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화 – 위에서 가장 강한 군대, 밑에서 가장 강한 도적(1)
푸르르흥-
“흐음.”
한참을 흙먼지를 일으키며 달리던 은빛의 선두가 그렇게 말머리를 흔들며 멈춰 섰다.
“중군 교위, 어찌......”
여전히 아름다운 미색을 뽐내며 찰랑이는 머릿결을 쓸어넘긴 풍방의 안색이 좋지 않게 변하니, 그를 따르던 이들 또한 절로 내달리던 걸음을 멈춰선 것이다.
“이상한데?”
허나 그러한 수하들의 입장과는 달리 작금의 풍방은 알게 모를 께름칙함을 느꼈다.
그의 좌우로 펼쳐진 험준한 산맥은 마치 누군가 일부러 만들어낸 협곡과도 같은 위화감을 조성하고 그도 모자라 뾰족뾰족한 산세는 알게 모를 음침함마저 풍기고 있었다.
“이상해. 마치 뱀의 아가리에 발을 들인 기분이야.”
거대한 짐승이 입을 벌린 것이 가히 호곡이라 불려도 될 것 같은 묘한 기분이 들었으나 당장에 눈앞에서 사라진 군량 쫓기 위해선 이전보다 더 속력을 내야만 했다.
좋든 싫든 지켜보는 눈이 많은 하동에서의 오해는 피해야 했고 애써 누명을 뒤집어쓰는 일도 없어야 하였으니, 멀리서 그 꽁무니를 쫓다 드디어 좌우로 펼쳐진 산맥을 따라 길게 이어진 병목 같은 지형을 발견하고는 지금까지 내달린 것 또한 그 때문이 아닌가?
“근데 안 보여.”
격벽이자 하늘을 떠받드는 기둥마냥 좌우로 서 있는 험준한 산세를 따라 흘러 내려오는 분수와 더불어 뻥 뚫린 직진에 가까울 협곡이었으나 그 속에선 은근히 산세를 따라 구불구불하게 휘어진 길이 있어 코앞에서조차 그 종적을 감출 수가 있었다.
그리 양측에서 솟아오른 산줄기의 영향에 따라 마치 물길이 흐르는 것보다 더 구불구불하면서도 쭈욱 병주를 향해 뻗어있는 그 묘한 협곡을 마주한 풍방의 감각은 이를 그 모양을 본딴 뱀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산에서는 뱀을 조심하라 했는데 말이지.”
솨아아아아-
거기다 양측에 자리한 산줄기를 따라 그 협곡을 휘감아 내리며 이쪽을 향해 불어오는 공기 또한 묘했다.
그의 손끝이 떨려왔고 그의 털이 곤두섰으며 이제는 이를 마주하는 그 눈썹마저 까딱이고 있었다.
사시나무 떨리는 듯한 소리 같기도 하고 수풀과 낙엽을 헤치는 뱀의 몸짓 같기도 한 그 소리가 이미 풍방에게 경고를 선사하고 있었다.
오지 말라고, 오면 위험하다고 말이다.
“재미있네. 확실히, 재미있어.”
그러나 그럼에도 풍방은 마치 제 사위인 포홍처럼 시원하게 웃었다.
오랜만에 실전을 겪어서일지 몰라도 작금의 자신의 몸이 반응하는 이 알게 모를 께름칙함과 그에 대한 떨림을 앞에 두고서도 그는 미소를 잃지 않았다.
“중군교위, 저기서부턴 백파적들의 영역입니다.”
그러나 위협을 앞에 두고도 과도한 자신감을 보이는 그의 대한 걱정 때문인지는 몰라도, 그의 옆에 말머리를 붙인 허정은 다시금 그에게 이 협곡의 정체를 말해주었다.
“알아요, 그래서 생각 중이야. 저 뱀 새끼, 어떻게 요리할까요?”
“예?”
“산에서 뱀의 영역을 지날 때, 그래서 뱀에게 걸렸을 때. 뱀에게 물리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아요?”
