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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성 님의 서재입니다.

삼국지 : 내가 죽어 소금에 절여지기까지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필성필성필
작품등록일 :
2020.05.11 16:04
최근연재일 :
2022.11.09 06:27
연재수 :
43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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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3,864,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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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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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글자
20쪽

119화 – 블랙 마운틴 밴딧 인베이전(3)

DUMMY

십만, 물경 십만에 달하는 도적들이 아직도 이 땅에 남아있었다.


웅성웅성-


“이게 말이나 되는가? 십만이라니? 하내가 지금 십만에 달하는 도적들에게 공격을 받고 있다고?”


“이 사람 아직 소식 못 들었구만? 그것도 새로이 모습을 드러낸 이들만 십만에 달한다고 하네. 본래 삼만이 넘는 이들이 하내의 동부를 습격했는데 아예 이번에 작정을 한 듯 싶더라고.”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 나라가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전란과 전쟁을 겪었는가! 거기다 이미 연주의 회맹군도 모자라 이십만이 넘는 토벌군이 모조리 전국에서 동원되었어! 더는 이 나라에 전쟁에 나설 장정들조차 없다고 말이 나오는 판에 아니, 도적의 무리들이 십만이라니........”


그간의 흉흉하고도 과장된 소문으로만 알려져 있던 흑산적들의 실체가 이번 하내의 침략으로 드러나게 되면서 가히 사례를 비롯한 도성의 이들은 가히 충격을 받은 모양새였다.


그 살기 힘든 산자락 속에 그리도 많은 수의 도적들이 생각지도 못한 것과 더불어 이미 황건적의 난과 량주의 난, 장순 장거의 난, 동탁 포홍의 난 등 별에별 난이라 부를 수 있는 전란들이 벌써 몇 번째인가?


그리 전쟁이 지속된 이 땅에 가장 큰 희생양들은 바로 이에 동원되는 군사들이자 징집의 대상이 되는 장정들이었고, 그 정점은 바로 지난날 연주의 회맹군과 더불어 가히 유래가 없을 이십만이 넘는 군사를 일으켰던 토벌군과 전쟁을 벌였던 동탁과 포홍이었다.


허나 그리 천하를 떠들썩하게 만든 동탁과 포홍도 각기 5만에 달하는 병력만을 이끌 뿐이었다.


그런 그들의 합인 십만에 달하는 반란군을 막기 위해 많게는 삼십만에 달하는 관병들이 투입되었던 것인데, 이제와 그런 동탁과 포홍의 힘을 합친 군사들보다 더 많은 군세를 고작 일개 도적 따위가 부리고 있었다.


“그래서? 그자의 이름이 뭐라고?”


“장연이네, 장연. 본래는 제비와 같다 하여 저연인데 장우각에게 잘보이기 위해 그 이름을 바꿨다 하더라고?”


그리고 그 와중에 흑산적의 2인자인 장연의 이름은 절로 사례를 비롯한 천하에 떠들썩하게 알려지고 있었다.


이미 일개 산적들을 규합한 우두머리의 수준을 넘어 말 그대로 산군이라 불러도 이상하지 않을 그가 벌인 침략은 가히 흑산적들의 실체를 온 천하에 드러내고 있었고, 그 실체는 말 그대로 그 어떠한 허풍으로도 설명되지 않을 실질적인 힘을 지닌 작금의 천하에 가장 강력한 도적 무리가 아닐까 하는 인식을 만천하에 뿌리내리게 만들고 있었다.


“허면 이번 일은 그 장우각이 수하인 장연을 시켜 저지른 일이란 말인가?”


“에이, 설마? 그래도 그자가 평난중랑장이라 벼슬도 받지 않았나?”


“쯧, 벼슬이 뭐 밥 먹여주나? 아니면 욕심이 일었겠지. 도적 놈들 하는 짓이야 빤한 것 아닌가?”


“그래도.......”


