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8화 – 블랙 마운틴 밴딧 인베이전(2)
사방에 시뻘건 불길이 일었다.
새카만 연기가 하늘을 뒤덮고, 멀쩡한 기와와 초가를 찾기가 힘들 지경이었다.
“이 개썅놈의 새끼들, 저 홀로 배불렀으니 모조리 다 가져오라!”
덜컥-
“윗놈이고 아랫놈이고 상관없다! 비단, 삼베 가리지 말고 다 벗기라! 옥, 돌 가리지 말고 반짝이면 다 가져와!”
이미 흑산에서 이어진 산자락을 따라 하내의 동부에서 튀어나온 흑산적들의 숫자만 얼추 삼만에 달했고 새벽녘에 시작된 이들의 침략은 관민과 족혈을 가리지 않았다.
그러나 말 그대로 살육과 학살을 일삼는 이들과는 확실히 그 특성부터가 달랐다.
쾅- 쾅- 쾅-
“문 열으라! 안 죽일 테니까 가진 거 다 내놓으라! 안 글면 진짜 다 죽일 끼야!”
신분과 직위 그리고 성별과 연령의 고하를 막론하고 살아남은 이들은 한결같이 말했다.
저들에게서 살아남으려면 속옷조차 벗어줘야 한다고, 조금이라도 멀쩡하면 기워입은 헌 옷과 짚신이라도 상관없이 모조리 약탈의 대상이 된다고 말이다.
그리고 이들의 기형적인 모습은 예서 그치지 않았다.
“두령, 두령!”
“왜 그러느냐?”
“내 밑에 놈이 그러는데, 저 지붕도 제법 돈이 된다 하면 우짭니까?”
“지붕?”
“기와 말입니다, 기와. 저거, 장인들이 굽는 거라고 팔면 돈 된다고 하도 입을 놀려서리.”
“그래?”
“거, 어떻게? 기주 놈들 중에 제법 집 지어 주고 사는 애들 많은데 이거 뜯어다가 거기다 팔아볼까요?”
“당연히 그래야지.”
그렇게 새로운 약탈품을 찾아낸 우독은 입맛을 다시며 기와가 오른 지붕들을 모조리 살폈다.
“야, 불 꺼라! 두령의 명이다! 기와 살려라, 기와! 그거 다 돈 된다 카드라!”
이미 이름난 지주와 부호들의 창고가 털린 것은 물론, 지붕에 올라선 기와마저 모조리 뜯겨져 나갔다.
퍼석-
“야, 이 무식한 것들아! 거기 살살! 사다리 놓고! 하나씩 받으라고! 거기 깨진다! 기와 깨지면 네놈들 손모가지부터 부러트릴 줄 알아!”
“소달구지 없으면 나무통에라도 담아서 짊어져라!”
“어이쿠야, 이게 돈이 된다고? 흐흐흐흐.”
한 집을 목표로 수백에 달하는 이들이 들어가면 말 그대로 그 집은 가히 나무 기둥과 벽밖에 남지 않았다.
말 그대로, 이제는 기와까지 모조리 앗아가니 살아남은 집주인이 눈물을 보이며 뚜껑이 따인 저택의 기둥을 부여잡고 눈물을 짓는 일은 이미 하내의 동부에선 흔한 일이었다.
“아니 된다! 이놈들아, 이건 아니 된다!”
퍼억-
“닥치라, 시끄러운 새끼야! 그러기에 누가 번쩍이는 거 쓰면서, 자랑하고 있으라 하드나?”
“끄흑......, 아, 아버님! 하, 할아버님! 이 못난 자식의 죄를 용서하시옵소서, 이 못난......, 끄흐윽!”
“야야! 이 새끼부터 죽여버리라!”
“뭐, 뭐라? 이, 이 못 된......!”
푸욱-
“커흡!”
“비싸고 귀한 거 쓰는 집 아들 놈 치고는 말이 이렇게 많아? 어?”
거기다 하필 몇 대를 넘게 이어져 내려온 조상 대의 가보이자 집안의 내력이 서린 제례 용품들 또한 이들의 주요한 약탈품이 되었다.