“그야......”
“갈 지(之) 자로 달리는 거에요. 뱀은 쉽게 방향을 못 틀거든, 거기다 빠른 것 같으면서도 느리기도 하고.”
그럼에도 막상 그러한 허정의 앞에 어여쁜 미소를 드러내며 다시금 비단결과도 같은 머리카락을 쓸어넘긴 그는 협곡 속에서 불어오는 부는 바람을 느끼며 천천히 말 배를 조이며 슬그머니 그 몸을 수그리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그게....., 중군 교위?”
“한데, 여긴 그 길이 이미 갈 지(之) 자마냥 구불구불하잖아요? 그러니까 그냥 달리면 돼.”
“중......!”
“전군에 명을 내린다! 모두 나를 따라 전광석화와 같이 협곡을 돌파한다! 이랴앗!”
“제기랄!”
아름다운 미색이 갈라지며 공기를 가를 듯이 날카로운 면모를 보이는 것도 순식간이었다.
허정을 비롯한 이들이 채 반응도 할 수 없는 찰나에 말 배를 차며 속력을 내기 시작한 풍방을 따라 서원군의 이들 또한 곧바로 이에 반응하며 다시금 엄청난 기세로 그런 그의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두두두두-
“전속력으로 달려라! 중군 교위를 쫓아! 중군 교위께 위험이 생겨선 아니 된다!”
그렇게 졸지에 선두에 내달리는 풍방을 뒤쫓는 허정은 다급한 목소리로 서원군을 이끌었다.
엄청난 풍압과 더불어 예상보다도 더 음침하면서도 날이 선 칼날과도 같은 살이 에이는 감각에 곤두선 말들은 이전보다 더 예민해진 모습으로 날뛰고 있었고, 이는 곧 엄청난 가속도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나를 따르세요! 이대로 진입해 뱀의 아가리로 들어가 그 목구녕에서부터 항문까지 모조리 찢어발길 겁니다!”
타다다당-
비좁은 협곡을 따라 마치 화살과도 같은 모양새를 취한 이들이 그리 첫 번째 산등성이를 돌았을 때, 그들의 앞에 나타난 것은 나무로 된 다리와 더불어 그 너머를 지키고 있는 도적들이었다.
“적이다!”
채재재쟁-
“역시....., 이럴 줄 알았네요! 흐읍!”
서걱-
“끄하아악!”
“일일이 맞상대해줄 필요 없습니다! 멈추지 마세요! 그 속도 그대로 짓밟아버리세요!”
그렇게 선두에 자리한 풍방이 시원스레 선두에 자리한 도적의 목을 날렸다.
콰앙-
“끄흐윽!”
쿠웅-
“아아악!”
그와 동시에 그 뒤를 덮치는 은빛의 서원군들은 마치 파도와 같이 자신들의 앞을 가로막는 수백에 달하는 백파적들을 모조리 튕겨내며 엄청난 진격을 보였다.
이 또한 아주 가볍게 통과한 이들은 그다음에 자리한 산등성이를 따라 다시금 굽이치는 협곡의 길을 계곡의 물살마냥 돌파하고 있었다.
삐이이이익-
“명적? 허어, 이건 제법......!”
허나 이건 서원군을 맞이한 백파적의 이들에게도 시작에 불과했다.
“울 고도리의 소리다! 끊어라!”
“끊어? 대체 뭘......!”
비좁은 협곡이 떠받드는 비좁을 하늘을 찢어발길 듯 비명을 지르며 날아오는 효시의 소리가 협곡의 안을 가득 메우자 풍방을 선두로 내달리는 서원군에 자리한 산맥들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쿠구구궁-
“주, 중군 교위!”
“산사태다! 나무와 돌들이 떨어진다!”
“피해라! 다들 죽어라 달리란 말이다!”
