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화 – 돈이 깔린 판에, 사람 사이가 좋을 수가 없다(1)
휴저각호의 자신만만한 표정에 남흉노의 선우인 수복골도후의 시선이 변했다.
“부귀? 분명 부귀라 했나?”
“병주에서 팔려온 노예들이 아주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고 있더군요.”
“결국 자네도 북시에 손을 댄 것이로군.”
휴저각호는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자리하였으나 그보다 앞선 사실관계를 파악한 수복골도후였다.
그리고 그러한 그의 위치는 바로 선우의 다음이었으니, 이는 부족할 것 없는 네놈도 다른 이들마냥 세력 불리기에 급급하냐는 선우로서의 질책이었다.
“어쩔 수 없지 않습니까? 정원이 병주를 병탄하면서 아예 반항하는 것들은 싸그리 씨를 말리고 있는 터라 한인들이 모조리 병주 변경이 북시로 공출되는 것을, 안 사는 놈이 도리어 바봅니다.”
“그래서 그 한인들을 어디서 구했나?”
“오원에서 구했습니다.”
“제법 규모가 크겠지?”
“늙은이, 계집, 아이, 사내 가릴 것 없이 엄청난 숫자입니다. 노예상들도 이참에 덤에 떨이까지 물량이 많으니 매일 거래되는 이들의 숫자만 족히 일, 이천은 넘을 겁니다.”
“그러나 그게 오래가진 않을 게야. 그렇지?”
“암요, 빨리 팔고 또 한동안 쥐죽은 듯이 조용히 해야지요. 저들이야 한인들의 영역에서 한인들을 팔았으니 명목 상의 감찰이라도 걸리면 골치 아프지 않겠습니까?”
“해서, 그놈들을 털자?”
“아직 본론에 들어가지 않았습니다만, 그게 첫 번째 연유가 되겠습니다. 더불어 예상치 못한 노시(노예시장)으로 말미암아 오원과 삭방에 활기가 돌고 있으니, 인근의 군민들까지 싸그리 털어서 북방으로 잠시 자리를 옮기잔 말이지요.”
“흐음.”
여전히 부족하긴 하나 그럼에도 병력을 물려 사연택을 내어주자는 휴저각호의 주장에 하나의 설득력이 실리는 순간이었다.
“허면 두 번째는?”
“이게 실상 본론이온데, 제가 병주에서 팔려 온 노예들로부터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었다 하지 않았습니까?”
“그랬지.”
“사연택을 중심으로 새로이 무역로가 생긴답니다.”
“뭐라!”
“이걸 두고 말들이 제법 많은 모양인데, 이미 병주에서는 자신들에게 어울리지 않을 기주의 붓, 족자, 종이, 서화 자기, 먹, 향로, 비단 등 지필묵을 비롯한 사치품들을 수입하고 있답니다.”
웅성웅성-
무역로, 아닌 말로 돈줄이자 황금의 길이라 불러도 이상하지 않을 이야기가 나오자 다른 남흉노의 수뇌부들 또한 이에 격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허나 병주의 이들이 간과한 것이 있지요. 그리되면 삭방과 오언 인근에 자리하던 노시가 무너집니다. 더 큰 돈줄이 흐르고 더 많은 구매자들이 모이는 사연택으로 이들은 눈을 돌리겠지요. 여포 또한 흉노의 이들을 받아들이고 있으니 거진 한의 이들마냥 빡빡하지 않을 것 아닙니까?”
“그러니까......”
“어차피 한인의 눈치를 보면서도 노예장사를 했겠다 더 자유롭고, 더 많은 이들이 모여드는 더 큰 시장을 향해 그리 노예상들이 옮겨가면 삭방과 오원은 결국 이전만 못하게 됩니다. 실상 노예매매에 겸하여 다른 생필품이나 곡식과 가축 등을 거래했던 것인데, 그 중심에 자리한 노예상들이 사라지면 당연히 다른 이들도 자취를 감추겠지요. 그래서 그 이전에 털어먹어야 합니다.”
“이게 두 번째 연유인가?”
“정확히는 첫 번째를 뒷받침하는 또 다른 연유라 해두지요.”
“허면 두 번째 연유는 무엇이더뇨? 어서 그것부터 말하지 못하겠나!”
콰앙-
눈앞에 돈이 아른거렸기 때문일까?
