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6화 – 회자(會者)는 모든 것을 쥐고 익숙한 곳을 향해 돌아온다
“누가 왔다고?”
“저 그것이........”
서쪽 끝 중의 서쪽 끝.
황량한 사막과 고원이 펼쳐지는 미지의 공간이자 죽은 이들이 거닐며 그 너머에 생명과 부귀를 지닌 이들이 건너온다는 전설이 자리한 돈황의 황야에는 물경 5만이 넘는 이들이 거대한 도시와도 같은 풍경을 이루고 있었다.
천축과 서역은 물론, 인근의 36개국이 넘는 곳에서 모여든 이들이 엄청난 양의 재화와 물자를 내어놓으며 한데 뒤섞이고 있었으니 그 가판대와 장식 그리고 좌판의 위에 올라선 것들만 해도 가히 상상을 초월하는 것들이 많았다.
거기에 각 여관과 마장마다 그 혹이 하나인 낙타와 둘인 낙타가 한데 묶여 구유 속의 건초를 뜯고 있었고, 그 너머에 내려진 엄청난 규모의 수레와 달구지들은 갑주를 걸친 관헌으로 보이는 이들에 의해 그 품목과 수량이 모조리 기록되고 있었다.
그런 그들의 옆에 모여든 이들은 모두 각기 나무 조각으로 된 표식을 받아 가며 인근의 군병들을 향해 이를 보여주고 자유로운 통행을 보증받는 검문을 마치고 있으니, 이를 통과한 이들만이 그 너머에 자리한 동탁의 허가 속에 비단길을 향유하고 동쪽으로의 걸음을 지속할 수 있기에 그리 표신을 얻은 이들은 만세를 부르고 또 노래를 불렀다.
촤르르륵-
물론, 그들이 만세를 부르는 동안에도 그 통행료와 관세를 또 상세를 빌미로 각기 다양한 이문을 벌어들이기 시작한 돈황의 관사에는 이미 기존의 예상을 훌쩍 뛰어넘을 정도의 오수전과 값비싼 물건들이 쌓였다.
하나의 주머니가 떨어져 내릴 때마다 찬란한 빛줄기를 뽐내며 떨어지는 것들이 쌓이는 그 풍광은 가히 영롱하였으나 문제는 이를 둘 곳이 마땅치 않았음으로 인근에 새로이 건립된 창고와 빙고를 핑계로 만들어진 지하에 깊숙한 석실 속까지 그 모든 부와 재화를 차곡차곡 채워나가는 중이었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이 모든 이들의 만들어낸 황금과도 같은 기적과 그 영롱하고 찬란한 과실을 제 손에 쥐게 된 포홍은 그리 자신의 손에 들어오게 될 재물을 감상하기 위해 자리한 석실 안에서 예상치 못한 보고를 받았다.
“그러니까 누가 와?”
“나, 낭중령 가 문화가 주공을 뵙고자 한다고.......”
콰앙-
그렇게 석실의 문을 박차고 나온 그의 앞엔 이전보다 많은 것이 바뀌어있음을 보여주는 풍광이 자리하고 있었다.
“참나, 뭔 놈의 급한 볼일이기에 돈도 마다해?”
“동 중영, 낭중령이 왔답니다.”
“낭중령?”
이제는 거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이전과는 달라진 모습을 보이는 동탁은 그 고개를 주억거리며 가후가 누구인지 골몰히 생각하는 듯했다.
“거 일찍이 황보숭의 책사였던 자 말입니다.”
“아, 그 가 뭐시기 그놈? 나를 이곳으로 보낸 그놈?”
“중원의 소식을 알고 계신 것이 아니었습니까?”
“뭐, 알아도 어쩔 수 없으니 점점 관심에서 멀어질 수밖에. 거기에 지금에서야 이리 번영의 기틀이 오른 모습이라지만, 그 지금에 이르기까지 매양 내가 치른 것은 습격과 격퇴 그리고 토벌뿐이었으니, 어디 평안히 중원만 바라볼 수 있는가?”
