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1화 – 생존을 위한 선택
“이럴 수는 없어, 이럴 수는 없어, 이럴 수가 없다......, 이럴 수가 없단 말이야!”
와장창-
이성을 잃은 유비는 제 손에 잡히는 모든 것을 때려 부수며 집어던졌다.
미친 듯이 몰려드는 백파적들을 막아내느라 혼이 빠져있는 동안, 가후가 인근에 자리한 모든 밀과 보리를 수확해 사라졌다.
얼마 남지 않은 식량을 모조리 태워버린 빵과 서커스가, 도리어 독이 되어 돌아왔고 이제 유비에게 남은 것은, 그가 책임져야 할 엄청난 수의 굶주린 백성들이 득실거리는 이 안읍이라는 이름의 밑 빠진 독이 전부였으니 그가 어찌 이성을 유지할 수 있겠는가?
“형님! 이제 그만하시지요! 물건이 사람도 아닌데 그리 다 내던지고 부숴봤자 형님의 몸만 상하지 않습니까!”
“놔! 이거 안 놔!”
“운장 형님의 말이 맞습니다. 고정하셔야 합니다. 고정하고......”
그리고 그러한 유비의 분노에 관우와 장비가 다급히 그런 그를 말리기 위해 달려들었으나, 이미 반쯤 이성을 잃은 유비의 난동은 그 두 장사의 힘으로 쉽게 제압이 되지 않았다.
형님이라는 예우와 대하기 어려운 존재라는 것과는 별개로 유비 또한 무인이라면 무인이었고 거기에 그 인생의 둘도 없을 기회가 도리어 더한 나락으로 변하게 된 그가 느끼는 실망감과 배신감 그리고 끝까지 자신을 허락지 않는 하늘에 대한 원망은 관우와 장비의 힘으로도 끊어낼 수 없는 것이었다.
“고정? 지금 나더러 고정? 이게 어떠한 상황인 줄 알아-! 그 빌어먹을 놈의 책임과 희생만 남았어! 이 유비의 모가지가, 곧바로 뎅겅뎅겅하게 생겼다는 말이야!”
이대로 백성을 등져도 문제고 그렇지 않아도 문제다.
예서 고사할 수도 없고 그러고 싶지도 않았으며 당장에 모든 걸 내팽개치고 싶어도 여전한 백파적들의 포위망을 뚫어내는 것은 쉽지 않았다.
차라리 예서 더한 수성을 벌이며 저들이 지쳐 물러나거나 저들과의 지속된 교환비를 통해 저들의 병력을 확 줄일 수만 있다면 그때서야 탈출도 가능할 것이다.
허나 아직도 수만의 병력이 남아있는 지금은 아직 때가 아니었다.
거기에 아직도 남은 미련은 유비를 점점 더 힘들게 만들고 있으니, 이는 그 어떠한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염호를 품고 있는 하동 땅의 가치였다.
“천금이야! 영원불멸한 천금이야! 저 빌어먹을 북방의 놈들이 제가 가지겠다 싸워대는 무역로 따위보다 훨씬 더 가치가 있어! 이 땅에서 그냉 물을 끓이면 곧바로 금이 나오는 게야, 사방이 산지라 나무가 지천이라 그냥 그 나무들 모조리 베어다가 장작으로 삼아 그 물을 끓이면 금이 산더미처럼 쏟아져나온단 말이다! 크흐윽!”
“형님......”
마치 자신이 수전노라도 된 기분이었으나 그 역하고도 비굴한 돈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것이 결국 현실이었다.
야망이든 생존이든 뭐든 필요한 것은 이를 이루어내고 추진할 수 있는 기반이 필경 요구되는 일이었고, 지금까지의 일평생을 그리 자신의 기반을 위해 발버둥친 유비를 모르지 않는 관우와 장비였다.
그런 유비가 이제는 눈물마저 글썽이는 얼굴로 관우와 장비를 향해 울부짖듯 자신의 속을 터트렸다.
“이상도 말이야, 끄흐윽! 현실이 있어야 이룰 수 있는 게야. 우리가 매양 없는 형편에 그 의기 내걸고 이 지랄을 하며 여기에 이르렀으나 그간 우리가 구원한 이들의 수가 얼마나 될까? 백성들이야 많아봤자 수만이겠지. 허나!”
