으로 제 얼굴을 덮어버렸다.
자신이 저지른 일의 무게가, 그저 자신의 사고 속에서는 이렇지 않았던 일들이 이리 비틀리게 되니 그 압박감과 불편함이 계속해서 자신을 찌르고 있었다.
“어차피 흉노의 이들은 아니었어도 이 땅엔 벌어질 전쟁이었나 봅니다.”
“내가, 내가 어찌하여야 하느냐?”
결국, 그런 여포가 의지할 곳은 그나마 제 수하라 할 수 있는 이들 중에 제일 머리가 좋으며 세상 돌아가는 눈치를 알고 있는 위속 뿐이었다.
“당장에 하내에 사람을 보내 도움을 요청하십시오. 하내가 멀면 북지에서라도 도움을 받아야 하나 이제 막 독립한 저희를 두고 옹주에선 도리어 미적지근한 반응을 보일 수 있으니, 결국 하내에 자리한 저수의 가랑이를 붙잡고 늘어지는 수밖에 없습니다.”
위속 또한 이를 알기에 그에 대한 답을 주었으나 여전히 여포는 그에 대한 불만이 먼저였다.
“제기랄, 이래서야 무슨 독립이더냐? 이래 가지고 무슨 분쟁을 막아!”
“그래도 아직 근방에 자리한 소규모 부족들이 많습니다. 최대한 끌어모은다면 얼추 병력은 나올 겁니다.”
“하지만 그래서야......”
“예, 또다시 귀속이나 다름없지요. 허나 오늘이 있어야 내일도 있는 법입니다. 거기다 하내에 묶여있어 답답했던 것도 여기선 아니지 않습니까? 이 땅마저 사라지면 그땐 또다시 하내로 기어들어 가야 합니다.”
“제기랄.”
결국, 자신에게 남은 선택지는 하나뿐이었다.
어떠한 일이 있어도 사연택은 넘겨줄 수가 없었다.
그래, 딱히 자유를 갈망하게 된 원인 또한 마치 목줄을 찬 개마냥 주인의 허락 없이 아무것도 못하는 신세가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무장임에도 전쟁과 전투는 없었고, 결국 할 짓이 없어 계집질이라도 하며 버렸는데 그 계집질 또한 문제가 있다며 사방에서 문제가 터졌다.
하내의 민심은 이미 여포에게 돌아선 지 오래였고, 여포 또한 그런 하내의 사족들과 귀족들이 껄끄러웠다.
거기에 지랄 맞은 저수도 있으니 얼마나 불편하겠는가? 그곳에 다시 들어가기는 싫었으며 그곳에서 이름을 날리지 못한 채, 바스라지는 것 또한 싫었다.
“그래도 희망은 있지요.”
“희망?”
“병주는 오롯이 정원 혼자가 쥐고 있는 땅이 아닙니다.”
“.......!”
그리고 여포는 지금 희망을 보았다.
“수십 만의 굶주린 도적들과 화전민들은 아직도 더 많은 부와 풍요를 바랍니다.”
“좋아, 버티면 된다는 말이냐! 내 당장에 사람을 보내겠다!”
이미 여포와 정원에 갈등은 당사자인 이들이 인식하기에도 국지적 측면을 뛰어넘고 있었다.
그렇다면 정원이 보낸 민공 측은 어떠했을까?
* * *
“그게 무슨 말입니까? 군사훈련을 핑계로 여포가 뛰쳐나갔다니요?”
“말 그대로요, 이야기가 나올 즈음에 병력을 이끌고 훈련을 핑계로 성을 나섰소. 그 뒤로 돌아오지 않았지. 한데 사연택이라니, 그러한 이야기는 처음 듣게 되었소.”
“그 말씀은......”
“뭐, 이미 이쪽의 손을 떠났다고 봐야지.”
사연택으로 내달린 정원과는 달리 남쪽으로 내려가 천정관 너머에 자리한 하내에서 저수를 마주한 민공은 이내 어이가 없을 소리를 들여야 했다.
그러니까, 이를 정리하자면 포홍의 서신을 받고 난 이후 이게 공론화되는 도중에 여포가 이 사실을 알고 본래 제가 이끌던 병력들과 함께 일을 꾸며, 성문을 열고 하동을 지나 사연택으로 북상했다는 것이다.
“정말입니까?”
“허면 내가 거기다 거짓을 더하라는 거요?”
허나 그럼에도 민공은 여전히 자신도 놀랐다는 얼굴을 하고 있는 저수의 가증스러운 가면을 믿지 않았다.
“좋습니다, 허면 하내는 이에 아무런 책임이 없다는 말씀이시지요? 도리어 피해를 본 상황이고 말입니다.”
“그렇소.”
“허면 잘 되었습니다. 원 역사대로 약속을 이행하시지요. 흉노 대신 같이 힘을 합쳐 여포를 밀어버립시다.”
“........!”
그리고 역시나 그리 상대를 떠보는 민공의 노림수에 저수 또한 조금은 놀란 듯 보였다.