반강제적이긴 했지만 확실히 동탁의 유배는 효험이 있었던 모양이다.
이쯤 되면 가후의 노림수가 제대로 작동했다고 봐야 하려나?
한 차례 세상을 뒤집는데 실패한 그가 아무리 이곳에 왔다고 한들, 그 본성은 남아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래, 분명 가후도 그리 생각했겠지.
허나 자신은 이를 의심했고 그럼에도 가후는 이를 밀어붙였는데, 그 본성조차 원체 이곳에서의 일이 바쁘니 그것이 서역도호부의 부활이자 자신의 재기를 위함이기도 하며 그 흐릿해지는 본성을 지키기 위함이기도 할 것임에도 그는 이전과는 많이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결국, 그놈이 옳았군.”
실로 묘하디 묘한 것이다.
그자가 성공시킨 서역도호부와 더불어 반강제적인 동탁의 변화까지, 그 모든 업적을 확인한 저로서는 이리 자신을 찾아온 그를 도저히 반기지 않을 수가 없었으니 말이다.
* * *
“가 문화......”
“오랜만입니다.”
그렇게 돈황군의 치소에서 마주한 가후는 예상외로 평온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제 사람들을 모조리 등졌으면서도, 제가 충성하며 관리하던 이들을 모조리 등졌으면서도 도리어 그는 후련한 표정을 지어 보이고 있었다.
“크흠.”
“흠.”
하지만 도리어 그것이 작금의 포홍을 따르는 이들을 비롯해 동탁을 따르는 이들로 하여금 그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고 있었다.
일찍이 한 차례 자신들을 견제하던 경쟁자이자 그 주인을 배신한 노골적인 변절자인 인식이 강했기 때문이었다.
“보아하니, 분위기가 좋지는 않은 모양이야.”
“예, 그런 듯 보이옵니다.”
“내 장인이 죽을 뻔하다는 이야기도 들었고, 또 그럼에도 나를 택했다는 이야기도 들었지. 거기에 끼어있는 경조윤의 충성을 받아냈다는 이야기도 들었고.”
그래도 딴에 간단한 입장의 정리를 위하여 최근의 일들을 늘어놓으니 가후는 배려에 감사하다는 듯 그 고개를 살짝 숙여 보였다.
“나는 과거에 얽매이는 이는 아닌데, 좀 성정이 지랄 맞아서 거슬리면 죽일지도 몰라.”
“그러시지요.”
그렇게 한 차례 포홍이 그에 대한 위협을 하고 나니, 그 뒤에 끼어든 것은 동탁이었다.
“워우, 얼굴은 상하지 않았는데 마음이 많이 상했나?”
“이런, 누구신가 했더니 제 약이 나름의 효험은 있었던 모양입니다, 동 중영?”
“고맙다, 이놈아. 네놈 때문에 이곳에서 아주 뼈를 묻게 생겼으니.”
“그리 묻힐 생각이 아니라면 당장에 충성을 맹세하셔야지요. 어차피 연치도 오래되셨겠다 이 사람처럼 보다 더 나은 노후를 위해 누군가의 손을 잡아야 함은 필경 빤한 것이 아닙니까?”
“.......!”
허나 그것은 도리어 악수가 되었다.
도리어 기다렸다는 듯 가후는 동탁을 물어뜯었고 그것은 곧 동탁을 따르는 수하들의 반발을 일으켰다.
“카악, 퉤엣!”
“이 빌어먹을 새끼가 감히 어디라고 지랄을 해. 어?”
이각과 곽사를 비롯해 내노라 하는 이들이 살의를 품고 가후를 노려보았다.
“흐하하하하하!”
허나 그 위험천만한 분위기 속에서도 반전은 있었으니 그 속에서 동탁은 호탕한 웃음을 내보이며 배를 잡고 즐거워했다.
허니 가후도 또 포홍도 이번만큼은 그런 그를 향해 시선을 건네지 않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 후우. 그래야지.”
“주공!”
