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화 – 가히 왕이로구나, 칭왕의 죄를 물을 수가 없다
“죄인들을 모두 무릎 꿇려라.”
땟국물이 흐르며 제대로 된 의복조차 갖추지 못한 백성들이 마치 형을 집행하는 군병들처럼 어설프고 과장된 걸음으로 비단을 걸친 이들을 끌고 와 바닥에 내던졌다.
풀썩-
“하나, 안읍의 관료.”
“사, 살려주시오! 사, 살려......”
“죽어라! 죽어라 썩을 놈! 감히 우리를 성밖에 썩게 만들었더냐!”
“살려두지 마라! 그 멱을 따버려라!”
“집행.”
서걱-
죽음 앞에 그 마지막 발버둥조차 칠 수 없었던 이들의 죽음은 이제는 그 앞에 쌓인 수십 구에 달하는 시체로 말미암아 익숙하다 못해 똑같은 모습을 반복하고 있었다.
“다음은, 안읍의 토호!”
“찢어 죽여도 시원치 않을 지주 새끼! 저 홀로 배불리 살아남으려 했던 부호 놈들은 죽어야 마땅하다!”
“그게 무슨....., 내, 내가 무슨 죄를 지었다고, 내가 왜.......”
그러나 그리 끌려온 이들 중 다수는 억울하고도 원통한 모양새를 띄고 있었다.
“닥쳐라! 가진 것이 많은 네놈들은 너희의 것을 내놓지 않았다! 네놈들이 일찍이 너희 것을 내어놓았으면 이런 일은 없었다!”
“그, 그래서 내어 주었다! 병사도, 군량도 이미 안읍의 태수가 요구하기에 내어 주었단 말이다!”
하라는 대로 했고, 달라는 것은 모조리 내어 주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자신들의 죽음을 바라는 저 수많은 백성들의 모습은 작금의 형틀에 놓인 이의 입장으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결과물이었다.
“역시 더러운 놈들! 저들끼리만 주고받는구나! 우리는 받은 것이 없다! 우리에게 내어 주지 않았지 않았느냐!”
“암, 옳은 말이야! 저놈들이 역시 저들 좋으라고, 뒤에서 구린 짓을 일삼은 게야!
“그게 어째서 그렇게 되느냐! 저기 자리한 임협 놈들에게 부족하나마 쌀을 받았을 것 아니냐! 그게 다 우리가 내어 준 것이다! 이 무지하고도 몽매한 것들아! 우리의 쌀이 너희를 구제한 것이다! 이는 우리가 내어 준......!”
그리 예상치 못한 이야기를 꺼내는 토호가 거슬렸기 때문일까?
상좌에 앉은 유비는 형의 집행을 서둘렀다.
“집행하라.”
“집행이라니, 갑자기 그 무슨 소리야!”
“집행하라, 어서!”
스릉-
“이 찢어 죽여도 시원치 않을 개새끼들아! 지랄하지 마라! 내가 왜 죽어야 하느냐! 나는 죽을 이유가 없다! 내 네놈들에게 모든 것을 내어 준다고 하지 않았더냐! 네놈들이 성을 점거한 이후 분명 내가 다 협조 하겠다, 다 내어 준다고 약조를......!”
푸화아악-
그렇게 또다시 핏물을 머금고 땅바닥에 닿은 칼날의 너머 데구르르 굴러가는 사람의 목과 그 앞에 뿜어낸 핏줄기가 터졌다.
“이 땅 엉덩이를 깔고 앉은 더러운 돼지가 죽었다! 이는 올바른 형의 집행이며, 다시금 이 땅의 질서가 회복되는 순간이다!”
와아아아아아-
그러나 도리어 이로 말미암아 수많은 백성들의 우렁찬 고함을 내지르고 두 팔을 흔들며 환호성이 자리하니, 이는 마치 안읍에 모여든 모두가 즐기는 하나의 거대한 축제와도 같았다.