특히나 향을 피우는 향로와 제기의 경우, 이미 다른 곳에서 금은보화를 비롯해 자기와 장신구를 놓친 이들의 표적이 되기 일수였다.
“넘치는 게 사람이야! 데려다 쓸 놈들 빼고는 죽이거나 노시에 팔 생각을 해라! 알아서 분류하고 되도록 돈 되는 것부터 챙겨! 그다음이 배 채울 수 있는 것들이고, 그리 붙잡은 놈들에게 곧바로 약탈한 모든 것들을 나르도록 시키란 말이라!”
이미 장연과 함께해 온 세월이 깊은 우독은 딱히 흠잡을 곳이 없는 완벽한 약탈의 정석을 보여주고 있었다.
사람과 물자가 모조리 흑산으로 들어가고 있었고 그 규모는 가히 상상을 초월하고 있었다.
“쯧, 그래도 서쪽으로 갈수록 재미를 더 볼 것인데......”
그럼에도 황하에 가까워지고, 사례에 가까워지는 서쪽으로 갈수록 더 부유한 고을들이 자리한 것을 알고 있는 우독은 혀로 윗입술을 핥으며 아쉬움을 달랬다.
“하긴, 뭐. 그놈들은 조만간 전쟁 치러야 하니깐.”
* * *
그리고 이러한 우독의 예상은 완벽하게 맞아 들었다.
우독을 선두고 그 뒤를 따라 움직이기 시작한 손경과 왕당 또한 거진 일만에 달하는 병력을 이끄는 엄청난 세를 자랑하는 도적 떼의 두목들답게 각기 한 개의 고을쯤은 순식간에 함락시키며 가히 그곳에 자리한 모든 것을 앗아가며 불태우고 있었다.
이미 하내의 동쪽에 자리한 공현과 급현이 이들의 침략 속에 잿더미가 되어 사라져버렸고, 그 인근에 자리한 작은 고을들과 촌락들 또한 모조리 접수한 이들은 이제 그다음의 목표인 수무현과 획가현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기습에 반응조차 보이지 않던 관병들의 대처 또한 달라지기 시작하였으니, 그제야 드디어 제대로 된 저항을 마주하게 된 흑산적들은 이제야 본격적인 하내의 중심을 향해 자신들이 발을 들이고 있음을 알았다.
부우우우-
“쳐라!”
“꼴랑 일천 정도 되지 않는다! 모조리 들이받아라! 모조리 들이박아!”
와아아아아-
평원을 뒤흔드는 굉음과 더불어 근 다섯 배에서 열 배가 가까이 차이 나는 군사들이 충돌했다.
나무로 만든 단순한 방패와 더불어 검을 휘두르는 관병들과 칼이나 도끼 혹은 괭이와도 같은 날붙이 하나에 의존하는 흑산적들이 맞붙었다.
“밀리지 말아! 갑주조차 제대로 걸치지 않은 놈들이다! 방패로 막고 어디든 찔러라!”
까앙- 푸욱-
“끄흑! 제기랄!”
그러나 아무리 수적 우위에 있다고 한들, 갑주와 더불어 방패로 몸의 한쪽을 보호한 채 싸우는 관병들의 기세는 심상치 않았다.
쿠웅-
“어억!”
거기에 급한 대로 방패로 후려치는 일격 또한 갑주조차 걸치지 않은 맨몸의 산적들에게 적잖은 충격력과 저지력을 선사하고 있었다.
“이 간나 새끼들, 방패 뒤에 숨어 칼을 찌르는 놈들부터 죽여라!”
“뒤에도 붙여라! 쪽수로 밀어붙여!”
그러나 그럼에도 일천의 숫자는 너무나도 적었다.
수천에 도적들을 학살하며 버티고 버틴 그들이었으나 그 결과는 좋지 못했다.
“퇴각하라! 고을까지 물러나!”
그렇게 예상치 못한 관병들의 결사적인 항전과 예상보다 많은 희생 끝에 도착한 흑산적들은 분이 풀리지 않은 얼굴로 획가현과 수무현 인근의 고을들을 바라보며 그 인상을 찌푸려야 했다.