“아니야! 내가 볼 땐 이건 장연, 그자의 독단이 아니란 말이지. 어찌 그대로 십만이 넘는 병력을 멋대로 움직인단 말인가? 분명이 뒷배가 있어, 제놈이 벼슬을 낼름 집어삼키고 미안한 마음이 있으니, 애먼 수하의 이름을 밀어 넣는 게지.”


“흐음, 그런가?”


거기다 이러한 노출은 본의 아니게 장연의 노림수와 맞아들어가고 있었다.


막상 일을 저지른 것은 장연이었으나, 일찍이 그에게 잘 보이고자 그 이름을 뒤바꾼 것이 도리어 장연이 아닌 그 배후에 장우각이 있을 것이라는 추측과 추론을 낳게 되었다.


* * *


“됐어! 흐하하하하!”


그리고 이러한 인식이 사례의 여론과 더불어 천하를 향해 퍼져나가고 있음을 깨달은 장연은 가슴을 치며 호탕한 모습으로 두 주먹을 들어 올렸다.


그 입가에 미소가 떠나지 않은 것은 이제는 설령 장우각 또한 무조건 이를 외면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었다.


거기에 이미 우독을 비롯해 한 차례 동부를 휩쓴 이들이 약탈품의 운송이 거진 끝나간다는 소식을 전해오면서, 자연스레 산맥을 타고 하내를 털어 재미를 보았다는 소식이 장우각을 따르는 이들의 귀가 쫑긋해질 그림이 벌써 눈앞에 아른거리고 있었다.


“지도자는 인망이 중요한 법이지! 암! 정말 중요한 것이고 말고! 아닌 말로 내가 미쳤다고 매양 여포에게 깨지면서도 하내에 대한 습격을 멈추지 않았던 연유가 무엇이었겠나!”


그리고 그것은 곧 그간의 세월을 주린 배를 움켜쥐며 처절하게 버텨온 자신을 향한 자부심과 자신의 선택이 옳았음에 대한 증명이 되어주었다.


허니 어찌 그 가슴이 떡 벌어지지 않을 수 있으며 어깨가 펴지고 그 당당함이 흘러넘치지 않겠는가?


“장우각, 밑에 도적을 부리면 도적놈들의 욕구를 충족시켜줘야 하는 게야. 저 홀로 벼슬 받고 양반 노름해봤자, 네놈만 좋지. 다른 놈들의 인생은 도리어 무거운 책무만 늘 뿐, 달라지는 게 없어요.”


그렇게 두 팔과 어깨를 활짝 열어 근육과 지방이 골고루 갖춰진 떡대를 과시한 채, 거만한 표정으로 태행산맥의 북쪽을 바라본 장연은 그 턱주가리마저 떡하니 내민 상태로 질겅질겅 장우각을 씹어대기 바빴다.


“대두령! 두령!”


“또 뭐야! 내가 지금 바쁜 거 안 보여?”


“저, 그게 아니고 조금 전에 백 두령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산양성에 도착했고 곧바로 이를 포위하였으니 명을 내려달라고......”


“오, 그래? 흐하하하!”


그렇게 예상치 못한 기분좋은 보고까지 더해주니 가히 장연의 상황은 순조로운 듯 보였다.


“어차피 우리 또한 지금 남진 중이고, 사견성은? 그 성벽 뒤에 숨은 놈들의 모습은 어떻더냐?”


“예상보다 많은 수의 병력에 매우 놀란 듯 보였습니다. 사방팔방 뛰어다니는 것이 매우 부산스럽고, 어수선하여.......”


“하긴, 암만 하내에서 내놓라 하는 성이라 한들, 일개 성 하나가 사만이 넘는 대군을 도맡는 그림이 이상하긴 하지.”


“허면 저희도 이제 슬슬 약탈을......”


“아니! 아직 그놈이 오지 않았다.”


“예? 그놈이라 하시면 누구를?”


“거, 왜. 기병대를 이끄는 놈들이 있다 하지 않았더냐? 좋든 싫든 우리에겐 쥐약이다. 실상 우리가 그 병력의 수가 몇 배나 차이나는 정원을 두고서도 그를 도모하지 않은 것이 다, 그 빌어먹을 기병 때문이란 말이다!”


