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5화 – 판이 커지면 새로운 참가자가 등장하기 마련이다(1)
“병주목, 지금 당장 흑산적은 아니 되옵니다!”
저수의 사자가 야음을 틈타 출발한 다음 날이었다.
타앙-
날이 밝아 도착한 자리에 상호 간의 입장을 취합한 정원은 이내 결심을 굳혔다는 듯 노골적인 전쟁의 의사를 밝혔으나 민공과 단 한 가지 협의점을 찾지 못한 것이 있었다.
“왜 안된다는 거지?”
“흑산적을 사례에 풀어 인망을 잃고, 사례에 미움을 받는 것보다 차라리 저수에게서 하내 태수의 자리를 빼앗는 것이 훨씬 더 좋은 결말이옵니다. 손실도 적거니와, 조당의 입장에서도 평난중랑장이라 그럴듯한 자리를 내려주었는데 냅다 자신들의 권위를 손상시킨 흑산적들을 마냥 두고 본다는 것이 말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사실이 알려지게 되면 우리도 저들에게 꽤 껄끄러워지는 존재로 비칠 수가 있다?”
“수십 만의 흑산적을 수하마냥 부리는 이들이라면 절로 아니꼬운 시선이 자리할 수밖에 없지요. 거기다 흑산적들이 무조건적으로 저희의 말을 듣는다는 보장도 없지 않습니까?”
“그놈들은 이미 포홍과 원수야! 지난날 태행산맥에 불을 지른 포홍의 과거를 잊었는가!”
“하오나!”
“그 빌어먹을 영토까지 내어주었어! 전마의 운용 비율을 줄인다는 핑계로 농지와 밭농사를 지을 땅까지 빌려주고 딴에 정착할 고을마저 내어줬다! 이 모든 게 다 그놈들을 써먹기 위한 일이야, 한데 이제와 못하겠다고?”
“그것이 아니라 너무 잃는 것이 많사옵니다!”
“잃는 게 많아야 할 건 오히려 흑산적이야!”
“그게 무슨?”
“그놈들, 지금에도 수가 불어나는 중이라지?”
“그, 그렇긴 합니다만.......”
“아니, 자기네끼리 잘 먹고 잘 살라고 이제 좀 사람답게 살아보라고 이런저런 것들을 내어주었더니 도리어 자기네끼리 잘 사는 게 아니라 이를 빌미로 더 많은 빈민과 도적들을 긁어모으며 몸집을 불리지 않았나?”
“설마......!”
“그래, 그 설마야! 그렇게 몸집은 절로 불고 일전에 받은 재물이나 농토 등의 호의는 다 떨어져 가고 그렇다고 당장 그 관병들의 숫자마저 엄청난 기주를 들이칠 수도 없고, 또 하내를 직접적으로 공격하자니 명분이 없지. 유주야 민심 좋은 유주목 유우가 있을뿐더러, 작금에 하북에서 제일가는 무장이라는 공손찬이 있으니 고개조차 그리로 돌리지 못하겠지! 그렇다면 결국 손 벌릴 곳은 빤한 것이 아닌가!”
그랬다, 제아무리 똑똑한 민공이라도 놓치고 있는 것이 있었다.
도리어 한주를 다스리는 주목으로서의 능력을 보이는 정원이 독보일만큼 그의 날카로운 분석은 가히 흑산적의 이들을 꿰뚫고 있었다.
“벼, 병주......”
“그래, 이 빌어먹을 병주밖에 없지. 또 기웃대면서 자신들이 언젠가 도와줄 것이라면서 이제는 대놓고 손을 벌리며 이것저것 더 많은 것을 내어놓으라 할 게야! 그때 가서 어쩔 건가? 이제와 못내 주겠다고 하면 그때 가선 어쩔 게야? 그땐 또다시 이 병주를 둔 내전이야! 내 자리는 또 위태해지고 또 이 빌어먹을 병주에서 내 힘을 소모하며 다시금 기회를 기다려야 해! 그것도 끝도 없이 밀려들 수십 만에 달하는 놈들을 상대해야 해! 이걸 어쩔 텐가! 내 대신 자네가 이걸 책임지기라도 할 거야!”