“아니, 어째서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이놈들아, 어차피 내 나이가 나이야. 예서 더 해봤자 힘들다. 황보숭, 그놈도 뒈졌고 끽해야 말년에 장군이나 주목 노릇하다 가는 것이 제일이겠지.”
“하오나!”
“노후, 노후라고 했지?”
그리고 이내 고개를 들은 동탁은 도리어 그런 가후의 앞에 성큼성큼 다가가 그의 어깨를 잡았다.
뿌드득-
“크흑! 이게 뭣하는......”
“이놈아, 암만 능력이 있어도 변절자란 오명을 달고 왔을뿐더러 그리 찾아온 것이 원수지간이나 다름이 없는 곳이면 최소한도 이를 감내할 생각이 있어야지. 또 너로 인해 득이 된다는 능력을 증명해야지.”
그와 동시에 그의 어깨를 부러질 듯 움켜잡으니, 이에 고통 속에 신음하는 가후가 다급히 자신의 말을 이으려 했다.
“그래서, 그래서 기회를 주시면 곧바로......”
“포홍!”
허나 그럼에도 동탁은 이를 허락지 않았다.
“말씀하십시오.”
“나도 이놈하고 마찬가지다. 네놈이랑 적이었고 네놈을 죽이려 했지. 허니 이놈도, 나도 네놈에게 이득을 선사하며 그 충정을 증명해야 한다. 이놈이 노후 대비 운운하며 나를 자극시킨 것 또한 그 때문인데, 미쳤다고 내가 내 노후를 보장받기 위해 내놓을 것을 이놈에게 빼앗기겠더냐?”
“동 중영......”
“여기 내려올 때, 이만이었던 것이 식량은 부족해도 돈이 더 생기면서 용병을 고용하고 무리를 늘리면서 삼만으로 변했다. 그 모든 것, 네게 내어주마.”
도리어 포홍을 부른 뒤, 가후가 선수를 치기 전에 그보다 먼저 폭탄선언을 해 버리니 이는 노골적인 신종이자 복종이자 다름이 없었다.
“갑자기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주, 주공! 이는.....”
그리고 당연히 이러한 동탁의 발언에 그의 수하들은 난리가 났다.
“닥쳐! 그리고 작금의 네놈들도 이제부터 모조리 포홍을 따라라.”
“하오나, 어찌!”
“이각, 네놈은 그리 날 이겨내고 싶었으면서도 왜 아직도 내게 충성해?”
“그건......”
“아니, 그거야 당연히......”
“곽사, 네놈도 마찬가지다. 넘고 싶으면 증명을 해야지. 그리고 증명을 하고 싶다면 기회를 얻어야 한다.”
“........!”
그러나 그 모든 이들의 분란을 아주 간결하게 정리한 동탁은 다시 한번 자신의 입장을 명확히 고수했다.
“나는 이미 지는 해야. 몰락은 아닐지언정, 네놈들을 더는 빛나게 해줄 수가 없다. 아직 젊은 네놈들이야. 한데, 청사에 그 이름 한 글자 남기지 않고 벌써 죽고 싶더냐?”
결국, 씁쓸할지언정 이는 현실이었다.
그리고 이는 동탁 스스로가 다시금 힘을 키워 포홍에게 반기를 들지 않는다는 의지를 미리 내보인 것이기도 했다.
“동 중영.....”
포홍 또한 그 고마움과 미안함에 그의 이름을 애잔하게 입에 담을 수밖에 없었고 말이다.
“내가 이래뵈도 나이가 많아, 못해도 저놈보다 예닐곱은 더 나이가 많을 게다. 노인이지.”
“하오나 정정한 것은 사실이니 꼭 이러지 않으셔도......”
“이러지 않으면? 뭐? 여기 애들 모조리 이끌고 량주서부터 옹주까지 다시금 네놈이 다스리는 그 모든 땅을 뒤집어줄까?”
