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장 – 감옥에서 눈을 뜬 서원 팔교위
“아이, 머리야. 이거 정신을 차리고 보니 별일이 다 있군그래.”
힘겹게 몸을 일으킨 이가 어지럼증을 느끼며 자신의 머리를 부여잡았다.
그는 이것이 자신의 정신인지 아니면 남의 정신인지 모르는 듯 했는데, 실로 그 머릿속이 뒤죽박죽 뒤섞이는 기분이 묘했다.
그러나 그 속에 어떻게든 그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가 자리하고 있는 곳은 다름이 아닌 감옥이었다.
“.......”
그 주변을 둘러보아도, 아무리 깨어난 이후의 기억을 돌이켜보아도 정녕 그가 자리한 곳은 감옥이 맞았다.
“끄흐윽!”
그 와중에 또다시 통증이 느껴졌다.
찢어질 듯한 고통과 그 속에 되새겨지는 기억은 금세 정신과 육신을 억지로 하나로 묶는 과정과도 같았다.
“황완, 이 개새끼.”
그리고 그 과정 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기억은 바로 작금의 이 몸뚱이를 이곳에 처넣게 만든 이에 대한 분노였다.
“태수 자리 하나만 해도 이천만 전이 넘는데 고작해야 일천만 전 가지고 지랄을, 쯧.”
그가 생각하기로도 어이가 없는 것이, 자신이 암만 제물을 착복하기로서니 얼마나 착복했다 하여 일을 이리 만든단 말인가?
예주목이라고, 유명인이라고, 골수 청류파 인사라고 한 20년 지가 사는 집에 구금되어 그 바깥의 햇살 못 보고 살았다고 하더니, 이 미친 작자가 황건적의 토벌을 도와주러 예주까지 내려온 자신을 조정에 상주하여 부당한 재물착복을 빌미로 고발한 것이 이 모든 불행의 시작이었다.
“육량, 그놈도 결국 죽이지 못했으면서 왜 내게 지랄인지 모르겠단 말이야.”
그렇게 조금씩 깨어나는 기억 속에 자신을 되찾은 그는 과거의 황완이 예주에서 날린 명성의 실체를 직접 확인했다.
예주에 들어선 황건적들 중 가장 이름난 황건적들을 토벌한 건 맞으나 막상 그 우두머리 격에 해당하는 두령들은 어느 놈 하나 제대로 잡지 못한 채, 잔챙이들만 주구장장 두들겨놓고 이를 토벌했다 상주하니 졸지에 그 덕에 관내후의 자리에 덥석 올라버린 후안무치한 작자였다.
그리 따진다면 지난 변장, 한수의 난에 발호한 강족들을 동탁과 힘을 합쳐 일천이나 넘게 죽인 자신은 얼마나 큰 공훈을 세운 인사란 말인가?
“뭐, 실상 그 덕에 서원팔교위의 자리에 올랐지만서도......”
그렇게 과거를 떠올리니, 찰나를 스치는 좋았던 기억들은 말 그대로 찰나에 불과했다.
사람들의 눈에 들고, 높은 자리에 들어 권력과 함께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상승할 것만 같던 그 행보는 자신의 인생에 최고점을 찍었던 서원팔교위 직후, 첫 출진이나 다름없는 예주에서 다 말아먹게 되었으니 이 모든 것이 인생 무상이었다.
다시금 곱씹게 되는 황완, 그 빌어먹을 뼈마저 깨끗할 중년의 노친네 하나 때문에 작금의 벼슬자리는 물론, 그 목숨마저 위태로울 지경에 이르게 될지도 몰랐다.
콰앙-
“간수 어디 있어!”
역시 사람은 그 목에 칼이 들어와야 위기를 안다고, 당장에 눈이 뒤집힌 것은 돌아온 정신 속에 자신의 안전을 보장받는 것이 우선이었기 때문이었다.
허니 그러려면 역시 외부의 힘을 이용하는 것이 최우선이었고, 그 와중에 자신이 몸담은 세력을 가장 잘 활용하는 것이 중요했다.
“무, 무슨 일이십니까?”
그렇게 그가 한 차례 난동을 피우자 운이 좋게도 살짝 어벙해 보이는 신임 관병 하나가 쭈뼛대며 이쪽을 향해 다가왔다.
그리고 그는 기다렸다는 듯이 목청을 높이며 그를 윽박질렀다.
“새끼야, 너 내가 누군지 알아, 몰라?”
“그게, 서원팔교위 중에 전 하군교위 되시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만.....”
유치하고도 빤한 수였지만 그럼에도 이는 작금에 그에게 있어 가장 자신하고 과시할 수 있는 최선의 패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이 어벙한 것이 자신의 정체를 알고 있는 것을 확인했으니 일이 좀 더 수월해지리란 판단이 더해진 것은 겸이었다.
