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3화 – 이제 한파가 들이닥칠 겁니다(2)
두두두두-
포홍이 흘러넘치는 돈과 인력을 두고 저만의 고심에 잠겨있는 동안, 그 몸을 수그려 자신의 죄를 용서받고 후일을 보장받게 된 풍방은 이내 쓴웃음을 지으며 더더욱 속력을 높여 삼보 인근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중군 교위! 같이 가시지요!”
그 속력이 오죽했으면 한때 백파적들 중 가장 이름난 두령 중 하나였던 양봉조차 앓는 소리를 낼 정도였다.
“양 두령은 화도 안 납니까?”
그렇게 겨우 풍방을 따라잡아 말머리를 맞추는 와중에 바람 소리에 뒤섞인 그의 빈정거림이 들려왔다.
“납니다, 허나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않습니까?”
다그닥- 다그닥-
“어쩔 수 없다? 어쩔 수 없어?”
그런 양봉의 답변이 전혀 의외였기 때문일까? 양봉 딴에는 정석이라 여겨졌던 답변이 풍방이 내달리는 말의 속력마저 줄여버렸다.
뭐, 정확히는 알다가도 모를 의문을 품은 채, 고삐를 쥔 그 스스로가 알아서 속력을 줄인 것이겠지만 말이다.
다각- 다각-
“저, 갑자기 왜 그러시는지......”
“언제부터였죠? 대체 언제부터 이 풍방이 사위의 앞에 어쩔 수 없는 존재가 되었냐는 말입니다.”
그렇게 다시금 양봉을 향해 돌아간 풍방의 얼굴엔 실로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 자리하고 있었다.
희뿌연 벽에 탁 막힌 듯한 그의 눈빛은 더 이상의 정기를 바라기보단 혼란스러운 동요를 담고 있었다.
“앞이 보이지 않는 것은 아니나, 흐릿하군요.”
그리고 이러한 풍방의 고심은 당연한 것이었다.
지금까지의 포홍이 어디 내치를 신경을 쓴 적이 있던가?
“많이 컸습니다. 아니, 언제 이렇게까지 자란 겁니까?”
아직도 세간은 포홍을 망나니로 여기는 이들이 가득하다.
그나마 그를 알고 있는 이들과 그를 인정하는 이들 또한 그저 이 나라 최고의 무장 정도로만 그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작금의 이르러 어디로 튈지 모르는 짐승의 본성을 지닌 인간은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수를 두었습니다, 내 앞날에 펼쳐진 갈래 하나를 막았어요.”
“중군교위?”
“약자라는 단어를 심어주고 그 속에 노골적인 굴레를 씌웠습니다. 이는 내가 찬 목줄 위로 새로이 달린 표식이자 그들과 내가 더는 가까워질 수 없는 구분입니다. 내가 그쪽으로 손을 뻗칠 수 없도록 사위가 포석을 둔 거지요.”
실로 놀라운 일이었다.
서원군의 이름을 지우고 자신의 영향력을 심을 기회를 잘라낸 것보다 더 놀라운 것은 이쪽의 일이란 말이다.
“하하....., 하하하.”
반강제적으로 짐승과 혈연을 맺어 서로를 이은 목줄을 차게 되었으나 그래도 지금까지는 그 목줄을 자신이 끌어오며 주인행세를 해왔다.
그러나 오늘에 이르러선 달랐다.
사위가 도리어 제 목줄에 짐승의 인식표와 같은 표식을 달고 그 목줄을 당겨 주인마냥 자신을 이끌었다.
“내가 주인인 줄 알았는데 종이었고, 마부인 줄 알았는데 말이었으며, 왕인 줄 알았는데 그 수하였습니다.”
그것이 굴욕이 될지 아니면 인정이 될지 이는 순전히 풍방이 마음먹기에 따라 달린 일이었다.
“중군교위.....”
“잘 커 줬어요. 실로 잘 커 줬습니다.”
그러나 풍방은 딱히 이에 대한 티를 내지 않았다.
정확히는 그에 대한 결정도 내리지 않았다.
“지금은 바짝 수그리기만 합시다. 어차피 내 잘못이 크고 나도 나름의 반성은 해야 하니까. 또 기왕지사 사위가 부탁한 아니....., 사위가 시킨 일도 해야 하니 말이지요.”