“지금 제 말은 그 뜻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래, 아니지. 그래도 한번 적이었던 사람을 쓰려면 최소한의 족쇄는 채우고 부려. 지금이야 젊고 건강한 네놈이 뒤도 안 돌아보고 내달리는 게 맞을 때지만, 마치 내 젊을 적과 같은 그 호방함이 네게 많은 것을 선사할 때지만, 그래도 그게 영원한 게 아니야.”
그렇게 회한에 잠긴 듯 보이는 동탁은 이내 포홍의 가슴을 두들겼다.
“네가 늙으면 그 또한 사라진다. 잊지 마. 그리고 그때가 되면 네놈은 도리어 네놈 밑에 둔 저놈 같은 이들에 의해 부림을 당할 게다. 내가 이유에게 그랬듯이.”
“.......!”
그리고 그 진심 어린 충고와 더불어 아주 익숙한 이름이 포홍의 정신을 휘감았다.
지금도 소름이 돋아나는 이유라는 그 이름은 어느덧 다시금 움직이는 동탁의 손끝에 자리한 가후를 향해 덧씌워지고 있었다.
“황보숭, 어찌 뒈졌는지 잘 기억해. 그놈은 제가 아닌 염충으로 뒈진 게야. 저놈에게 그 굴레가 덧씌워져서. 그에 비해 나는 어떻지?”
“그야 이리 살아 계신.....”
“그래, 나는 살아있어. 나는 온전히 살아있어, 나로서.”
“나로서....., 입니까?”
“실상 저놈이 서역도호부를 핑계로 나를 부리고자 이유의 목으로 이를 대신하려 했을 때, 또 네놈이 이를 따라 내게 이유의 목을 요구했을 때 나는 그것이 싫었다. 실로 나의 종막을, 내 생을 끝내는 줄 알았지. 그리 피를 토하며 이유의 목을 끊어냈는데, 도리어 그 뒤로 나의 생각이, 삶이 바뀌었다.”
그 주먹을 불끈 쥐며 흔들림 없는 위엄을 보이는 그는 도리어 이전보다 더 강한하고 묵직한 기운을 내보이는 것처럼 보였다.
“도리어 그리 내 족쇄가 내게 덧씌워진 망령이 사라진 게야. 물론, 나이가 있고 그 마지막 기회를 놓쳤으니 더 이상은 이전과 같지 않음을 알았지만. 그래도 나는 후련하기 그지없었지. 설사, 그 선택이 미력한 것일지언정 상관없다. 암만 드높이 올라선다고 한들, 그것이 나를 위함이 아니면 그 생은 잘못된 것이야. 최소한도 내가 깨우친 삶은 그렇다.”
“동 중영.......”
투욱-
“너는 나처럼 되지 마라. 황보숭처럼 되지도 말고. 이까짓 한, 그 한을 위해 헛된 망상을 품었던 이유나 황보숭처럼 그리 살지도 마.”
그리고 그 동탁의 묵직하고 흔들림 없는 진심이, 그리 쥐어진 주먹이 포홍의 가슴에 닿았다.
“그....., 감사합니다.”
“감사는 무슨, 이 늙은이 말년이나 잘 책임져달라는 소리지.”
그렇게 동탁은 몸을 돌려 모두가 자리한 자리를 벗어났다.
터업-
“아, 그리고 저놈도 마찬가지일 게다. 저리 사례를 등졌다는 건 제 놈의 이상이 무너졌거나 제 놈의 현실이 무너졌거나 둘 중 하나란 소리야. 어느 쪽이든 하나가 깨져 제 망상을 벗어나 자신을 찾게 된 이상 사람은 미련이 없어져. 그리고 그 미련이 없는 선택지라면 도리어 쓸 만은 할 게다. 다만, 아까 말했다시피 족쇄는 채우고 쓰라고. 허면.”
그리 치소 밖을 나서는 순간에도, 그 마지막까지 진심 어린 조언을 아끼지 않으니 포홍은 그리 동탁이 나선 자리를 향해 고개를 숙여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준 동탁에 대한 감사와 경의를 표했다.