“이건 또 뭐야?”
어째 그 규모가 작은 촌락과 마을들이 저리 웅장한 자태를 보이는지 모를 일이었다.
그저 나무로 된 방벽 하나가 빙 둘러져 있을 뿐인데도 마치 그 모습이 언덕이나 평원에 세워진 작은 산채와도 같고 군진과도 같아 보였다.
“에잇, 그래봤자 나무에 불과하다! 쳐라! 도끼를 든 이들을 앞으로 보내라!”
콰직-
“찍어라! 찍어!”
콰앙-
“부숴라! 이까짓 나무 다 부숴버려!”
그러나 그리 목책에 보호를 받는 이들 또한 가만히 있진 않았다.
“지금이다, 목책에 가까이 붙은 놈들부터 쏴라!”
피잉- 피잉-
“끄흑!”
“나무를 던져라! 문에 붙은 놈들에게 돌을 떨어트려!”
퍼억-
“커헉!”
어느덧 목책 위로 모습을 드러낸 이들이 어설픈 활질로 활을 당기며 저항했다.
그 와중에 간혹 사냥꾼으로 보이는 이들은 날카롭게 화살을 날렸고, 그도 모자라 여전히 겁을 먹은 얼굴의 이들은 목책의 아래로 돌과 나무를 던지며 예상치 못한 거센 저항을 보였다.
“으아아아아!”
상황이 예상치 못하게 돌아가자 화가 치민 손경이 제 머리를 쥐어뜯다 포효하듯 소리치며 분노했다.
“도끼를 든 놈들더러 어서 빨리 목책을 부수라고 해! 저 빌어먹을 놈들이 제가 뭐라도 된 것마냥 본격적으로 저항하는 모습이 다른 고을에 알려지면 더한 골치라는 거 몰라!”
이미 그 또한 그간의 경험을 토대로 얼추 느끼고 있었다.
이리 한번 반항이 시작되고 그 반격이 성공을 거두면 다른 곳에서도 줄줄이 그에 영향을 받아 어느 곳 하나 쉽게 정리되지 않음을 말이다.
쿠구구궁-
“부쉈다! 목책의 문을 부쉈다!”
“퉤엣! 오냐, 이 빌어먹을 새끼들! 네놈들이 곱게 죽어야 다른 곳에서 우리가 더 편해진다! 뭣들하느냐! 당장 반항을 멈추지 않는 저놈들을......!”
푸욱- 푹- 푸푹-
“끄하아악!”
“뭐야? 뭔 놈의 사병들이 저렇게 많아!”
그렇게 잠시 희망이 찾아드나 했는데 피어나는 흙먼지와 더불어 부서진 목책 너머로 죽어나가는 제 수하들을 확인한 손경은 가히 할 말을 잃었다.
“토착 호족의 이들이옵니다! 가병들의 수가 예상을 상회하니......”
“누가 그거 몰라? 빌어먹을, 야! 저것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일만에 달하는 흑산적들의 침입에 점점 뒤로 물러나다 못해 후방으로 빠지며 물러나기 시작한 이들이었다.
와아아아아-
“뭐야? 또 갑자기 도망을 쳐?”
다그닥- 다그닥-
“두령! 손 두령! 어디 계시옵니까! 급현으로 내려간 왕 두령의 말씀을 전하러 왔습니다!”
그리고 그리 급변하는 전투의 양상 속에 말등에 올라 손경을 찾는 의문의 목소리가 있었다.
“여기다!”
그렇게 급작스럽게 어설픈 전령마냥 나타난 말단 도적의 보고를 전해들은 손경은 이를 믿지 못하겠다는 듯 그의 말을 의심했다.
“그러니까 지금 그쪽에서도 사병이니 가병이니 하는 놈들이 모조리 남양성으로 도망을 치는 중이다?”
“예, 거진 식솔들로 보이는 이들도 적고 보시면 알겠지만 노인도 또 애들도 다 보이지 않지 않습니까? 왕 두령도 지금 이쪽의 상황을 알아오라 하셔서......”
