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7화 – 블랙 마운틴 밴딧 인베이전(1)
“고기 굽는 냄새만 못해도 밥 짓는 향기 또한 제법 운치가 있소. 그렇지 않은가?”
“그러하옵니다.”
저수의 얼굴은 잔뜩 일그러져 있었다.
뜬금없이 나타나 곡식을 맡아달라는 관헌의 부탁이라며 병사들이 보고를 했을 때부터 이미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깨달아야 했거늘.
그리 마주한 이가 다름이 아닌 낭중령 가후란 사실을 알았을 때 놀라고, 그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와중에 하내의 대로변을 따라 엄청난 수의 군량이 들어오고 있음을 깨달은 저수는 이만 그 미간을 짚고야 말았다.
- 와하하하하!
- 자, 자! 잔들 올리자고! 잔 들어!
그리고 지금에 이르러서는 아예 군병들을 불러다가 예상치 못한 잔치마저 벌이고 있었다.
멋대로 찾아와 인근에서 훈련을 한다는 핑계로 잠시 군량을 맡아달라 떠넘기는 것이 미안하다는 아주 빤한 핑계였다.
그리 군량 일부를 나누어주고 그도 모자라 오는 길에 구했다며 술 단지조차 건네 멋대로 잔치를 시작하니, 이것이 의미하는 바를 깨달은 저수는 도리어 그 위로 불을 질러버렸다.
창고를 열고 고기를 꺼내 병사들에게 이를 든든히 먹이기 시작했다.
덕분에 술과 밥 그리고 고기의 향기가 하내 인근을 적시며 풍문을 타고 더 멀리 날아갔지만 그럼에도 저수는 도리어 굳건히 그 일그러진 얼굴 그대로를 유지했다.
그리고 한동안 그런 저수를 지켜보던 가후는 병목을 기울여 그의 앞에 자리한 빈 잔에 술을 가득 채워주었다.
쪼르르륵-
“참 담대한 분이시오. 하내 태수께선.”
“어디 낭중령 어른만 하겠습니까?”
“그렇다고 냅다 이를 받아서, 불을 붙인 곳에 기름마저 부을 줄은 몰랐지.”
실로 놀랍다는 표정이었다.
보통은 이리 나오면 눈치를 못 채거나 안절부절할 것인데 도리어 담대하게 이를 상대한 게 아니라 아예 그 판을 더 키워버렸으니 도리어 이것이 그의 관심과 인정을 받았던 것일까?
터업-
그렇게 눈앞에 자리한 잔을 들어 이를 단숨에 벌컥이며 들이마신 저수는 올라오는 술의 독한 잔향을 뱉어내며 가후의 앞에 각오를 보였다.
“크흐, 저희가 이 나라의 작은 근심 중 하나를 떠맡겠습니다. 대신 이걸로 지금까지의 해묵은 앙금은 모두 내려놓으셨으면 합니다.”
“호오, 자신이 과하신 게요? 아니면 이미 벌어진 일이라 어쩔 수 없음이라 여기는 게요?”
“둘 다입니다.”
“꽤나 솔직한 성격이시군.”
그리고 이것이 가후에게 묘한 향취와 호감을 선사했다.
“역시 표기장군 휘하엔 인물이 많소.”
탁-
물론, 그렇다고 그 찰나의 감상으로 대업을 망칠 실수 따위 용납지 않는 가후였지만 말이다.
“허면 이 사람은 이만 일어나겠소.”
“자리가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한데 가시렵니까?”
“미안하외다, 지난 장마로 말미암아 제대로 된 훈련을 못 했소. 그렇다고 매양 하던 곳에서의 훈련도 그렇고 나들이 겸 가까운 하내로 자리를 잡았던 게지.”
그렇게 애써 억지로 붙잡을 수조차 없는 완벽한 변명을 내보인 가후는 그 자리에서 엄청난 양의 군량을 내팽개친 채, 아무런 미련도 없이 하내를 벗어났다.
그리고 한동안 그러한 그의 뒷모습을 멍하니 지켜본 저수는 이내 시선을 돌려 하나의 앞에 자리한 장대하고도 끌도 없을 어둠을 감추고 있는 흑산을 보았다.
* * *
그리고 다음날 새벽.