마치 다른 수뇌부의 의견을 반응하듯 그 눈을 빛내며 휴저각호를 독촉하는 수복골도후였다.
“아까 설명을 드리지 못했던 두 번째 연유는 바로 그 무역로가 당장에 수익이 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저희가 사연택을 양보해야 하는 본질적인 연유지요.”
“그래서....., 그래서 그런 거였군.”
“그러하옵니다, 선우. 저희가 이대로 이곳에 눌러앉게 되면 애초에 교역을 하러 이들이 모여들지 않겠지요. 운이 좋아 아무런 피해가 없이 여포 놈을 물리쳐도, 결국은 이전과 같은 상황으로 돌아갈 뿐 무역로가 들어서지 않을 것이니, 결국 새로운 수익을 기대할 수 없게 되옵니다.”
“허면 우리가 이곳에 장을 차리면 되지 않은가?”
“송구하옵니다만 남의 것을 빼앗는 게 일상인 이들에게 신용을 찾을 수 있겠습니까?”
“제기랄, 그거야 나약한 한인들의 삿된 논리가 아닌가!”
“우리라고 교역을 하며 돌아다니는 이들이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거진 상인이라는 이들이 존재치 않는 것에는 다 그만한 연유가 있습니다.”
“쯧, 눈앞에 먹음직스러우면 다 죽이고 빼앗으면 그만이니까.”
소위 사내의 본성이자 유목민으로서의 당연함이 때론 한인들의 영향을 받아 무식한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으니 그것이 바로 지금이었다.
“바로 그것입니다.”
그에 비해 지금 자신의 옆에 자리한 이 휴저각호는 가히 한인들만큼 똘똘하고 영특한 두뇌를 보유하고 있었다.
“해서? 그놈이 이곳에 장을 열고 그 장을 더 키울 때까지 기다려야 한단 말이지?”
“선우, 이는 마치 양을 기르는 것과 같습니다. 토실토실 살이 오를 때까지 그저 두고 지켜보면 그뿐입니다. 어차피 이곳이야 한인이 사는 땅이며 자리가 좋아 잠시 자리를 잡았다고 한들, 말 그대로 그뿐이지요. 사방이 막힌 이곳에서 힘을 기르기는 부족하고 그렇다고 연달아 전쟁을 치르기에는 그 손해가 막심하기만 합니다.”
“그러나 그대의 말을 따른다면, 해서 사연택을 비워주고 북상하는 길에 삭방과 오원을 털어먹는다면?”
“돈과 물자는 물론이고, 노예를 확충하며 당장에 그럴듯한 수익이 생기게 되지요. 많게 잡으면 최대 1만이 넘는 한족의 노예를 부릴 수 있게 될 것이옵니다. 부족하다면 인근에 농사를 짓게 하여도 되고 겸사겸사 만이곡에 숨어든 도망자들을 꼬드겨 더 많은 이들을 낚아 북방으로 돌아가도 좋겠지요. 다행스럽게도 늦여름까지 이어진 장마로 말미암아 북쪽의 초지에 제법 풀들이 많이 올라왔다고 합니다.”
“어부라 놈이 북상한 연유도 그것이었지.”
“잘 자란 양의 가죽을 벗기고 고기를 얻는 일이야 그때 가서 해도 늦지 않습니다. 잘 자란만큼 맛이 좋을 것이며 그 양도 아주 많을 테니 말이지요.”
콰앙-
“좋다!”
당장의 이득이 약속된 것도 모자라 이자마냥 불어나 점점 커지는 잠재적 이득 또한 약속된 상황이니 더는 이를 지체할 것도 없었다.
“병주를 쓸어버립시다, 선우!”
“삭방이고 오원이고 어차피 우리 영역에서 코앞입니다! 계집에 사내에 그냥 가릴 것 없이 모조리 다 털어버립시다!”
“이리 훌륭한 용장들이 자리하고 있으니 나, 남흉노의 선우인 수복골도후가 어찌 가만히 있을 수 있다더뇨! 작금의 어부라는 멋대로 선우를 자처하고, 그 수하들로 하여금 록리왕을 운운하며, 대장을 논하고, 대도위의 직을 들먹이는 것도 모자라 감히 내가 허락지 않은 대당호를 두고 나와 같은 골도후를 두려고 함이니 이는 필경 그놈의 목을 베지 않고서 끝나지 않을 문제라!”
