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2화 – 대추노노(帶推老奴), 그렇지 않다
“그 모든 뒷바라지는 우리가 해주겠소.”
“삼가, 명을 받들지요.”
쿠웅-
그렇게 원씨 문중의 종가가 자리한 원로원의 문이 닫혔다.
그와 동시에 그곳을 벗어난 공주는 각오를 다진 모습으로 치소로 향했고, 이내 공주를 비롯한 원가의 이들이 도성을 향해 유표를 비난하는 표문을 올렸다는 사실이 천하에 알려졌다.
하지만 정작 문제는, 그것이 아니었다.
이를 빌미로 원가의 이들이 움직였고, 그런 원가의 이들은 미친 듯이 물자를 수급하며 전쟁을 준비하고 있었다.
“자사, 정녕 이것이 참이옵니까?”
그리고 이러한 공주의 행동과 원가의 들썩임에 그의 곁으로 모여든 세 사내가 있었다.
주비, 오경, 허정.
원 역사에서도 원소를 비롯한 청류계 이들과의 친분 덕에 동탁이 정권을 쥔 이후, 그러한 청사(淸士)들에게 지방관의 자리를 권하면서 동탁을 속여 그들이 후일을 도모할 수 있도록 만든 이들은 예상치 못한 원가와의 협동을 보이는 공주의 행동에 놀라 다급히 그를 찾은 것이었다.
“예주 자사!”
“목소리 낮추게! 자네들이 자사인가?”
“하, 하오나 어찌......”
“형주목의 무도한 행위가 도를 넘었네. 그것도 인근의 호족들과 결탁해 겨우 형북을 쥐었다고 저리 나온다면, 아예 온전히 형주를 집어삼킨 이후라면 그땐 정녕 어찌 되겠는가?”
“하오나 그간 평화로움이 지속되던 예주였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전쟁 준비라니요? 그것도 원가의 이들의 부추김이 빤한 마당에 정녕 이러실 것이옵니까?”
“아닌 말로 유표가 형주목을 내려놓는다면, 내 이 손으로 직접 멈춰주지. 허니, 자네들이 어디 저 유표를 막아보게.”
“자사!”
“아닌 말로, 나 또한 원가의 압제라는 걸 알아! 그러나 그 또한 옳은 일의 일환이라면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 아니겠는가!”
본디 사례의 조당에 남아있어야 할 이들은, 원소가 도성을 벗어나면서 원가에 대한 견제이자 감시의 일환으로 또 다른 청류계 인사인 공주를 따라 예주에 자리를 잡았는데, 그만큼 이들의 선호도는 원소를 비롯해 반 외척, 반 군벌, 반 호족, 반 명가의 청류를 지향하는 이들에 가까웠다.
허나 그 배경에는 자신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대표 격이라 할 수 있는 연주가 내전으로 인한 혼란에 휩싸이면서 선택지가 좁혀진 것이었고, 결국 다른 선택지가 없는 상황 속에 이들은 원소와의 친교를 더더욱 강화하며 원소의 또 다른 눈과 귀가 되어주는 중이었다.
“최대한 조심스럽게, 전쟁을 준비한다. 순검(巡檢)을 빌미로 군사들을 이동시키고, 비축 물자를 전방으로 옮겨라.”
그런 와중에 이미 결단을 내보인 공주의 판단은 이미 되돌릴 수 없는 것이었다.
“자사, 이건 원가가 자사를 이용하는 겁니다! 자사를 부리려는 겁니다!”
“알아. 최소한도 내 성정을 부채질하다 못해 나를 전면에 세워 공적인 명분을 얻겠다는 것이겠지.”
“헌데도......”
“유씨의 이들은 작금의 자신들이 짊어진 유씨라는 성을 책무가 아닌 자격이라 생각핬다.”
“자격이라니요? 그게 무슨 소립니까?”
“왕후가 될 자격, 왕제가 될 자격.”
“.......!”
“자네들도 알 거야. 원가야 암만 탁류와 함께 기생해도 거기서 끝이지. 그러나 저들은 작금의 혼란을 핑계 삼아 멋대로 공왕, 그 이상을 꿈꾼다.”