물론, 그 찰나는 잠깐이라 이제와 애써 침착한 모양새를 하고 있으나, 암만 그대로 양아버지와 양아들 관계의 이들이 이리 빠른 시간 내에 멋대로 전쟁을 벌일 줄은 몰랐던 모양이었다.
“자, 잠깐! 내가 이해가 아니 가서 그러는 것이온데, 병주목과 여 봉선의 관계가......, 그? 다른 이들에 비해 더 친밀한? 그, 뭐랄까? 가족 같은 관계가 아니었소?”
“맞습니다.”
역시, 저수의 반응은 민공의 예상을 벗어나지 않았다.
정녕 사실 여부가 어찌 되었는지는 몰라도 기왕 벌어진 일이 묘하게 돌아가고 있으니, 여포와 정원의 조금 특별한 관계에 의존해 그 둘로 하여금 시간을 벌고 사연택의 일을 거진 무마시키려는 행동이었다.
“헌데도, 가족 같은 이를 그리 멋대로 공격해도 되는 것이요? 병주가 암만 상황이 급하다지만 세간의 눈이란 게 있지 않소? 어느 아버지가 제 자식을 공격한다는 게요, 그것도 무슨......”
“패륜을 저지른 자식입니다. 나라에 충성하지 않으며 사욕을 앞세웠고 이는 나라에 해가 되는 행위를 저질렀기 때문이지요.”
“그게 무슨.......”
“아직 소식을 듣지 못하신 모양인데, 작금의 여포를 따르는 무리 중엔 흉노를 비롯한 이족들이 아주 많습니다. 특히 남흉노의 이들이 그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데 결국 그러한 이들을 휘하 무리로 받아들이는 것 자체가 문제이며 그 저의가 의심스러운 것이 문제입니다. 병주와 옹주를 포함에 이땅에 살아가는 이들이 흉노로 인해 얼마나 많은 피해를 입었습니까? 원수도 이러한 철천지 원수가 없는데 도리어 그자는 흉노를 제 사병으로 받아들이며 점점 힘을 키워가고 있습니다. 실로 이상하지요?”
“허나, 이는 도리어 구심점을 잃고 흔들리는 남흉노의 잔당을 수습한 일일 수도 있으며 작금에 이르러 벼슬을 받고 한화된 이들이 많을진대, 이를 도리어 무조건 흉노라 매도하는 것은......”
“문제는 또 있습니다. 혹시 모를 오해를 방지하기 위한 태수님의 식견도 일리는 있으나 작금의 병주는 남흉노의 이들의 습격으로 말미암아 그 북방이 초토화된 상태입니다. 수많은 군민들이 죽었고 수많은 이들이 노예마냥 끌려간 것도 모자라 가축과 곡식들을 비롯한 재물과 물산까지 약탈을 당했지요. 한데, 이러한 상황에 여포는 남흉노의 이들을 수하로 불러 들이고 있습니다. 이게 정녕 제정신입니까? 심지어 그는 병주 오원 출신의 인사입니다.”
“그건.......”
“되먹지 못한 자도 이리 되먹지 못한 자가 없지요. 제 고향 사람들이 피눈물 흘리는 와중에 그리 제 고향 사람들을 모조리 죽인 원수의 잔당들을 지금도 수하로 받아들이는 자입니다. 거기다 국책사업이라 할 수 있는 서역 무역로의 계획 또 기존의 옹주목과 병주목의 동의 하에 추진된 일입니다. 말 그대로 병주인들의 번영와 풍요를 위해 계획된 일이라 이거지요. 한데 여포는 이를 멋대로 뒤엎었습니다. 그 중심에 자리한 사연택에 멋대로 자리를 잡고 그 수익을 홀로 독차지하려는 불충의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게 어디 정녕 이 나라를 위하는 신하된 이의 모습입니까? 황상께서 이를 보신다면 과연 뭐라 하시며 혀를 차시겠습니까?”
“........”
‘당했다.’
작금의 상황에 더 이상 여포를 구제해줄 건덕지가 없어 말문이 막힌 저수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차라리 전쟁이나 전략적 일이라면 몰라도 정치적 사안과 도리, 백성들을 들먹이는 것에서부터 고향과 출신을 운운하고 거기에 충성마저 들먹이는 천편일률적인 매도에 크게 힘을 쓰지 못한 것이 컸다.
거기다 작금의 대화를 지속하면 지속할수록 민공은 더한 명분을 쌓아가고 있었다.
하나씩 정리되며 명문화되는 그 정당한 요인들이 점점 더 여포를 치는 것에 대한 정당성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래서 드리는 말씀입니다만, 함께 치시지요? 무엇보다 그자가 옹주목의 약속을 비틀었으니 이를 업신여긴 것이나 다름이 없게 되어버리지 않았습니까? 옹주목께선 그자에게 일찍이 많은 호의를 내려주신 것으로 압니다. 허나 지금에 상황은 어떻습니까? 잘해주면 도리어 상대를 업신여기는 잡니다. 그런 자는 도리어 옹주목께도 좋지 않아요.”
이에 그치지 않은 민공은 포홍의 체면과 위신이 달린 일이라며 저수를 압박했다.
그러나 저수로서는 이것만큼은 막아야 했다. 그렇다고 한들, 포홍의 체면과 위신이 흔들리는 일도 없어야만 했다.