뼛속까지 쭈뼛거리게 만드는 정원의 호통에 민공은 그 정신이 바짝 드는 듯했다.
의외로 정원에게 식견이 있었다.
역시 제 전 주인인 왕윤과 같은 병주 출신의 인사라 그런지 몰라도 강단이 있고 날카로운 통찰과 더불어 그 판단이 매우 뛰어났다.
그리고 병주 역시 어느 쪽을 선택하든 장기적으로 감내해야 할 것이 많음을 알았다.
“제가 가겠습니다.”
“자네가?”
정원 또한 종양처럼 자라나는 흑산적을 지속적으로 병주 안에서 키울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렇다고 이를 사례의 동의도 없이 내보내기엔 졸지에 사례와의 관계가 껄끄러워질 수 있었다.
결국, 미리 동의를 얻어야 할 뿐만 아니라 완전한 협동 체제가 필요했다.
거기에 여포에 대한 일까지 같이 처리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그림이 나올 터.
쿠구구궁-
“천정관의 문을 열어라!”
그렇게 다시금 민공이 사례로 내달렸다.
허면 이 시각 저수는 또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 * *
“이제와 도와달라?”
“돌아가는 상황이 심상치 않음은 아시지 않습니까?”
“내몰리면 갈 곳은 있고?”
“후우.”
짙은 한숨과 더불어 머리를 긁적이는 위속을 마주한 저수는 이내 고심 끝에 그의 앞에 지도를 펼쳤다.
그리고 가리킨 사연택, 실상 이것이 그 모든 것의 원흉이었다.
“사연택이야 어차피 행정 구역상 병주야. 이 땅에 남흉노가 자리를 잡아 병주가 통치 관할을 잃어버린 지 제법 되었다지만, 그렇다고 한들 그곳이 병주 관할이었다는 사실이 사라지지는 않아.”
“하시고자 하는 말씀이 무엇입니까?”
“일이 이렇게 급변하게 될 줄은 자네 형님인 여포도 또 자네도 몰랐겠지?”
“솔직히 보내주실 적에 방패막이를 대신한다 생각했습니다. 양부와의 관계도 있으니 시간도 벌고 저들의 노림수도 그대로 들어주지도 않고 말이지요.”
“그래, 나 또한 그리 생각했다. 한데 일이 틀어졌어. 무역로뿐만 아니라 정원이 아예 사연택 그 자체를 욕심낼 줄은 또 몰랐지. 아니, 어쩌면 이게 당연한 것이었는데 모두가 이미 잊혀진 행정 구역이라 생각해 가장 먼저 논해야 할 것을 지금까지 놓치고 있었는지도 몰라.”
실상 무역로가 아니었다면 사연택의 가치는 그저 이전과 같은 흉노가 자리한 호수를 둘러 싼 빈땅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사연택으로 말미맘아 상인이 모이고 돈과 물류가 돌며 사람이 모여들면 그땐 상황이 달라지게 되니, 정원은 이로서 새로운 시장의 설립 뿐 아니라 기존의 병주가 잃어버렸던 행정구역의 부활을 꿈꿨던 모양이었다.
한데 그것이 여포로 말미암아 틀어지면서 더한 혼란을 초래하게 된 것.
즉, 사연택은 이번 여포와 정원의 갈등으로 그 가치가 온전히 드러나게 된 것이었다.
고을이 생긴다는 것은 통치 관할이 늘어나고 시장뿐 아니라 정기적으로 세수와 인력을 제공할 곳이 생기는 것이니 이를 다스리는 행정관에겐 매력적인 이들을 연달아 가져다주게 되니 말이다.
“그래도 저희가 작은 희망을 가져왔습니다.”
“희망?”
“최대한 버티면서 정원의 전력을 잡아먹는다면 흑산적이 신경 쓰여서라도 정원이 다시 병주로 돌아갈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
흑산적, 그래. 왜 이들을 생각지 못했을까?
어쩌면 저들이야말로 정원에게 가장 거추장스러운 부분이며 실상 그래서 정원이 저리 나온 연유가 곧바로 설명이 되었다.
“제기랄, 아주 지랄이 났구나.”