그렇게 일만에 달하는 백파적과 더불어 풍방이 삼보를 찾았다는 소식에 인근이 떠들썩해지기 시작했다.
* * *
“돈과 인력으로 할 수 있는 것.”
콰앙-
“그중에 가장 먼저 해야 하는 것.”
그렇게 주먹으로 책상을 내리치며 기분 좋은 시작을 알린 포홍이 내려다보고 있는 것은 가히 이루 말할 수 없는 거대한 규모를 자랑하는 공사판이었다.
“서쪽부터 동쪽까지, 또 동쪽 끝에서 서쪽 끝에 이를 때까지! 그 누구도 지치지 않고 다닐 수 있는 가도를 건설해라! 시골길부터 비탈길까지 조세와 교역을 위한 모든 길을 손볼 것이다!”
펄럭-
“가도의 증설이자 포장도로의 확충이다! 이는 옹주를 비롯해 표기장군을 따르는 천하만민을 살찌우는 길이 될 것이니, 지금 당장 공사를 시작하라!”
초소 위에 자리한 병사가 거대한 깃발을 흔들자, 책임자로 보이는 이들이 우렁찬 소리를 내질렀다.
이에 포홍이 자리한 장안 인근에서 십만 명이 넘는 인력들이 지반을 다지고 무거운 판석을 까는 돌길의 공사에 참여했고, 이를 위한 임시가도를 설비하기 위해 주변으로 흩어지며 인근의 자잘한 길들마저 손보기 시작했다.
“우리는 돈의 물길을 낸다! 금력의 도강언을 가진다! 천하의 모든 재화와 물자 그리고 인력을 빨아들인다! 모든 경제를 집어삼킨다!”
훗날, 동역과 서역을 있는 황금의 길 혹은 동서를 잇는 비단길이라는 뜻의 동서금로는 그렇게 서역 원정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돌아온 포홍의 손에 의해 처음으로 천하에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황제의 재가 없이도 한 주의 목이자 일개 장수에 불과한 그가 한 나라가 휘청여도 이상하지 않을 거대한 토목건설을 밀어붙인 것이다.
“뭐라, 옹주목께서 동서금로의 공설(公設)에 참여하라 명을 내리셨다?”
“가난한 유랑민들을 시작으로, 이미 인근의 백성들이 들썩일 정도로 풍문이 퍼졌습니다. 날품을 팔아도 생계를 책임지며 가족을 부양할 수 있을 정도라 합니다.”
그리고 이는 포홍의 영향력 아래 자리한 옹주의 지방관들에게 거대한 충격을 안겨주었다.
터전을 버리고 온 이들에게, 오직 세상에 내보일 것이라곤 노동력밖에 없는 이들에게 이는 노골적인 희소식일 수밖에 없었다.
이제 막 가을날이 지났으니 장마도 없고, 치수와 같은 위험한 일도 아니며 요역을 핑계로 백성들에게 강제하며 밀어붙이는 형식의 공사도 아니었다.
“그리 난리인가?”
“이미 장안에서 자발적으로 참여한 이들만 십만입니다.”
“허면 못해도 이십만의 장정은 더 쏟아져나오겠군. 거기에 인근에 군현들이 참여한다면.....”
“오십만, 못해도 옹주 내에서만 오십만에 달하는 백성들이 쏟아져나올지도 모르겠습니다.”
“설마? 전쟁에 쓰일 장정의 수를 확인하기 위함이더냐!”
타앙-
전쟁에 미쳤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 량주를 시작으로 끊이질 않을 전투와 전장에 발을 디디며 전쟁 속에 녹아든 삶을 살아온 풍운아가 바로 포홍이었다.
그렇기에 그런 그의 과거를 빗대 이를 이해하려던 갑훈은 소름이 돋지 않을 수가 없었다.
가뜩이나 난세에 호패를 비롯한 인구조사마저 작살난 상황 속에, 작금의 자신의 힘의 척도라 할 수 있는 장정의 인구가 보여주는 지표인 전쟁동원력을 이런 식으로 확인할 줄은 몰랐다.
자발적으로 노역과 부역에 참여한 이들의 숫자가 의미하는 것은, 생계에 아쉬움이 없는 이들을 제한 결과이니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마찬가지인 그들 중 대부분은 굶어 죽지 않기 위해서라도 전쟁에 뛰어들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었다.