결국 이들은 공주의 앞에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저 남들의 시선을 피해 원소에게 서찰을 써 보내는 것 밖에는 말이다.
* * *
그리고 그에 얼마 지나지 않아, 원술을 비롯한 원가의 이들은 종문(宗門)의 이들을 불러들인 자리에서 공주에 대한 평을 내렸다.
“대추노노(帶推老奴).”
“추고의 임무를 띤 본가의 늙은 종.”
“벼슬아치의 허물을 추궁하고 심문하여 이를 고찰하는 늙은 종.”
“그 늙은 종놈이, 정녕 우리에게 새 시대를 선사하겠습니까?”
그렇게 배분이 높은 이들을 시작으로 그에 대한 평이 한 바퀴를 돌았으나, 막상 그런 원로와 직계들의 앞에 무던한 얼굴로 제 귀를 후비적거리는 원술은 여전히 이에 대한 의구심을 드러내고 있었다.
“공로야.”
“팔급이라고 주제 넘은 호칭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알고, 이제 막 형북을 쥐었을 뿐. 아직도 그 영향력이 형남에 끼치지 못하는 것을 압니다. 한데, 갑자기 어인 전쟁입니까?”
“사례의 소식을 들었더냐?”
“그야, 뭐. 전임 대사농인 풍방이 개판을 쳐놓은 것은 들었지요. 거기에 뭐 오수전을 한참 잘못 찍어냈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그래, 그것이다. 하지만 정녕 그게 전부더냐?”
“이상하네, 보통은 시키면 그저 말없이 따르기를 좋아하시는 우리 종가의 분들께서 어찌 이리 나오실까?”
하지만 그런 원술의 의문은 이내 그를 향한 또 다른 질문으로 대체 되었다.
마치, 그의 능력을 확인하려는 일종의 시험처럼 말이다.
“우리도 이제 늙었다. 또한 확실히 그 성세가 이전만 갖지 않음이야. 더 이상의 인맥은 금력과 권력을 제공해주지 않는다. 기존의 향거리선제가 우리의 위치를 보증해주지 않는다.”
“아하.”
그리고 원술은 이게 무엇인지 대번에 알아차렸다.
이로 말미암아 자신이 온전히 원가를 쥐게 되는 날이 조금 더 빨라졌음을 말이다.
“일찍이 원기도 죽었지. 그러나 원소는......”
“거 종놈의 씨앗은 뭐 한다고 그리 이야기합니까?”
하지만 그 와중에도 거슬리는 부분은 필경 존재했다.
“그놈은 홀로 서는데 성공했다. 잡초와 같은 놈이 가문을 뒷배로 둔 너와 달리 그 많은 역경을 이겨내고 이제는 발해 인근에서 유우의 밑구녕을 핧으며 다시금 재기의 기회를 엿보고 있다.”
“그래서? 나도 이를 증명해라?”
“불행히도 너는 아직 홀로서지 못하지 않았더냐? 허나 반대로 가문의 힘과 위세를 적절하게 이용할 줄 알고 있으니, 이는 너만의 장점이기도 하다.”
쿠웅-
“제기랄, 그래서 나더러 뭘 어쩌란 겁니까?”
그 때문에 주먹으로 바닥을 치며 분노를 드러낸 원술이었으나, 그 역시 원가의 종본(宗本)의 이들을 거스를 순 없었다.
“우선 천하에 대한 안목부터, 아까의 질문에 대한 답이 먼저다.”
“쳇, 그 빌어먹을 사례가 터질 것은 조만간 예견된 일 아닙니까?”
“그래서?”
“나름의 살길을 찾으려 했으나 사연택에서 무역로가 터지면서 상황이 달라졌지요. 이전부터 포홍 놈 견제한답시고 둘이 붙어먹었던 모양인데, 당장에 부족한 물자를 구하려던 사례는 그리 무역로에 모든 걸 쏟아부은 정원으로 말미암아 골치가 아파진 셈입니다.”
“또?”