“선우께 충성을!”
“선우께 충성을!”
“허나 진정한 선우는 만인의 추대 속에 그 그릇을 직접 증명할 수 있어야 하는바, 일개 골도후였던 내가 이리 선우가 된 것은 온 흉노인들의 뜻이라! 선우의 위에 오른 내가 아직도 골도후(骨都侯)로 불리는 것은 바로 선우를 참칭하고 나선 저들이 나를 일개의 번(藩)이자 한족들의 후(侯)마냥 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아직 진정한 흉노의 주인된 자리를 가릴 수 없어 제놈 또한 후를 자처한 것이고, 그렇기에 나 수복은 시축(尸逐)을 넘고 취(就)를 넘어 제(鞮)의 자리에 오르겠다!”
둥- 둥- 둥- 둥-
그렇게 말가죽과 양가죽을 덧씌운 북소리가 사연택에 자리한 진중을 뒤흔들고 있었다.
이번 기회를 발판삼아 자신들이 죽인 선대의 선우인 난제 강거의 아들, 난제 어부라를 오롯이 치워내고 진정한 흉노의 제위에 오르겠다 선포한 수복골도후의 우렁찬 외침으로 말미암아, 삼만이 넘는 흉노의 전사들이 일거에 게르를 해체하고 말 등에 오르며 다시금 본래의 모습으로 자리하고 있었다.
히히히히잉-
푸르르륵-
수만 마리에 달하는 전마들이 줄지어 무리를 짓고 있었고, 각기 초원을 달리는 썰매와 더불어 모든 천막과 울타리를 해제한 이들이 말 등에 올랐다.
“진공(進攻)!”
두두두두-
그렇게 삼 만에 달하는 흉노의 무리가 병주의 북쪽을 향해 움직였다.
여포가 일으킨 나비효과로 말미암아 병주의 예상치 못한 암운이 드리워진 순간이었다.
* * *
“병주목! 병주목-!”
헐레벌떡한 뛰어드는 이의 다급한 목소리와 더불어 거진 바닥에 엎어질 듯 무릎을 꿇어앉은 전령이 그리 병주목의 치소로 뛰어들었다.
“무슨 일이냐?”
이미 그곳에는 돌아온 장양과 민공을 비롯해 새로이 정원에게 복속되어 그를 따르는 제장들이 좌우로 도열해 있었으니, 이는 때마침 사연택의 이들을 정리하기 위할 병력의 편제를 논의하는 자리였다.
“크, 큰일이 났사옵니다! 지, 지금! 지금 오원과 삭방이.......”
콰앙-
“그게 무슨 소리야? 오원과 삭방이 뭘 어찌 되었다고-!”
“휴, 흉노입니다! 사연택에 자리하고 있던 남흉노의 이들이 북상하며 그 두 군을 습격했습니다!”
“뭐라-!”
순식간에 그곳에 자리한 이들이 일대 혼란에 빠졌다.
“그 병력이 얼마나 되느냐! 남흉노의 이들이 얼마나 되느냐! 피해 상황은! 아니, 사연택에 자리한 이들 감시하라고 보낸 대성새의 이들은 뭘 한 게야!”
“이, 이미 대성새에 불길이 오른 것은 물론, 대성현의 자리한 이들이 거진 모조리 죽임을 당하였으며 이에 그치지 않고 기세를 올린 흉노의 이들이 세 갈래로 찢어져 각기 삭방과 오언 그리고 그 중간에 자리한 현들을 습격하였습니다!”
“누가 그걸 몰라! 그래서 규모는 규모가 얼마냐고 묻지 않느냐-!”
“최, 최소 삼만입니다!”
“사, 삼만!”
웅성웅성-
아무리 병주의 이들이 날고 긴다고 한들, 작금의 상황에 독단으로 삼만에 달하는 남흉노를 대적할 가능성은 그리 많지 않았다.
“아예 그 전체가 움직였구나. 선우로 추대된 골도후 그놈이 아예 제 휘하의 모든 부락을 이끌고 북상한 게야. 민공!”
그리고 이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깨달은 정원은 빠른 대처를 위해 곧바로 제 심복인 민공을 찾았다.
“예, 병주목!”
“작금의 우리가 가용할 수 있는 병력이 얼마나 되나?”
“관문을 지키는 이들을 비롯해 최소한의 수비군만 남긴다면 최대 사만 오천입니다.”