그리고 이러한 포홍의 모습에 동탁에 수하들 또한 이전보다 더 빨리 그에게 흔들리고 있었고 말이다.
“확실히 보통 분이 아니시로군요.”
그렇게 한차례 폭풍이 지나가니 가후 또한 제법 놀랐다는 표정으로 떠나간 동탁을 기억했다.
“단련이 되었다고 봐야지. 죽은 이유 덕에.”
“예, 인정하도록 하겠습니다.”
“해서? 이제 어쩔 셈인가?”
“뭐, 이리 남의 것에 숟가락도 못 올리겠으니 이제는 제 능력을 떨쳐야지요.”
“자신은 있고?”
“이리 끌고 내려오신 일만에 동탁의 삼만 병력까지 모조리 이끌고 북상하십시오. 그리 올라 하서주랑을 따라 옹주로 돌아가십시오. 병주의 정원이 예상치 못한 흑산적들의 발호에 쉬이 전쟁을 시작하지 못하고 늘어졌으나 이미 얼추 판세가 정리되었으니 더는 전쟁을 미루지 않을 터. 그리 여 봉선에게 사연택을 허락하셔도 좋고, 아니면 직접적으로 사례를 압박하셔도 좋습니다.”
“허면 네놈은? 아무런 병력도 없이 홀로 남아 이곳을 지키겠다고?”
“동 중영이 제법 좋은 수를 보여주었습니다. 용병을 비롯해 인근의 이족들을 활용해 새로이 이곳에 수비군을 창설하려 합니다. 그도 아니면 팔려 온 한인 노예들을 사들이는 것도 좋겠지요.”
“허나 이곳은 만만한 곳이 아니야. 인근의 소국들의 숫자만 해도 거진 크게는 쉰이 넘는다. 그 속에 엮인 수많은 족속들 중에 불온한 무리가 넘쳐나고 연신 교역로를 노리는 그들의 습격은 그칠 날이 없을 게야.”
“서역도호부, 이 또한 애초에 제가 설계한 판입니다. 이것도 책임지지 못하면서 노후 운운할 자격이나 있겠습니까? 거기다 동 중영이 말한 대로 족쇄는 있어야지요. 이곳에 홀몸인 제가 스스로를 일으키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니 수만의 군사를 두고 있으면 도리어 날개를 달아주는 격이 될 것입니다.”
그렇게 한 차례 자신이 넘치는 가후의 발언이 끝나자 끼어든 것은 일찍이 그에 대한 노골적인 반발을 앞세웠던 이각과 곽사였다.
“참, 뻔뻔한 건지 자신이 넘치는 것인지.”
“그러게 말이야.”
“이각과 곽사라 했습니까? 나는 자신이 있는 겁니다. 그대들의 전 주공조차 내 뜻에 의해 이 땅에 처박혔는데, 그래서 그 포석에 따라, 내 뜻대로 이 땅이 번영을 맞이하고 비단길이 부활했는데, 어찌 내가 자신이 없겠습니까?”
“뭐, 이.......!”
그리고 이는 다시금 가후의 날이 선 도발을 불러일으켰다.
“그마안-!”
“치잇.”
“흥.”
허나 그에 발끈한 이들끼리의 충돌을 말리는 것은 이제는 온전히 그 모든 이들을 수하로 두게 된 포홍이었으니, 그래도 이각과 곽사는 각기 포홍에게 복종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런 모습으로 잘도 사례의 조당을 이끌었군.”
“뭐, 원체 잘나서? 거기에 동 중영이 언급한 대로 미련이 있었으니, 나름 수그리며 또 주변의 비위를 맞춰주며 살았지요.”
“허면 지금은 아니다?”
“말 그대로입니다. 더 이상은 미련이 없지요.”
물론, 이는 가후 또한 마찬가지였지만 그의 당당함은 가히 이쪽의 조롱을 넘어선 것이었으니 그에 대한 걱정은 딱히 필요치 않았다.
기가 죽을 이유도 없고 또 과하게 그가 변해갈 연유도 없었다.