“뭐, 기주의 이들 또한 원체 엄청난 생산량을 뿜어내고 있으나 이는 본디 호족들의 품에서 피어난 것들이니 그에 대한 결정권이 주목에게 있지 않습니다. 한복이라고, 도성에서 임명한 어사중승 그 작자 또한 딱히 유표와 같은 지배력을 보이고 있진 않으니 도리어 우리가 종으로 삼은 정원처럼 그 뒤에 자리한 이들에 의해 좌지우지 되는 셈이지요. 그래서 사례는 거기서도 물자는 구할 수 없습니다.”
“또?”
“마지막은 유주인데, 다들 아시지 않습니까? 지금 이를 갈고 있는 공손찬이 사연택의 무역로를 기회 삼아 엄청나게 많은 유주의 비단을 밀어 넣는 거. 거기야 본디 비단 산지이기도 하고, 문제는 유주목 유우이지요.”
“옳거니, 그래서?”
“지금 최소한의 교역만을 허가한 마당에 사례와 같은 물가의 상승을 도리어 경계한다고 하는데 아무리 봐도 이는 전쟁 준비로 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필경, 공손찬이 서역으로 흘려보낸 비단은 한혈마와 대완마를 비롯해 혈통 좋은 군마들과 이를 위한 씨종마가 되어 돌아올 것인데, 이리되면 공손찬의 군사력이 너무 강해지지 않습니까? 원소와 같은 그 천출 놈, 지금도 미친 놈마냥 날뛰는데, 어디 그놈이 수십 만의 이들 상대하며 이름을 날린 전설을 직접 눈으로 본 이들이 이에 대해 경계를 하지 않으면 도리어 미친 거지요. 하지만 이 덕에 사례는 여전히 물자를 구하지 못합니다.”
“훌륭하구나. 배움이 늘었어. 하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님을 알겠지?”
“예?”
하지만, 그리 자신의 배움을 뽐내던 원술도 한 차례 막히는 부분이 생겼다.
“필경, 전쟁 준비가 어떻든 원소는 이를 기회 삼아 더더욱 유우에게 붙으려 할 게다. 또한 새로이 들어온 정보로는 태행산맥에 흑산적들이 공손찬과 연수를 맺고 기주 쪽으로 움직였다는구나.”
“천박한 것들끼리 말입니까? 어째......., 아! 그래서!”
허나 부족하다고 한들, 그 또한 원가의 피를, 그것도 종가의 계보를 이은 사내였다.
부족함과 아쉬움이 있어도 언제나 그 밑바닥까지 수준 떨어지는 모습을 보이진 않았던 것이다.
“너도 이제 알겠더냐?”
“공손가의 천한 놈이 아예 유주와 기주를 감싸버릴 예정인 겁니까? 본초, 그 종놈은 이를 기회 삼아 유우에게 붙어 내부의 입지를 강화시키려는 것이구요?”
“바로 그것이다. 그놈은 필경 유우를 지지하는 유주의 유림과 친해질 것이며, 자신이 자리를 잡은 발해군이 기주에 속한 것을 핑계 삼아, 유주와 기주의 사인들을 끌어들여 유우와 한복을 이어주는 가교의 역할을 할 것이다.”
“흥, 그래도 반쪽짜리 원가의 피를 이었다고,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제법이로군요.”
“그래, 그 출중함이 아쉬워 아직도 온전히 그놈을 끊어내지 못한 게지.”
“허나 그놈보단 제가 더 났습니다!”
하지만 원소에 대한 경쟁심과 애석하게도 그보다 못한 모습을 보이는 현실에 대한 열등감은 원술조차도 어찌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래, 이 또한 네가 그놈을 뛰어넘으면 뭐든 해결될 문제다. 허나, 만약을 위한 여지는 남겨두거라. 세상은 아직 유씨의 세상이니라, 원가의 세상이 아니라.”
“예? 그게 무슨 말씀......”
허나 그런 경쟁심과 열등감과는 별개로, 아직도 숨겨진 진의를 깨닫지 못하는 원술의 수준을 확인한 종본의 이들은 여전한 아쉬움을 드러낼 수밖에 없었다.
“아직 부족하구나. 그래도 이쯤 되면 눈치를 챌 줄 알았는데 말이다.”
콰앙-
“아니, 혼자들만 알지 마시고 좀 설명을 해주십시오! 혼자 있는 사람, 여럿이서 바보 만들어도 정도가 있는 거지. 이 마당에도 뭣 모르는 애 취급입니까!”