“하오시면......”


“조금 더 속력을 높여라! 우리가 사견성까지 포위를 한 뒤라면 그놈들도 필경 이곳에 도달하겠지. 그때 그놈들을 섬멸하면 끝이다. 그 뒷면 무제한 약탈이다.”


“무, 무제한!”


“아, 그러니까 어서 속력을 높여라! 진공이다! 진공! 흐하하하하!”


그렇게 제 흥을 참지 못한 장연의 웃음에 환희에 젖은 이들이 당장에 사기를 독려하는 북채를 쥐었다.


두웅- 두웅- 둥- 두둥-


무제한 약탈이라는 탐욕으로 얼룩진 낭만과 환희 혹에 그 눈이 돌아간 이들은 멋대로 박자에 심취한 채, 마치 운율을 타듯 제 즐거운 감정을 녹여낸 요상한 북소리를 울리고 있었다.


척척척척-


그리고 그 요상한 북소리 속에 물경 6만에 달하는 장연의 본군이 움직였다.


그것도 기존의 도적들과는 달리 부족하나마 도검이 아닌 창극을 꼬나쥔 병사들과 가죽으로 만든 방어구를 비롯해 그 위로 철편을 덧댄 원시적인 형태의 갑주를 걸친 도적들이 꽤나 질서정연한 모습으로 점점 속력을 높이고 있었다.


덜그럭- 덜그럭-


허나 이미 도적의 한계를 벗어던진 이들의 요상한 모습은 또 있었다.


얼기설기 엮은 밧줄의 매듭과 기다란 나무들의 향연이 줄지어 이어지고 있으니 이는 가볍고 튼튼한 나무와 밧줄을 엮어 만든 일종의 공성용 나무 사다리였다.


“인정한다, 우리는 전쟁을 몰라. 허나 그럼에도 천하가 어찌 움직이는지 보았고 그 속에서 너희가 어찌 전쟁을 벌이는지 알았다.”


기왕 이리된 거, 장연은 도적의 선에서 멈출 생각이 없었다.


장우각이 조당의 벼슬을 받는 모습을 보면서 도적도 출세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았고, 일찍이 천하를 뒤흔든 이들 또한 작금의 자신보다 훨씬 적은 병력을 이끌고도 천하를 뒤흔들었다는 사실을 인지한 뒤론 더한 자부심이 생겼다.


펄럭-


그렇게 점점 도적이라는 신분과 탈을 벗어 던지며 새로이 난세에 걸맞은 모습으로 탈피를 하기 시작한 장연의 군대는 어느덧 군벌의 이들과도 같이 자신을 상징하는 자랑스러운 깃발마저 가져가고 있었다.


자신을 상징하는 제비가 그려진 수기.


그럼에도 장우각의 존재는 어떻게든 세간에 알려져야 했기에 그 위로 자신이 바꾼 성씨인 장을 새긴 그 거대한 깃발이 드디어 사견성의 앞에 펄럭이고 있었다.


“일찍이 포홍, 그놈이 내게 물었지. 장우각, 제낄 마음이 있느냐고? 한데 이리 그놈의 다스리는 영역 앞에 그놈이 놀았던 세상을 보니, 나도 제법 욕심이 이는구나.”


그렇게 자신의 눈앞에 자리한 튼실한 성벽과 더불어 크진 않으나 그럼에도 웅대한 자태를 과시하는 사견성을 마주한 그는 이내 자신의 솔직한 심경을 바로 그 사견성 앞에 담았다.


“오냐, 제낄 거다. 그리 장우각을 제끼기 위해 이곳에 왔고, 그놈을 제낀 다음 나 또한 네놈처럼 천하로 나아가리라.”


거대한 성문과 그 위에 자리한 문루, 그리고 부산스럽고 어수선하게 움직였다는 보고치고는 제법 결연한 자세로 성벽 위에 자리한 병사들을 살핀 장연은 이내 제 주먹을 움켜쥔 채, 이를 내지르듯 천천히 사견성을 향해 내뻗었다.