“예?”
저수의 반응을 위속은 이해하지 못했다.
“이건 희망이 아니다, 절망이지.”
“그게 무슨.......”
자신은 필경 도움이 될 것을 가지고 왔다 생각했는데 막상 저수의 반응을 보니 그렇지 않았다.
“지난날 주공께선 태행산맥을 불태우셨다. 좋든 싫든 이미 흑산적들 중 절반에 달하는 이들은 주공에 다한 감정이 좋지 않아.”
“.......!”
“거기다 흑산적들도 굳이 정원이라는 강대한 이를 적으로 돌리면서까지 모험을 벌이고 싶지 않을 게다. 거기다 그간은 이곳 하내에 여포가 있었지. 매양 전투를 갈망하는 여포를 출격시킨 통에 저들은 이곳에 여포만이 자리하고 있는 줄 알고 있다.”
그제야 무언가 심상치 않게 돌아가고 있음을 깨달은 위속이었다.
거기다 하필 여포는 이제 더는 하내에 자리하고 있지 않지 않은가?
“한데 그러한 형님께서 사연택으로 빠지셨으니......”
“그래, 그 빌어먹을 놈들의 눈에 이 하내보다 먹음직스러운 구역은 없지.”
콰앙-
저수의 손이 상을 때리며 하내가 그려진 지도를 덮어버렸다.
“수십 만의 도적들이 개미 떼마냥 몰려들 것이다.”
“태, 태수님!”
“고맙구나, 내게 절망을 선사해주어서. 그러나 그것이 진실이기에 진심으로 고마움을 표하는 것이다.”
“저, 저는 이를 바란 것이 아니옵고......”
스윽-
“만일, 더는 정원을 상대하지 못하겠다면 그대로 내려와 하동을 점거해라.”
그렇게 하내를 덮어버렸던 손을 들어 다시금 그 손가락으로 하동을 가리키는 저수였다.
“하동 말입니까?”
“기왕 이리된 것 사례를 포위해버려야 한다. 그와 동시에 병주와 사례의 연결점을 끊어놓아야 한다.”
그도 모자라 다시금 하동과 하내를 스윽 쓸어내니, 그 모습이 마치 사례 위에 자리한 경계이자 뚜껑과도 같은 모습이었다.
“사례를 압박해 병주를 돕지 못하게 만들고 삼보에 자리한 주공에 장인께서 나서주신다면 그럴듯한 그림이 생긴다.”
허나, 저수뿐 아니라 위속의 눈에도 보이는 문제는 하내가 이를 버티냐는 것.
“가능하시겠습니까?”
“정원과의 전쟁을 염두에 둔 준비였다. 잠깐 그 분위기가 흔들렸다 하여 기존의 준비된 것들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
“허면......!”
콰앙-
“올 테면 오라지.”
상정했던 대상이 조금 달라져 버리긴 했지만 그런대로 상관은 없었다.
어차피 비좁은 하내군에서 내보일 수 있는 대비는 철저한 거점 수비와 더불어 방어력과 조직력에 일관된 움직임뿐이었다.
그 외에 대비랄 것이 있다면 또 뭐가 있을까? 문득 이 자리에 존재하지 않는 학맹과 서영을 떠올린 저수는 이내 자신감이 넘치는 표정으로 눈을 빛냈다.
* * *
그리고 그리 병주를 기점으로 한 북방에 묘한 전운이 감돌 그 시각, 사례에 자리한 이들은 그나마 붙잡힌 민심에 안도하는 한편, 불안한 지지를 받는 천하 정세에 대한 고심에 여념이 없었다.
실상 지난날 하진을 비롯한 이들의 목을 열두대문 인근에 내걸었듯이 이번에 자리한 이들의 목 또한 그리 내걸어 민심을 수습하고 있었던 것과 그나마 죽은 탁류의 이들과 환관들의 재물을 압류하고 또 이를 이용한 내적 정리가 효용을 본 것이다.
저벅저벅-
허나 가끔씩 내어주는 당근과는 달리 기왕지사 한번 휘둘러도 제대로 휘둘러야 만이 효력을 보는 채찍이었기에, 지난날 황보력의 정권에 저항했던 이들의 목은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열두대문의 인근에 자리하고 있었다.