타앙-
그리고 그 속에서 다시금 자신이 나설 때를 깨달은 유비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다시금 목청을 높이며 제 주변에 자리한 이들에게 진심을 담아 호소했다.
“이것으로 저 부정하고 부덕한 이들에 대한 모든 징치가 끝났소! 이제 우리 모두 하나 되어 이곳을 노리는 백파적들에게 맞섭시다! 이제는 우리도 우리의 고향을 찾아야 할 것 아니요!”
“우리의 왕께 천세를!”
- 우리의 왕께 천세를!“
“그마아안! 나는 왕이 아니요! 나는 중산정왕의 후손이며 뜻이 맞는 형제들과 함께 의기를 품고 일어섰을 뿐이니, 더는 나를 왕이라 부르지 마시오!”
“허나 누가 뭐래도 유공께서는 저희의 왕이십니다! 도탄에 빠진 저희를 구원하시고 몸소 저희를 위해 싸우셨습니다! 아니, 그렇소들?”
그리고 축제에는 역시 연극이, 짜임새 있는 공연이 빠질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 빤하디빤한 연극 속에, 모두가 집중해서 지켜보는 놀랄만한 공연을 이끌어나가는 무대 위의 백성 1은 역시 경옹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그의 선동에 물든 수만 명의 백성들은 안읍이 떠나가라 환호하며 소리를 질렀다.
“자, 우리 모두 천세를 외칩시다! 허나 우리의 왕께서 겸양의 자세를 보이시며 스스로가 왕이라 불리지 않기를 원하시니 그분의 자를 높여 천세를 부릅시다!”
그도 모자라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하기 위한 변명거리마저 미리 마련해놓았으니, 이는 한 차례 단물이 빠진 호칭을 내버리고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하려는 시도였다.
“현덕 공, 천세!”
- 현덕 공, 천세!
“천세! 천세! 천천세!”
- 천세! 천세! 천천세!
그렇게 모두의 환호 속에서 손을 흔들며 안읍의 태수부로 발걸음을 옮기는 유비는 연신 웃는 낯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미소 속에 마치 독심술이라도 하듯, 제 옆에 자리한 관우를 향해 상황을 묻는 그는 환한 미소에 어울리지 않을 심각한 눈빛을 드러내고 있었다.
“낭중령이 이끄는 2만의 군세가 어디까지 왔다고?”
“벌써 강읍에 도달했다고 합니다.”
“백파적들은?”
“예상치 못한 이들의 등장에 혼란스러워하고 있습니다. 거기에 이미 운송 중이던 수많은 물자를 빼앗기다 못해 수 차례의 교전 속에 연신 패퇴를 거듭하는 모습이옵니다.”
“운장.”
“예, 형님.”
“겨우 고향 땅을 밟은 네게 미안한 말이지만, 어쩌면 우린 또다시 떠날 준비를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낭중령, 때문입니까?”
“예상보다도 더 빨라. 거기에 혹시 모를 칭왕의 문제 또한 우리의 자의가 아니었음을 그의 앞에 해명해야 한다.”
“하옵시면?”
“운이 좋다면 산다. 그 운이 평이하다면 살아도 이곳에 뿌리를 내릴 수 없고, 만일 운이 나쁘다면......,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죽어라 도망쳐야 할 것이다.”
철컥-
“충!”
“후우.”
어느덧 백성들을 지나쳐 태수부에 발을 들인 유비는 이내 군례를 올리는 병사들의 인사에 그 자리에서 멈춰선 채, 안도했다.
그래, 이곳이야말로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자신을 위한 안식처였다.
고난에 힘겨움이 녹아든 수년의 세월을 걸쳐 그리 찾은 정착지였다.
그러나 작금에 이르러 이제는 그 또한 온전치 못한 것이 되었으니 그런 자신을 지켜보는 관우의 표정 또한 좋지 못했다.
“하아, 빌어먹을 낭중령.”
유비는 짙은 한숨과 더불어 두 눈을 감고 자신의 고개를 뒤로 젖혔다.