“그러고 보니, 진짜 인기척이 없구나?”
그렇게 둘러본 고을은 예상 외로 확실히 조용했다.
거진 싸울 수 있는 장정들이 더는 이를 견디지 못하고 우르르 빠져나간 고을의 상황에 사람의 온기 따위, 평상시처럼 도망치고 흩어지는 이들의 비명조차 들려오지 않을 정도로 고요했다.
콰앙-, 끼이익-
“창고에 딱히 들은 것도 없고, 곡식도 예상보다 적어.”
그렇게 목책이 두른 고을 내부를 살펴본 손경의 눈이 번뜩였다.
철컥-
“거기에 자개함에 든 장신구도 없고 그나마 도자기 몇 남아있는 것이 다란 말이지?”
이 정도면 가히 계획된 피난에 가깝지 않은가?
“이놈들이....., 머리를 굴렸어.”
싸울 수 있는 이들이 남아 한 차례 진격을 저지시키며 물러났다는 것은 말 그대로 시간을 벌었다는 소리다.
“그리고 그 말은......!”
콰앙-
“이놈들아! 지금 당장 남양성으로 내달려라!”
“아니, 손 두령? 그게 무슨 소리요!”
“야, 이 답답한 새끼들아! 니들 대가리는 다 똥이야? 미리 다 튀었으면 굳이 시간 벌려고 여기서 사내놈들이 죽치고 앉아있었겠냐!”
“허, 허면......!”
“곡식이고 비단이고 옥가락지고 장신구고 다 짊어지고 남양성으로 피난 가는 놈들이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는 소리다! 따라잡으면 다 우리 거고! 저놈들 인질 삼아서 저 사내놈들도 모조리 무릎 꿇릴 수 있다는 뜻이다!”
어차피 수무현에 자리한 남양성을 공략해야 함에 최대한 피해를 줄이는 것이 중요했다.
또 그만큼이나 중한 것이 바로 도적의 본질인 약탈이 아니겠는가?
“허면, 저는 이를 왕 두령께 전하겠습니다!”
“가서 그놈도 애써 힘 빼지 말고 남양성 방향으로 내달리라 그래! 최대한 빨리 움직여서 계집이랑 애들이랑 걸음 느린 노인네들 붙잡아서 모조리 다 뜯어내면 돈 좀 만질 테니까.”
“예, 손 두령! 이럇! 하아!”
그렇게 저들의 빈틈과 약점을 눈치챈 손경과 왕당이 행동을 개시했다.
못해도 이 만에 달하는 게걸스러운 산적들은 이미 탐욕에 눈이 멀어 들개마냥 수풀을 헤치며 내달리고 있었고, 그 장대한 도적 무리가 뒤덮은 하내 평원의 모습은 가히 징그럽다 못해 공포스러울 지경이었다.
“저기다! 저기 도망치는 년놈들이 있다!”
“어딜 가느냐! 내 돈! 내 비단! 내 보옥! 내 계집들아!”
“우히! 흐하하하!”
네 발처럼 걷는 두발 짐승, 시커멓고 꾀죄죄한 모양새, 역한 피냄새와 징그러운 외관과 괴성을 지르며 달려드는 이들까지.
이제 막 안도하여 한숨을 돌린 피난민들의 뒤를 따라잡으며 등장한 이들은 가히 절망과 죽음 그 이상의 두려움을 선사하고 있었다.
“도망쳐라! 도, 도망쳐!”
“엄마!”
“어서 와! 잡히면 죽어!”
사방에서 비명을 지르며 흩어지는 이들과 부모의 손을 놓친 채, 넘어지는 아이들 그리고 다시금 그런 아이들의 손을 잡고 냅다 뛰는 부모들까지.
“이, 이거 놓거라!”
“못 놔요!”
“놔! 이것아! 어차피 늙어서 더는 것지도 못 한다!”
그 반대편에선 또다른 비극이 벌어지고 있었다.
자신을 버리라는 늙은이들과 그 자식들 간의 반강제적인 헤어짐이 그것이었다.
“아, 아버님......”