사사사삭-
사사삭-
수풀을 가르며 내달리는 이들의 소리가 온 흑산을 그득 메우고 있었다.
거대한 산자락을 따라 이어진 산천초목이 바람도 불지 않는 새벽녘에 고요함을 일깨우며 사방으로 흔들리고 있었다.
바스락-
그렇게 민가로 이어지는 산줄기의 끝자락에 자리한 낙엽을 밟은 장연은, 이내 아직도 꺼지지 않은 횃불과 더불어 사방에서 피어나는 연기 속 달큰하고도 식욕을 돋우는 고기와 술 그리고 곡식의 짙은 향취를 맡으며 다른 두령들이 가져온 보고가 거짓이 아님을 깨달았다.
“이러니 다들 미칠 수밖에.”
실상 포홍이 태행산맥에 불을 지른 이후 장우각에게 좋지 않은 소리를 들으며 차별을 당할 수밖에 없었던 장연이었다.
영역을 잃은 제 수하들이 미쳐 날뛰는 것은 물론, 다른 이들의 산채를 습격하면서 본의 아닌 내전이 벌어졌고 이는 곧 자신의 세력의 약화와 더불어 통제력의 상실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던 와중에 주린 배를 참지 못해 장우각의 영역에 들어서거나 그의 산하에 자리한 다른 두령들을 습격하는 이들이 늘어나면서 장우각은 이를 용납할 수 없다며 자신의 영역에 들어선 모든 이들을 죽여버렸고, 그도 모자라 병주의 정원이 나눠준 고을들과 전마를 농마마냥 부릴 수 있는 혜택에서조차 장연의 이들을 모조리 제외시켰다.
거기다 각지에서 벌어진 전쟁으로 말미암아 약탈을 할 곳이 줄어들어 그 삶이 더더욱 피폐해져만 갔으니, 그나마 조당에서 얻어낸 평난중랑장이란 호칭 또한 장우각의 것이 되었고 자신의 수하들은 제대로 된 약탈도 하지 못한 채 주린 배를 부여잡고 지금에까지 이를 수밖에 없었다.
결국, 자신의 생존과 더불어 복수를 위한 선택은 해야 했고 그 결과가 작금의 자신이 산을 타고 내려온 이곳, 하내였다.
“우독.”
“예, 대두령.”
“확실히 2만에 달하는 사례의 병사들은 뒤로 빠진 것이 사실이겠지?”
“아이, 거. 내가 어디 한두 번 조사하나? 애들 족쳐서 물어보니 애초에 하내에 들어오지조차 않았다지 않소? 황하 인근에서 훈련을 하는 모양인데 필요할 때 맡겨둔 걸 받아 가는 모양입디다.”
“최대한 빨리 털어야 한다.”
“아이, 그럼. 우리 애들이 어디 하루 이틀 도적질하던 애들이요?”
그렇게 다시금 제 산하의 두령들 중 하나를 불러 상황을 확인한 장양은 이내 자신이 지닌 전력을 돌입시키기로 결정했다.
“필경 우리가 수익을 얻으면 장우각 밑의 놈들도 줄줄이 침을 흘릴 게야.”
“이를 말이요, 허면 그놈들도 더는 가만히 있지 않겠지.”
“허나 놈들은 움직일 수가 없다.”
“아, 그 빌어먹을 벼슬자리 하나 받아먹은 것 때문에 그렇군.”
수하인 우독의 말처럼, 어차피 서쪽에 자리한 이들이 먼저 소식을 들었어도 먼저 이에 욕심을 낼 수 없는 상황이었다.
장우각의 지배를 받는 그들은 장우각이 사례에 자리한 조당으로부터 평난중랑장이란 호칭을 받은 것을 알고 있었고, 그 때문에 그들의 영역인 사례는 건들지 말아야 함을 암묵적인 규칙으로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럴 필요가 없는 장연은 간간이 자신과 영역을 맞대고 있는 하내를 끊이질 않고 습격했다.
어차피 살아야 했고 그나마 자신이 두령으로서 존재하기 위해서라도 밑에 자리한 수하들에게 약탈을 허하고 자신의 존재를 각인시켜야 했다.
뭐, 실상 그때마다 빌어먹을 여포에 의해 격퇴를 당하긴 했지만 이 또한 나중에 제게 반기를 드는 두령 몇 놈을 대신 처리하는 용도로 이용한 전력이 있으니 나름의 쏠쏠한 재미를 본 셈이다.