“동탁 놈에 비해 오천이 모자란 숫자군. 이게 우리가 애초에 기획했던 흉노 토벌을 위해 준비된 병력이었나?”
“아닙니다, 본래는 이만 오천 언저리의 정도의 규모로 나머지는 하내에서 삼만이 넘는 병력을 받아내려고 했습니다.”
“삼만이면 너무 많은데? 어차피 포홍이 허락했으니 제놈들이 이를 내어주리라 여겼나?”
“하내의 인구가 제법입니다. 또한 이미 지난날 하내에서 하진의 토벌군을 상대할 적의 저수 휘하의 군사들만 사만이 넘었던 것으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하내는 영역이 좁으니 수비병이 많이 필요치 않음을 주장할 생각이었겠군.”
“그와 더불어 그들 또한 북지를 통해 무역로의 수익을 가져갈 것이니, 일정량의 성의는 보여야 한다고 주장할 생각이었나이다. 거기다 저수는 남흉노의 실체를 알고 있으니, 그들 또한 어떻게든 사연택을 확보하려면 어중간한 전력으로 아니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겠지요.”
“한데 상황이 이리 변했다. 이게 뭘 뜻하겠더냐?”
“최악을 상정하면 하내에 자리한 저수의 배신입니다. 허나 이는 가능성이 희박한 것이 그가 흉노에게 서신을 보내 병주를 치라고 한들, 오만한 수복골도후가 이를 받아들일지도 의문이며 무엇보다 어부라와 갈등을 빚는 이 마당에, 오만에 달하는 우리와 직접적으로 충돌을 각오하겠다는 것도 말이 안 됩니다. 거기다 하내는 너무 멀지요. 그들의 불온한 무언가를 주고받았더라면 되려 우리의 감시망에 걸렸을 확률이 높습니다.”
“허면 저수는 아니라는 소린데......”
결국, 그의 비상한 지모와 안목을 통해 상황을 되짚어보면 이는 포홍이나 저수의 술책은 아니란 소리였다.
덜컥-
“병주목! 급보이옵니다!”
“또 뭐야!”
“사연택 남부에서 일만이 넘는 흉노의 이들이 무리를 지어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이 와중에 때마침 문이 열리며 다른 전령이 치소의 안으로 뛰어드니, 이는 조금 전과는 다른 새로운 혼란을 병주의 이들에게 선사하고 있었다.
“지금, 뭐? 아니, 북방에서 내려온 것도 아니고 그 아래에서 뭐가 나타나?”
“병주목, 사연택의 남부는 비좁은 초원이 끝입니다. 그 아래 드넓은 산자락이 펼쳐져 있고 한참을 내려가야 포홍이 다스리는 옹주가 나타납니다.”
어이가 없어 제대로 반응조차 나오지 않은 정원과 그런 정원을 향해 금세 지리를 되짚어 전령의 보고에 문제가 있음을 지적하는 민공이었다.
“나도 알아! 그러니까 내가 저놈에게 이를 되묻는 것 아닌가! 하늘에서 내려오거나 땅에서 솟은 것도 아니고! 아니 무슨 놈의 또 다른 흉노의 무리가 그것도 수복골도후, 그놈이 다스리던 땅 아래에서 왜 갑자기 나타나느냔 말이야!”
그래, 민공의 지적이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다.
실상 그 지리상의 문제가 있음을 지적하는 민공보다 더 병주의 지리에 대해 빠삭한 정원이었으니, 왜 일반적인 개념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작금의 이 병주에 벌어졌냐는 것이 문제였다.
“흐음.”
수복골도후는 대저 왜 자신의 턱밑까지 치고 올라온 일만에 달하는 흉노의 무리를 치지 않았으며, 도리어 병력도 많은 와중에 왜 하필 그보다 더 많은 병력을 지닌 자신의 심기를 건드리면서까지 병주의 북방을 습격한 것일까?
거기에 그리 수복골도후가 사라진 사연택으로 북상하며 모습을 드러낸 일만의 흉노는 또 무엇일까?
“설마 예비대를 남긴 건가?”
이때까지 병력을 모아두고 이를 남긴 뒤, 북상하며 북방에 자리한 어부라를 정리하기 위함이라면?
본디 병주의 이들이 감시하고 예측했던 것과는 달리 실상 일만 정도의 병력을 수복골도후가 따로 숨겨두고 있었더라면?