산 위에서 피어난 예상치 못한 흙먼지와 더불어 엄청난 떨림이 빼곡히 자리한 수목 너머 묵직한 돌들과 통나무들을 졸지에 토해냈다.
가히 자신들이 내달리는 하늘의 위를 뒤덮듯 그렇게 드높은 곳에서부터 천벌이자 재앙마냥 떨어져 내린 돌과 나무를 마주한 이들의 단말마는 아주 짧았다.
“하......., 제기랄.”
콰과과과앙-
엄청난 흙먼지가 피어나며 순식간에 일천에 달하는 서원군의 후미가 휩쓸려 나갔다.
마치 기다란 뱀의 꼬리 일부가 짓이겨 나가듯 그리 구불구불한 협곡을 따라 뱀마냥 길게 늘어진 서원군의 행렬 중 일부가 순식간에 사라진 것이다.
“중군 교위이이이-!”
“그 입 찢어버리기 전에 당장 닥치고 달리세요! 내 명이 있기 전까지 절대 속력을 줄이는 일이 없습니다! 아니, 이 빌어먹을 뱀의 몸뚱이와 같은 계곡을 벗어나기 전까지 속력을 줄이는 놈은 내 칼에 죽을 겁니다!”
가히 생전 처음 마주하게 되는 풍경에 놀란 서원군들은 자신들의 존재마저 순식간에 지워낼 압도적인 함정의 위력에 젖어 예상치 못한 공포심을 드러내고 있었고, 다급히 이를 정리하기 위해 공기를 찢을 듯한 고성을 내지른 풍방은 더더욱 속력을 높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길고도 긴 협곡에 겨우 이것이 끝이랴?
“끊어라!”
콰과가가강-
“토사다! 토, 토사와 돌과 자갈과 함께 떨어진다!”
“빌어먹을! 이 치졸한 백파곡의 도적놈들아!”
푸히히히힝-
“내려와라! 내가 상대해 줄......!”
퍼억-
“꺼흑!”
하필이면 그 경사 또한 험준한 것은 물론, 순식간에 자신들이 내달리는 한 치 앞의 시야마저 가려버렸다.
떨어져 내리는 흙과 자갈 그리고 돌과 모래의 함정은 순식간에 그들을 덮쳤고 이에 휩싸인 수백 마리의 말들이 줄줄이 고꾸라지며 내달리는 선두로부터 떨어져나가게 되었다.
그나마 이러한 함정을 맞이하고도 살아있거나 부상을 입은 이들이야 도리어 운이 좋은 경우였고 그 대부분은 거진 떨어지는 돌과 나무 등에 맞아 그 자리에서 그대로 절명하거나 토사에 매몰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콰아앙-
“얼마나 죽었느냐......”
콰아아아앙-
“얼마나 죽었어어어-!”
그리고 그리 산봉우리 하나를 끼고 비좁은 협곡의 구불구불한 길목을 돌고 돌 때마다 떨어져 내리는 토사 덕에 매양 휩쓸리고 잘려 나가는 후미를 그대로 두고 떠날 수밖에 없는 풍방의 얼굴은 이미 악귀마냥 일그러질 대로 일그러져있었다.
“주, 중군 교위!”
“다 죽여버릴 거야! 인근의 산맥을 모조리 불살라서라도, 다 죽여버릴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분노에 젖어들어 포효하는 풍방이라 한들, 작금의 드높은 산맥의 위에 자리한 이들을 상대로 당장에 뭘 어찌할 수가 없었다.
이미 뒤는 떨어진 토사를 비롯한 돌과 나무 덕에 연달아 장애물들이 생겨난 격이었고, 그렇다고 말을 타고 저 험준한 산맥들의 정상까지 오르자니 애초에 몇만이 자리하는지조차도 모르는 저들의 영역에서 더더욱 불리한 싸움을 벌이게 되는 격이었다.
두두두두-
“주, 중군 교위! 저, 저길!”
“저게...... 무엇이냐? 대체, 저 빌어먹을 성벽 높이의 흙더미는 또 무엇이야!"