“동탁은 내게 한이라는 헛된 망상을 품을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매달릴 필요가 없다는 소리고, 그에 집착할 필요도 없다는 뜻이다.”
“해서 바로 진이라도 세우시렵니까?”
“미쳤나? 나라를 세울 생각 따위, 애초에 해보지도 않았어.”
“허면 앞으로 하십시오. 그것이 지금 당장 한을 등진 진이 되었든, 그 이전에 한을 이용한 왕망의 신이 되었든, 그도 아니라면 지금처럼 계속 황제를 품은 사례의 조당에 허울뿐인 충성을 다 바치면서 끝까지 역사의 흐름을 따라 어쩔 수 없이 휩쓸리는 이들처럼 되었든. 어느 쪽이든 필경 장단점은 따라옵니다.”
“생각해보지.”
그렇게 모든 것이 정리되는 듯 싶었으나 가후가 마지막에 하나를 더 짚었다.
“한 가지 더. 이 땅엔 내세우기 가장 좋은 황제가 둘 있습니다.”
“내가 아는 천자는 오직 이 세상에 하나야.”
“둘입니다. 잊지 않으셨을 텐데요?”
“.......!”
왜? 대체 왜 그 이야기를 꺼냈을까?
한동안 잊혀져 있던 존재 또한 다시금 포홍의 뇌리 속에 각인이 되며 깨어나니, 이는 그토록 제가 가까이하기 싫었던 역하고 피폐한 사고를 지닌 어린 것의 얼굴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협 황자.....”
“뭐, 직접 확인한 것은 아니나 당시 현장의 있던 이들이 올린 보고에는 장양과 조충이 옥새를 깨어낼 당시 대전 안에서 어린아이의 목소리를 들었다고 합니다. 또한 인근에서 호위도 없이 돌아다니는 협 황자를 보았다는 이들도 존재하고 말입니다.”
“내게 뭘 말하고자 하는 게야?”
“그 당시 이미 충격을 받은 지금의 어린 황제께선 대전에 자리하고 계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궁에 자리한 어린아이라고 해봐야 일찍이 궁녀로 들어온 어린 것들 뿐이니 그 연치 또래의 사내의 아이는 아예 없는 것이나 다름이 없지요.”
“해서?”
“알면서도 이를 외면하시는 겁니까? 아니면 쓸 생각이 없다는 겁니까? 장군의 옥새는 필경 그것일 텐데 말이지요.”
옥새, 이미 깨어진 옥새가 아닌 이 세상에 오직 포홍, 그 하나만을 위해 존재하는 옥새.
가후는 이를 지적하며 넌지시 이쪽을 떠보고 있었다.
그 옥새가 얼마나 냄새나고 구리며 그 손에조차 쥐기 싫은 역함을 품고 있음을 알고 있으면서도 말이다.
“그 어린 것, 어쩌면 작금의 피폐해진 정신을 유지하는 변 황자보다 쓸데가 더 많을 겁니다. 본인 스스로도, 그리 황위를 갈구하고 있으니 말이지요.”
“그래서, 그게 그 어린 황자를 그대들에게 돌려보내 준 내 탓인가?”
“정확히는 동 중영과 죽은 이유의 탓이겠지요? 그 이전에는 동씨와 하씨가 있을 것이고 말입니다.”
“그놈도 피폐한 건 마찬가지야.”
“사람이 암만 썩어도 본인이 바라는 바는 이루어줄 수 있는 것 아닙니까?”
“그건 착각이야! 구원이 아니며 바램이 아니야!”
“누군가의 손에서라도 도구로 남길 바라는 이입니다. 자신의 가치가 안이 아닌 바깥에 있으니, 그렇게 남의 손을 빌어서라도 저 높은 곳에 오르고자 함이거늘, 이를 어찌 쓰지 않으십니까?”
“내 손으로 치워내기 귀찮으니까.”
“허면 후대에 맡기시면 될 일이지요. 선위가, 선양이 있지 않습니까?”
“언제 태어날지도 모를 내 자식을 미리 역적으로 만들겠다?”