그리 두 눈을 감은 고개 너머로 보이는 것은 가히 그러한 자신을 무심한 얼굴로 내려다보는 가후였으니, 마치 거인의 모습으로 제 위에 자리한 그를 더는 지켜볼 수 없었던 그는 고개를 저으며 무의식이 만들어낸 두려움의 산물을 씻어내기 위해 저항했다.
“형님! 괜찮으시옵니까!”
“상상만으로도 무섭구나.”
아무리 촌구석을 전전했다고 한들, 세상 돌아가는 일을 모르지 않는 유비였다.
서역도호부를 부활시킨 것을 비롯해 황보숭의 지낭으로 활약했던 그는, 황보숭이 죽은 이후로도 기존의 직위를 유지한 채, 황보력과 함께 사례에 자리한 이들을 이끌어나가는 중이었다.
거기에 일찍이 외척을 비롯한 명가의 이들을 쳐냈고 그 이후엔 병력을 움직여 하내에 자리한 흑산적들을 막아내었으며, 이제는 자신이 자리한 하동으로 직접 그 걸음을 내딛으며 다시금 사례의 조정이 잃어버렸던 그들의 영역을 되찾는 중이었다.
그들의 색채를 지워내고, 백파적들을 밀어내며 자신의 색채로 물들이려던 이 땅이, 자신의 것으로 만들려 했던 이 땅이 다시금 그의 손아귀에 쥐어지고 있었다.
“하오나 이 땅의 백성들이 형님을 따르고 있지 않습니까?”
하지만 관우는 이에 반발했다.
참으로 믿음직스럽고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럼에도 유비는 현실
“그래, 그래서 지금 이리 저들을 대신 방패막이로 세우겠다고 이 빤한 연극을 계속하고 있지 않더냐? 허나 약장수들이 벌이는 공연도 똑같은 것이 반복되면 약발이 떨어지는 법. 그 강도가 떨어지면 더는 관객을 불러들일 수 없으니, 부작용이 있더라도 독한 약을 써야겠다.”
그렇게 각오를 다진 유비는 자리를 옮겨 그나마 얼마 남지 않은 곡식을 보관 중인 창고로 향했다.
“형님! 설마 이걸 모조리 저들에게 풀겠다는.....”
“그 강도가 세야, 그리 약발이 좋아야 저들이 끝까지 나를 놓지 않는다.”
“형......!”
“어차피 조금 있으면 추수다. 조금 일러도 상관없으니 조금만, 백파적들이 물러나고 낭중령이 이곳에 올 때까지 그 찰나만 버티면 돼.”
결국, 유비가 택한 것은 빵과 서커스였다.
이미 보여주기식 오락과 공연은 끝이 났으니, 남은 것은 권력자가 자신의 인기와 지지를 위해 백성들에게 무상으로 풀게 되는 식량이었던 것이다.
끼이이익-
그렇게 시간이 흘러 창고의 문이 열렸다.
수많은 백성들이 태수부의 앞에 줄을 서며 곡식을 받아가고 그럴 때마다 유비의 이름은 드높아졌다.
허나 안읍에 자리한 백성들은 그 짧은 세월, 안읍이 가진 모든 것을 소모하며 그런 유비가 사라질지도 모르는 다음을 기약하지 못한 채, 찰나의 풍족함에 취해 태평성대를 불렀다.
물론, 작금에 안읍을 비롯한 하동 땅을 내어 줄 생각이 없는 유비 또한 이것이 자신에게 어떠한 결과로 돌아오게 될지를 예상하지 못한 채, 자신이 내린 결단을 밀어붙이고 있었다.
* * *
푸르르릉-
“재미있구나.”
그리고 때마침 동원현을 지나쳐 하동에서 병주로 나아가고, 백파적들의 근거지인 통천산으로 나아가는 길목을 막아 세운 채, 강읍과 인분에서 북상하는 백파적들을 상대하는 가후는 세작들이 가져온 유비의 소식에 흥미가 인다는 표정을 지어 보이고 있었다.