거기다 조금 있으면 그 끝이 보일 것 같았던 협곡의 너머를 그득 메운 엄청난 토사를 보았을 때, 풍방은 생전 처음으로 맛보는 무기력에 이루 말할 수 없는 절망에 젖어 들고야 말았다.
이 또한 기존의 함정과도 같으나 이번엔 아예 양측의 산등성이 위에서 흙과 나무를 비롯한 돌들을 굴려 만들어낸 것 같으니 못해도 말 위에 오른 사람 키만한 높이의 흙더미가 아예 풍방을 비롯한 서원군의 진격을 막고 있었다.
“가, 갇혔습니다! 중군 교위 더 이상의 진격은......”
“갇혔다니요! 허면 당장에라도 뒤로 돌아......!”
“그 장애물들 다 일일이 넘을 생각이냐?”
“하오나 그래도 이 앞에 자리한 이것보단......!”
삐이이이익-
허나 그리 혼란 속에 빠진 풍방을 비롯한 지휘부를 가만히 둘 백파적들이 아니었다.
“명적이다! 근처에 적들이 있다!”
피잉-
“끄흑!”
쐐애애액-
“끄흑!”
“화살이다! 날아오는 방향을 살펴 그놈들의 위치를 파악해라!”
“흩어져라! 거리를 두고 원진으로 기동하라!”
그러나 혼란 속에서도 여전히 빛을 발하는 서원군은 여전히 침착한 기동과 대응을 보여주고 있었다.
“저기다! 저기서부터 박살내라!”
두두두두-
마치 합을 맞춘 듯 서로 일정한 간격을 벌리며 크고 작은 원을 만들어 화살을 피하기 위한 회피기동을 보여주는 이들은 그리 날아오는 화살의 방향을 살핀 뒤, 곧바로 수풀이 우거진 곳을 향해 말을 달려 적들을 섬멸하기 시작했다.
“놈들이 눈치를 챘다! 쏴라! 쏴서 죽여.....!”
“어딜!”
서걱-
“크흡....., 커흑.”
“다른 방향의 놈들도 마찬가지다! 모두를 흩어져서 쓸어버려라!”
- 누가 뭐래도 사냥은 우리의 몫이다! 감히 서원군을 사냥하려 했던 저것들부터 다 죽여라!
그렇게 허정을 비롯한 군관들의 우렁찬 목청과 더불어 서원군들 또한 반격을 개시했다.
이미 후미에 휩쓸려 죽은 동료들의 죽음이 스쳐 지나가는 것과 더불어 이 나라 최강의 부대라는 자부심마저 돌과 나무를 비롯한 토사에 휩쓸어버린 뒤에 느껴지는 무기력은, 막상 자신들의 앞에 사냥감밖에 되지 않을 나약함을 드러낸 도적들에 대한 본능적인 분노이자 살육으로 뒤바뀌어 있었다.
푸욱- 푹- 푸욱-
“이 육시랄 새끼들, 끝까지 찾아가 죽여라! 수풀에 숨으면 수풀과 같이 잘라 죽이고! 멧돼지 새끼마냥 산을 타고 도망치면 그 모가지를 화살로 꿰뚫어서라도 죽여라! 내 말 알겠느냐!”
와아아아아아-
그렇게 살아남은 칠천의 서원군은 사방으로 흩어지며 인근의 산자락에 매복한 백파적들을 모조리 죽이기 시작했다.
피비비비빙-
“패수 앞으로! 방패를 들어라! 어차피 사냥꾼과 동배마냥 활을 찬 놈들밖에 없다!”
파악- 파바박-
이미 날랜 지위를 보이는 허정은 방패병들을 앞세워 주변을 정리하며 빠르게 적들의 수를 줄여가고 있었고, 허저를 비롯해 힘을 쓸 줄 아는 장정들은 알아서 말에서 내려 앞에 자리한 돌과 나무를 비롯한 토사를 치우고 있었다.