“엄청나군요. 저, 한데 이런 말씀을 드려 송구하오나 고작 그 하나를 위해 이리 큰 공사를 벌였다는 말입니까?”
“그래, 생각해보니 그게 또 문제로구나.”
어차피 난세인 마당에 그 목숨을 내걸고 전장에 뛰어들 수 있는 오십만의 장정, 너무나도 와닿지 않는 수치 덕에 도리어 먼 나라의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느껴지니 도리어 갑훈의 수하는 다른 것을 물어왔다.
“어차피 지금 시작한 공사이니 천금이 들어갈 겁니다. 완성되려면 못해도 수년의 세월은 걸리겠지요. 그러니까 묻는 것입니다. 아무리 서역도호부를 완성시켰다고 한들, 자신의 물독도 채우지 않은 와중에 보통은 그리 밑 빠진 독에 바로 물을 붓진 않지 않습니까?”
“그렇겠지.”
그리고 이러한 일반적인 시각은 자연스레 갑훈에게도 또다른 의문을 낳게 만들었다.
특히나 얼마 전 일만의 군대와 함께 도착한 풍방을 맞아들인 갑훈에게 있어 자신의 봉지나 다름없는 곳에서 포홍이 벌인 이 일은 가히 예상을 뛰어넘는 기행과 같았다.
자신이라고 어디 도로의 중요성을 모르겠는가?
한 나라의 수도나 다름이 없는 경조윤의 자리에 있는 이로써 포장도로, 특히 물산의 이동과 공납 그리고 세수의 이동에 지대한 영향을 끼칠 국도(國道)의 필요성은 당연한 것이다.
“그래, 안다. 하지만 너무 과해.”
사실 하나의 행정구역을 다스리는 관료로서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옳지는 않으나 백성들의 편의와 부의 증대, 조금 더 쉬운 통치를 위한 노력으로써 이를 봐주기는 힘들었다.
“어차피 길은 사람이 다니는 것으로 완성된다. 또한 사람이 오가며 그 족흔(足痕)이 남아야 비로소 가치가 있는 길로써 공적인 인증을 받으니, 그 뒤에 포장을 깔아도 늦지 않는다. 한데, 왜?”
작금의 갑훈이 고개를 갸웃하는 것도 그 때문이었다. 도대체가 인구수의 확인과 더불어 그 목적을 모르겠다는 것이다.
“아무리 금력이 좋다고 해도 어차피 오가는 상인들로 말미암아 정리되고 굳어질 길을, 대체 왜?”
끼이익-
“여기 있었군요?”
그렇게 그가 자신의 수하와 한참을 고심하고 있을 찰나, 순식간에 문을 열고 나타난 이가 있었으니 그는 바로 얼마 전에 도착한 풍방이었다.
“중군교위......”
“가후 놈, 처신 재빠른 건 알아줘야겠어요. 원래는 죽이려고 했는데 누구 덕에 살았으니 말입니다.”
그 누구가 자신임을 모르지 않는 갑훈은 난색을 표했지만 다행스럽게도 풍방은 이미 해묵은 감정을 정리한 듯 보였다.
“그래서, 나 좀 도와주셨으면 좋겠는데?”
“도와달라?”
“우후훗, 내 사위의 명인데 받들지 않을 생각이에요?”
“아, 아닙니다. 도와드려야지요.”
“좋아요, 자 그럼. 옹주목의 사자로 조당에 다녀와야겠습니다. 가서 시간도 좀 끌어주고 관심도 보여주고 시간도 벌어야 하니, 되도록 여러 이들과 뒤섞여 교류해주세요. 제자라고 아직도 낙양의 묶어둔 놈 하나 있는 거 아니까, 기왕이면 둘이 알아서 잘 움직여서.”
덜컥-
“어찌할지는 여기 목함에 담겨있으니 내용 다 읽고 태우시면 되고. 허면 나는 볼일 다 끝났네요. 참, 구색은 갖춰야 하니 필요한 것은 내가 준비해드리지요. 허면......”
“가시렵니까?”
“가야지요, 가서 뿌려야지. 뿌리고 다 가져와야지.”
그렇게 소매 속에서 작은 목함 하나를 꺼내놓은 풍방은 순진무구한 아이와 같은 장난기 어린 얼굴로 의미심장한 말을 남긴 채 그에게서 등을 돌렸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 서역 원정을 성공으로 마친 포홍의 사절로서 낙양에 도착한 갑훈은 어느새 도적의 복색을 버리고 탈바꿈한 양봉을 비롯한 이들의 호위를 받는 받으며 황궁문 앞에 자리하게 되었다.