“내가 저들의 굶주림을 해결해주었다. 거기에 내가 저들에게 업적을 선사해주었다. 저들은 나로 말미암아 그 생존을 보장받았을뿐더러, 평생에 걸쳐 자랑할 이루 말할 수 없는 인간으로서의 성취감을 선사 받았다. 허니, 어디 가져가 볼 테면 가져가 봐라. 뭐, 이런 건가?”
가후는 인간의 본성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작금의 유비가 저지른 일들과 그에 동조한 백성들이 벌인 일에 놀랄 만큼의 찬사와 거슬림을 동시에 표현하고 있었다.
“나, 낭중령! 저기 백파적의 이들이 또 몰려오고 있사옵니다.”
그러나 그 찰나에 저들의 처우를 결정하기에는 아직 인근의 상황이 정리되지 않았다.
졸지에 북쪽으로의 길목을 틀어막은 가후 덕분에 애먼 하동 땅에 갇히게 된 백파적들은 사력을 다한 탈출로의 마련을 위해 다시금 가후에게 달려들고 있었던 것이다.
“쯧, 그리 당하고도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군. 호적아!”
“예, 낭중령.”
“암만 도적의 이들이 군병들과 비슷한 모양새를 갖추게 되었다 한들, 그 본성을 뒤바꿀 순 없다. 참을성이 부족한 이들이니 철저하게 방어에 치중한 진으로 저들을 묶어놓은 뒤, 기병을 우회하여 그 뒤를 때려라.”
“하내 태수 저수가 내보인 대전략 말이옵니까?”
“그 원형이 본디 전술이다. 저수는 지관과 기관의 힘을 빌려 저들의 병력을 묶어둘 방진을 대신하였으나 우린 병력으로 이를 대처해야 한다.”
“이를 말이옵니까?”
“개개인의 무가 아무리 뛰어나다고 한들, 사람이 하나 되어 이루는 움직임만 못하다. 하물며 중구난방의 난전을 좋아하는 도적들이라면 채, 일각이 지나기도 전에 그 자제력을 잃고 먼저 덤벼들 것이다.”
“그때만 견디면 되겠군요.”
“그래, 그 마지막 불꽃이 다해 제풀에 지친 이들의 뒤를 치면 알아서 무너진다.”
“그리하겠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가후의 예측은 무서우리만치 정확하게 맞아떨어졌다.
“뚫어라! 무슨 일이 있어도 뚫어!”
“하오나, 대두령! 저들의 진용 자체가 워낙에 탄탄합니다!”
“허면 우리는! 갑주에 병기에 저들마냥 병과마저 나눈 우리인데 왜 저놈들을 넘지 못하는 게야!”
“저들 또한 이 나라의 정예이지 않습니까! 거기다 저들은 이미 하내에서 십만이 넘는 흑산적들을 상대한 전력이 있는 이들입니다!”
“상관없어! 그렇게 따지면 우리는 이 나라 최강인 서원군을 박살낸 이들이다! 우리가 최강이야! 이 나라에서 제일가는 도적이 바로 우리 백파적이란 말이다!”
지속된 백파적 수뇌부의 갈등은 더더욱 초조한 상황만을 만들어내고 있었고, 결국 그 끝에 이르러 이성을 놓아버린 곽태가 말을 달리며 전군을 중앙으로 밀어 넣었다.
“어차피 일 점만 뚫리면 돼! 저 하나만 뚫은 뒤에, 잘라낸 이들의 한쪽을 잡아먹고 그다음을 잡아먹으면 우리가 이긴다.”
물론, 곽태라고 아무런 생각이 없이 일을 저지른 것은 아니었다.
도리어 이미 이성적으로 판단을 내렸기에, 그 후에 더는 필요치 않을 그 이성을 내던진 채, 저들을 뚫어내는 것 그 하나에 집중해 전장의 판도를 뒤집으려 했다.
“쏴라!”