“6만이다. 실패해도 좋으니 우선은, 제비처럼 가볍게.”


펄럭-


그렇게 장연의 손짓과 더불어 공세를 알리는 신호의 깃발이 흔들렸다.


와아아아아-


“놈들이 온다! 쏴라!”


그와 동시에 지축을 뒤흔드는 굉음을 내지른 흑산적들이 엄청난 속도로 성을 점거하기 위해 달려들었고, 그 개미 떼와도 같은 이들의 예상치 못한 재빠른 접근에 사견성에 이들 또한 다급히 화살을 날리며 반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 * *


“뭐라? 사견성과 산양성이 공격을? 그것도 그 병력만 거의 십만에 달한다?”


그리고 본격적인 행동을 시작한 장연의 움직임에 절로 남양성 인근을 돌며 저들의 병력을 줄여나가고 있는 악광 또한 그 신경이 곤두선 모습을 보였다.


“어찌하시겠습니까?”


“.........”


“장군!”


그러나 막상 그런 서영보다 더 초초한 모습을 보이는 그의 부장은 가히 성이 떨어질 듯한 염려를 떨치지 못하고 있었다.


“태수께선 이곳의 일을 전적으로 자율에 맡기신다 하셨다.”


“하오나! 지금 산양성과 사견성의 상황이......”


“이곳 또한 가히 그만큼 심각한 상황이지. 아직도 이만이 넘는 이들이 이곳, 수무현에 자리한 남양성의 포위를 풀지 않고 있다.”


“후우, 그건 그렇긴 합니다만.”


“철기도 아닌 이들을 가지고 이 정도면 제법 훌륭한 전과를 거둔 게지. 거기다 우리도 휴식이 필요하다.”


묵직하고도 무거운 침묵과 흔들리지 않은 면모를 과시하는 서영은 여전한 무게감 속에 수하의 동요를 일축시켰다.


“하지만 저들이 흑산적의 대병을 막아낼 수 있겠습니까?”


끼이익-


“내가 믿는 건 저 태수만이 아니지.”


“예?”


“사견성엔 학맹 그놈이 있고 산양성엔 그보다 더 재미있는 놈이 있다.”


그렇게 자리를 떨치고 일어난 서영은 다시금 고개를 돌려 서쪽을 보았다.


“저놈들을 이끄는 우두머리가 장연이라고 했었지, 아마 그놈도 지금쯤 꽤나 골머리를 썩일 것이다.”


그러나 대저 이것이 무슨 말인지 알지 못하는 부장으로서는 그저 제가 모시는 상관의 말이 쉬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장연이 골머리를 썩인다니? 새로이 십만에 병력을 밀어 넣은 그의 앞에 펼쳐질 일이 대저 무엇이기에 자신의 상관은 저리 나온단 말인가?


* * *


철컥- 파악-


“커흡!”


철그럭- 피잉-


“아악!”


활보다 짧으면서도 강력한 원시적 기계장치의 굉음이 연달아 성벽 인근에서 터져 나오고 있었다.


그러나 막상 그보다 더 극심한 비명이 터져 나오고 있는 것은 이미 갑주를 걸친 것도 모자라, 성벽 위로 사다리마저 걸쳐두고 있는 흑산적의 이들이었다.


피슝-


“커헉!”


그 짧은 소리와 더불어 사다리를 타고 성벽을 오르려던 병사의 가슴이 꿰뚫렸다.


철편마저 덧댄 갑주가 아무런 영향조차 발휘하지 못하니, 그리 가슴팍에 화살이 꽂힌 이가 성벽 아래로 추락했다.


“끄하아아악!”


피익- 철컥- 피잉-


그 한 번의 당김으로 말미암아 사람의 목숨을 거둬가는 것은 물론, 투구와 갑주를 걸친 이들조차 전투 불능으로 만들어버리는 병기의 등장에 장연은 두 눈이 흔들리고 있었다.


“쏴라.”