“그럼에도 장우각, 그놈은 단 한 번의 도움도 내게 주지 않았다. 내가 그 성을 장씨로 바꿔가면서까지 바닥을 기고 온갖 아첨을 떨어도 그놈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어.”
실상 이 모든 것이 원수나 다름없는 포홍이 오해를 불러일으킨 사건이었지만 그리 시작된 이후 꾸준히 자신을 밀어내며 외면하는 장우각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장우각의 외면이, 그 다음으로 가장 큰 세력을 지닌 자신에 대한 길들이기이자 견제임을 깨달은 장연 또한 이번 일을 빌미 삼아 지금까지 그에게 당한 것을 모조리 갚아줄 수 있는 거창한 복수의 계획을 세웠다.
“놈들이 맛보지 못한 부유함을 우리가 맛보고 즐기며 과시한다. 그리고 풍문의 진원지이자 군량이 흘러넘친다는 하내의 서쪽을 향해 바람을 잡는 게지.”
“흐하하하! 이거 아주 악당이 다 되셨소.”
“그래, 그리고 장우각 밑에 놈들의 이에 반응하면 그때 우린 모조리 뒤로 빠진다. 일찍이 정원 놈과 전쟁 준비를 벌이던 하내 놈들과 전면전을 벌일 생각은 없어. 대신 이 원대한 계획의 시발점이 될 약탈을 네게 허락해주마.”
“으하하하! 이리 고마울 데가. 그러면 장우각을 따르는 놈들은 하내 놈들에게 작살이 날 것이고 허면 우리가 더 유리해진다는 소리가 아니요? 거기다 우리 애들은 그전에 신나게 약탈한 것들을 챙기고 빠지겠지.”
“그렇지. 그리 장우각의 힘이 빠지면 그 빈 서쪽 산맥을 우리가 대신 차지할 것이다. 그리 남부를 쥐면 장우각 놈은 더는 사례에 손을 뻗힐 수 없으니 기존의 부를 만지지 못해.”
실상 산적들에게 있어 가장 좋은 것은 돈과 물품이 흐르는 교역로였다.
그리고 그 교역이 가장 활성화 된 곳은 바로 누가 뭐라고 한들 사람과 물산이 그득그득 자리한 이 나라의 도성이 자리한 곳이자 중심부인 사례였고 말이다.
허나 알량한 생존권의 보장과 더불어 얻어낸 벼슬이 있다고 한들 이것이 과연 도움이 되기는 할까?
작금의 병주의 정원이 고을을 바치고 전마를 내어주어 그 여유가 생긴 장우각은 자신의 지배를 받으면서도 자신들과는 상황이 다른 서쪽에 자리한 흑산적들의 상황을 전혀 배려하지 못하고 있었다.
“고집쟁이 황소 같은 놈, 네놈 덕에 서쪽의 이들은 우리만큼 가난에 찌들었다. 통제도 되지 않을 그놈들이 튀어나가 저 하내 놈들에게 다 뒤지고, 우리가 빈 서쪽 산맥을 장악해 사례 인근을 쥐면 결국 가난해지는 것은 네놈들이다. 우리는 정원에게 빚진 게 없어, 아쉬울 것도 없다. 허나 가난에 찌든 병주를 다스리는 정원 놈이 앞으로 네놈에게 얼마나 더 많은 것을 줄 수 있을까?”
장양의 입꼬리는 실로 그 광대를 뚫을 듯 하늘을 향해 솟구쳐있었다.
결국 그리 사례를 잃어버린 장우각은 꿩 대신 닭이라고 그나마 하북에서 부유한 기주를 노릴 수밖에 없다.
허나 어디 기주는 또 쉬우랴?
상산을 비롯해 무가적 성향을 띠는 행정구역이 자리한 것은 물론, 황하를 끼고 있어 그 경제가 남쪽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거기다 병주, 유주와도 경계를 맞대고 있어 군사들은 강성했고 그 수는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그런 그곳을 산맥을 따라 아주 드넓게 마주하고 있는 장우각이며, 그리 드넓은 전선의 근방에 약탈이 벌어지면 과연 기주의 이들은 어찌 나올 것인가?