심지어 그 살이 모두 썩고 구더기가 이를 파먹어 백골이 보이는데도 딱히 인근의 관병들은 이를 치워낼 생각을 하지 않았으나 이제는 얼추 이에 적응한 도성의 이들도 가끔씩 성문을 나서거나 들어올 때면 이를 보고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는 일이 흔했다.
그리고 이제 막 도성에 발을 들이게 된 민공은 우연히 한 해골 앞에 그 걸음을 멈춰선 채 뚫어져라 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동중.”
죽은 동 태후의 조카이자 지난날 자신과 마찬가지로 도망쳤다 포홍에게 붙들려 다시금 압송되어 처형되었다는 인물.
하진이 때마침 남궁을 습격할 당시 혈혈단신으로 이를 벗어나 포홍에게 도달했다는 인물.
그 과거의 관계를 되살펴 본다면 이미 하진 외에 다른 선택지가 필요했던 동 태후는 살기 위해서라도 포홍에게 어떻게든 매달려야 하는 상황이었으며, 삶을 포기한다고 한들 가문의 유지와 복수를 위해서라도 생존자는 남겨야 하는 상황이었다.
하여 그리 제 조카를 포홍에게 보낸 것으로 추정이 되는데 막상 그리 포홍에게 가서 붙잡힌 동중은 도리어 복수라던가 혹은 구원이자 도움조차 꿈도 꾸지 못한 채, 그대로 황보숭의 관병들에게 인계되어 지난날의 죄를 물어 처형을 당했다.
“그에 비해 나는......”
마치 엇갈린 운명이 이러할까? 포홍의 명에 장료가 하남윤사를 습격했고 당시 제 주인이자 하남윤이었던 왕윤 또한 그리 저를 살려 유지를 잇게 했다.
하여 그 유지를 위해, 복수를 위해 칼을 갈은 자신은 병주의 정원을 찾아갔고 그것이 인연이 되어 지금의 이 자리에 자리하고 있었다.
“이게 복수가 될진 모르겠지만, 거기서 내가 포홍을 무너트리는 것을 지켜보시오. 같은 운명을 타고 났어도 우리의 생사가 이리 갈린 것은 아무래도 하늘의 뜻인 것 같으니, 똑같이 그 유지를 잇는 자로서 내가 그대의 앞에 새로운 세상을 보여주리다.”
그렇게 가벼이 동중을 향한 묵념과 더불어 걸음을 옮긴 민공은 곧바로 가후를 찾았다.
덜컥-
“이런.”
그리고 역시나 매번 들려왔던 익숙한 표현이 이전과 같이 자신을 반기고 있었다.
“낭중령.”
“제발 부탁이건데 관서에 아무런 일이 없었으면 하는군요.”
그러나 그리 민공, 자신을 쳐다보는 가후의 표정은 확실히 껄끄러워 보였다.
그러나 자신은, 아니 병주는 그보다도 더 급한 상황이었다.
“송구합니다만, 이제는 병주와 옹주 중 하나를 택하셔야 할 때가 온 듯 합니다.”
“음, 솔직하게 말하자면 그 질문은 조금 주제 넘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예?”
“아니, 뭐. 병주가 그 정도로 가치가 있냐는 말이지요.”
“낭중령!”
“물론, 서운할 수 있어요. 서운할 법도 하죠. 허나 그 입에서 옹주가 나온 이상, 포홍과 관련되어 있다는 이야기인데 그 포홍 덕에 작금의 조당의 권위가 지켜지고 있는 건 압니까?”
한마디로 서역 원정의 성공을 알림과 더불어, 황제에게 어주를 내려달라 한 행동이 알아서 위태로운 사례 정권의 정당성을 지켜주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탁탁-
거기다 가후는 과거를 잊지 말라는 듯 자기의 직인이 찍힌 도장을 손가락으로 건드려 보이고 있었다.
“전국옥새......, 제기랄.”
“하필 상황이 좋지 않을 때 오셨습니다, 한데 대저 왜 그런 겁니까?”