“송구한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만, 아직 모든 것이 확인이 되지 않았습니다. 또한 수하를 두고 있는 이는 그에 대한 믿음이 없어서는 아니 되는바, 작금의 주공께서 그 작은 의중만으로 수하된 이를 도리어 쳐 버리신다면, 이는 반대로 주공께서 옹졸한 사내가 되어버리시는 격이지요. 신하된 이로 그런 불충을 주공께 지을 수 없으니 지금의 발언은 못 들은 걸로 하겠습니다.”
“허면, 작금의 사안에 대한 책임은 어찌하시려고 그러십니까? 수하된 이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 멋대로 하내에 자리하던 여포가 탈출해 지금에 이른 것은 결국 태수된 분의 관리 소홀이 아닙니까?”
“.........”
그래서였을까? 눈치 빠른 민공이 이제는 그 공격의 대상을 전환했다.
어느 쪽이든 막히고 있으니 어떻게든 그 명분을 쌓는 것으로도 모자라 이제는 아내 하내에 자리한 자신을 치워버리려 하고 있었다.
‘보통 식견이 아니군.’
이 민공이라는 자, 지난날의 주공과의 협상을 성공시킨 이라 들었다.
그때 든 확신은 가히 지금에도 저수를 놀랍게 만들고 있었고 그 빠른 시간 속에 저수는 그에 맞설 답을 내어놓아야 했다.
“허나 이 모든 것은 결국 병주목의 일방적인 주장일 뿐이지요?”
“........!”
“저희는 병주와 상당한 거리가 있을뿐더러 사연택은 하동과도 막혀있으니 이는 단절된 섬과도 같은 상황입니다. 아닌 말로 남으로는 황하가 있고, 동쪽으론 기수가 흐르며 북쪽으론 병주가 있고 서쪽은 하동이 있는데 저희가 병주 상군에서 벌어진 일을 모조리 알긴 어렵지요?”
“그 말씀은.......”
“송구하오나 공신력이 없다 판별이 없다 생각되오니 이를 확인할 말미를 지녀야겠습니다. 또한 한쪽의 일방적 주장은 필경 오해를 부르는바, 이와 관련한 조사를 따로 실시할 것이오니 그런 줄 아시고 돌아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쿠웅-
그렇게 성문이 닫히며 하내에서 쫓겨난 민공은 노골적인 축객령에 조금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정면돌파인가? 한데, 너무 정석적인 대처라 더는 따져 물을 수 없었던 것이 더 어이가 없군.”
그렇게 민공도, 저수도 서로를 향한 한방씩을 주고받은 채 헤어졌다.
명분은 쌓았으나 하내에서 결정적인 이득을 취하지 못한 민공은 그런대로 아쉬운 상황이었고, 이리 빨리 예상치 못한 분쟁이 터질 줄 몰랐던 저수는 당장에 하내에 비상 소집령을 내리며 드리워질 암운에 대한 모든 가능성을 되짚어보고 있었다.
“필경 판을 볼 줄 아는 놈이다. 그렇다면 예서 그칠 놈이 아니야.”
저수가 기억하는 민공은 자신과 같은 병서에 능한 인물로 보이진 않았다.
그 이간질은 물론이고, 협상에 뛰어드는 자세 또한 가히 이질감이 드는 것이 지난날 자신이 상대하던 정립과는 달랐다.
“이놈은 정치적인 놈이다, 섬세하진 못해도 더 저열하고 본능적으로 대상을 상대한다. 미끼가 없어도 낚싯줄에 갈고리를 걸어 이를 낚아채 고기를 쳐 올리는 놈이야. 정원이 이런 놈의 의중을 따라 준다면......”
어느덧 걱정 속에 지도를 펼쳐 놓은 저수의 눈이 사례를 향했다.
“황명을 증명할 수 없는 사례라고 한들 겉으로나마 황제에게 충성하는 이들이며 황제의 직할령인 사례는 그런 황제의 결단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지.”
자신이 태수의 직에서 물러나 하내를 빼앗기는 일도, 여포가 일방적으로 매도되어 토벌되는 일도 저수에겐 옳은 그림이 아니었다.
이는 포홍에게도 마찬가지이며 이는 곧 사례에 자리한 이들과, 그런 사례와 연수를 하는 병주의 이들에게만 좋은 결과를 보장할 것이다.
“제기랄, 결국 기댈 수 있는 곳은 주공뿐인가?”
홀로서기를 각오한 저수였으나 저들의 사례를 움직인다면, 이쪽 또한 그에 걸맞은 군형추가 필요했다.
“아니야, 혹시 모르니......”
결국, 그날 밤 하내에서 출발한 전령은 야음을 틈타 삼보로 또 멀고도 먼 서역으로 내달렸다.
“제발, 내가 최악을 상정한 것이 아니길 바라마.”
어느새 저수가 비춘 촛불 속엔 옹주와 량주 그리고 사례와 병주가 자리하고 있었다.
- 작가의말
이제 판이 조금 커집니다.
갈등과 충돌에 앞선 판도도 조금 정리가 된 듯 보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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