그리고 그리 부유함을 선사해주는 서쪽 산맥까지 쥐고 다시금 힘을 갖춰 위로 북상할 자신을 과연 장우각은 어찌 상대할 것인가?
“병신 같은 여포 놈이 사고를 쳤다기에 뭔가 했으나 그것이 도리어 기회가 되었음을 알았을 때, 하늘을 통해 너의 몰락을 엿본 나는 그 자리에서 옷을 벗고 미친놈처럼 춤을 췄느니라.”
가난 속에 주린 배를 움켜잡으며 굶주림을 느끼면서도 복수와 생존을 향한 발버둥을 잃지 않았다.
살기 위해 그 눈을 번뜩이며 세상을 돌아가는 것을 살핀 것이 그에게 천하를 향한 안목과 재기의 기회를 선사했다.
그러한 장연의 놀라운 모습들과 지금까지의 모든 고생을 함께 했던 그의 수하인 우독은 입가에 미소를 드리우며 자부심이 서린 목소리로 제 부하를 찾았다.
“야, 도승! 우리 대두령의 훌륭한 말씀을 잘 들었느냐?”
“예, 두령. 역시 훌륭한 식견이 아닐 수 없사옵니다.”
“그래, 그래. 내가 줄을 정말 잘 섰다니까.”
“허면 나는 이만 자리를 옮기마. 네가 움직이면 손경과 왕당 또한 그 뒤를 따를 것이다.”
“고맙소, 대두령. 대두령은 절대 나를 선봉에 세운 걸 후회하지 않을 거요.”
그렇게 한참의 시간이 흘러 장연으로부터 멀어진 우독은 이내 그 혀를 날름거리며 칼을 뽑았다.
“자! 가자, 흑산의 형제들아!”
그리고는 이를 하늘 높이 추켜세우며 우렁찬 목소리로 아직 여명 속에서도 어둠을 간직한 흑산적들을 단숨에 일깨웠다.
와아아아아-
그 순간, 흑산을 품은 산줄기 전체가 흔들리며 가히 그 숫자조차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흑산적들이 수풀을 해치며 하내의 동쪽으로 쏟아져나왔다.
이는 생존과 복수를 위해 지금까지 이를 갈아왔던 장연의 원대한 계획이자 포부가 실행되는 기념비적인 순간이었고, 하내를 향한 흑산적의 침략으로 말미암아 풍문으로만 자리하던 그들의 세가 실질적으로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만천하에 드러나게 되는 계기이기도 했다.
서기 190년 9월.
원 역사에서 소제를 밀어낸 동탁이 헌제를 내세운 채 새로운 초평이란 새로운 연호를 내세웠던 그해의 가을날.
역사를 기록하는 사관은 이를 아주 짧고도 간단하게 기록했다.
‘흑산적이 하내를 습격했다.’
쩌적, 쩌저적-
그러나 이내 무엇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고개를 저은 그는 이내 기존에 죽편을 떼어낸 채, 새로운 죽편을 덧대고 그 위에 이를 다시 적어 내렸다.
‘흑산적이 하내를 침략했다.’
* * *
“급보! 급보이옵니다!”
그리고 이러한 흑산적들의 침략은 곧바로 뜬눈으로 밤을 지샌 저수에게 보고가 되었다.
“어디야! 어디에서 습격이 처음 시작된 것이냐!
“조가현과 급현, 그리고 공현을 시작으로 엄청난 수의 흑산적이 흑산의 지류를 따라 쏟아져 내려오고 있사옵니다!”
“제기랄! 군량이 들어선 서쪽이 아니라 동쪽부터 노렸구나!”
태수부에 자리한 채, 급하게 지도를 펼쳐 든 저수는 이내 저들의 침략 경로를 살피며 그 중심에 자리한 남양성의 위로 손가락을 올렸다.
“수무현의 자리한 남양성에서 저들을 막는다.”
“하, 하오나 그리되면 획가현까지 네 개의 현이 모조리 저들의 습격을 받게 됩니다!”
“어쩔 수 없다. 저건 저들의 일차적인 습격에 불과해.”
“하오나 태수님, 이미 적병이 수만에 달합니다!”
“장우각 놈의 산하에만 이십 만이 있다는 말이 나온다. 그 빌어먹을 말이 사실이 아니길 바라지만 그에 비견되는 무리를 이끌며 반독자적인 세를 유지하는 장연 놈이 그에 비견될 병력이 없겠느냐?”