가슴이 미어지는 심정을 담아 주먹을 쥐고 땅을 치며 그 자리에서 무너져 내린 그는, 돌연 짐승마냥 그 눈을 빛내며 손가락을 세운 뒤, 미친 사람마냥 계속 자신이 엎어진 땅바닥을 가리켰다.
“여기, 여기! 여기이-! 이 하동 땅에서 우리가 그 짧은 찰나에 구원한 백성들의 수만 무려 수만에 달한다! 그 이전에, 내가 자네들과 그리 천하를 주유하며 구원한 이들의 수가 그 작은 경우, 별일 아닌 작은 것들까지 긁어모으고 모은다고 해도 수만인데 그리 평생에 쌓아 올린 이들이 이곳에서는 고작 한 달여도 아니 되는 시간 속의 일이야! 그 정도뿐이 안돼!”
결국, 유비가 이야기하는 것은 욕심과 야망 그리고 생존을 위해 지금까지 자신이 벌인 모든 짓에 대한 정당화였다.
그리고 한 차례 좋은 쪽으로 포장이 되기 시작한 그 이야기는 도리어 왜 자신이 하동을 탐했는지, 그리고 지금까지 자신들이 왜 그리 자신들을 위한 정착지에 욕심을 부렸는지, 이 모든 것이 결국 우리 모두를 위함이었음을, 자아와 이상의 실현을 위한 현실에 기반된 문제였음을 강조하며 관우와 장비의 마음을 뒤흔들다 못해 헤집어놓고 있었다.
“혀, 형님......”
“크흑, 저희들이 못 나서.......”
하지만 실상 그 속에 담겨있는 또 다른 유비의 진의이자 그가 문제를 삼은 부분을 꼽자면 이는 ‘규모’였다.
규모의 경제라는 말이 있듯, 밑바닥에서 암만 발버둥 쳐봤자 그것이 좋은 일이건 나쁜 일이건 이를 크게 굴릴 수 없는 이상은 결국 겉으로 드러난 이상이라는 포장지와 그 속에 담겨있는 것들에 대한 실현이 불가능하다는 말이었다.
“처음에는, 처음에는 좋았지.”
그렇게 아득히 꿈처럼 멀어지는 이 하동의 복숭아꽃과도 같은 미래는 마치 환상처럼 유비의 앞에 아른거리며 사라지고 있었다.
“아......, 실로 아득하면서도 점점 더 가까워지는 것이, 꽃향기를 맡으며 내뻗은 이 손이 결국 그 끝에는 천도(天桃)에 닿게 될 것이라 여겼다.”
그래서였을까?
하동에 자리한 이후의 꿈같은 순간들이 유비의 현재를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맨 처음, 그 누구의 것도 아닌 것을 취한 뒤, 그리 제 것이 된 여인을 내어 주며 관우에게 자신의 진심을 전했다.
그 뒤, 사람들의 추앙을 받으며 더 많은 이들을 구원했고 그들의 지지와 성원 속에 자신의 이름이 알려지며 안읍으로 나아가 협상을 통해 그들의 것을 받아낼 수 있었다.
물론, 그 영광 속에 위기의 순간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내어 준 병력과 무구는 그렇다고 쳐도 수복한 고을에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은 것을 알게 된 이후 자신의 곁에 몰려드는 피난민들과 유랑민들을 떨쳐낼 수도 없게 되면서 군량의 소모는 엄청난 가속화를 이루었다.
당장의 힘이, 오늘의 지지와 성원이 내일은 자신을 짓누르는 무거운 짐덩어리가 됨을 잘 알고 있었던 자신은 경옹과 짜고 곧바로 이를 뒤바꿀 계획으로 안읍으로 나아갔고, 성내의 이들에게 모든 죄를 덮어씌운 뒤, 그리 저를 따르는 하동의 백성들을 방패 삼아 쉬이 점거하기 힘든 거성인 안읍을 점령할 수 있었다.
“그래, 그때의 나는 백성의 힘을 실감했다. 가진 것 없고 그저 숫자만 많은 이들이 어찌 세상을 뒤흔들고 천하를 뒤집는지 그제야 깨달을 수 있었다.”
안읍을 지키는 관병들 또한 사람이었다.