“얼마나 걸리겠느냐?”
“못해도 일각은 버티셔야 합니다.”
“저것들을 다 죽이기엔 충분한 시각이로구나.”
그리고 그리 드높이 자리한 흙더미를 확인한 허저의 확답을 받은 풍방은 180도 변해버린 제 모습조차 인지하지 못한 채, 곧바로 말에서 내려와 산을 타기 시작했다.
“저기다.”
그리고 때마침 산간의 중턱 번쩍이는 창칼을 드리운 채, 무심한 얼굴로 이쪽을 내려다보는 백파적들을 발견한 그는 당장에 아직 말에서 내리지 않은 이들을 향해 사격명령을 내렸다.
“원진을 멈추지 마라! 서쪽 산간의 중턱이다! 쏴라!”
피비비비빙-
그렇게 그 비좁은 산길 사이에서도 작게 작게 원을 만들어 사격하는 서원군들의 놀랄만한 기마술과 궁술에 수백 대의 화살이 날아가 서쪽에 자리한 백파적들에게 떨어져 내렸다.
타다다당- 푹욱- 푸푹-
“끄흑!”
“다시 쏴라!”
푸욱- 푹- 타타다당-
“꺼헉!”
그러나 마치 이를 예상하기라도 했다는 듯, 나무에 짐승의 가죽을 덧씌운 방패를 들어 올린 이들은 별다른 피해 없이 아주 순조롭게 서원군의 쏘아 올린 화살을 막아내고 있었다.
“이, 이럴 수가......, 무슨 도적놈들이 가죽마저 두른 방패를.....”
어디 이뿐이랴?
“저놈이다! 저 계집 같은 놈이 제일 좋은 갑주를 걸쳤으니 저놈부터 쏴 죽여라!”
피비비비빙-
채앵- 챙-
“크흑!”
맞은 것은 되갚아 주겠다는 듯, 그리 방패를 든 이들의 너머로 수백 대의 화살이 날아드니 이에 놀란 풍방 또한 다급히 만곡도를 휘두르며 날아오는 화살들을 쳐냈다.
“중군 교위! 뭣들 하느냐! 중군 교위를 지켜라!”
그렇게 예상치 못한 반격에 놀란 서원군의 이들 또한 다급히 그런 풍방의 곁에 모여들어 방패를 들고 그 너머로 화살을 쏘며 반격을 가했다.
그렇게 예상치 못한 반격과 상잔 그리고 저항과 살육에 이르는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사방에 산더미처럼 쌓인 시체와 더불어 거진 주변에서 벌이는 교전의 소리도 잦아든 것이 인근의 모든 적들을 정리한 것과 같은 모양새였다.
휘이이이잉-
“도망치십시오.”
그러나, 때마침 불어오는 바람에 그리 주변을 둘러보며 겨우 한숨을 돌릴 새도 없이 자신을 부르는 허저의 묵직한 경고에 고개를 돌린 풍방은 어느덧 반쯤 치워낸 흙더미 위에 칼을 쥐고 올라선 허저의 뒷모습을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그게 무슨 소리더냐?”
“저들은 도적이 아니라 군대입니다.”
저벅저벅-
“그게 무슨 소리더냐! 암만 황건적의 후예로 지칭해봤자 무장 좋은 도적놈들이지, 그게 무슨......!”
그렇게 여전히 허저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
아니, 아예 인정하기 싫겠다는 듯.
굳이 사람이 오를 수 있게 된 흙더미 위로 올라선 풍방은 이내 자신의 눈 앞에 펼쳐진 놀랄만한 광경에 가히 할 말을 잃고야 말았다.
“뭣들 하느냐! 한 톨이라도 흘리지 말고 소중히 나르지 못할까!”
척척척척-
“부서진 잔해를 치워라! 멀쩡한 선두에 자리한 수레부터 옮겨!”