“그래, 아해는 아니지. 하지만 여전히 무르익지 않았다.”
“그러니까 대체 뭣 때문에......”
덜컹-
그렇게 원술이 순간의 감정을 주체 못하는 순간 문을 열리고 바깥에서 사내종으로 보이는 이가 안으로 들었다.
“이놈은 뭡니까?”
“본가에서 조가에 심어둔 간세다.”
“조, 조가! 허면 조숭의.....”
“그래, 허니 어디 들어보겠느냐?”
그렇게 원가의 원로들은 원술의 앞에 그가 알아 온 정보를 읊도록 만들었다.
“사례에서 사람이 나왔습니다. 조조를 동군의 태수로 삼는 대신 조가가 지원하는 예주의 물자를 내어달라 하더군요. 이에 조숭은 단숨에 이를 허락했습니다.”
“뭐라-!”
순간, 원술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지난날, 태후와 중상시들이 일으켰던 반란에 동조한 조조는 도리어 그 마지막에 우리를 배신하고 본가에 충성하는 이들과 도성에 자리를 잡았던 본가의 친족들을 학살했다.”
뿌드득-
“어디 그뿐입니까? 본가의 저택들도 모자라 그와 관련된 가산들까지 모조리 압류했지요.”
물론, 실상 이는 조조를 몰아붙인 가후의 명령에 의한 것이었으나 그 원인이 어찌 되었던 간에, 그 결과는 조조가 원가의 이들을 참살하고 그들의 가산을 압류해 사례의 조당에 가져다 바쳤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그래, 그런 사례는 이미 우리와 연을 끊은 사이며 이는 우리와 공적으로 척을 진 조가라고 다르지 않다.”
그리고 이로 말미암아, 원술 또한 아직 밝혀지지 않은 것들 중 일부를 깨달을 수 있었다.
“이거였습니까? 사례와 조가가 다시금 손을 잡았고, 그리되면 사례가 한숨을 돌리는 것은 물론, 조조라는 발판으로 말미암아 전국시대와 같이 전란이 끊이질 않는 연주를 쥐게 될까! 그리 한데 모인 연주의 군사력이 곧 예주의 절반을 쥔 조가와 더불어 본가를 향한 향한 칼이자 위협이 될까 봐 그런 것이었습니까!”
“부족하다.”
그러나 그럼에도 종본에 해당하는 원로와 직계의 이들은 아직도 부족하다 말하고 있었다.
“후우, 더불어 황하 이북에 더 이상 본가가 영향력을 투사할 수 없게 되겠지요. 뚜껑마냥 자리를 잡은 그들을 우리와 하북의 연계를 비롯해 여러 사업들의 수익을 끊어낼 겁니다.”
“부족하다!”
그리 원술이 제 머리를 온전히 쥐어 짜냈음에도 아직도 부족하다 말하고 있었다.
“또 뭐가 남았습니까!”
“형주가 있지 않더냐!”
쿠웅-
“그, 그렇군요. 형주가......, 형주가 남아 있었습니다......”
실로 원술은 제 전신이 쿵하고 묵직한 무저갱을 향해 떨어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리 떨어지는 무저갱의 아래, 다시금 하늘과 구름이 있었고, 그 아래서 드넓은 중원이 펼쳐져 있었다.
물자가 부족해 고심이었던 사례의 이들은 하북이 날아간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았고, 이로 말미암아 조가라는 교두보를 통해 예주와 본가를 압박하고 있었다.
그러나 도리어 그러한 적이 내보일 수 있는 최선을 다시금 뛰어넘은 원가의 이들은, 역지사지의 정신으로 자신들이 공격을 받게 될 최악의 수를 가정하고 이를 굽어보고 있었다.
아무리 황실에 대한 조공을 끊고 멋대로 황제의 복색과 예도를 따라 하며 멋대로 천신을 대리해 제를 올리는 유표라고 한들, 같은 유씨의 이들이며 그 팔이 안으로 굽음을 알기에 만일 사례의 이들이 허울뿐인 명예를 내어주고 생존을 위해 만일 유표의 이러한 작태를 용인한다면, 형주는 당장에 사례에 공물을 비롯한 엄청난 양의 물자를 바치며 그들과 동맹관계를 구축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리 사례를 시작으로 각각 동남으로 이어지는 연주와 형주의 동맹은 예주를 위아래로 감싸다 못해 집어삼키는 모양을 하고 있었다.