* * *
“표기장군을 대신해 사절로 찾아왔습니다.”
웅성웅성-
급작스러운 갑훈의 방문은 가히 도성과 황궁을 발칵 뒤집어놓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 이전에는 일만에 달하는 군대가 급작스레 삼보 쪽으로 이동했다는 정황이 접수되며 알게 모를 신경이 곤두선 마당이었고, 그보다 더 이전에든 가히 예기지 못한 폭탄선언이나 다름없는 거국적인 토목공사를 황제의 재가도 없이 멋대로 밀어붙이면서 사례의 이들이 들썩이기까지 하는 상황이었다.
마치 이 시대에는 존재하지 않을 거대한 터빈과 톱니바퀴들이 엄청난 증기를 뿜어내며 열기와 수증기 속에 돌아가듯이, 각지가 반란과 내전 그리고 혼란과 뒷수습으로 얼룩진 이 마당에 아예 다른 세상을 천명한 옹주는 수백 년의 역사 속에 요원했던 꿈인 서역도호부와 하서주랑을 현실로 이끌며 시간을 초월하면서까지 저 혼자만의 독주를 표방하고 있는 듯 보였다.
그리고 이것이 만들어낼 후폭풍은 예상할 수 없어도 작금의 포홍이 가져간 옹주의 위력은 그렇게 만천하에 새로운 위용을 떨쳤다.
이미 확인된 이들만 이십만이 넘는다는 백성들이 자발적으로 공사에 참여했다는 소식이 알려진 것은 물론, 민간에는 이미 옹주몽이라는 허황된 이야기를 떠들어대는 이들이 퍼져나가고 있었다.
지옥도나 다름이 없는 이 땅에 거진 유일무이한 천국이자 극락이며 낙원이고 유토피아라 칭할 수 있는 오늘날의 전쟁의 상처를 피해간 낙양과 사례.
이전의 전쟁과 갈등 그리고 사변은 있었어도 최소한 모든 것이 수습된 지금에 이르러 한 차례변란이자 황보숭의 죽음이라는 위기를 맞았던 그 낙양과 사례 또한 찰나에 벌어진 하동의 비극을 제하고는 다시금 전쟁 이전의, 본연의 모습을 되찾아가는 중이었다.
그러나 그러한 천하의 주도이자 일국의 도성이 자리한 낙양과 황제의 직할지인 사례는 그리 서쪽에서 찾아는 바람에 흔들리며 동요하고 있었으며, 이는 실상 자신들보다 더 따스한 훈풍에 대한 과시이자 비교임을 깨닫게 된 도성의 이들에게 이전과는 다른 차가운 기운을 선사했다.
실망과 절망, 깨달은 현실과 노골적인 격차.
부러움과 질시, 이곳에 없는 무언가가 있는 진정한 의미의 서쪽 낙원.
그리 관민을 비롯한 모든 이들이 이리 동요하는 상황에 갑훈이 황궁에, 대전에 발을 들인 것이다.
“사절이라니! 아니, 원정을 성공적으로 마쳤으면 당장 도성으로 찾아와 폐하께 엎드려 지금까지의 공무를 상신하고 그 모든 일을 고해야 마땅하건만 이는 또 무슨 짓이요?”
그리고 당연히 이러한 갑훈의 급작스러운 방문에 사례의 조당은 당장에 좋은 소리를 낼 수 없었다.
“거기다 작금의 사례는 온통 옹주목이 벌인 기행 덕에 요사스러운 풍문들이 판을 치고 있는 형국이요. 백성들에게 천금을 뿌렸다는 이야기 하며, 멋대로 국책사업이나 다름없는 관치의 의례를 무시한 토건의 공사를 밀어붙이는 일까지. 대저 뭐가 어떻게 되었기에 일을 이 따위로 처리한다는 말인가!”
대다수의 사인들과 청류의 이들은 노골적으로 이를 문제를 삼고 있었다.
일단 의례, 자신들에게 인사와 더불어 복종을 보이지 않음은 물론, 자신들이 내비치는 상징인 황제에 대한 그 어떠한 성의도 없는 것이 맞물렸다.