수천에 달하는 시체들이 주변에 널브러진 것은 물론, 부서지고 무너진 수레 인근에 흩어진 쌀을 담는 백성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 주변을 못해도 이만에 달하는 병사들이 이를 그득 메우고 있으니, 이미 비좁은 협곡 안은 예상을 훌쩍 뛰어넘는 수를 자랑하는 백파적들로 모조리 가득 차 있었다.
파악-
그렇게 흙더미를 뛰어 내려온 풍방은 이내 일그러진 얼굴로 주변에 자리한 이들을 불러들여 새로운 명을 내렸다.
“흙더미를 다시 메워라! 저놈들이 어떻게든 앞에 자리한 군량을 다 정리하고 넘어오지 못하게! 시체를 쌓아서라도 저 앞을 막아라!”
이에 살아남은 서원군들이 모조리 이에 달려들었고 그렇게 시체가 뒤섞인 기존보다 더 두꺼운 방벽이 완성되는 동안 풍방은 여전히 떨리는 동공과 손끝을 어찌하지 못한 채, 작금의 자신의 불안함조차 제대로 억제하지 못하고 있었다.
“저건 죽어도 못 뚫는다.”
“군량도 되찾지 못합니다.”
“지금 군량이 중요한 게 아니야-!”
그렇게 거진 처음으로 이성을 잃은 풍방이 여전히 침착함을 유지하는 허저의 앞에 고함을 내질렀다.
“다시 거슬러야 한다! 우리가 돌아온 길을, 그 빌어먹을 아무것도 해보지 못하고 수천에 달하는 이들을 저들에게 헌납한 그 지옥과도 같은 곳을 다시 거슬러야 해!”
“그래서 아무것도 안 할 겁니까?”
“뭐라고! 네가! 네가 감히......!”
그렇게 화가 치민 풍방이 허저의 멱상을 붙잡을 무렵,
- 내 말 들리는가! 들리는가! 들리는가!
산세를 뒤흔드는 우렁찬 메아리 풍방과 허저를 비롯한 서원군의 정신을 일깨웠다.
- 나는 이곳을 다스리는 백파적의 대두령 곽태다! 곽태다! 곽태다!
“이놈이 지금 어디서 소리를 치는 것이야!”
- 우리는 지난 장마로 많은 것을 잃었다! 굶주렸고 잃어버렸으며 상했고 망가졌다!
- 고로 내 약속하건대 내 산에 들어온 네놈들을 모조리 집어삼켜 주겠다! 네놈들이 남긴 모든 것을 모조리 소화시켜 주겠다! 이 천하에 가장 번쩍번쩍한 네놈들이 지닌 모든 것을 이 곽태가 모조리 앗아가 주마! 주마! 주마!
- 허니 도망쳐라! 울부짖어라! 살려달라 빌어라! 그 잘난 네놈들 또한 아무것도 남지 않은 이 협곡의 밑바닥에서 쓸쓸히 썩어갈 것이라 아니라면 알아서 내 앞에 기어라! 물론, 긴다 한들 살려줄 것은 아니나 그래도 사냥감이 발버둥은 쳐야 맛이 있지 않겠더냐? 흐하하하하!
그렇게 비열하고도 저열한 웃음소리가 협곡에 가득히 울려 퍼졌다.
그칠 줄 모르고 퍼지는 메아리는 가히 그에 앞선 흙더미 너머에 자리한 이들에게 흘러들었고, 이는 또다시 그치지 않을 웃음의 메아리를 만들어내며 작금의 궁지에 몰린 포홍과 서원군을 조롱하고 있었다.
지도를 보시면 우측 상단에 네모칸이 추가되었습니다.
이것은 하내의 서쪽, 작금의 저수와 가후가 흑산적들과 전쟁을 벌이고 있는 전장의 위를 표현한 것으로 이곳에 기관과 지관이 있습니다.
즉, 이는 아주 가까운 곳에 자리한 두개의 전장으로 봐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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