거기에 자기와 안면이 있다 못해 가볍지 않은 관계를 지니고 있는 주변 고을의 이들은 누군가의 형제이자 부모이며 식구이고 가족이자 친척이며 벗이었다.
결국, 제 주변에 자리한 이웃이자 자신과 같은 동향 사람들을 향해 화살을 날릴 수 없었던 군사들이 하나둘 상부에서 내리는 명령을 거부한 채 성벽을 내려가기 시작했고, 그도 모자라 소식을 들은 성내의 인민들이 자신의 가족들을 비롯해 가까운 사람들이 밖에 있다며 문을 열어달라 난동을 피우며 군사들과 충돌하는 통에 예상보다 쉽게 안읍의 성문이 열리고 그 성벽 위로 쉬이 사다리를 걸칠 수 있었다.
그렇게 실질적으로 거진 군사들의 손실 없이 이미 백성들을 통해 백성들을 다스리기 시작한 유비는 그 어떠한 반발도 없이 안읍의 모든 것을 접수했다.
이미 성난 민중들의 미쳐 날뛰며 알아서 사족과 부호들을 비롯한 이들을 위협하며 그들의 저택으로 몰려들고 있었고, 그 민심이 곧 천심이며 그 천심 또한 자신의 손아귀에서 탄생할 수 있음을 깨닫게 된 유비는 굳이 변수와 위험을 짊어질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채, 자신에게 협조하겠다는 이들과 자신에게 항복하겠다는 이들 모두를 붙잡아 처형했다.
살려두면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몰라 골치가 아픈 것이다.
애초에 사람 속을 들여다볼 수 없으니 그 복종조차 진심인지 판별하기가 어렵고, 또 저들의 것을 앗아갈 때마다 매번 귀찮은 핑계와 설득이 더한 강압과 협박의 절차를 거치는 것도 결국은 굳이 저들의 원성을 사게 되는 일이니, 이는 예견된 파국을 향해 알면서도 달려가는 정신 나간 자살행위와도 같았다.
애초에 자신이 사족들이나 토호들을 비롯한 이들의지지 속에 성장하고 자라났다면 모를까?
그에 반대되는 이들을 쥐었다면 자연스레 그들과 대치되는 이들과는 절로 멀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거기에 좋든 싫든 그들과 비밀스러운 관계를 맺는 것도 골치였다. 그때부턴 유착이 되며, 그 사실은 자신뿐 아니라 자신과 관계를 튼 이들 또한 당연히 인지하게 되는 사실이다.
유비가 남몰래, 백성들에게 알리지 않고 토착의 이들과 관계를 맺었다.
이 사실이 알려지게 되면, 피해를 보는 것은 백성들을 속이고 이중성을 보인 자신이며 또 더 심하게 나아간다면 이 사실을 빌미로 폭로를 하겠다느니 고발이나 협박을 하겠다느니 하는 말도 아니 되는 상황이 펼쳐질 가능성도 있었다.
결국 그리되면 굳이 제가 쌓아 올린 위신이 깎이게 되니 애초에 이 또한 옳은 선택지가 아니었다.
“태평도의 이들도 그랬지. 그래, 나는 그들처럼 사고하고 행동하며 움직였다.”
차라리 깔끔하게, 나중에 귀찮지 않게 모든 것을 정리하는 것이 낫겠다 싶었던 그의 결단은 실상 그 이전 대의 반란을 겪으며 깨닫게 된 소중한 배움이자 그를 성장시킨 놀라운 경험에서 나온 것이었다.
암만, 실질적으로 태평도의 수뇌부가 조정의 인사들과 결탁한 흔적이 있다고들 하나, 본래의 그들이 그리 천하를 뒤흔들며 지방에 속한 여러 속군들을 쉬이 제압하고 수많은 민중의 지지와 성원을 받으며 빠르게 천하를 뒤흔든 것에는 지난날 유비가 내보인 결단과 똑같은 모습들이 담겨있었다.
가진 것 없고 나약하며 모래알처럼 이 천하에 가장 흔하면서도 널린 것이 백성이기에 그 안에서 최대한 것을 짜낸 태평도는, 그 힘을 이해하고 이를 최대한 자신들에게 유리한 쪽으로 활용했고 그것은 곧 천하에 전무후무한 민중봉기이자 농민반란이라는 엄청난 시대상을 그려내며 직접적으로 한 나라를 휘청이게 만드는 난세의 서막을 열어젖혔다.