피잉- 철컥- 철컥- 피슛-


이미 성벽 위에 자세를 잡고 그 아래를 향해 시위를 겨냥한 채, 연달아 화살을 쏘아대는 이들의 모습은 마치 기계와도 같았다.


“저게 뭐야! 저게 대체 뭐냔 말이다!”


그리고 당연히 야심차게 준비한, 소위 새 시대를 향해 나아가기 위해 직접 도적의 한계를 벗어던진 이들을 내세웠던 장연은 자신의 수하들이 성벽에 도달하지도 못한 채 줄줄이 떨어져 내리는 모습 속에 가히 씻어내지 못할 충격을 받았다.


“성벽 아래, 놈들이 뭉쳐있습니다.”


“겹쳐서 겨눠라, 좌측의 치에서 나온 이들도, 우측의 치에서 나온 이들도 가운데를 겨눈다.”


피잉- 핑- 피피빙-


그렇게 이제는 일방적인 사격을 하는 것을 넘어 교차사격을 실시하는 이들의 앞에 우수수 쓰러지는 군사들의 수가 수백에 달했다.


엄청난 관통력과 주체 못할 힘을 과시하며 오직 짧은 거리를 직선으로 날아가는 이들의 화살은 심하게는 갑주를 걸치지 않은 두 사람마저 동시에 꿰뚫어내고 있었다.


“저게 무엇이더냐? 저 빌어먹을 병기가 무엇이야!”


상황이 이리되니 장연 또한 더는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커흡, 노! 노이옵니다! 활보다 강력한.......”


“그렇구나! 저게 노구나! 저 빌어먹을 것이 노였어!”


당장에 옆에 자리한 수하의 멱을 붙잡아 그 정체를 물으니, 그제야 처음 마주하는 병기의 이름을 확인한 그는 이내 조금 전의 기세를 잊은 채, 퇴각의 명령을 내렸다.


두웅- 둥- 두웅- 둥-


“물러나라! 사정거리 밖까지 물러나!”


그리 전장에 북소리가 울려 퍼지자 그제야 살았다 싶은 흑산적들이 우르르 물러가기 시작했고, 이러한 이들의 모습을 성벽에서 내려다보던 학맹은 이내 무심한 표정을 지으며 성문 위에 자리한 문루로 걸음을 옮겼다.


“충!”


그리고 그곳에는 아주 익숙한 한 사내의 인영이 자리하고 있었다.


“제법 보기 좋으십니다?”


“닥쳐라, 이놈! 저수 놈의 세 치 혀만 아니었어도 내 이곳에 남지 않았어.”


그리고 그런 그를 향해 빈정댐을 건넨 학맹은 실로 강노수들과 함께 자리하던 그와의 지난날을 회상했다.


“왕 공.”


“그냥, 왕광이라 불러라.”


그리고 그러한 학맹의 호칭이 낯부끄러웠는지, 이를 들으며 몸서리를 치는 왕광은 스스럼없이 자신의 이름을 부를 것을 허락했다.


“왕광 어른.”


“왜 그러느냐?”


“강노는 언제쯤 투입하는 게 좋겠소?”


“웃기는 소리, 아직 멀었다. 아닌 말로 도적놈들이 사다리에 갑주까지 걸치다 못해 창극을 디밀고 나타났을 땐, 나 또한 놀람을 금치 못하였으나 그 또한 고작해야 작은 쇠뇌 하나 막지 못해 우왕좌왕하는 것들이다.”


“허나 그 군세가 6만입니다.”


“그러니까 더더욱 아껴야지. 활만 가지고는 그 정도 파괴력이 나오지 않는다.”


“이젠 아예 참군사가 다 되셨군.”


“쯧, 그러게 말이다.”


운명도 이런 기구한 운명이 없었다.


하진에게서 비롯되어 포홍에게 붙잡혀 그 운명에 끝에 달했나 싶었는데 예상치 못한 일들은 줄줄이 터지고 그 와중에 자신의 존재는 가히 잊혀진 사람처럼 사라지게 되었다.