“새 시대의 문을 열어젖히는 개창자가 되는 것입니다.”
“못 들은 것으로 하지.”
“그러시지요.”
그렇게 더 이상의 실랑이를 허락지 않으려는 포홍의 태도에 그는 알아서 기겠다는 듯 슬쩍 두 손을 들어 보이며 한발 물러섰다.
포홍 또한 더는 이에 시간을 할애하지 않고자 함인지 이내 주변을 둘러보며 모두의 시선을 한데 집중시킨 채, 다음의 행보를 위한 걸음을 재촉하고 있었다.
“우리는 서역을 쥐었고 하서주랑을 회복하며 비단길을 복원시킨 원정에 성공했다. 허니, 이제는 본래의 우리가 자리하던 그 익숙한 곳으로 돌아간다.”
“옹주.....”
그 속에서 누군가는 새로이 주변을 집어삼키며 커져 버린 포홍의 직할지인 옹주를 입에 담았고,
“삼보.....”
또 다른 누군가는 그에 흡수된 사례에 속한 가장 번창한 지역 중 하나였던 삼보의 이름을 부르짖었다.
“량주......”
그 외에 옹주에 흡수된 곳들 중 하나이자 그 이전에 자신들이 자리하던 정든 고향의 이름을 부르짖는 이들도 있었다.
두두두두-
“전군에 회군의 명을 내린다! 목책을 철거하고 막사를 접어라!”
“동 중영을 따르는 사군들은 앞으로 표기장군을 따른다! 모두 새로운 주인 앞에 충성하여 하나 된 모습을 보여야 한다!”
“수레 위로 모든 것을 실어라! 돈과 향료를 비롯해 이 땅과 저 서역을 거쳐 넘어온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담아라!”
그렇게 사방으로 말을 달리며 우렁찬 목소리 명을 내리는 이들의 움직임이 돈황 주변에 자리한 각 군영의 이들을 모조리 일깨우고 있었다.
물경 사만에 달하는 이 땅에 가장 두려운 이들이 모조리 한데 모여 장엄한 광경을 연출하니, 너른 황야를 가득 메운 지평선에 자리한 것은 하나의 거대한 행렬이었다.
엄청난 수의 전마들과 이를 뒷받침하는 병사들 그리고 그 뒤를 따라 끝도 없이 이어지는 길고도 넓은 수레는 가히 하나의 나라가 움직이는 것 같으니, 그 선두에 자리한 포홍은 이내 때가 되었다는 듯 자신의 옆에 자리한 장료와 오습에게 명을 내렸다.
“한수와 마등을 찾아 약속한 일만, 일만 이천의 병력을 각자 내어놓으라 전해라.”
“주공, 그리되면 우리의 병력이 육만이 넘게 됩니다.”
“부족하다. 옹주에 도착할 때까지 육만 이천을 칠만으로 불려라.”
“그 말씀은.....”
“.......”
포홍은 이에 대해 딱히 말을 하진 않았다.
그러나 허리춤에 자리한 만곡도를 쓰다듬으며 말 배를 차고 앞으로 나아가는 그를 보고 있노라면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모를 이들은 없었다.
- 작가의말
포홍이 온전히 복귀했습니다. 이제 주인공 위주로 달리게 될 예정이며 가후는 서역도호부에 남아야 하기에 이제 그 재등장이 나중으로 미뤄지겠지요.
너무 정리가 늦었습니다. 완전함을 기하다보니 올리는 부분도 늦어졌고 그 마지막까지 내용을 손보느라 시간이 걸렸네요.
그래도 이제 진짜 합법적으로 가후를 잠시 판에서 내보내게 되었습니다.
제가 집어넣은 인물인데도 막상 제가 어찌할 수 없다는 것이 그 안에서 각자가 살아 움직이며 자신의 자리를 만들어가고 지키는 것 같아 참 신기하긴 합니다.
아, 그리고 이제서야 시간이 나서 미뤘던 댓글들도 살피고 그에 대한 답변도 달아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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