결국, 가후의 앞에 자초지종을 설명할 수밖에 없는 민공이었다.
“흐음, 그래요?”
물론, 이야기를 들으면서 가후의 눈빛과 표정 또한 다채롭게 변했다.
여전히 그의 앞에 놓인 책상과 그 위에 자리한 지도를 향한 시선을 놓지 않는 그는 지금도 무언가를 빠르게 계산하는 듯 보였다.
“꼭 하내를 건드셔야겠습니까? 암만 포홍에 속해있어도 하내는 사례입니다. 그것도 황하 하나를 제하면 바로 도성인 낙양과 하남윤이 자리하고 있는 마당에 그 민심이 쉬이 혼란스러워질 가능성이 있지요.”
“허나 병주목의 태도가 너무 단호합니다. 또한 그 입장이 이해가 갈 수밖에 없는 것이 통치와 운용을 모르는 흑산적들은 지금도 그 몸집을 불리는데 혈안이 되어있습니다.”
“그러니까 안에서 터지든 밖에서 터트리는 한번은 그 수를 줄여줘야 한다?”
“실상 조당에서도 처벌도 못하고 통제도 못해서 벼슬자리를 던져주며 회유하는 것 아닙니까?”
“그렇지요, 그게 현실이지요. 허나 이게 본인의 의중은 아니지요?”
“예, 저는 차라리 하내 태수를 뒤바꿨으면 했습니다. 희생이 적고 하내도 온전히 확보할 수 있으리라......”
“미안하지만 그건 불가합니다. 이미 동탁과 포홍이 난을 일으킬 적에 포홍은 하내를 병탄한 해, 온전한 지지를 얻어낸 전력이 있지요. 제가 새로이 조당을 구상할 적에도, 사례에 지방관들을 나눠주며 민심을 살필 적에도 하내는 여전히 포홍의 지지를 놓지 않은 구역입니다.”
가후가 민공의 진심을 알아주는 듯 하였으나 이 역시 문제가 있었다.
“허면......”
“이건 정원의 판단이 맞았다고 볼 수밖에 없군요.”
“그 말씀은 저희를 도와주시겠다는......!”
“글쎄, 여포도 이길 자신도 있고 하내도 그리 밀어낼 자신이 있으면 홀로 하면 되는 것 아닙니까?”
“하오나 여포가 가만히 있겠습니까? 필경 하내에 자리한 저수에게 도움을 청했겠지요.”
“그래서 포홍이 올라온다? 해서 막아달라? 대저 그 거리가 여기서 얼마나 먼 줄 압니까?”
“허면 포홍이 올라오지 않는다는 말씀이십니까?”
“아니면 반대로 내가 묻지요. 포홍에게 이 소식이 들어가고 그가 돌아올 때까지 상황 정리도 못하면 도리어 병주에 자리한 그대들이 무능한 것 아닙니까?”
“........”
순간 가후의 역설에 말문이 막힌 민공이었다.
“그래도, 옹주에는 서원군이 자리하고 있으니 이는 막아드리지요. 아직 저희의 전력은 온전합니다.”
“후우, 그거라면 감사합니다. 그거면 충분할 겁니다.”
그래, 그나마.
그나마 저 가후가 있어 다행이었다.
그러나 혹시라도, 이보다 더 확실한 도움을 받는다면 혹시 모를 변수마저 없어지지 않을까?
“저 혹시 황상께선......”
“그건 그대가 신경 쓸 일이 아니지요? 그대는 왕윤의 복수가 중한 것 아니었습니까?”
허나 애석한 민공의 마음을 외면하기라도 하듯, 마치 무언가를 경계하는 듯 보이는 가후는 그의 앞에 노골적으로 선을 그었다.
그리고 그 선을 그은 것은 민공, 스스로가 뒤집어쓴 가면마저 반으로 갈라버릴 날카로운 칼이었다.
“어, 어떻게......!”
“그러니까 심복이면 차라리 명부에 이름을 올리지 마세요. 어줍잖은 기록물도 모이면 이 세상에 사라진 사람도 찾을 수 있고 그 인과 또한 살필 수 있으니까. 아, 이건 그대의 잘못이 아닌 죽은 왕윤의 실수이니 그대의 책임은 아니겠군요.”