해서 사연택을 내어주기는 싫고 그 와중에 어부라를 치고 돌아오기 위한 거라면, 얼추 가능성이 있지 않았을까?
허나 이러한 정원의 추측과 여전한 정보 부족으로 제대로 된 대처와 판단을 할 수 없었던 병주의 수뇌부는 뜬눈으로 밤을 지샌 채, 제대로 된 결정을 내릴 수가 없었다.
물론, 그 연유야 빤한 것이고 말이다.
“자칫 잘못하면 남흉노의 이들이 삼만이 아니라 사만이 된다.”
자신이 끝내 내려놓지 못했던 가능성.
본래의 계획과는 달리 저 홀로 흉노와의 멸망전을 각오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 만큼, 그 부담은 정원에게도 실로 상상을 초월하는 압박감을 선사해주었다.
허나 날이 밝고 새로운 보고가 들어오면서 정원의 낯빛은 실로 굳어지다 못해 썩어들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마지막에 도착한 정보는 가히 그의 이성을 사라지게 만들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뭐라? 알고 보니 사연택에 모습을 드러낸 놈들이 흉노가 아니라 여포가 이끄는 놈들이라고?”
“예, 조금 전에 정찰을 나선 이들이 그의 이름이 새겨진 깃발을 확인했답니다.”
“으아아아아-!”
쩌저적-
그리 스스로의 분노를 주체못한 정원은 이내 제가 자리한 상좌의 팔걸이를 순전히 손아귀 힘만으로 뜯어 버렸다.
“벼, 병주목!”
“여포오오! 네놈이 감히! 나를 배신하고 나의 이득을 갈취하느냐-!”
마치 흉포한 짐승이 포효하듯 처소를 뒤흔드는 그의 흉성은 찌릿찌릿한 살기와 더불어 그 주변에 자리한 이들의 온 신경을 곤두서게 만들고 있었다.
“고, 고정하시옵소서!”
“고정? 지금 나더러 고정을 하라는 게냐?”
“병주목!”
“닥쳐!”
와장창-
오죽하면, 오죽하면 이러하였을까?
“하아, 어차피 기왕 정리하는 거. 내게 반기는 드는 이들을 모조리 노예로 만들면서까지, 멀쩡한 고을을 찢어 동쪽에 산맥에 자리한 흑산놈들 달래가면서까지 병주를 통합한 나야! 내 근간이 병주고 내가 힘을 키울 곳도 병주며 병주가 커져야 내가 강해지는 거야! 한데!”
다시 솟구치는 분노도 모자라 그의 앞에 자리한 탁자와 장식장을 때려 부순 정원은 이내 제게 달려드는 이들을 향해 도리어 이를 따져 물으며 더한 분노를 토해냈다.
“한데......, 그리 나라에서 금하는 노예매매를 암묵적으로 용인하면서까지 키워놓은 삭방과 오언이 모조리 불살라졌다. 수많은 이들이 끌려갔고 내가 돈이라도 벌려고 내어놓은 노예들마저 사라졌으며 그에 곡식과 생필품을 비롯해 가축과 금속을 거래하는 이들까지 모조리 사라졌어! 내가 준비한 병주의 번영이! 포홍 놈에게 무역로를 끌어오기 이전에 모든 것을 쏟아부었던 나의 노력이! 나의 진심이! 그리 하룻밤의 악몽과 같은 꿈이 되어 사라졌단 말이다!”
그랬다.
민공의 조언을 받아들여 포홍의 무역로를 끌어오기 이전에도 병주를 평탄하는 과정에서 병주의 힘을 키우기 위해 고심을 거듭했던 정원은, 본의 아니게 암묵적으로 병주 북방에서 이루어지는 노시(노예시장)에 관심을 보였고, 이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북시(북방시장)에 눈독을 들였다.
결국 사람이 살기 위해선 교역을 떼어놓을 수 없는바, 흉노와 오한의 이들마저 슬렁슬렁 제 필요한 것을 구하려 내려오는 판국에 고수익이 보장되는 것은 물론, 한번 팔리면 다시는 한나라로 돌아올 수 없는 이족들과의 노예매매는 작금의 세를 불리며 힘을 키우려는 정원에게 있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패 중에 하나였다.
그러나 이번 남흉노의 습격으로 말미암아 그 모든 것이 초토화되었다.