그러나 새로이 하내를 도맡은 저수가 온전히 태수의 직책에 오르고 그때까지 이리저리 끌려다니며 포로 신세를 전전하던 왕광은 이내 병주와의 충돌 가능성을 운운하며 도움을 요청한 저수에 의해 조금씩 그 마음을 열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이 지금에 이르렀다.


이미 서로를 향한 상잔을 목표로 개차반으로 돌변한 연주와, 엄청난 수의 황건적으로 말미암아 난장판이 된 청주, 거기에 매양 큼직한 위기와 갈등이 찾아와 난국을 쉬이 수습할 수 없는 사례의 상황까지.


하진도 죽고 딱히 황보숭과 친분도 없으며 어째 발붙일 곳이 하나 없던 왕광의 선택지는 그나마 나라를 위해 도움이 되는 일을 하는 것이었고 그것이 저수와 맞물려 당장에 이 하내를 구원하는 선택지가 되었으니 어찌 기구하다 하지 않으랴?


“허지만, 우리야 그렇다고 치더라도 산양성은......”


“왜 걱정이라도 되느냐?”


“허면 아닙니까?”


“걱정 말거라. 그곳에 자리한 이가 누구인지 있었더냐?”


“칫, 동향 사람인 나도 믿지 못하는데 같은 선비라 믿음만 과하신 게로군.”


“아, 저수는 마음에 들지 않지만 한호, 그자는 실로 마음에 드는 이이다. 그는 실로 충신이며 난국을 헤쳐나갈 재치가 있다. 또한 일찍이 도적들의 습격에 자발적으로 자경단을 조직하고 이를 막아낸 사대부야.”


“그래서? 그걸 그냥? 믿으라는 말입니까?”


“믿어라, 실로 그만한 이가 없다.”


그렇게 같은 유자고, 사대부라고 멋대로 믿음과 소망을 품은 일변도의 자세를 보여주는 왕광을 향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 학맹은 쓴웃음을 지었다.


“흑산적 4만이 뉘 집 개 이름도 아니고, 일개 문사가 이걸 막는다고?”


사람이 뭐라도 보여야 믿음이 생기는 법이지, 보이지 않은 것을 믿으며 그리 허상만을, 이상만을 좇다 고꾸라진 청류의 이들을 기억하는 그였다.


* * *


피잉- 철컥-


“머리, 머리를 노려라.”


한 차례 퇴각이 이루어진 사견성과 달리 산양성의 상황은 예상 외로 접전을 벌이는 와중이었다.


딱히 신중함이 있다기 보다는 그저 서전이나 다름없는 전투가 승패의 감을 쉬이 잡지 못하는 공성전이었기에 양측 모두가 흥분한 양상을 띠고 있었다.


피잉-


“두, 두령!”


“더! 더 찾아라! 분명 근처에서 칼을 휘두르며 지휘를 자처하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빛나는 지휘를 벌이는 이가 있었으니, 성벽 위에 자리한 그의 손끝이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노에서 발사된 화살들이 일선에 자리한 지휘관들을 모조리 꿰뚫고 있었다.


“에이, 씨! 이걸 뭐 어떻게 해야 되는 거야!”


“도망치자! 도망쳐!”


“뒤를 봐라! 끝도 없이 몰려드는데 여기서 어떻게 나가서 도망치라고? 젠장, 비켜라! 비켜!”


상황이 이리되니 순식간에 머리를 잃은 흑산적들이 우르르 흩어졌다


지휘체계가 무너지는 것도 모자라 저보다 뛰어난 이들이 줄줄이 노에서 날아온 화살들에 그 머리가 따이기 시작하자, 내면에서 피어오르는 심적 공포에 잠식된 이들이 졸지에 주변을 어지럽히며 멋대로 도주와 혼선을 부르기 시작한 것이다.


“밀지 마라! 밀지 마!”


“비키라고, 이 잡것들아!”


그렇게 성벽에 가까이에 자리한 이들은 뒤로 빠져나가려고 하고, 뒤에서 이제 막 성벽을 향해 발을 디딘 이들은 더더욱 성벽의 가까이로 붙으려 하니, 그리 방향이 다른 아군들끼리의 충돌이 더한 갈등을 불러일으켰다.