그렇게 자신의 정체를 파악한 가후의 앞에 한동안 멍하니 자리하던 민공은 이내 모든 것을 체념한 채, 말없이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복수, 하고 싶습니까?”
그러나 그리 집무실을 나가는 민공을 다시금 가후가 붙잡았다.
“그 혀를 또 칼처럼 쓰려 하심입니까?”
“무슨 그런 칭찬을.”
“이용하시려면 제대로 된 기회를 주시지요. 괜스레 도와주는 척 장기짝으로 쓰다가 버리면, 그땐 정녕 낭중령이라도 용서치 않을 겁니다.”
“각오는 좋습니다만, 아직은 아니지요? 짐승을 모시기로 했으면 송곳니를 감추고 드러내는 것부터 배우세요.”
“허면 언제까지 기다려야 합니까?”
“내전의 직후.”
“내전이요?”
“관동의 혼란이 정리되는 대로 새로이 판이 짜일 겁니다. 그때까진 참으시지요.”
병주의 일만으로 바쁜 민공에게 관동의 일은 이미 능력의 밖의 일이었다.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도 모르고 애초에 안다고 한들 그 복잡한 곳들의 사안을 일일이 살펴 이끌어갈 수조차 없었다.
‘확실히 천하를 두고 판을 짠다 이건가?’
씁쓸한 말이나 민공은 여기서 그릇의 차이를 느꼈다.
자신은 복수와 별개로 병주를 비롯한 인근의 판을 짜는 것만으로도 버거운데 작금의 가후는 사방에서 이러한 일이 터짐에도 그 모든 것을 총괄한다는 듯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덜컥-
그렇게 민공이 가후의 집무실을 나섰다.
그가 떠난 자리를 말없이 지켜본 가후는 이내 민공이 선사한 새로운 갈등에 이루 말할 수 없는 거슬림을 느꼈다.
“쯧.”
어느덧 지도의 앞으로 돌아온 가후의 시선은 이내 황건적의 문제와 더불어 조조와 원소의 일까지 끼어있는 관동 4주로 향했다.
유주, 기주, 연주와 청주 모두 각자의 문제와 정리되지 않은 문제가 산재되어 있었고 이것이 끝나야 이들은 그 입장을 바꿔 사례를 온전히 지지할 수 있었다.
“그런데 하필 여기서 일이 터져?”
그렇게 가후의 시선이 이번에는 관서에 자리한 4개의 주로 향했다.
“병주의 정원이 굳이 서방까지 날아가 포홍을 들쑤셨고, 그것이 하내에 변수를 만들어 병주와 하내의 갈등으로 번졌다. 이에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외세를 끌어들이고자 했던 민공이 나를 찾았으니, 하내를 다스리는 저수 또한 필경 도움을 청하기 위해 사람을 보낼 터.”
결국, 이미 민공이 이곳을 찾은 것만으로도 이는 병주와 하내의 갈등을 넘어서고 있다는 소리였다.
아무리 시간이 걸린다고 한들, 량주 너머에 자리한 포홍이 량주를 거쳐 나타날지 모를 일이며 그 이전에는 옹주에 자리한 풍방이 있으니 이들이 하내의 요청을 받고 움직일 가능성을 배제할 순 없었다.
“죽일까?”
가히 섬찟한 말이었으나 반대로 그만큼 거슬리기도 하다는 뜻이었다.
물론, 옹주의 수비병이 많다고 한들, 만일 풍방을 비롯한 서원군을 북방으로 꾀어낸다면 그 가능성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러려면 돌아온 포홍이 골치지. 그 빌어먹을 무역로도 아직 이용 못 했는데 벌써 과중한 부담을 감내하면 쓰나?”
그리 다시금 지도를 살피던 가후는 문득, 작금의 가장 큰 논란을 부른 사연택 인근을 살피다 익숙한 지명 앞에 멈춰 섰다.
“하지만 우리가 죽인 게 아니라면?”
- 작가의말
늦어서 죄송합니다.
본디 약속이 있어서 오늘은 그냥 넘어가려다 시간이 바뀌게 되면서 한편 올리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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