그간의 행보를 생각한다면 아무리 옥새가 깨졌다고 한들, 직접 어주를 내려달라 청할 정도로 한실에 사례의 조당에 복종하는 모습을 보였던 포홍이 아닌가?
그런 포홍이 아예 기존의 관례를 싸그리 무시하고 이리 나왔다는 것 자체가 작금의 자신들을 무시하는 행위라 이들은 해석하고 있었다.
“이거, 다들 화가 단단히 나신 듯 보이옵니다.”
“경우가 없지 않은가! 경우가! 암만 이 나라에서 제일가는 장수라 해도 그렇지, 어찌 이리 무례할 수가 있는가! 하늘께서 보고 계신 자리야! 그간의 우국충정은 어디로 팔아먹고 이제와 그 따위로 나오냐는 소리일세!”
“하오시면, 송구하오나 한 가지 사실을 더 전해야 할 듯 합니다.”
“뭐라? 아니, 이 작자가 정녕!”
그러나 모든 이들이 갑훈을 몰아붙이는 것은 아니었다.
“그만하시지요, 그래도 량주에서 경조윤만한 사인은 따로 계시지 않습니다.”
“어허! 어디 저 변방 촌구석 옹량주의 이들에게 사인이라니! 그게 가당키나 한 소리야! 공맹의 말씀조차 제대로 그 땅에 스며들었는지조차 모를 야만의 땅에 뭐? 사인?”
“돌아가신 선제께서 중상시들을 멀리하며 총애하셨던 총신이십니다.”
“흥, 총신은 무슨 간신이었겠지.”
하지만 대대로 이천 석의 벼슬을 거친 관료 집안 출신임에도 하필 서역이라 할 수 있는 돈황군 출신인 그에게 쏟아지는 지역색이 짙은 비하적 여론은 여전했다.
“허허, 이것 참.”
참으로 재미있는 것이 춘추전국의 시기서부터 지금까지도 실상 온전한 천하이자 중원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반쪽짜리 잡주라 칭해지는 형주 출신의 관료들조차도 작금의 갑훈을 욕보이고 있었다.
물론, 그것이 진정 황제를 위함일지 아니면 저들을 위함일지 그도 아니면 황보력에게 잘 보이기 위함일지는 모르겠지만 막상 오랜만에 도성으로 돌아온 갑훈은 확실히 황보숭의 죽음 이후 조당에 자리한 이들의 분위기가 바뀌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만, 그만. 그건 그렇고 아까 한 가지 사실을 더 전한다고 하지 않았나?”
그나마 황보력이 주변을 정리하자 조금 조용해진 조당이었다.
“예, 사도. 이는 실로 감축드릴만한 일이자 작금의 표기장군의 충심을 의심하시는 이들에게도 참으로 좋을 비방이 될 답신과도 같습니다.”
“감축? 비방? 답신?”
그리고 이에 기회를 얻은 갑훈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자신감에 찬 두 눈으로 작금의 대전에 가장 드높은 상석이자 그 얼굴조차 제대로 보이지 않는 먼 곳에 자리한 소제를 향해 기쁨의 절을 올렸다.
“폐하, 실로 감축드릴 일이 아닐 수 없사오니 기쁜 마음으로 소식을 전합니다. 드디어 표기장군께서 서원군을 폐지하셨습니다!”
“뭐라?”
“그게 무슨......!”
“갑자기? 아니, 서원군의 폐지를 논하는 것도 아니고 이미 지워버렸다고?”
웅성웅성-
혼란에 혼란 그리고 그보다 더한 혼란이었다.
“감히 일개 신하가 천자의 친위군을, 그것도 돌아가신 선제의 친위군을 멋대로 쥐고 있는 것은 문제이며 불충이 아니겠습니까?”
“그, 그거야 그렇지만......”
“아니, 이걸 어떻게 해석해야 되는......”
서원군의 의미를 어찌 두고 해석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현실이었으나 도리어 충심을 보이듯 절을 올리며 공적으로 황제의 사설 친위군을 해산했다는 갑훈을 앞에 두고 당장에 이에 뭐라 할 수 없는 이들이었다.
“왜....., 왜지? 왜, 상군 교위는 나를 알현하러 오지 않는 거지?”
그리고 그 시끌벅적한 대소신료들의 웅성거림 속에 미약하게나마 저 멀고도 높은 용상에 자리한 소제의 떨림이 이는 목소리가 갑훈의 귓전을 자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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