“애미야, 무슨 일이 있어도 살아라. 네 아범이 아직 돌아오지 않았지만 꼭 살아있을 게야.”
“아버님-!”
“가라! 어서!”
사방에서 그리 가족들이 헤어지고 있었고 수많은 이들의 인연이 끊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내달리는 것을 멈추지 않는 흑산적의 이들은 어느덧 이들을 온전히 따라잡았고, 그리 버려진 수레에 등을 기댄 채 겨우 몸을 가누고 있는 노인은 그런 그들의 앞에 칼을 쥔 손을 내려놓지 않았다.
“노인장? 정녕 그걸로 어찌해볼 셈이요?”
“내 암만 이리 늙었어도 젊었을 적엔 네놈들 못지 않았다.”
“허어? 도적이셨나?”
“아니, 관병이었지.”
“아이 씨, 그러면 죽여버려야 되겠는데?”
“오냐! 오너라!”
그렇게 기합과 더불어 칼을 내지른 노인이었다.
그러나 실로 한숨만 나오는 느릿한 칼질에 그저 그 몸을 뒤로 물리는 것으로 이를 피하려는 흑산적의 이는 그리 한 걸음을 뒤로 물리기 위에 제 뒷발을 내딛고 있었다.
터억-
“음?”
그러나 그 뒷발을 내딛는 것과 동시에 자신의 몸이 막혔다.
마치 거대한 무언가에 막힌 듯 그 찰나에 그의 등의 마주한 벽은 예상 외로 싸늘한 온기도 모자라 거대한 그림자를 품고 있었다.
“뭐, 뭐야......!”
그렇게 들어 올린 고개의 위로는 실로 거대한 사람의 인영이 있었다.
푸욱-
“오냐! 이놈아! 마, 맛이 어떠냐!”
그리고 그 거대한 존재와의 조율이 찰나의 방심을 불렀다.
“끄흑! 이 빌어먹을 노인장! 감히 빈틈을 노려!”
우드드득-
“끄하아악! 끄흐으윽, 커헉!”
그러나 이내 칼을 맞은 채 노인에게 화풀이를 하려는 이의 뒷덜미가 그 거대한 인영의 손에 붙잡혀 으스러졌다.
“고, 고맙소. 하, 한데 누구시오?”
“서영이오.”
그렇게 여전히 떨리는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노인을 뒤로한 채, 몸을 돌린 서영은 이내 자신의 앞에 모여든 엄청난 수의 흑산적들을 마주했다.
“덩치도 산만한 놈이, 네놈은 뭐냐?”
그러나 그러한 이들의 물음 앞에 서영은 그저 자신의 손을 들어 남쪽에 자리한 언덕을 가리켰다.
“뭐야? 말 못하는 벙어린가?”
두두두두-
그러나 이내 지축이 뒤흔들리는 땅울림 소리와 더불어 엄청난 수의 말들이 내달리는 소리가 들렸다.
“야, 이거 뭐야! 이거....., 이거 지금......!”
“마, 말이야. 제기랄! 이거 기마대다!”
거진 끊이지 않을 땅울림은 이내 두 발을 땅에 딛은 흑산적들의 다리를 타고 올라 전신을 뒤흔들며 가히 찌릿할 전류에 가까울 두려움을 선사해주었다.
그리고 이내 이러한 전율의 실체를 알아본 흑산적들의 동요 속에 무려 오천에 달하는 기병들이 남쪽에 자리한 언덕을 뛰어넘고 있었다.
두두두두-
“이 빌어먹을 덩치 큰 벙어리 새끼야! 네가 관병 놈들을 부른 게냐! 네가 부른 게지!”
“논할 도리도 그럴 값어치도 없구나.”
“에잇, 제기라알!”
터업-
그렇게 동요를 넘어 도망치는 이들의 사이 서영의 가장 앞에 자리하고 있던 흑산적이 창을 뻗었다.
“끄윽! 놔! 이거 안 놔!”