성벽 위로 사다리조차 올라서지 못했고, 애초에 제대로 된 궁병도 없어 화살조차 날리지 못하는 이들 앞에 느긋한 지휘를 펼칠 수 있게 된 이는 더더욱 주변을 다독였다.


“식량은 충분하고, 화살 또한 부족함이 없다. 술독은 여유롭고 아쉬운 것은 고기일 뿐. 오늘의 전투가 끝나면 그대들의 전공을 기록할 것이며, 그 공훈에 상관없이 오늘의 노고를 치하하는 자리에 약간의 술과 고기를 내릴 것이다.”


우오오오-


“허니 조금만 더 버텨라! 어차피 저들은 우리의 성벽을 넘어올 수가 없다.”


그렇게 도적들을 상대한 경험을 살리는 것은 물론, 내부에 자리한 군사들을 독려하며 사기를 고취시키다 못해 군량을 비롯한 남은 물자까지 관리하는 완벽한 관리자의 모습을 보인 이는 다름이 아닌 한호였다.


자신의 고향이 짓밟히는 꼴을 두고 볼 수 없어 자원한 그는 이내 저수의 신임 속에 또 그와 함께 있던 왕광의 검증을 통해 산양성을 떠맡게 되었고, 작금에 이르러 놀라운 성과를 보이며 그날의 수성전을 승리로 장식하고 있었다.


작가의말

이번 화에서는 한 차례 그 모습을 드러냈다 어느 순간부터 사라져 아쉬움을 드러냈던 이들과 새로운 인물이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학맹과 왕광이 합을 이루었고, 새로이 고향을 지키기 위해 한호가 손수 자신의 능력을 보였습니다.

그리고 이번 화를 기점으로 원활한 진행을 위하여 전장의 흐름이 서쪽으로 이동됩니다.

하내 동부전선의 일은 일단 여기를 기준점으로 마무리를 지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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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6

  • 작성자
    Lv.39 알카시르
    작성일
    20.09.09 10:21
    No. 1

    비연에서 장연으로 이름을 바꿨다는 말이 나왔는데 비연은 별명이고 본명은 저연 아니었나요?

    흑산적은 황건적의 잔당이라 했으니 태평도를 신앙한단 말인데 어째 일반적인 도적과 아무런 차이가 없는 행태를 보이네요. 장연이나 장우각도 딱히 신앙심이 깊은 것 같진 않군요. 천공장군이 이를 보면 통곡을 하겠습니다. ㅠㅠ

    "쇠뇌라 불리는 활보다 강력한..." 이란 말이 나왔는데 한국인이라면 몰라도 중국인이 노와 쇠뇌라는 단어를 같이 쓰는 게 좀 어색합니다. "쇠뇌라 불리는"을 지우면 어떨까요?

    가장 큰 희생량들은->가장 큰 희생양들은, 평난중난장->평난중랑장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35 필성필성필
    작성일
    20.09.09 12:39
    No. 2

    아 맞습니다. 비연은 저연의 제비연 글자에 플러스 알파를 시킨 별명으로 제가 설정집에 적어놓은 별명인데 이게 분량에 쫒겨 급하게 쓰니 설명도 덧붙이지 않고 막 튀어나오네요. 이건 실수.

    그리고 흑산적이 황건적의 잔당인 부분도 맞는데 이들은 일찍이 가후가 묘사했던 풍방을 죽이기 위해 써먹으려는 황건적의 후예?는 아닙니다.

    스토리가 이어지며 나오겠지만 그나마 황건적의 실질적인 후예할 수 있는 친구들은 더 서쪽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애초에 도적놈들이 뭐 우두머리 사라지면 이리저리 흡수도 되고 다른 곳에 합류하기도 해서 딱히 신앙심은 아니고, 또 후대에 황건적을 자처한 이들 또한 그냥 뭉뚱그려 황건적이라 유명한 네임벨류를 칭한 것 같기도 하더군요.