“그래, 그들은 비록 실패하였으나 그 방법은 틀리지 않았다. 그리고 이는 지금도 마찬가지야!”
와장창-
그리고 그 여파 속에 휩쓸리고 성장하며 이리저리 치였던 유비는 그렇게 자신의 과거를 정리하며 다시금 현실로 돌아왔다.
“후우우......, 후우.”
“형님.”
“경옹을 부르라, 옥사로 가겠다.”
저벅저벅-
그렇게 관우와 장비를 뒤로한 유비는 자신만큼이나 심각한 얼굴로 굳어진 경옹을 옥사의 앞에 마주했다.
“이거 서로가 생각하는 것이 같군.”
“도망칠 생각이라면 난 진즉 접었어.”
“허나, 현덕. 이는.......”
“알아, 무슨 말을 할지 알아. 허나 당장은 저 성 밖의 백파적들 때문에라도 그러지 못해.”
“후우. 그건 그렇지.”
유비도 경옹을 읽었고, 그런 경옹도 유비를 읽었으나 막상 서로가 내린 결론은 합쳐지지 않을 평행선을 달리고 있었다.
“그리고 이 하동 땅의 소금도 포기 못 해.”
“현덕!”
“어차피 가을은 버틸 수 있어. 허나 문제는 겨울이지. 허면 결국, 겨울 전에 우리는 결단을 내려야 함이야. 아니! 결단이 아니라 답을 내어놓아야 함이야.”
“그래서 또 어쩌자고?”
“도주를 하던 이 하동에 눌러앉던 작금에 가장 중한 것은 식량이야.”
“해서, 저 사례의 조당을 쥐고 흔드는 재상이나 다름없는 낭중령이 그랬습니다! 나가서 소리칠까? 어? 이 모든 것이 다 저 사례에 자리한 청류파 사대부들 탓입니다! 하면서 그리 진실을 고발할까?”
빤한 문제를 두고서도 욕심에 취해 우매한 판단을 내리려는 유비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탓일까?
그는 아직 꺼내지도 않은 유비의 결단에 조롱과 빈정거림을 담아내며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연출했다.
“경옹.”
“그래서! 그 미친 개소리를 떠들면서 저들과 적이 되자고? 애초에 황실의 핏줄인 것을 비벼서라도 어떻게든 숨통을 트이려고 했던 게 엊그제인 걸 잊었나? 암만 옥새가 없어도 그나마 이 땅에 가장 정통성이 있는 유일무이한 조정이자 조당이라는 걸 모르겠어!”
그러나 유비는 다시금 그런 자신을 설득하려는 듯 이름을 불렀고, 도저히 이를 용납할 수 없는 경옹은 재차 목소리를 높이며 그런 유비의 오판을 힐난했다.
그러나 이는 말 그대로 오판이었다.
“닥치고 내 이야기부터 들어. 나는 아직 한 마디의 방책도 꺼내지 않았다.”
“후우, 그래. 그러셔야지. 그 누구도 인정해주지 않는 잘난 유씨 황손의 이야기를 같은 동향 친우인 내가 아니면 누가 들어주나?”
그러나 유비가 노기를 드러낸 와중에도 여전한 성질머리를 보이는 경옹은 이내 유비가 제 허리춤에 손을 올리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절로 그 입을 다물었다.
철컥-
“한 번만 더 빈정거리면 그땐 정녕 죽일 거야. 그리 내 손에 죽고 싶으면 계속 떠들어.”
“.........”
이는 진심이었다.
암만 자신의 무례를 용납해주는 유비라 하나 그에게도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있었으니, 이는 지난날 자신을 일으켜 세울 적의 경고와도 같았다.
“후우, 본론으로 돌아가지. 내가 왜 옥사로 오라고 했겠나?”
그리고 그 어색한 침묵 속에 먼저 살기를 지운 유비는 다시금 본래의 화두로 돌아와 그 분위기를 환기시켰다.
그런 유비의 노력이 담긴 손짓에 경옹 또한 머리를 굴리며 반응했다.
찰나의 눈을 빛낸 그는 아직 자신들에게 써먹지 않은 패가 남아있음을 금세 깨달았던 것이다.