그러나 도리어 서영의 묵직한 손에 막힌 창은 더는 움직이질 않았고, 이를 빼내고자 오만 인상을 쓰며 용을 쓰던 이는, 이내 자신의 코앞까지 다가오는 땅울림에 겁을 집어먹으며 제 창을 버리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푸히히힝-
“교위!”
그리고 이내 그런 그의 곁에 빈 안장이 채워진 명마 하나를 끌고 온 장수를 따라 말에 오른 서영은 이내 지평선을 그득 메운 이만에 달하는 흑산적들을 향해 점점 속력을 높이기 시작했다.
“모조리 쓸어버려라. 근방에 모습을 드러낸 이들만 삼만에 달한다 하니 최대한 남양성 인근에서 저놈들의 숫자를 지워야 한다.”
“옛!”
“넓게 방진을 짜고 북쪽으로 몰아낸다. 갑주에 장병기도 없는 놈들 투성이니 양떼 몰 듯이 몰아붙여라.”
그렇게 선두에 선 서영이 두 팔을 벌리자 그 뒤를 따르던 병력이 넓게 갈라졌다.
“지금이다! 말머리를 좌현으로 돌려라!”
마치 날개마냥 펼쳐진 서영의 진영은 가히 거대한 벽과 같은 모습으로 자리한 채, 그리 이만에 달하는 흑산적들의 옆구리를 향해 그 방향을 틀었다.
“이대로 밀어붙여.”
“이대로 밀어붙여라!”
두두두두-
“관병 놈들이다!”
“상관없다! 그냥 들이 받아버려라!”
두두두두-
“이....., 이 빌어먹을!”
콰아앙-
그러나 이미 멈출 수 없음을 알고 내달린 흑산적들의 무모한 진격은 가히 예상치 못한 피해를 불러일으키고야 말았다.
순식간에 뒤로 날아가는 수백에 달하는 이들은 모조리 흑산적들이었고, 여전히 그 기세를 멈추지 않으며 남은 이들을 짓밟고 있는 것은 누가 뭐래도 서영과 그를 따르는 오천의 기병대였다.
* * *
“뭐? 우독이야 약탈한 것을 나르니까 진격이 느리다 치더라도, 무려 이만에 달하는 이들을 이끄는 손경과 왕당이 패퇴를 당해?”
그리고 이내 이들의 소식은 서쪽에 자리한 채, 산양성과 사견성을 향해 병력을 이동시키는 장연에 귀에도 들어가게 되었다.
“대두령! 그놈들 가히 보통 놈들이 아닙니다!”
“뭐가 보통이 아니야! 여태껏 하내 들이치면서 그런 놈들이 없었어! 그나마 봐줄 만한 병주의 여포 놈 빼고 어디 반반한 놈이 있기는 했었냐는 말이야!”
“여, 여포랑은 다릅니다. 또, 똑같이 말을 타는 놈들이기는 한데, 다들 날아다니는 놈들이라......”
“여포도 그랬어! 그 수하놈들도 펄펄 날아다녔다! 한데! 뭐가 그리 다르냔 말이야!”
“그, 그게 아예 여포 놈과 싸우는 방식이 다릅니다! 저희가 자꾸만 몰리고, 또 온전히 산맥 쪽으로 내몰려서 또 흩어졌다 모이면 또 내몰리고 해서.....”
“그래서! 지금 다들 어디 있다는 게야!”
“손 두령은 공현에 자리한 근처 고을들에 병력을 나눠두며 숨을 고르고 계시고, 왕 두령 또한 예상보다 많은 피해를 입어 급현으로.....”
“제기랄! 아예 이전으로 돌아가 버린 것 아닌가! 피해는?”
“지금까지 당한 이들만 거의 육천에 달한다고......”
“뭐라? 고작 한 놈과 몇 차례 교전을 벌였다고 벌써 육천이 날아가? 이게 말이야! 방구야!”
콰앙-
“우독더러 합류하라고 전해! 아예 남양성으로 같이 밀고 들어가란 말이야!”
그렇게 벽을 치며 분노한 장연은 먼저 출진한 모든 전력의 방향을 남양성으로 돌리기로 마음먹었다.