그리 북쪽과 서쪽에서 위협을 받게 되면, 결국 예주는 점점 외지와 변경인 동남쪽으로 내몰리며 그 이외의 모든 방향으로의 진출로와 선택지를 잃게 되는 것이다.
“아아....., 이것이......”
그렇게 원술은 본가의 직계와 원로에 의해 기존에 닫혀있는 비좁은 사고의 세계가 깨어지는 것을 느꼈다.
비록 그 시작은 사례와 연주 그리고 형주에 그칠지라도 그것이 이내 형남과 청주, 혹은 서주까지 이어지게 된다면 정녕 원가의 이들은 오갈 데 없는 중원의 동남부에 갇혀 말라 죽게 될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우리는 형주를 깨야 한다. 유표가 온전히 형주를 장악하지 못한 지금, 형주 방면을 쥐고 도리어 우리가 살아있음을 증명하여 사례를 압박해야 한다.”
“몰랐습니다.”
“이뿐이더냐? 애초에 예주에 물자만으로 사례는 급한 불을 끌 뿐, 이미 미쳐버릴 듯 솟구친 물가를 잡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라도 더 많은 물자가 필요하고 이를 위해선 필경 자신들에게 남은 선택지인 형주를 끌어들이겠지.”
“하, 하지만 형주가 사례에 그리 엄청난 양의 물자를 보낸다면 도리어 우리가 전쟁을 벌여도 더 쉬워질 것이 아닙니까? 그렇다면 아예 시간을 두고......”
“멍청한 소리! 제 백성 갉아먹는 한이 있어도 어떻게 얻어낸 교두보이자 동맹을 끊어내겠더냐? 반대로 포홍에 의해 서쪽이 막힌 이상, 사례 또한 살아남기 위해 우리처럼 다른 길을 모색해야 한다. 우리가 형주를 쥐고, 포홍이 옹주를 쥔 그림을 생각해봐라. 우리의 고뇌처럼 사례의 이들도 자신들의 적을 양쪽에 끼고 있는 형국의 압박에 놓이게 된단 말이다!”
“그, 그렇군요.”
“거기에 그리 물자의 여유를 갖추게 되면 일찍이 황보숭이 키워놓았던 정병들이 튀어나온다. 군량미가 확보된 그들은 곧바로 전쟁의 여력을 갖춘 채,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서라도 형주를 지원할 것이야. 허면 그때 가서 그들을 맞상대할 수 있겠더냐?”
결국, 원술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또한 평상시와 달리 완전한 복종을 보일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 또한 실로 많은 부분이 깨이며 기존보다 더 넓은 세상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화를 내지 않는구나.”
“지금은 이해가 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원가의 원로이자 직계의 이들에게도 묘한 감흥을 불러 일으켰다.
“답답하진 않으냐?”
“조금......, 허나 어렴풋이 납득을 하고 있기에 화가 나지 않습니다.”
“역시 너 또한 원가의 종본이로구나. 금세 그리 자라나다니.”
원술이 예상을 깨고 금세 자질을 드러내며 성장한 것이다.
“하지만 아직도 부족한 것을 알겠지?”
“예.”
“허면 이제 마지막을 논해보자. 왜 우리가 지금 형주와 전쟁을 치러야 하느냐?”
“그건......”
“모른다면 알려주마, 이로 말미암아 수백 년을 지속된 유씨의 세상을 끝장낼 수 있기 때문이다.”
“.......!”
허나 그리 한 차례 성장을 거쳤음에도 원술은 제게 떨어져 내리는 벼락과도 같은 충격에 전율하며 알게 모를 희열과 두려움이 뒤섞이는 기분을 맛봐야 했다.
그리고 그 시각.
“아니, 밀사라고 하시더니 사공께서 이리 직접......”
“공자님의 뜻을 받들기 위해, 그분의 이상을 이루기 위해 왔습니다.”
형주에선 그 누구도 아닌 순상이 밀사를 빙자해 직접 유표를 만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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