“허, 허면!”
“이제, 이제 제대로 된 시작이야! 빌어먹을 흑산적 놈들의 본격적인 침략이 시작된 것이다!”
그렇게 그 누구보다 현 시국의 중요성을 파악한 저수는 기존의 정원과의 전쟁 양상에 대비한 방어선을 정반대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정원은 병주 서쪽에 있고, 흑산적들은 병주 동쪽에 자리하고 있으니 기존의 방어선들을 유지한 채, 그 방향을 뒤바꿔주면 되는 것이다.
“일차로, 남양성이 자리한 수무현에서 저들의 발을 묶는다. 이차로 산양성과 사견성이 저들의 군세를 묶고 미리 세워둔 목책에 의존하며 각 고을들이 토착 호족들과 협력한 방어전에 돌입하면 그땐 무덕현에 자리한 유격대를 움직일 것이다.”
이미 정원과의 전쟁을 대비하며 읍성처럼 각 고을들의 주변에 모조리 목책을 두르도록 지시를 내린 저수였다.
그도 모자라 지주들을 비롯한 토착 세력들에게 조만간 병주와의 충돌을 경고하며 불충이자 불온한 움직임이라 생각지 않을 테니 따로 사병들을 늘려놓으라 반강제적인 행정명령을 내려놓기도 했다.
거기에 가장 중요한 방어거점이라 할 수 있는 산양성과 사견성에 만전의 대비를 갖춘 채 학맹마저 배치시켜 놓은 상황이었다.
그 외에 기동성이 뛰어난 유주 출신의 이들을 이끄는 서영 또한 무덕현에 자리한 채, 새로이 늘어난 군사들을 합쳐 무려 오천에 달하는 오직 기병으로만 구성된 유격대를 이끌고 있었다.
“이것으로 심수를 기준으로 하내의 동쪽에 자리한 모든 방어체계가 작동한다.”
부족한 자신의 지모에 의존하는 것이 아닌 보다 확고한 체제와 체계의 완성에 치중된 방어.
버릴 곳은 버리고 취할 곳은 취한 채, 최대한의 효율을 위해 자신이 없는 곳의 상황을 믿고 맡겨놓을 수 있도록, 자신이 없어도 알아서 돌아갈 수 있도록 하내의 동부를 구성한 저수는 이내 지도에서 멀어진 채, 휘장을 젖히고 자신이 자리한 태수부의 밖을 나섰다.
척척척척-
“각 부대는 출진의 준비를 마쳐라! 태행산으로 직접 나아갈 것이다!”
“저 태수님의 명이시다! 각 군현에 자리한 수비군을 제한 모든 군사들은 만전을 기하도록 하라!”
하내군의 치소가 자리한 회현을 비롯해 하내를 끼고 도성 가까이에 자리하여 수많은 인구와 물산을 비롯한 여러 고을들이 자리한 하내의 서쪽.
심수를 기준으로 좌측에 자리한 하내의 모든 것을 관장하기로 마음먹은 저수는 그리 사방을 뛰어다니며 오와 열을 마치고 부산스러운 움직임을 보이는 군사들의 움직임을 살폈다.
“충!”
“갑주를 가져와.”
“드디어 출진입니까?”
“아, 동쪽에서 시작된 파랑은 조만간 서쪽을 덮칠 것이다. 그렇다면 차라리 우리가 먼저 마중을 나가 있는 것이 좋겠지.”
그렇게 저수의 명을 받은 수하들이 이내 실전성이 돋보이는 투박한 찰갑을 가져와 그에게 입혀주었다.
그도 모자라 투구와 망토 그리고 그에 어울리는 지휘봉까지 넘겨받고 나니, 가히 투박하지만 날카로운 인상의 지휘관이 그가 불러 모은 모든 병사들의 앞에 자리하게 되었다.
“전군에 출진의 명을 내린다. 우리는 저 빌어먹을 흑산적들이 우리의 가족과 형제를 죽이고 우리의 것을 가져가는 꼴을 허락할 수가 없다.”
그렇게 아주 직설적이면서도 미사어구가 없는 짧은 표현으로 말미암아 모두의 시선을 받은 저수는 자신의 지휘봉을 서북쪽을 향해 움직였다.