피비비비잉-
“무슨 일이 있어도 저들의 공세를 막아라! 일 점이 뚫리면 모두가 죽는다! 하내에서의 일을 기억해라! 지난날의 흑산적들을 또한 이와 같았다! 헌데도 같은 수에 또 당해줄 셈이냐!”
터엉- 텅- 텅-
그러나 애석하게도 이번만큼은 곽태에게 그 운이 나빴다.
이미 정예인 이들이 자신들과 같은 도적을 상대하며 쌓아 올린 경험치와 연륜은 가히 일반적인 군사들과는 차원이 다른 대응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 전략과 전술이 밀려드는 도적들을 방어하는데 특화되어있음은 물론, 작금이 백파적들보다 더 많은 수의 병력을 죽어라 몸으로 막아낸 이들의 지치지 않는 체력과 놀랄만한 우직함은 끝까지 백파적들에게 그 어떠한 빈틈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허억, 허억......”
“제기랄, 왜 안 뚫리는 것이냐. 왜! 대체......!”
두두두두-
그리고 공세에 지친 백파적들이 하나둘 그 자리에 주저앉으며 무너질 때 즈음, 그런 그들의 뒤로 수천에 달하는 기마대가 달려들었다.
“쳐라!”
콰과과광-
마치 종잇장을 찢어내듯, 백파적들의 후미를 격파하며 들이친 기병들의 향연은 가히 한데 뭉쳐 있는 그들을 졸지에 사방으로 흩어지게 만들었다.
이미 체력도 의지도 모든 것이 꺾여 바닥을 치는 마당에, 더는 못하겠다고 살겠다고 적이고 뭐고 냅다 도망치는 이들의 향연에 가후는 제 손에 자리한 회색빛의 우선(羽扇)을 들어 이내 바람을 일으키듯 사방으로 흩어지는 그들을 향해 휘둘렀다.
휘이이이잉-
그리 가후가 만들어낸 바람은 어느덧 백파적들이 패퇴하는 전장을 집어삼킨 것도 모자라 하동 전역을 휩쓸었고, 이는 패퇴하는 백파적의 이들을 그보다 더한 남쪽이자 하동의 치소가 자리한 안읍으로 밀어내게 되었다.
그리고 그러한 안읍을 불법적으로 점거 중이었던 유비는 이리 예상치 못한 백파적들의 남하에 다급히 비상 상황을 선포하고 성문을 닫은 뒤, 성의 주변으로 몰려드는 백파적들과의 전쟁에 돌입했다.
펄럭-
“감히 멋대로 남의 영역에 들어와 기존의 이들을 밀어내고 칭왕을 한 죗값은 치러야지요. 아니, 그렇습니까? 안읍의 왕이시어?”
그리고 목 좋은 언덕 위에 진을 치고 부채를 흔들며 자리를 잡은 가후는 이러한 백파적들과 안읍의 전쟁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에 의해 남쪽으로 밀려난 백파적들은 다시금 자신들의 재기를 위해서도 또 이다음에 있을 가후와의 전쟁을 위해서도 인력과 군량 등을 비롯한 물자가 절실하게 필요한 상황이었고, 그 와중에 휴식을 취하기 좋고 수비마저 유리한 성마저 얻어낸다면 더할 나위 없는 이득을 취하게 되는 것이었으니 이들은 무서운 기세로 안읍성을 포위한 채, 매일 같이 공성을 시도했다.
그리고 그리 위협적인 기세로 달려드는 백파적의 이들에 맞선 유비의 이들 또한 가히 그 목숨을 내건 저항을 시작하였으니, 이는 백성들과 군사들이 하나 되어 외적을 격퇴하는 실로 아름답다 못해 감격스러운 모습을 낳으며 가히 기적에 가까울 수성을 보여주고 있었다.
타악-
“내 이걸로 더 이상의 죄는 묻지 않지요. 그래요, 용인하겠습니다.”
그리고 먼 발치에서 한동안 이를 지켜본 가후가 용단을 내렸다.