“설마, 저거? 저 안에 자리한 태수 놈 써먹으려고?”
“누군가는 이번 일에 대한 책임을 져야지. 그렇다고 이를 내가 책임질 순 없는 일 아닌가?”
“하....., 그래. 그런 방도가 있었지. 뭐, 식량을 따로 빼돌렸다던가 아니면 적들과 내통하여 백파적의 이들과 내응하기 위해 미리 식량창고에 불을 질렀다던가.”
따악-
“그거 좋군. 그걸로 하지.”
그렇게 손을 튕긴 유비는 곧바로 맛깔난 결과물을 내어놓는 경옹의 방책을 수락했다.
“설마 진짜 불을 지르려고?”
“왜? 볏짚과 낱알 몇 남은 빈 창고에 뭐가 더 남았나? 거기에 겸사겸사 장부도 태워야지.”
“허면 그다음은?”
그러나 아직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그다음?”
“그래, 그다음. 그리 분노한 민중에게 울분을 토해내며 제 화를 분출할 알량한 제물을 던져주고 억지로 추켜세운 사기를 갖춘 그다음.”
“살려달라 빌어야지.”
“누구에게, 아!”
그래서 경옹은 이를 물은 것이었고, 유비는 이미 자신이 생각해놓은 방향을 솔직하게 밝혔다.
“아직 낭중령은 이 하동 땅으로부터 크게 멀어지지 않았어.”
“바짓가랑이라도 붙잡고 늘어질 생각인가?”
“그래야지.”
“믿어줄까? 그 양반은 천치가 아니야.”
“물론, 나를 진심으로 믿어주진 않겠지. 허나 마르지 않는 샘과 다름없는 소금을 끼고서도 이를 수익으로 만들어내지 못하는 저 백파적들을 제하고 누군가는 다스려야 할 하동 아닌가?”
“그게 바로 유 현덕이다?”
“그래, 그리고 그때가 기회야.”
눈을 빛낸 유비는 여기서 두 갈래의 향방이 담긴 자신의 진심을 모두 전하고 있었다.
하나는 그리 포위망을 뚫고 자신이 직접 사절로서 가후를 찾아가는 척하다 아예 방향을 틀어 하동을 버리고 도주하는 것.
그리고 남은 하나는 그리 사절을 보내 가후의 진심을 얻어내 병사와 식량을 지원받고 이곳에 자리한 백파적들을 격퇴한 뒤, 남은 하동을 수습하는 것.
“마음 같아선 이를 빌미 삼아 당장 도망치고 싶군. 설사, 낭중령이 하동에 대한 우리의 지배를 용인한다고 한들, 그것이 길어지진 않을 게야.”
“마음 같아선 당장에라도 그 몸을 수그려 낭중령의 신발이라도 핥고 싶은 심정이야. 설사, 모든 것을 내버리고 도망친다 한들, 그것은 이전과 같은 방랑이자 또다시 시작점으로 돌아와 내딛는 정처 없는 발걸음이 될 뿐이니.”
그러나 그 마지막에 이르러서도 그 둘의 의견이 분명하게 갈렸다.
허나 필경 작금의 세력을 우두머리는 유비인 만큼 그 방향성은 확실하게 정해졌고, 이는 곧 지속된 수성 속에 찰나의 빈틈을 노린 일점 돌파가 되었다.
어떻게든 포위망을 뚫고 가후를 향한 사절을 탈출시키려는 유비의 이들과 그 노림수가 무엇인지는 몰라도 그 어떠한 경우에서든 탈출을 허락하지 않으려는 백파적들의 접전은 상당한 시일을 소모하였고, 그 속에서 결실을 이룬 유비의 지극정성은 끝내 가후의 앞에 도달할 수 있었다.
“살려주십시오.”
그렇게 유비의 사절로 찾아간 경옹은 그 고개를 땅에 처박은 채, 단 한마디의 언사를 남기며 가후의 앞에 작은 보자기 하나를 바쳤다.
스윽-
“안읍의 인수로군.”
그리고 그와 동시에 내용물을 확인하고 미소를 지은 가후는 곧바로 자리를 털고 일어나 병력을 움직였다.
“전군, 지금 당장 하동으로 회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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