“잘 알고 있네. 허면 내 잔심부름 좀 해주었으면 좋겠는데?”
“하, 하오나 이는 옥리의 허락이 있어야 합니다.”
“내가 여기 들어온 지 얼마나 되었지?”
“그것이......, 닷새 정도 되셨습니다.”
“그지, 고작해야 닷새지? 한데 그 안에 나를 찾아온 이가 누가 있었지?”
저라고 어디 모든 기억이 다 돌아왔겠냐만 신기하게도 이러한 부분은 재깍재깍 기억이 나는 것이 참으로 용했다.
뭐, 눈앞에 자리한 이 어벙한 것에겐 미안하지만 그럼에도 어쩌랴?
자신이 살기 위함인데, 또 살아야 그다음이 자신을 있게 함인데.
그렇기에 실로 그는 앞으로 자신의 인생을 허투루 살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물론, 그 이전의 삶도 나름 충실했으니 허투루 살았다 하기도 뭣하지만 말이다.
“그러니까 그게......”
“이걸 직접 내 입으로 말해야 될까? 아니면, 네가 직접 나를 찾아온 방문객들 하나하나 기록된 명부를 직접 내 앞으로 가져와 이를 또박또박 읽는 게 빠를까?”
“아, 아닙니다! 하, 하지만 그러다 옥리께 걸리면 제가 당장에.....”
“그 옥리 내가 여기서 나가면 어떻게 될 것 같아?”
“아, 아무래도......”
“곱게 죽긴 글렀지? 그지?”
“예, 옛!”
다행히 그 와중에 협박이 통한 모양인지 눈앞에 자리한 이가 겁을 집어먹은 채, 자신의 점점 굽신대는 것이 보였다.
“지필묵.”
“그, 금방 대령하겠습니다!”
그렇게 자신이 바라던 소박한 조건 하나를 충족시킨 그는, 이내 깨어난 상황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정리하고 정의할 수 있는 관조와 성찰의 시간을 맞이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내 이름이 포홍이고......”
어차피 딱히 넓지도 또 좁지도 않은 곳에 혼자 자리하고 있었던 것이 큰 도움이 되었다.
그 안에 지필묵을 곱게 펼쳐놓은 포홍은 그리 자신의 기억을 더듬어 가장 중한 부분들을 적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188년이 다 끝나가는 연말인 시기.
주자사가 폐지되고 군권마저 보장된 주목이 천하를 통솔하게 된 시기.
한 차례 큰 폭풍이 불기에 앞서 더 큰 변화와 변곡점을 앞당기는 시기.
지속된 갈등 속에 누구 하나 그 방아쇠를 당기면 연쇄 충돌과 폭발이 연달아 일어날 것만 같은 시기.
조당에는 청류와 탁류가 있고, 외척에는 동씨와 하씨가 있고 그 와중에 중상시를 비롯한 환관이 권력을 놓지 않고 있으며, 거기에 제가 줄을 대고 있는 건석이 소황문으로도 모자라 황제의 직속 상비군인 서원팔교위의 대빵이자 총책임자로 자리한 시기.
그 시기를 돌이켜 모든 것을 정리한 포홍은 그 격동의 중심에 사라예보와 같은 첫 방아쇠를 당긴 당사자가, 정확히는 그 빌미를 내어준 당사자가 바로 다름이 아닌 자신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제기랄, 이거 아무 의미 없이 적진으로 들어간 게 바로 나잖아-!”
콰앙- 콰앙-
“이 빌어먹을! 이 개 같은 거! 아니, 이 새끼는 지인생을 어떻게 살았길래 이 지랄이야, 지랄이! 어? 으아아아아-!”
그렇게 그 머리를 쥐어뜯으며 비명을 지르는 것을 시작으로 주변에 자리한 집기를 내던지며 한동안 난동을 피우다 간수들에게 두들겨 맞아 겨우 기절한 포홍이었다.
“제기랄....., 내가 무슨 일이 있어도 산다. 내가, 무슨 일을 저질러서라도 여기서 나갈 거야.”
그리고 간수들에게 두들겨 맞아 기절한 그의 입에선 새로운 발돋움을 위한 그만의 다짐이 아주 작게 새어 나오고 있었다.
- 작가의말
* 2020.7.31자 수정완료
아무래도 시점이 변경이 된 상황이라 이전의 분량을 바꾸어나가는 것이 쉽지만은 않습니다.
허나 1인칭 시점도 모자라 관련 용어의 혼란까지 있었던 만큼, 조금씩 앞선 내용을 수정하고 그 시점을 바꿔 보다 나은 편의성을 추구하며 글의 시점을 하나로 통일할 예정입니다.
공지에 밝혔던 대로 59화 이전의 글들은 이리 시간이 날때마다 조금씩 내용의 수정을 거치게 됩니다.
조금이라도 더 편한 이용이 되시길 바라며 이만 물러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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