“관민이 하나 되어 들고 일어서니 가히 그 그림이 좋을 수밖에 없고, 토호라는 이름 아래 이 땅에 자리한 모든 사족들을 죽인 죄를 물으려 하였으나 그러면 도리어 백성들의 반발을 사게 될 것이니, 그래요. 이 하동 내어 드리겠습니다.”
작금처럼 백성들이 직접 유비를 따르는 상황에 도리어 직접적으로 그를 징치하게 되면 황하 너머에 자리한 사례의 민심은 급격히 이반될 것이니, 가뜩이나 지난날 삼보를 떼어주며 줄어든 사례를 그보다 더 작게 축소 시킬 순 없었다.
그럼에도 도적이나 포홍을 비롯한 이들에게 넘어가는 것보다야 훨씬 나은 결과임은 부정할 수 없으니, 머리를 굴려 후일을 고심한 가후는 이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하지만, 하동을 내어 드린 대가만큼은 가져가야겠습니다.”
이 모든 것은 실상 가후가 내보인 이이제이이자, 기존의 손실을 메우려는 그의 계책이었으니 그리 전투가 벌어지는 안읍성 인근의 익어가는 밀과 보리를 확인한 가후는 다시금 자신의 아래에 자리한 황금 들녘을 향해 부채를 휘둘렀다.
“내가 잃은 그 많은 양의 군량은 모조리 여기서 충당합니다. 호적아!”
그렇게 호적아를 선두로 다시금 군사들을 풀은 가후는 전투에 몰입한 이들을 내버려 둔 채, 안읍성 인근에 자리한 모든 밀과 보리를 수확했다.
그렇게 얻어낸 곡식의 양은 이미 지난날 가후가 백파적들에게 빼앗긴 군량을 초월하고 있었고, 이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은 가후는 수학한 군량을 나눠 그 절반에 달하는 양을 다시금 병주에 자리한 정원에게 보냈다.
다만, 이번에 보낼 군량은 미끼가 아니었기에 그는 호적아를 주장으로 삼아 확실한 호위를 갖춰 보냈다.
이는 작금의 병주에서 벌어지는 대리전에 자신이 직접적으로 뛰어들 수 없음을 다시금 상기한 가후의 노림수가 들어있는 판단이었는데, 군량을 전달하는 것은 물론, 이미 실전을 거친 수천의 정예를 군량의 수송을 핑계로 병주에 자리한 정원에게 지원병으로서 밀어 넣기 위한 조치였다.
“후우, 이것으로 모든 것이 끝났군.”
그렇게 애초에 본래의 목적이었던 병주의 일까지 깔끔히 처리한 가후는, 이내 남은 군량과 남은 군세를 이끌고 사례로 돌아가기 위해 말머리를 돌려 지주산이 자리한 하동의 남쪽으로 내려갔다.
그러나 그리 수많은 일을 모두 하나로 엮어 단 한 번에 처리하는 놀랄만한 능력을 내보인 그 또한 심간에 남은 작은 아쉬움은 쉬이 지워내질 못하였으니, 이는 바로 뜬금없이 하동 땅에서 튀어나와 자신을 놀라게 한 유비였다.
“차라리 하내였다면......”
그래, 하내였다면 속 시원히 유비의 존재를 용납했을 것이다.
저 정도 능력을 보이는 이가 굳이 가장 복잡한 정국의 갈등이 뒤섞인 대리전을 치르는 전장의 복판을 차지하니, 찰나의 혼란과 더불어 한때의 답답함이 들지 않았던가?
그렇게 말 등 위에서 제 턱을 괴고 고심에 빠진 가후는 새로이 자신의 바둑판에 발을 들인 유비라는 바둑돌에 대해 고심하기 시작했다.
“이걸 어찌 써야, 돌 하나 잘 뒀다는 소리를 들을까?”
머뭇거리는 그의 손은 이미 하동에 놓인 유비라는 이름의 돌조차 다른 곳으로 옮겨두고 싶은 모양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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