    기록을 보면 조당에서조차 그냥 그들을 다 황건적이라고 하던데 이게 뭐, 어떻게 보면 남의 이름을 빌어먹고 사는 위세? 와 유명한 이름을 통한 과시, 소속감 그리고 정통성과 위압감을 얻어내려는 행위가 아닐까 합니다.

    마치 영국의 로빈 훗 처럼요. 거기도 별별 이들이 로빈 훗의 이름을 자처하기도 하고 로버 후드, 호버 후드, 등 비슷한 이름을 운운하며 여러 이들이 활약을 해서 실존 인물에 대해 말들이 많지만 아무래도 이런저런 목적을 위해 유명세를 빌리는 걸 보면 이는 인간 본성과도 같은 부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쇠뇌는 저도 고심했던 부분인데 이미 노라는 표현과 별개로 우리나라가 쇠뇌라는 표현이 있었다고 하지요.

    하지만 제가 중국인도 아니고 다 한자로 글을 적을 수도 없어서 다른 표현이 뭐가 있을까 고심했지요.

    하지만 노 자체는 뭐 이들이 쓰는 한자이니 이상할 것이 없고, 문가 문맥상 노만 나와서 어색해서 석궁을 쓸려더가 석궁은 더 어색해서 쇠뇌가 나온 건데 그리 이상한가요? 흠? 이거는 안되면 나중에 지워야겠습니다.

    아, 그리고 오탈자 감사합니다. 요것도 고치도록 하겠습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분량이 없습니다. 시간에 쫓기며 부랴부랴 만들어 올리다보니 자잘한 실수가 생기는 것 같네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51 ted3000
    작성일
    20.11.03 00:17
    No. 3

    주인공이 짜증날정도로 안보입니다. 이건좀문제가있는겁니다..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35 필성필성필
    작성일
    20.11.03 04:04
    No. 4

    확실히 이 부분에 대한 지적이 많았지요. 이는 저도 참 뼈져리게 느끼는 부분입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33 엘콥디노
    작성일
    21.12.22 09:37
    No. 5

    주인공이 안보이더라도 이야기 흐름상 하내가 중요하기 때문에 그럴수 있지 않나요? 주인공이 꼭 나와야할 부분도 아니고.... 늦게 달리기 시작했지만 전 충분히 재밌고 흥미롭게 보고있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35 필성필성필
    작성일
    21.12.22 21:52
    No. 6

    좋게 봐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ㅠ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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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6 125화 – 위에서 가장 강한 군대, 밑에서 가장 강한 도적(3) +11 20.09.17 1,222 27 21쪽
125 124화 – 위에서 가장 강한 군대, 밑에서 가장 강한 도적(2) +6 20.09.16 1,215 29 18쪽
124 123화 – 위에서 가장 강한 군대, 밑에서 가장 강한 도적(1) +10 20.09.15 1,288 21 18쪽
123 122화 – 서쪽 끝의 이야기 +10 20.09.14 1,283 24 18쪽
122 121화 – 그 공을 굴리는 자가 바라보는 곳 +4 20.09.11 1,279 29 16쪽
121 120화 – 장연이 쏘아 올린 흑산적이란 이름의 공 +6 20.09.10 1,256 26 18쪽
» 119화 – 블랙 마운틴 밴딧 인베이전(3) +6 20.09.09 1,251 30 20쪽
119 118화 – 블랙 마운틴 밴딧 인베이전(2) +8 20.09.08 1,305 26 22쪽
118 117화 – 블랙 마운틴 밴딧 인베이전(1) +11 20.09.07 1,335 25 20쪽
117 116화 – 판이 커지면 새로운 참가자가 등장하기 마련이다(2) +4 20.09.06 1,369 27 21쪽
116 115화 – 판이 커지면 새로운 참가자가 등장하기 마련이다(1) +8 20.09.05 1,348 29 20쪽
115 114화 – 돈이 깔린 판에, 사람 사이가 좋을 수가 없다(2) +11 20.09.04 1,362 28 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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