거기다 사연택에 여포가 들어서게 되면서 민공이 가져온 서방으로의 교역 추진 또한 거진 흐지부지한 것이 되었다.
삭방과 오원을 비롯해 새로이 상군에 이르기까지 총 세 갈래의 무역로를 잡고 번성을 꾀하였던 정원의 그 모든 계획이 모조리 수포가 되었다.
“민공......”
“예......, 벼, 병주목!”
그 분노가 주변을 잠식해 들어감을 알기에 처음으로 그의 앞에 겁을 집어먹은 민공이었고, 그럼에도 그런 그에게 다시금 대처를 묻는 정원이었다.
“내가 어찌해야겠더냐?”
“여포가 저리 나왔다는 것은 필경 포홍은 아니더라도 뒤에서 저수가 손을 쓴 것이 분명하옵니다. 주인인 포홍은 우리와의 약조를 명했는데 도리어 그 수하가 이에 반대되는 행동을 취하였으니, 우리는 지금 당장 그 책임을 저수에게 따져 물어야 합니다.”
“곧바로 하내로 들이쳐 쓸어버리면 아니 되는 것이더냐? 가서 다 죽여버리면 아니 되는 것이야?”
“소, 송구하오나 그리되면 포홍 대신 우리에게 힘을 실어줄 사례의 조당에서 불만의 목소리가 나오게 됩니다. 일단 하내 또한 사례에 속해있으니 되려 그 민심에 대한 반발을 걱정하는 저들로선 이에 불만을 표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허면? 저 흉노의 것들은?”
“아마 지금쯤이면 이미 계록새와 고궐새를 넘었을 확률이 높습니다. 거기에 가서 이를 따져묻기도 힘든 것이 그리되면 흉노의 땅에서 전쟁을 치루게 됩니다.”
“그렇구나.”
결국, 좋든 싫든 남흉노의 이들에게는 당장에 쓴맛을 보여줄 수 없다는 말이었다.
철컥-
“벼, 병주목.”
“개 같은 놈들이 이리 나오겠다, 이거지?”
그럼에도 아직 자신에겐 책임의 소재를 물을 수 있는 이들이 남아있었다.
“지금 당장 전쟁은 위험하옵니다! 그보다는 명분을 얻기 위해서라도 저들에게 그 책임을 묻는 것이 먼저이옵니다!”
“내가 여포에게로 가겠다. 가서 그 빌어먹을 아들 행세하는 놈의 낯짝부터 보고 와야겠어.”
“허면 소신 또한.......”
“네놈은 이대로 하내로 내려가 저수 놈을 압박해라. 해명하고 이번 일로 얻은 피해에 대한 보상을 요구하며 그렇지 못하면 나 또한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라고 전해.”
“벼, 병주목!”
“설사 아들 같은 여포 놈이 나를 업신여겨 배신한 것이 참이고, 이를 하내 놈들이 부추겨 그 둘 모두가 나를, 병주를 능멸해도 상관없다. 그 사실관계만 명확히 확인해서, 아니다 싶으면 그 명분이라도 명문화시켜 내 앞에 가져와.”
“서, 설마 진짜 전쟁이라도 벌이시려는 것은.......”
“때마침 이쪽도 세력은 둘이지. 거기다 우리에겐 욕을 들어 처먹어도 이상하지 않을 이들이 태행산맥에 우글우글하게 자리하고 있지 않더냐?”
“흐, 흑산적!”
“내가 여포를 상대한다. 네놈은 태행산에 자리한 그놈들을 하내에 풀어라. 굶주린 수십 만의 도적 떼라면 저수 놈도 그때서야 제 잘못을 뉘우치며 용서를 빌겠지.”
결국, 이는 정원의 최후통첩이었다.
“감히, 누가 만들어 놓은 판에 숟가락을 올리느냐? 여포야, 저수야. 그 돈은, 그 이득은, 그 수혜는 오직 나의 것이다. 나 정원의 것이야. 그 모든 것은, 이 병주를 다스리는 내가 온전히 가져야 할 것들이다.”
돌이킬 수 없는 그의 다짐은 이미 북방에 불온한 기운을 불어놓고 있었다.
- 작가의말
급하게 만들어낸 설명지도가 잘 보이실지는 모르겠지만 최대한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원본 지도 출처: https://blog.naver.com/sjkim2090/220093345606
편집: 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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