두웅- 둥- 둥-
“전군 출진하라!”
세찬 북소리와 더불어 수많은 깃발들을 휘날린 채, 앞다투어 행군하기 시작하는 군사들의 선두에는 일찍이 서북쪽으로의 방향을 잡은 저수가 자리하고 있었다.
“우리에겐 천혜의 요새와 같은 심수가 있다. 그러나 그 심수의 물줄기도 우리의 모든 부분을 가려주지 않음이야.”
그의 손아귀에 들린 양피지는 심수조차도 흘러내리지 않는 험준한 서쪽의 산맥이 자리한 왕옥산의 인근의 지형을 담아내고 있었다.
“애초에 낭중령이 내게 군량을 선사했을 때, 나는 당연히 이곳으로부터 저들의 습격이 될 것이라 여겼지. 그러나 저들의 습격이 동쪽에서 시작된 이상, 어쩌면 이곳이 그 정점에 달하게 될지도 모른다.”
실제로 가후가 황하를 건너와 군량을 맡긴 것은 치소한 회현이 자리한 하내의 서쪽이었고 그것으로 말미암아 미안하다는 핑계로 그 먼 주변까지 군량의 일부를 나눠주며 잔치를 벌여, 그 풍문이 넘실거린 것도 실상 서쪽에 자리한 흑산적들에게 먼저 풍문이 들어갔을 확률이 높았다.
무엇보다 사례를 가까이 두고 왕성한 약탈을 비롯한 활동을 벌인 이들이었기에 하동과 하내를 비롯한 이들은 그들의 위협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런 그들이 찰나의 습격이 아닌 아예 마음을 먹고 하내를 들이친다면?
심수조차 자리하지 않은 서쪽 산맥을 따라 그 끝도 보이지 않을 흑산적들이 넘실대는 파랑마냥 하내를 향해 밀려든다면 그땐 정녕 어쩔 것인가?
“동쪽에 자리한 이들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지난날 하진의 토벌군을 섬멸한 이들을 모조리 이쪽으로 배속시켰다. 그렇게 작금에 나를 따르는 병력이 무려 사만이다.”
어느덧 선두에 자리하며 말을 몰던 저수는 고개를 돌려 자신의 뒤를 따르는 끝도 보이지 않을 수많은 병사들의 항연을 바라보았다.
이들이야말로 실상 작금이 자신이, 하내가 내보일 수 있는 최선이자, 전력이었다.
동쪽을 방어하고, 수비에 동원될 군사들을 제한 모든 병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들을 북상시켜 전선을 축소 시키겠다. 지관과 기관을 중심으로 방어거점을 잡고, 그 좌우로 병력을 집어넣어 너희를 섬멸시켜주마.”
아마 포홍이 이를 보았다면, 전술이 전략을 잡아먹은 기이한 모습이라고 말하지 않을까?
작은 전투가 벌어지는 일개 전쟁터에서나 쓰일 법한 망치와 모루의 전술이 어느덧 드넓은 하내를 두고 적을 섬멸하는 대국적 전략으로 뒤바뀌어 있었다.
- 작가의말
늦어서 죄송합니다.
그래도 겨우 오늘치 분량이 오늘 올라가는 주중 연재의 약속은 지킬 수 있게 되었네요.
일단 지난번 언급했던 늦어진 약속이 여행이고 휴가인데, 이게 본래 계획과 틀어져 당일치기가 아니라 조금 시간을 할애하게 되었습니다.
분량도 떨어진 마당에 다녀와서 쓰면 되겠지 했던게 이렇게 되어버릴 줄은 몰랐고, 진짜 지금에서야 모든 걸 끝낼 수 있었네요.
(죄송한 마음에 보기 편하시라고 지도 몇 개도 첨부했습니다.)
아, 그리고 여행 중이라 지난화 덧글도 못 달아드렸는데 그 또한 이번 화를 올린 후 달아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지도 출처: http://blog.naver.com/sjkim2090/220093345606
편집: 내가
+ 추가
너무 졸려서 잠도 자야하고 또 분량이 따라잡혔기에 화요일 분량도 조금은 늦게 올라갈 듯 합니다. 여행 한번에 지치고 힘든 휴유증이 너무 크네요.
최대한 빨리 추슬러 정상화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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