우독의 일만이 합세하면 못해도 이만 사천에 달하는 병력이 나오니 그 정도면 적들을 압박하기에 충분한 모양새가 될 것이다.
“어차피 동쪽에 털어먹을 고을들은 다 털어먹었어. 이제는 본격적으로 성을 묶어두고 서쪽으로 나아가며 주변을 털어야지. 허면 일단 남양성에 모여든 놈들은 그대로 묶어둬야 해.”
하지만 여전히 거추장스러운 존재들은 남아있었다.
남양성을 포위한다 한들, 뒤를 빼앗기거나 외부에서 요리조리 움직여 포위망을 괴롭힐 저들의 존재는 최대한 빨리 지워내야 했다.
“그놈이 정예 기병대를 이끌고 있다고?”
“그, 그렇습니다!”
“기동력 한번 좋구나, 필경 여포 놈마냥 이리저리 들쑤시며 날뛸 수 있겠어. 허면 그 발을 묶어둬야지. 아니면 불러들여서 잡아 족치고.”
그러나 거의 모든 병력이 보병이나 다름없는 흑산적들의 입장에서 날고 긴다 하는 기병의 존재는 가히 쥐약이나 다름이 없었다.
몇 되지 않는 병력을 움직여 이를 잡는다는 소리는 가히 어불성설이었으니, 그들을 잡으려면 애초에 그들이 어쩔 수 없이 움직일 수밖에 없는 위기를 만들어 그들을 호랑이 아가리 속으로 불러들여야 했다.
거기다 어차피 여전한 건재함을 과시하는 저들의 근거지이자 가장 중한 방어거점인 산양성과 사견성의 존재 또한 거추장스러웠으니, 하내 동부에 남아있는 서쪽을 향한 약탈을 위해서라도 이 두 거점을 정리할 필요성이 대두되는 와중이었다.
“백요, 백작, 휴고, 사예, 그리고 연성!”
“예, 대두령!”
그렇게 머리를 굴린 장연은 고심 끝에 제 산하에 자리한 여러 두령들의 이름을 불렀다.
“산맥을 따라 이동한 뒤, 병력을 두 패로 나눠 산양성부터 압박해라.”
“허면 대두령께선?”
“나는 고추, 부은 등과 함께 이대로 본군을 이끌고 사견성 쪽으로 내려갈 것이다.”
“하, 하오나 대두령! 그리되면 그간 숨겨둔 저희의 전력이 온전히 저들에게 노출이 될 수 있습니다! 저희 측 애들만 모아도 벌써 4만입니다. 거기에 대두령의 병력까지 합하면......”
“상관없다! 거기다 이미 장우각 놈도 얼추 눈치는 채고 있을 게야, 어차피 저 하내 서쪽에 자리한 서쪽 산맥을 장악하려면 이쪽도 그만한 진심을 보여야 해. 이게 총력전인 것을 보여주고 서쪽에 자리한 이들이 더 달아오르도록 만들어야 함이야.”
“그, 그래도......”
“내 말이 말 같지 않으냐?”
“아, 아닙니다!”
“온 천하를 놀라게 해주마. 빌어먹을 포홍 놈에게 갚아 줄 것도 있고. 무엇보다! 장우각! 네놈을 잡아먹기 위한 나의 복수를 위해 온 천하에 내가 어떠한 놈인지 그 모습을 보여주마!”
어차피 이리된 것 이판사판이었다.
서쪽만, 하내 서쪽에 자리한 왕옥산의 이들만 떨어져 나가면 그때부턴 장우각도 그 많은 병력을 유지할 수 없을 터.
그렇게 장연은 온 천하를 놀라게 할 본격적인 침공을 계시했다.
마치 거대한 해일마냥 등장한 흑산적들의 수는 무려 9만.
약 10만에 달하는 대병이 새로이 하내 땅 위로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 작가의말
본격적인 흑산적의 침공이 시작되었습니다.
지도 상에 보이는 2차 흑산적의 침입이 바로 지금 화에서 다뤄지는 내용입니다.
지도 출처: http://blog.naver.com/sjkim2090/220093345606
편집: 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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